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오장[五章], 군학일계[群鶴一鷄] 4 (25/130)



〈 25화 〉오장[五章], 군학일계[群鶴一鷄] 4

당웅은 방계출신의 인물이었다.

할머니 대부터 갈라져 나온 그의 집안은, 대대로 당문에 충성을 바쳐왔다. 그 전통은, 당웅에게도 이어졌다. 당웅은 그런 자신과 가문이 자랑스러웠다.

비록, 방계로 갈라져 나온 자식들은 내각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제약이 있어도, 그에게 당문은 자긍심이었다. 흑풍대에 들어가서도 그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진.

‘방계출신의 버러지가 왜 여기있는거야? 쪽팔리게.’


‘저리 좀 비켜. 아버지는 왜 흑풍대를 남겨두는지 몰라? 녹풍대만 있어도 당가는 굴러갈 텐데.’




당웅의 시선은 앞에 있는 당소소의 마차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외각의 인원들을 하인 부리듯 부렸고, 심기에 거슬렸다면 막말도 서슴지 않던 인물이었다. 당소소가 칠혼독을 먹고 쓰러져, 기억을 잃었다는 소문은 들었다. 하지만, 앙심은 녹지 않았다. 다만, 대놓고 표출하지 않을 뿐.

당웅에게로 근접하는 말발굽소리가 들린다. 당웅은 회상을 멈추고 옆을 돌아본다. 흑풍대 일조의 조원 중 하나였다.


“대장. 곧 중간지점에 도착합니다.”


“…나 말고, 진명이라는 자에게 해라. 지금 흑풍대 일조의 대장은 내가 아닌 그 사파놈이니까.”

“앗, 예.”


당웅은 부하의 보고에 날이  태도로 받아쳤다. 부하는 긴장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며, 당소소의 마차로 다가간다. 당웅은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봤다. 지시를 받았는지, 마차를 기준으로, 행렬은 방향을 틀어 샛길로 빠져간다.


샛길의 종점에는, 객잔 하나가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

“자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진명이라는 이름으로 예약도 돼 있질 않고요.”


“…예? 그럴 리가. 미풍객잔이라고 분명히 총관께서 알려주셨는데.”


“미풍객잔은 맞습니다만…. 정말로 예약된 것이 없습니다.”


당소소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진명을 돌아본다. 그리고, 진명을 추궁했다.



“진명, 예약은 제대로 한  맞아요?”


“예, 분명히 흑규와 왕오에게  객잔을 예약하라고 했는데….”

“…흑규?”


당소소가 눈을 가늘게 뜨며 진명을 바라본다. 진명은  눈빛을 보며 아차 싶었다는 탄성을 터뜨린다.

“…아.”


“으이구, 못살아.”

당소소는 진명의 옆구리를  쑤시며 그의 실책을 응징했다. 진명이 고개를 숙이며 자책하고 있자, 당웅이 다가와 날이 선 말을 뱉었다.




“아가씨, 뭐하고 계십니까? 이대로라면 흑풍대 대원이 점심식사를 굶게 될 것입니다.”


“아, 앗. 네.”

“…멍하게 계시지 마시고, 빨리 대안을 찾으십쇼.”

“이 새끼가.”


진명은 당웅을 바라본다. 당웅은 삐딱한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뭐, 잘못된 말을 했나?”

“네 꼬인 혓바닥을, 단검으로 좀 풀어줘야 할 것 같은데.”

당소소는 그 둘을 뜯어말리며, 진명의 어깨를 쭉 밀어 멀어지게 한다. 그리고, 진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명, 그만. 잘못한건 잘못한 거니까…. 최대한 빨리 찾죠.”


“…예, 아가씨.”

“후우.”

막상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천성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그녀가 당장 식사를 해결할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당소소가 팔짱을 끼며 고심하고 있자, 하연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가씨,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예약을 잘못했어. 아마 흑규의 실수인 것 같아.”


“…아, 저보고 중년의 여인이라고 하던 그….”

“하연이 왜 중년의 여인이야? 나랑 비슷한 나이처럼 보이는걸. 걔 좀 이상하니까, 그리 신경 쓰진 마.”



얼굴색도 바꾸지 않고 뱉는 당소소의 말에, 하연은 붉어진 얼굴을 숨기며 웃었다.




“후후, 그런 말 하셔도 안 넘어가요. 아가씨. 그럼, 제가 좀 나서서 찾아볼까요?”


“음, 잠시만….”

당소소는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며 도움이 될 만한 기억을 떠올린다. 집에서 무언가를 먹은 기억은 중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다. 그 후론 편의점의 폐기식품들이나, 공사장에서 간식으로 빵과 우유 같은 것과, 함바집이라 불리는 현장식당에서 먹었던 음식들 뿐.


