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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 〉오장[五章], 군학일계[群鶴一鷄] 5 (26/130)



〈 26화 〉오장[五章], 군학일계[群鶴一鷄] 5

당소소는 백서희의 욕설을 듣고 충격을 받은 듯, 멍하게 서있었다.


좌중은 침묵했다. 그녀가 아무리 백능상단의 둘째 딸이고 아미파 최고의 기재라고 해도, 독천의 딸을 욕하는 것은 꽤나 문제가 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백서희는 한참을 다른 곳에 시선을 두다, 귀를 긁적이며 말했다.

“오늘은 또 뭐가 불만이라 날 찾아온 거야?”


“…네?”


“네가 날 찾아올 때마다,  귀찮게 한다는 건 자각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전, 잘….”



백서희는 고개를 돌리며 당소소를 바라봤다. 정말 무고하다는 표정. 그녀에겐 정말 가소로운 표정이었다. 저런 표정으로 얼마나 많은 해코지를 해왔던가.

재능에 대한 시기, 관심에 관한 시기. 같은 나이의 여자 또래라 수없이 받았을 비교. 백서희는 이해할  있었다. 자신은 꽤 뛰어났으니까. 무공에 대한 재능은 아미파 역대 최고라 손꼽혔고, 백능상단의 재력은 사천성 제일이었다. 질투를 가지는 것은 솔직히,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당소소의 질투는 선을 꽤 넘었었다. 백서희는 탁자에 기대둔 긴 장검을 쥐고 당소소를 바라봤다.



“화검공자를 끼고 헛소문을 퍼뜨리는 거라던가, 몰래 내 음식에 설사약을 탄다던가. 뒤에서  헐뜯는  모두 참아줬잖아. 오직, 내 눈 앞에만 보이지 말라고 했잖니.”

“내가, 그런 짓을 했….”

“또, 모르는 척. 무슨 바람이 들어 사천교류회에 참가하려고 하는  모르겠지만, 사천성의 후기지수들 중 대부분이  싫어하고 있어. 사천교류회에 네가 온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가 벼르고 있을 걸?”

“…….”


“이건, 정파의 대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네 아버지, 독천 선배님을 봐서 주는 마지막 충고야. 그만 철 좀 들고 당가로 돌아가 얼굴을 보이지 마.”

당소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일어났던 사실이었으니까. 자신은 김수환이기 이전에 당소소였으니까. 당소소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숨을 고르며, 천천히 마음을 정리한다.




‘마음 같아선 당소소로서 살아가는 것도, 쌍검무쌍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도 포기하고 싶네….’



증오를 받는다는 것은, 익숙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다.


당소소는 새삼 당소소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피로를 느꼈다. 김수환의 말투를 죽이고, 아가씨의 행동을 연기하고, 거대한 이야기 속 사소한 것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그것은 약간이나마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은 거대한 이야기의 흐름에 닿지도 않았었다. 백서희의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사천당가 사람들의 악의를 받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쌍검무쌍이라는 이야기에서, 당소소의 자리는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당소소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러자, 김수환의 이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에게 물었다.



‘몰랐어? 내가 악역이라는 걸.’



당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만, 약간…. 정말 아주 약간 놀랐던 것뿐이야.’

당소소는 생각을 마치고 눈을 떴다. 그리고,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포권을 했다.


“죄송해요, 백서희 소저. 그저, 사과를 드리고 싶어서 찾아온 것뿐이에요. 사천교류회에서도 되도록 마주치지 않게 조심할 테니, 부디 용서를.”


“…그러던지.”

백서희는 혹시 몰라 쥐고 있던 장검을 다시 탁자에 기대었다. 그리고, 약간의 의아함을 느꼈다.


‘원래, 이정도로 핀잔을 들으면 독을 푸니 뭐니 하며 발악을 했을 텐데…. 뭐, 상관없나.’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당소소에게 핀잔을 준 것도, 그저 내버려둔다면 자신의 수련을 귀찮게 할 것 같아서였으니까. 백서희는 당소소의 사과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다시 몸을 돌려 턱을 괴었다. 그리고, 먼 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알아들었다면, 됐어. 날 귀찮게만 하지 않는다면, 사천교류회에서도 굳이 뭐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네. 그럼, 가시는 길 조심히 가시길.”

당소소는 웃는 낯으로 감정을 숨기며, 백서희에게서 몸을 돌려 사라졌다. 백서희는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소소가 모습을 감추자, 주변의 상인들이 호들갑을 떨며 백서희를 채근했다.


“아가씨, 어쩌자고 당가의 미친년을 건드셨습니까?”


“내일부터 식사에 독이 있나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럼, 내가 알아서  테니까 호들갑 떨지들 말고 쉬기나 하세요.”



백서희는 상인들의 말을 일축하며  하품을 했다. 당소소는 그런 백서희의 모습을 잠깐 돌아본다. 그리고, 입을 꾹 다물며 일층으로 내려갔다. 팔짱을 끼고 있는 진명이 보따리 하나를 앞에 두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소소는 그런 진명에게 다가가 물었다.


