〈 20화 〉사장[四章], 여명도래[黎明到來] 4
“유서에, 이름을 쓰고?”
사마문은 당소소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보면 볼수록 새로운 여자였다. 사마문은 웃음 덕분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요재에게 손짓을 했다. 요재가 그에게 다가오자, 사마문은 질문을 던졌다.
“요재, 마교에 돌아가기 까지 남은 기간이 어떻게 되지?”
“다섯 달 정도입니다.”
“데리러 오면 죽여 버린다고 전해.”
“…네.”
요재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문은 그녀가 그러던지 말든지, 당소소를 바라봤다. 당소소는 헐떡이며 사마문에게 적의를 토해내고 있었다. 사마문은 그런 그녀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사마문은 말끝을 흐리며 당소소의 귓가에 다가가 속삭였다.
“정말로, 죽기라도 해야겠어.”
사마문은 그렇게 속삭인 뒤, 고개를 살짝 돌려 멀리서 느껴지는 이변을 감지했다. 지친 기색이었지만, 힘 있게 딛는 발걸음에선 감당하기 버거운 진노가 느껴졌다. 사마문은 지금 달려오는 중인 그를 마주쳤다간, 한 줌의 독액이 될 것이라는 걸 의심치 않았다.
사마문은 당소소의 볼을 잡아당긴 뒤,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당소소는 그의 뜬금없는 행동에 볼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이 미친놈이 뭐하는 짓….”
“오늘은 여기까진가? 예상보단 빨랐군. 아직 독천은 현역인모양이야.”
“…아빠?”
“독천을 아빠라고 부르나?”
“…….”
당소소는 무의식적으로 부른 아빠라는 호칭을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남성이었던 그녀에겐, 아빠라는 단어는 아직 버거운 단어였다. 당소소의 사마문은 또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다채로운 향을 풍기는 여성은, 그에겐 처음이었다. 사마문이 웃음기를 잔뜩 묻히며 말했다.
“화검공자의 가면은, 이젠 쓰지 못하겠군. 당문은 ‘아빠’가 데려갈 테니까 너무 서운해 하진 말고.”
“…너 그러다가 진짜 훅 가는 수가 있어.”
“앙칼진 매력도 꽤 훌륭해. 그럼, 조만간 새 신분으로 찾아가지.”
“다음에 보면, 네 목구멍에 독을 부어줄게. 한번 와봐.”
사마문은 당소소의 살벌한 경고에, 키득거리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며 당소소에게서 멀어졌다. 요재는 잠시 당소소를 바라보다,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나 고통스러웠던 방안은,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긴 한숨에 온 몸을 잡아당기던 긴장을 토해냈다.
“하….”
당소소는 온 몸의 힘이 빠지는 듯 했다. 긴장이 풀리자, 전신에 누적되었던 피로가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인사를 건넸다. 방금까지의 고통과 불안은 모두 꿈인 것 같은 몽롱한 감각. 그녀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쓰러지려는 상체를 지탱했다. 상체의 무게가 팔에 실리자, 손목의 통증이 그녀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윽.”
당소소는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뺨을 바닥에 긁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비취색의 익숙한 장포가, 그녀의 눈에 비쳤다. 당소소는, 문득 자신이 진명에게 던졌던 말이 떠올라 슬쩍 웃었다.
‘봐, 안 죽었잖아.’
“소소야…!”
익숙하고 다급한 당진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는 팔이, 그 온기에 풀어져 결국 다시 풀썩 쓰러진다. 당진천은 재빨리 다가가 그녀의 상체를 받혔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냐! 대체 어떤 일이 있던 거야? 이 아비에게 말해보아라!”
“아버지, 살아 있었군요. 마교에게 화를 입진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네 걱정부터 해라, 딸아.”
당소소는 웃음을 지으며 당진천의 품에서 길게 누웠다. 나른했다. 안온했다. 그리고, 익숙했다. 그런 그의 장포에서 느껴지는 짙은 피비린내와 코를 찌르는 독기의 향. 당소소는 지친 기색으로 당진천에게 물었다.