당소소의 손가락이 멈췄다.



‘빵이랑 우유…?’


“음, 그럼. 하연, 조금만 찾아보고 와줘.”

“네, 아가씨.”

하연이 사라지자, 당소소는 손짓을 하며 진명을 부른다.

“진명.”


“왜 그러십니까?”


“일단 다시 객잔주인에게 말해서 주먹밥이라든지, 그런 간단한 음식들을 포장할 수 있는지만 물어보고 와줘요. 쉴 곳은 찾고 있으니, 그동안 호위대의 배라도 채워야 하잖아요?”

“네, 그리 하겠습니다.”


진명은 다시 객잔으로 돌아간다. 당소소는 진명을 기다리며 품 안에서 털실을 꺼내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기다리길 몇  후, 진명은 고개를 저으며 다가왔다.

“씨발놈들, 내줄 음식이 없답니다.”

“…무슨 일인데요.”


“백능상단이 먼저 와서 음식을 모조리 쓸어갔다고 하던데요.”


“아.”




당소소는 백능상단이라는 말에 김수환의 기억에서 쌍검무쌍의 설정을 건져 올렸다.

사천성 최대의 상단이자, 아미파와의 제휴관계에 있는 상단인 백능상단. 사천성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거대한 상권을 쥐고 있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상단을 알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철혜검봉[鐵慧劍鳳] 백서희.’



백능상단주의 둘째 딸이자, 아미파에서 이례적으로 그녀의 재능을 인정해 속가최초로 아미파의 상승무공을 익히도록 허락된 여인.

그리고, 주인공에게 반했던 쌍검무쌍의 주연  하나.


당소소는 진명을 돌아보며 서둘러 물었다.



“안에 있던 사람은, 혹시 큰 검을 찬 여자는 보이지 않았어요?”


“예? 그건 저도 잘….”


“다시 가서…. 아니, 기다려요. 내가 갈게.”


“예? 아가씨, 잠시 만요!”

당소소는 치마를 살짝 들어올려, 그대로 미풍객잔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마주하는, 쌍검무쌍의 주연. 당소소의 마음은 걷잡을  없이 부풀어 올랐다. 당소소가 객잔에 도착하자, 주인이 못마땅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명은 볼을 움찔거리며 말했다.

“씨발놈들이, 당가인걸 숨기고 오냐오냐하니까….”

진명이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자, 당소소는 곧바로 목소리를 내리깔며 아가씨의 말투를 내려놓았다.




“…야,  말썽피우면 그때 안 맞았던 세 대, 단혼사님한테 말해서 때려달라고 할 테니까 알아서해.”


“예, 예에? 아니 그렇지만 태도가 너무 하잖습니까.”

“시끄러워. 만날 사람이 있어.”

당소소는 진명을 타이르고 목을 가다듬은 뒤, 객잔주인에게 다가갔다. 객잔주인은 퉁명스런 말투로 당소소에게 말했다.

“거, 몇 번째요? 음식도 없고, 자리도 없다고 했잖소?”

“저, 혹시…. 그, 그게 말인데요.”

“…뭐요? 바쁘니 빨리 말하쇼.”


점장이 팔짱을 끼며 대화를 재촉하자, 당소소는 점장에게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잠깐만 들어가 봐도 될까요? 정말 잠깐만.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폐는  끼칠 테니….”

“아 안 돼요! 돌아가쇼. 오늘 장사 끝났다니까.”

“…….”



당소소가 난감한 얼굴로 진명을 바라봤다. 진명은 길게 한숨을 뱉으며 단검을 쥐었다.  아가씨는 권위를 너무 숨기려고 한다. 마치, 자기자신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처럼.

자존감의 부족인진 잘 모르겠으나, 무언가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병적으로 혐오하고 있었다. 누군가 피해를 입어야 한다면, 자신에게 입히는 것을 선호하는 아가씨. 사파였던 자신은 이해하기 어려운 성격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이봐, 더 이상 당가의 행차를 방해한다면, 꽤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될 거야.”

“…사천당가?”

“아가씨께선 다른 이들이 꺼려할 것을 염려해 이름을 숨기고 다녔다지만…. 더 이상의 무례는 용납하기 어려울 것 같군.”


“진명. 그만해요.”


“퉤, 씨발놈이.”


당소소가 만류하자, 진명은 침을 뱉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체념하며 말했다.


“사천당가의 독천 당진천의 여식, 당소소라고 해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남는 음식이라도 좀 받을 수 있나요? 삯은 더 치를 테니. 그리고, 백능상단의 책임자를  뵙고 싶은데.”

