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오장[五章], 군학일계[群鶴一鷄] 7
나뭇가지를 그러모은 모닥불이, 나른한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저마다 모닥불을 둘러싸고, 외투를 이불삼아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들 중 일어나있는 두 사람, 진명과 당웅이 그 모닥불을 등불삼아 추후의 일을 논의하고 있었다. 당웅은 저 멀리 묶어둔 산적을 가리키며 물었다.
“산적들은 어떻게 할 거지?”
“풀어줘야지.”
“왜지? 후환을 대비한다면 죽이는 것이 옳지 않겠나?”
당웅의 말에 진명은 고개를 저었다. 흑림총련으로 묶인 사파와 녹림은 꽤 끈끈한 결속을 자랑한다. 그들에게 손을 댔다간, 치명적이진 않더라도 피곤한 일이 이어질 것이다. 진명은 당웅을 바라보며 답했다.
“적어도 상황을 뒤엎을 절대적인 무력이 없는 한 우린 그들을 건드려선 안 돼. 산속으로 숨어들어간 사파들은 지리멸렬하고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하지만, 흑림총련의 이름 아래 결속된 그들은 끈질기고 독하지.”
“흑림총련…. 사파와 산적들이 손을 잡았다는 말은 들어본 적 있다만, 그리 대단한 것인가?”
“아니, 아미파나 청성파, 당문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곳도 아니야. 하지만 놈들에게 남은 건 절박함뿐. 자기들도 좋다고 무식하고 좆같은 산적들과 손을 잡고 흑림총련같은 것이나 만들었겠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은 거지. 그래서 약이 바짝 올라있어.”
진명은 허리를 굽혀 나뭇가지를 주운 뒤, 모닥불에 던져 넣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 어쩌면 그놈들도 당가가 말하는 독심을 가졌을 수도 있겠군. 저런 냄새나는 새끼들과 한솥밥을 먹고 있는 걸 보면.”
“시정잡배들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군.”
“뭐, 농담 같으면 저 새끼들 목 썰어서 던져놓고 와보던가. 온갖 사파와 산적들이 죽을 때 까지 쫒아올 테니까. 그것이 흑림총련으로 맺어진 계약이야. 내가 나올 적엔 꽤 이름 높은 사천성 사파의 고수들도 보였으니…. 웬만해선 건들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이름 높은 사파의 고수? 뭐, 천괴[天怪]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당웅이 진명의 말을 비웃으며 농담처럼 대꾸한다. 진명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한때 사천성을 뒤집어 놓았던 천괴 담륭과 학귀[虐鬼] 번중. 내가 흑림총련을 나오기 전에 봤었던 사파의 고수들이지.”
“…단순히 넘길 이야기는 아니었군. 그 둘은 은퇴했다고 들었거늘.”
“손에 끈적이는 피가 묻었는데 은퇴가 다 무슨 소용이야? 때 되면 다 죽을 자리 찾아서 돌아오는 거지. 무림에서 손을 씻는다며 금분세수[金盆洗手]니 뭐니…. 다 우스운 일일뿐.”
진명은 양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뒤돌아섰다.
“그럼 남은 시간, 불침번 수고하시고.”
“…흥.”
당웅은 진명의 약올림에 콧방귀로 답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늘로 피어나는 불똥을 바라보며, 여러 상념을 피워낸다. 주로, 기억을 잃은 당가의 아가씨에 관한 생각이었다.
평소의 당소소 같았다면 수십 번의 불평불만을 했을 여행길과, 자신의 수하인 진명의 실수를 덮어쓰게 하기 위해서 윽박을 질렀었던 미풍객잔에서의 식사들. 비록 실패를 했다곤 하나, 자신들을 위해 앞으로 나섰던 일들까지.
“푸흣. 으흠….”
당웅은 순간 터져 나온 웃음을 집어넣고, 다시 생각을 이어갔다.
머리는 그녀를 이해하라 말하고 있지만, 당웅 자신의 가슴에 박힌 미움의 쐐기는 뽑을 수 없었다. 그 감정을 잊고 용서해버린다면, 무언가 자신이 우스운 놈이 되는 것 같았으니까. 자신의 수모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 같았으니까.
당웅은 그런 생각을 하며,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는 모닥불에 꺾어둔 나뭇가지를 던져 넣었다. 일렁이는 불길 너머, 한 여인의 그림자가 보였다. 당웅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녀를 반겼다.
“…주무시지 않으시고, 어쩐 일이십니까. 아가씨.”
“그, 잠이 안와서.”
그 그림자의 정체는 당소소였다. 당웅의 시선은 작게 떨리는 그녀의 손으로 가있었다.
‘싸움을 겪지 못했던 몸으로, 싸움을 겪어본 탓인가?’
“앉으시죠.”
“고마워요.”