“오라버니인가요?”
“그래. 갔다.”
“그렇군요.”
당소소는 짧게 대답하고, 흙투성이의 뺨을 당진천의 소매에 비볐다. 복잡한 감정이었다. 자신이 좀 더 잘했다면, 다른 결말이었을까. 좀 더 단란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을까. 당소소의 팔이 떨려왔다. 감정이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당소소는 감정을 억지로 구겨 넣고, 잔뜩 억누른 한마디만을 내뱉었다.
“…아쉽네요.”
“전적으로 널 믿지 못한 내가 잘못한 것이다. 그리 책망하지 말거라.”
당진천은 당소소를 달래며 그녀를 업었다. 그의 어깨로 내려오는 흙이 엉켜있는 머리칼. 늘어진 마른 팔에, 밧줄 모양으로 뜯겨져 나간 살점들. 아무것도 들지 않은 것 마냥, 가벼운 딸의 무게까지. 당진천은 눈을 지그시 감고 울화를 삭혔다. 화를 냈다간, 딸이 부담스러워 할 테니.
당진천은 말없이 그녀를 업고 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방 안을 넘자, 고요한 산속의 사찰이 그들을 맞이했다. 우려섞인 눈으로 당진천과 당소소를 바라보는 검은 무복의 사내들. 그들의 옷깃엔, 검은 바람이 수놓아져있었다.
“가주님, 아가씨는….”
“흑풍대는 가서 집안을 정리하도록.”
상황을 물어오는 흑풍대에게. 당진천은 고개를 저으며 그들을 물린다. 흑풍대는 물러서고, 당진천은 당소소의 불규칙한 숨결을 느끼며 천천히 걸었다. 사찰의 돌계단을 지나 정원을 건너고, 푸른 잎사귀들이 있는 산길을 걸었다.
“아버지.”
“아빠라고 부르라고 했잖느냐.”
“그치만, 부끄러운데.”
당소소는 그렇게 속삭였다. 바람이 불어 푸른 잎사귀들을 가르고, 그녀의 머리를 휘날렸다. 녹음을 넘어온 여명은, 그녀에게 빛을 내리 쬐였다. 당소소는 그 강렬한 빛에 잠시 눈가를 찡그리며 시선을 피했다. 당소소는 피로에 젖은 목소리로 당진천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요?”
“열흘이란다.”
“하하…. 배고프다.”
당소소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당진천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 했지만,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자신의 딸을 업고 울분을 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진천은 조금 아래로 내려간 당소소를 고쳐 업으며 자상한 말투로 그녀를 달랬다.
“집에 돌아가면, 소소가 좋아하는 생선튀김을 해먹자꾸나. 매콤달콤한 양념도 얹고, 운남에서만 나오는 과일들도 맛보고. 또, 장비가 먹었다던 장비우육도 괜찮더구나.”
“…소면이랑 죽엽청.”
“소소,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술은 안 된다고 했잖느냐.”
“두 잔 이상 안마시면 괜찮아요, 아빠. 신경 쓰지 마시고 걸어요.”
사근거리는 당소소의 목소리에 당진천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울 때는 아빠라고 부르는 군.’
당진천은 쓰게 웃었다. 한참을 걷다가, 조용하던 당소소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왜 그러냐, 딸아?”
“내가 강했으면, 좀 더 나은 상황이 왔을까요?”
“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게다.”
당진천은 고개를 저었다. 일련의 사건은 당소소가 조금 더 강해진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일의 시초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자신이 들였던 두 부인간의 사이와, 첫째 부인의 당가에 대한 혐오까지.
하지만, 당소소는 그 말에 납득하지 못한 듯 했다. 당소소는 당진천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감정을 토해냈다.
“혹시 제가 좀 더 잘 했더라면, 이런 나쁜 상황은 안 오지 않았을까요?”
당진천은 그녀의 말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최악을 상정해본다. 당청이 자신의 무력을 믿지 않고 당소소를 인질로 삼아 자신에게 죽음을 강요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진천은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훑어 올려준다.