“진명, 식사는 전부 준비 됐나요?”


“아, 예. 이제 들고 가기만 하면…. 무슨 일 있었습니까?”

“…….”

진명은 음식이 들어있는 보따리를 들쳐 메며 대답하다, 당소소의 얼굴을 바라보고 얼굴을 굳혔다. 당소소는 말없이 진명을 바라본 뒤, 객잔의 입구를 손가락질하며 어서 나가라 명령했다. 진명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백능상단 그 새끼들이 무슨 짓 했습니까?”


“…진명. 준비가 끝났다면, 아무 말 하지 말고 나가줘요. 명령이니까.”


“예, 뭐…. 그러죠.”



진명은 당소소를 연신 돌아보며 객잔 밖으로 걸어 나갔다. 진명이 사라지자, 당소소는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악역인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혼자인 것은 예전부터 익숙했다. 육체의 고통도 익숙했고, 정신적인 고통도 나름 익숙했었다. 당소소는 그런 자신을 속으로 자랑스러워했다.

‘마도공자의 고문도, 잘 버텼잖…?’


“흑….”



하지만 아쉽게도, 익숙하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편이라 느끼고 있던 쌍검무쌍의 주역들에게 듣게 된 독설이라 더욱 그러했다. 당소소는 텅  것 같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난 왜, 그들이 나의 편이라 착각했던 걸까. 난 악역이었는데.’

“흐윽….”

당소소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소리를 죽여 울었다.


*

진명은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교에 납치될 때도 웃음을 짓던 저 아가씨를 울린 것은 어떤 일일지 상상하며, 흑풍대가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당웅은 그런 진명을 째려보며 물었다.



“뭐냐, 그건.”


“네 놈들이 두 발 뻗고  쉬고 있을 때, 소소 아가씨가 구해오신 식사다. 처먹던지 말든지 알아서 해.”

“쉬다니, 우린 마차를 경계했을 뿐….”

“마음 같아선, 싹 엎어버리고 싶은데….”


진명은 당웅을 째려봤다. 당웅은  수 없다는 듯,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진명은 혀를 차며 어깨에 멨던 보따리를 그들 앞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려 다시 객잔 쪽으로 향한다. 그런 진명의 발걸음을, 당웅의 말이 붙잡았다.


“너, 그녀에 대해 콩깍지가 씌어 있는 모양인데. 너도 조심하는 게 좋아. 이건, 선의의 조언이야. 이용당하지 말라는 차원에서 충고를 하는 거지. 거만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가씨가, 무엇 때문에 사파 나부랭이인 널 데려왔겠나?”

“거, 뒤지고 싶지 않으면 아가리를 좀 닫지?”




진명이 발걸음을 멈추고 사납게 대꾸하자, 당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라는 거야. 당가의 모두에게 미움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너를 들였다는 생각은 안 해보는 건가? 독봉당의 시비들도 거의 매번 물갈이 된다는 건 알고 있나? 성도 안에서의 그녀의 평판은?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어.”

“그래서, 뭐?”

“자네도 그녀의 괴롭힘을 당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는….”


진명이 냅다 달려들어 당웅의 멱살을 쥐고 들어올렸다. 그리고, 노기어린 기색으로 말했다.



“너….”


“뭐, 날 때리기라도 할 거야? 과연. 망나니 아가씨의 수하인 사파의 주구다워!”



상황을 지켜보던 흑풍대 대원들이 진명의 옷깃과 몸을 부여잡으며 당웅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거기, 뭐하고 있어요?”

하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힘이 들어가는 진명의 손에서, 힘이 풀린다. 진명은 당웅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러자, 그를 부여잡던 흑풍대 대원들도 진명에게서 떨어졌다. 하연이 그들에게 다가오자, 진명은 화가 잔뜩 엉켜있는 숨을 뱉으며 말했다.

“그만두지.”

“왜, 네놈의 눈엔 내가 치졸해보이고 우스워 보이나? 그녀가 우리에게 무슨 짓을  왔는지도 모르면서.”

“뭐, 내가 꼭 알아야 하는 건가?”




진명은 구겨진 자신의 옷을 매만지며 물었다. 당웅은 그의 질문에 아무런 말도  수 없었다. 진명은 그런 그들을 내버려두며, 하연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쉴만한 객잔은 찾았습니까?”

“아뇨. 이 근처에 객잔은 미풍객잔 하나뿐이에요. 헌데, 싸운 거예요?”

“의견 충돌이 있던 것뿐입니다. 객잔에 아가씨가 있으니, 모셔 오십쇼.  곳이 없다면, 간단히 식사만 마치고 출발해야  것 같습니다.”

“객잔에 아가씨를 혼자 내버려 두셨다고요?”

“뭐, 아가씨께서 그리 하라 하시니….”

진명은 하연의 추궁에 당소소의 명령이었다며 얼버무렸다. 하연은 그런 진명을 잠시 노려보더니, 콧방귀를 뀌며 객잔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한마디를 던진다.