당소소는 당웅이 내어준 자리에 앉아 멍하니 모닥불을 바라봤다. 또 다시 당소소의 감정이 발작을 일으켰다. 악몽을 꾼 탓에, 어두운 마차 안에서 눈을 뜬 탓에 그 어둠은 자신의 목을 졸라왔다. 다행이도 서둘러 밖으로 나와 불빛을 찾은 덕에 큰 발작까진 이어지지 않았다.
당소소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격한 감정은 쉽사리 통제가 되지 않았다. 당소소는 당웅에게 말을 걸어 불안감이 넘실대는 마음을 외면했다.
“불침번중이신가요?”
“예. 막 진명과 교대를 한 참입니다.”
“그렇군요.”
이어지지 않는 대화. 당소소는 부들거리는 팔을 움켜쥔다. 그리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으며 떨려오는 감정을 진정시킨다. 당웅은 그런 당소소를 흘깃 바라보더니, 불을 더 크게 밝히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쟁여놓은 장작을 가져오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를 잡는 연약한 음성.
“불은 더 밝히지 않아도 괜찮으니, 잠깐만, 앉아있으세요.”
“…예,”
당웅은 당소소의 말을 듣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침묵은 어둠처럼 내려앉았다. 당소소는 그 인기척을 빌려 이내 감정을 진정시킨다. 그녀의 감정은 성공적으로 불길에 녹아 마음 깊은 속으로 침잠했다. 당소소는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얼굴을 묻은 채로 당웅에게 물었다.
“실례되는 질문이겠지만, 물어봐도 괜찮나요?”
“어떤 질문이신지?”
“전, 당신들에게 어떤 나쁜 짓을 했었나요?”
“…….”
심기를 건드는 당소소의 질문. 당웅은 말없이 불쏘시개로 모닥불을 뒤적거릴 뿐이었다.
당소소는 자신이 당소소가 된 이후로부터, 자신이 악역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쌍검무쌍의 내용을 알고 있는 이상 이젠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하연을, 진명을, 학사를, 그리고 지금은 없는 당청의 인식까지도 자신이 노력을 한다면,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웅도, 어쩌면 백서희도 당소소의 노력에 따라서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당소소는 무릎사이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어 당웅을 바라봤다. 당웅의 얼굴을 비추는 모닥불의 빛은, 고뇌를 나타내는 것처럼 깜빡였다. 불쏘시개는 다시 한 번 움직였다. 불똥이 피어오르며, 불길이 가라앉는다. 당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작을 더 가져오겠습니다.”
“대답이 어려울 정도로 꽤 지독한 괴롭힘이었나 보군요.”
당웅은 그런 말을 하는 당소소를 돌아보았다. 명료한 의지에 가득 찬 눈동자. 병상에 눕기 전에 보였던 탁하고 역겨운 그 눈초리와는 달랐다. 그렇기에 더 고통스러웠다. 당웅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녀가 궁금해하던 내용의 편린을 조금 읊었다.
“집안에 대한 모욕, 무공에 대한 모욕. 흑풍대를 녹풍대에 비교하며 쓰레기 집단이라고 하던 것들 등등…. 하지만,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미 지난 일인 것을….”
“정말 죄송해요….”
“사과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당웅은 당소소의 사과를 끊었다. 그리고, 장작을 가져오기 위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권리까지 빼앗기고 싶진 않아서.”
“…….”
“가주님의 따님으로서, 당가의 직계로서의 대우는 충실히 하겠습니다. 그간 임무에 소홀했던 점, 죄송합니다.”
“그런가요.”
당웅은 그 말과 함께 떠났다. 그리고, 장작을 가져와 모닥불의 불씨를 살렸다. 모닥불이 타는 소리만 들릴 뿐, 당웅과 당소소는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남색의 하늘은 군청의 빛을 띤다. 해가 고개를 내민다. 당웅은 자리에서 일어나 흑풍대 대원들을 깨우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일행의 모든 이들이 기상하는 동안, 당소소는 모닥불이 타고 남은 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주해지는 소리들에, 당소소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 봤다.
까만 그늘에 숨겨놓은 이야기는 사라지고, 날을 밝히며 해는 떠올랐다. 드디어 사천교류회로 향하는 아침이 밝았다. 당소소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는 하연을 보며 웃었다.
“하연, 준비 부탁해.”
“네, 아가씨.”
자신을 향해 웃어오는 당소소에게, 하연도 마주 웃어주었다.
*
“너무 조여.”
“몸매를 드러내기 위해서니까 좀 참으세요. 머리도 이따 다시 묶어드릴 테니까, 미리 풀어두시고요.”
“그래도, 이건 너무 부끄러운걸.”