“아, 아…. 잠시만…. 예,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확연히 차이나는 점장의 태도. 진명은  태도를 비웃으며 허리춤에 대었던 손을 다시 원위치 시켰다. 당소소는 무언가 언짢은 듯, 어두운 표정을 하며 점장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진명은 그런 당소소가 마음에 걸렸는지, 턱짓으로 점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런 부류는 권위가 없으면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당가인 것을 밝혔다면, 이런 대우를 받지도 않았을 겁니다.”


“…답답하네요.”



당소소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자신을 괴롭게 했던 사장들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권위로 찍어 눌러 강제로 말을 듣게 한 자신의 모습도 그리 다르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명은  고민 깊은 얼굴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뭘 그리 고민하십니까? 거 태어난 대로 살면 되는 거지. 아가씨는 아무리 봐도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

“무슨 고행을 하는 것 마냥, 자신을 학대하지 말라는 겁니다. 누릴 건 누리면서 살아야지. 당가의 아가씨인 것을 티 좀 내도 누가 안 잡…. 아가는 건 아니군.”


진명은 그렇게 말하곤, 부끄러움에 얼굴을 돌렸다. 당소소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었다.

“뭐, 노력해볼게요.”

“자신감을 가지십쇼. 다른 누구도 아닌 이 진명의 주군 아닙니까?”

“…당신의 주군이라 자신감이 없을 거라는  생각 안 해보셨죠?”

“푸핫. 농담도.  진명이 얼마나 강한데요. 나름 사파의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었습니다?”


당소소는 그 말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졌다. 당장 백서희부터가 진명 같은 고수는 쉽게 패퇴시킬  있을 만큼 엄청난 실력자였다. 거기에 쌍검무쌍의 주역들은, 차원이 다른 천재들이었다. 진명이 나름 재능이 있다곤 하나, 그들과 견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물론, 자신 또한.


당소소는 웃음을 그치고 안타깝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진명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요. 같이 힘내요.”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진명도 실뜨기 할래요? 아니면 나한테 독공을 좀 배워보시던가.”


“예? 제가 그걸 왜….”

당소소가 실을 내밀자, 진명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실을 바라봤다. 잡담을 나누던 당소소와 진명에게로, 점장이 달려 나와 거칠어진 숨을 뱉으며 말했다.



“허억, 허억…. 다행이도, 음식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능상단의 책임자에게 말을 해봤는데…. 잠깐 얼굴을 보는 것 정도라면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이름이?”

“사천당가시라면, 잘 아실 겁니다. 아미파의 후기지수, 철혜검봉 백서희 여협이십니다.”



당소소는 점장의 말에, 다시 마음이 둥실거리는 것을 느꼈다. 김수환이 가장 사랑했던 쌍검무쌍의 주연을 만난다는 생각에, 입술엔 절로 미소가 걸렸다. 당소소는 점장에게 한발 다가서며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


“만나준다고 하던가요?”


“아, 예…. 독천의 따님이라고 말하니까,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흐흣, 감사해요.”


“아, 예….”

당소소는 곱게 웃으며 점장에게 꾸벅 인사했다. 점장은 얼떨결에 당소소의 인사를 받으며 자신도 마주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달은 걸음으로 그를 스쳐가는 당소소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처자가 정녕 그 지독하고 악랄한 사천당가 출신이 맞나?’

그렇게 생각하는 점장에게, 진명이 다가가서 어깨 위에 팔을 올린다.


“밥 줘.”

“예?”

“저 새하얀 아가씨한테 눈독들이지 말고, 군소리 말고 밥이나 차리라고. 뒤지기 싫으면.”



점장은 당소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역시, 사천당가의 여식이 맞는 듯 했다.



*

“이쪽입니다, 아가씨.”

“감사해요.”

당소소는 점소이의 안내를 받으며 객잔의 이 층으로 올라선다. 일 층과는 다른, 깔끔하고 화려한 장식들. 당소소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이 층의 한 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식탁 앞에서 멈춰 섰다. 왁자하게 떠들던 모든 이가 당소소를 발견하고 침묵했다. 하지만, 땋은 머리의 여인은 당소소의 등장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저 턱을 괴고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 당소소는 낯설지만 익숙한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다.

“철혜검봉, 백서희.”


따분한  탁자를 손가락으로 쿡쿡 쑤시던 그녀의 손길이 멈춘다. 삐딱하게 턱을 괴던 손을 풀고, 먼 산을 바라보던 시선을 당소소에게 옮긴다. 허리까지 오는 땋은 머리가 탐스럽게 출렁이고, 나른해 보이는 반개한 눈이 당소소의 눈에 꽂혔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미친년.”



백서희는 당소소의 얼굴을 보며, 욕설을 뱉었다. 그리고, 다시 턱을 괴며  산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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