“잘했다, 우리 딸.”
“…….”
당소소는 그 자상한 말에도,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이 넓은 구주팔황의 일부인 사천성에서, 자신은 지쳐서 아버지의 등을 빌리고 있었다. 제 아무리 주인공이 강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지만.
‘과연 나는, 다른 이들은 행복한 결말을 맞을까?’
미래를 알고 있는 그녀는, 이미 그 의문의 해답을 알고 있었다. 쌍검무쌍은, 주인공과 그 주변들의 행복만을 서술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 덕에 다 담지 못했던 실재했던 다른 이들의 일들은, 이렇게 서술의 뒤에 숨겨져 있었다. 그 결과, 당소소 자신은 어떻게 되었나?
당소소는 마른 팔을 떨며 당진천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결연한 태도로 말했다.
“무공을 좀 알려주세요, 아버지.”
“…내가 다 패죽이면 되지 않겠느냐?”
“아버지 혼자선, 한계가 있잖아요.”
당진천의 말에 당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사천성 안이야, 독천에게 감히 이빨을 내밀 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대가 같은 구주십이천이라면. 그것도 아니라면 신화처럼 전해지는 초고수 천하십강이라면. 쌍검무쌍에서 가장 강했던 마교의 인물들이라면.
아버지에게만 미뤄둬선 안됐다. 그녀도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들을 활용해, 이 이야기의 뒤편에 흐르는 암류를 조정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행복을 원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을 수 있도록. 자신이, 그 모습을 보며 웃을 수 있도록. 당소소는 생각을 마치고, 장난기를 섞은 말을 던졌다. 쌍검무쌍에서, 한 고수가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던 말이었다.
“그리고 아버지, 약하잖아요. 남궁세가의 검천[劍天]한테 밀린다던데.”
“어느 씨발…, 아니. 어느 식견이 짧은 자가 그렇게 말을 하고 다녔느냐?”
“흐흣, 농담이에요.”
“어느 미친 새끼가 그런 헛소문을…?”
“농담이니깐….”
당소소는 진심으로 분노하는 당진천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었다. 이 한 줌의 평범함이, 자신이 바라던 것이었으니까. 그 평범함을 가슴에 품으며, 당소소는 눈꺼풀을 짓누르는 피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당진천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당진천의 귓가에 들려왔다.
‘후, 자는 모양이야. 욕은 제대로 듣지 못했겠지? 말조심 해야겠어….’
당진천은 헛기침을 하며 순간 험한 말을 뱉은 자신의 태도를 반성했다. 기억을 잃기 전에야 험한 말을 서슴없이 했다지만, 기억을 잃은 후에는 조신하고 착한 태도를 보여주는 딸이었다. 혹여 라도 예전 같은 말투를 하게 둘 순 없었다.
당진천은 말의 투레질 소리에 당소소를 바라보던 시선을 돌렸다. 사찰의 입구 앞에선, 흑풍대 무인 한명이 마차를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무인은 자고 있는 당소소를 보더니, 소리죽여 말했다.
“흑풍대는 모두 당가로 돌아갔습니다.”
“그래. 조금만 더 수고하시게.”
“옛, 가주님.”
당진천이 마부에게 눈짓을 하자, 마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는 당소소를 조심스럽게 눕히고,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의 몸을 덮어주었다. 그러자, 당소소가 몸을 뒤척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음….”
“그래, 잘 자거라.”
당진천은 그녀의 코를 간질이는 머리를 쓸어 올려 주었다. 그녀는 그 손길을 느낀 건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더러운…, 마교 새끼들….”
“…….”
“죽었어….”
당진천은 혹시, 말투를 교정하기엔 이미 늦은 건 아닌가라는 비교적 정확한 예측을 했다.
*
하연은 느닷없이 들려오는 바깥의 괴성에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사천당가가, 습격을 받았나?’
인간의 것이 아닌 괴성에, 하연은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가주님은 중원에서 가장 강한 열두 명 중 한 분. 불안함에 떨 필요는 없어. 이 습격을 제압하시고, 곧 아가씨도 데려오실 테지. 우린 오대세가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불리는 곳이니까.’