당소소는 화려한 맵시와 몸에 달라붙는 옷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했다. 당소소로서의 역할이 익숙해졌다지만, 이런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녀의 이성으로선 꽤나 자극적이고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하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가씨. 사천교류회에선 얕보이면 안돼요. 아가씨의 행실 덕분에 모두가 아가씨를 벼르고 있을 거라고요.”
“그건, 그렇지.”
“그럴수록 우리는 더 당당해져야 해요. 이제 아가씨는, 예전의 그 사천당가의 망나니 당소소가 아니잖아요? 아름답게 피어날 독화 당소소잖아요.”
하연은 그렇게 말하며 당소소의 허리를 조였다. 매듭을 매 속옷을 고정 시킨 후, 얇은 자색 저고리를 가져와 그녀에게 입힌다. 그리고 당소소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활짝 웃어주었다.
“전 개과천선한 아가씨를 믿어요. 분명, 지금 아가씨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워요.”
“오그라들어….”
“뭐 어때요? 사실인 것을. 독화 당소소가 안 예쁘다면, 세상의 어떤 여인이 예쁘겠어요?”
하연은 시선을 거두고 동경을 들어, 저고리를 걸친 당소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소소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좀 치네….’
“으흠!”
“왜요, 마음에 드세요?”
당소소는 문득 드는 생각이 부끄러웠는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하연은 능글맞은 얼굴로 당소소의 의사를 물어왔다. 당소소는 그 질문에 고개를 돌리고 시치미를 뗐다.
“그, 그런 거 아니야.”
“뭐, 그렇다고 쳐두죠. 이젠 통이 작은 치마를 입으셔야하니까,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음, 이건 어때? 넓고, 기능성이 뛰어나 보이는데. 암기도 많이 숨길 수 있구….”
“또 그러신다. 요즘 누가 그런 시대에 뒤떨어진 치마를 입어요. 그런 것을 입고 나갔다간, 어디 동굴에서 나온 사람으로 볼 걸요? 어서 일어나세요, 아가씨.”
당소소는 남자였던 자로서의 자존심을 조금 세워보지만, 이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마를 입고 분칠을 칠할 무렵, 마차의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당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준비는 다 끝나셨습니까?”
“네. 거의 다 마쳤어요.”
“곧 청랑호[靑浪湖]에 도착합니다. 서둘러 끝내시길.”
“네, 감사해요.”
단호한 당웅의 말투에서, 문득 새벽에 주고받았던 이야기가 묻어나왔다. 당소소는 고개를 저으며 숨을 골랐다. 하연은 그런 당소소의 턱을 살짝 쥐더니, 그녀의 입술에 연지를 찍었다. 그리고, 자상한 미소를 지어준다.
“예뻐요, 아가씨.”
“…그래. 고마워.”
당소소는 마주 웃어주었다. 그리고, 침을 삼키며 얼굴에 차가움을 둘렀다. 이제, 악역 당소소가 일할 시간이었다. 마차가 멈추고, 검문에 답하는 진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소속이?”
“사천당가입니다.”
“여기서부턴 도보로 걸어가야 하니, 마차는 저희 청랑검문 측에 맡겨주시지요.”
“예, 그럼…. 아가씨, 내리셔야 할 듯싶습니다.”
진명의 목소리가, 당소소를 재촉한다. 마차의 문이 열리고, 진명의 손이 내밀어진다. 당소소는 잠시 하연을 돌아본다. 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가씨.”
당소소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진명의 손을 잡는다. 채 적응하지 못한 좁은 치마를 의식하며, 천천히 마차에서 내린다. 당소소는 진명의 손을 떼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바다 같은 호수에 넘실거리는 푸른 물결. 그리고, 그 위의 작은 섬에 지어진 거대한 목재 건물들. 청랑검문[靑浪劍門]이라는 문파 명에 걸맞은 풍경이었다. 뭍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의 물결과, 그들이 보내는 날카로운 시선들. 김수환의 기억이 스친다.
‘괜찮아. 익숙해.’
당소소는 그 시선을 담담한 태도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고개를 치켜들며,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는 청랑검문의 제자를 바라봤다. 청랑검문의 제자가 절도 있는 자세로 포권을 했다.
“청랑검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독화 당소소님.”
“사천당가의 당소소에요.”
청랑검문의 제자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옅은 적의를 보였다. 그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 포권을 받았다.
‘그래. 날 싫어해. 익숙하니까.’
그녀의 웃음에 채 당소소를 주목하지 못하던 시선이 다가온다. 당소소의 지금 모습은,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꽃봉오리와 같았다. 당소소는 미소를 거두고, 고개를 살짝 비틀며 그들을 자신의 시선에 담았다.
‘그 대신 너흰 웃어야해. 그게 날 행복하게 할 테니까.’
“청랑검문과 사천의 정파에 무운이 있기를.”
당소소는 그 말과 함께, 다시 활짝 웃었다. 사천교류회에 독화 당소소의 이름을 알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