“이 일행들이 과연 아가씨를 호위하려고 뭉쳐있는 건지, 괴롭히려고 뭉쳐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비록 아가씨가 외각의 무인들을 깔보고 흉본 건 사실이여도, 지금은 납치당했던  몸을 이끌고 당가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중 아닌가요?”


“…….”

“흑풍대의 무인이라면, 무엇이 공이고 무엇이 사인지 깨닫고 있을  알았는데.”




자신들보다 더 고생했을 독봉당의 시비가 하는 말에, 흑풍대는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하연은 그 말을 뱉은 뒤 멀어졌고, 진명은 말 없는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곧 출발이니, 아가씨께서 구해오신 그 밥이나 빨리 먹고 준비하도록.”

흑풍대의 시선은 자신들 앞에 놓인 보따리로 향했다. 하지만, 그들은 차마 그 보따리에 손을 댈 수 없었다.

말없이 보따리를 바라보길 한 다경. 하연과 당소소가 객잔에서 나와 집합장소로 걸어왔다. 당소소는 살짝 충혈된 눈으로 보따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아무도 안 먹은 거야?”


“이 새끼들이.”


진명은 인상을 쓰며 흑풍대를 바라봤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듣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지들을 좆같이 봤던 사람의 밥은  먹겠다 이건가?’



진명이 한바탕 쏘아붙이기 위해 한걸음 앞으로 나서자, 당소소는 그를 만류하며 당웅을 바라봤다. 당웅은 당소소가 자신을 바라보자, 그제야 보따리를 풀며 대답했다.

“일행이 모두 모여야, 먹을 것 아니오?”


“…그렇네.”

당웅은 보따리 안의 주먹밥을 흑풍대 대원들에게 나눠주었다. 당소소는  광경을 보며,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도 몸을 움직이는 일을 주로 했기에 알고 있었다. 힘은 먹을 것에서 난다는 것을.



“미안해요. 좀 더 괜찮은 식사를 가져왔어야 했는데.”

“…….”


당웅은 그런 말을 하는 당소소를 한번 바라봤다. 그리고, 당소소에게 주먹밥을 내밀며 말했다.

“객잔의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됐습니다. 어서 드시고 출발하지요.”


“응, 고마워.”

“…아가씨께서 구하신 식사입니다.”

당소소가 주먹밥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엷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고마워.”

당소소가 주먹밥을 입에 가져다 대자, 모두는 말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마쳤으면, 출발하겠습니다.”


조촐한 식사는 금세 끝났다. 진명의 말에, 당소소는 하연의 인도를 받아 마차에 올랐고 흑풍대는 풀어두었던 짐을 챙겨 말 위로 올랐다. 진명은 마부석에 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나자 고삐를 움직이며 행렬을 움직였다.

마차를 끄는 그의 옆으로, 당웅이 다가오며 말했다.


“숙소에서 쉬려면, 좀 더 서둘러야 할 거야. 객잔에서 실랑이를 벌이느라 많이 지체됐어.”

“…알겠다.”

진명이 당웅의 말에 대답하자, 당웅은 진명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주변의 흑풍대에게 다가가며 속도를 높이라는 말을 전해갔다. 진명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고삐를 한차례 내려쳐 속도를 높였다.

좀 더 다급해진 말발굽 소리는, 대로를 지나 산기슭을 지나는 샛길로 들어섰다. 샛길답지 않게 잘 닦인 길은 숙소에 도달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줄여주고 있었다. 뉘엿뉘엿 몸을 눕는 해. 하지만, 이 샛길을 따라간다면 해가 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할  있을 것이다.

휘이이익!

진명은, 그렇게 생각했던 자신의 머리를 한  치고 싶어졌다.

“적습이다, 흑풍대!”


“이런 제길!”



괴상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더니, 시커먼 그림자들이 산줄기를 타고 내려왔다. 가죽옷을 입은 사내들이 줄줄이 내려와 샛길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그들의 등과 허리춤엔 제각기 빛나는 날붙이들이 걸쳐져 있었다.


진명은 서둘러 고삐를 당겨 마차를 멈추고,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마부석에서 내렸다. 그런 진명의 등 뒤로, 당소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일이에요?”

“…산적입니다.”


“어허, 친구. 우린 녹림의 협객이라네. 그런 노골적인 단어를 사용하면 쓰나.”

호피를 걸친 수염투성이의 사내가 누런 이를 보이며 씩 웃었다. 그 웃음에 흑풍대는 긴장을 하며 허리춤에 꽂아둔 암기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잠시만. 내가 해결하지.”



진명은 그런 흑풍대를 만류하며, 산적들에게 다가간다. 산적들은 진명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잔혈객 진명 알지?”

“아, 그 친구. 잘 알고 있지. 한  녹림의 집 아래에서 같이 살았다고도 들었는데.”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

진명은 뒤편을 슬쩍 돌아보며 눈치를 보더니, 산적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묻는다.




“니 몇 기야, 씹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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