하연은 제멋대로 떨고 있는 무릎을 부여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더 커지는 괴성. 움켜쥔 손엔 힘이 들어가고, 치마가 구겨진다. 하연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바탕 소나기가 내리는 소리가 그녀의 귀를 때렸다.
찾아오는 침묵에, 하연은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괴성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저기요, 누구 없나요? 여기에 사람이 있어요.”
하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친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굳게 잠긴 문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리며 외친다.
“여기에 사람이 있어요!”
크게 외치길 수차례. 하연은 반응이 없는 너머에 절망하며 주저앉았다. 그 순간, 바깥에서 미약한 소리가 문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여기가 소소 아가씨의 독봉당이라는군. 단혼사 영감이 뒷정리를 하라는데?”
“형님, 언제부터 그렇게 점잖아지셨소?”
“끌끌. 진명새끼의 박살난 얼굴을 보고도 웃어줄 수 있는 여자라면, 점잖은 체를 해서라도 잘 보이고 싶지 않겠느냐?”
“흑규야, 너 이제 장로 아니야. 그러다 진짜 뒤지는 수가 있어.”
하연은 그 말소리를 붙잡으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여기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절박하게 두드리는 문. 다행스럽게도, 하연의 목소리 또한 바깥의 그들에게도 닿았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형님, 너무 과민하신 것 아니오? 아무리 독강시 같은 괴물을 눈앞에서 봤다곤 해도….”
“쯧쯧, 진명, 아직도 귀신같은걸 무서워하느냐? 애새끼도 아니고 말이야.”
“진짜 이 새끼가.”
그들의 대화에, 하연은 가슴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소리쳤다.
“이리 오라구욧!”
귀를 찢는 하연의 목소리에, 세 발걸음 소리가 점차 하연에게 다가왔다. 하연의 어두워진 얼굴은 점차 화색을 띄었다.
끼이익!
낡은 경첩이 접히는 소리가 들리며, 어둠만이 있던 창고에도 빛이 들어왔다. 하연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문을 열어준 세명을 바라봤다. 진명은 하연을 바라보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시비같은데.”
“네, 네! 전 당소소 아가씨의 전담시비, 하연이에요.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음, 뭐…. 소소 아가씨의 부름을 받고 당가에 몸을 투신한 진명이오.”
진명은 어색한 자세로 하연에게 포권을 했다. 하연은, 감사의 표시로 길게 목례를 한 뒤 고개를 들었다. 하연은 진명의 얼굴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요? 아가씨를 소중히 여겨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뭐 큰일을 했나…. 그냥 따라 온 것뿐인데.”
“…이 큰 저택에서, 아가씨를 아껴주던 분은 가주님 한 분 밖에 없으셨거든요.”
“뭐, 그런 당연한 것을 가지고….”
진명은 그런 감사를 받는 것이 머쓱했는지, 뒤통수를 긁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수수하고 초췌한 하연의 얼굴이었지만, 감출 수 없는 미색이 있었다. 왕오는 하연을 바라보며 헛기침을 하고 가슴을 들어 올려 제 딴에는 멋있는 자세를 취했다. 흑규는 그런 왕오의 옆구리를 찌르며 핀잔을 주었다.
“너, 저런 중년 여성이 취향이었냐?”
“…네?”
하연이 정색을 하자, 진명은 고개를 흔들며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신경 쓰지 마시오. 머리에 든 게 없는 양반이니까.”
“아, 네….”
하연은 다소 냉랭한 대꾸를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군청색의 새벽이, 점차 밝아오고 있었다. 검은 색의 무대를 불사르고, 황금빛의 막이 내려오는 것 같았다. 불안했던 어둠이 가시고, 새로운 날이 찾아올 것 같았다. 하연은 그 여명을 바라보며, 눈을 감고 바랐다.
‘아가씨, 무사하시길….’
동이 터오는 곳 저 멀리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마차의 바퀴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