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오장[五章], 군학일계[群鶴一鷄] 8
“저 여자, 그 망나니 당소소 맞지?”
“어쩜, 성질 더러워 보이는 것 좀 봐….”
“패악질이 어찌나 고약하던지, 성도에선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고….”
청랑검문의 무인에게 안내를 받으며 인파를 가르고 걸어가는 당소소. 그런 그녀에게 잔뜩 소리를 죽인 험담들이 돌덩이가 되어 던져졌다. 당소소의 차가운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다 들려, 씹새들아.’
“…그리고 방을 배정받으시고 준비를 마치신 뒤, 석식 행사부터 본격적인 사천교류회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뭐, 혹시 문제 되는 것이 있으십니까?”
“아뇨. 안내 감사합니다. 어서 가죠.”
“예, 그럼 이쪽으로.”
무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청랑검문의 본채로 이어지는 목제다리였다. 무인은 그 다리를 걸어가며 따라오라는 눈짓을 건넨다.
당소소는 앞서가는 무인의 뒤를 따라 걸어가며 호수의 풍경을 감상한다. 쪽배에 타고 뱃놀이를 즐기는 남녀들, 물 위를 뛰어다니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 하나. 그리고 큰 배에서 술판을 벌이는 무리들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물 위를 뛰어다니는 사람?’
당소소는 미간을 좁히며 시선을 그에게 가져다 댄다. 당웅은 그런 당소소를 슬쩍 흘겨보며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자그마한 소리로 귓속말을 했다.
“청랑검문의 후계자, 정유입니다. 파랑검객[波浪劍客]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죠.”
‘대해검호[大海劍豪], 정유…. 백서희도 그렇고, 이 년 후에나 볼 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을 사천성에서 볼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청랑검문에 발을 들이자마자, 쌍검무쌍의 등장인물 중 하나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백서희와 마찬가지로, 정유 또한 주인공이 사천성을 방문할 당시엔 등장하지 않던 인물들이었다. 주인공이 정천무관에 입학한 뒤에 주인공의 일행에 합류하는 인물이었다. 당소소는 그의 모습을 두 동공에 담으며 정보를 훑었다.
‘주인공의 정천무관 일 년 선배. 군소문파 출신 최초로 차석으로 졸업, 대해검호라는 별호를 받고 주인공의 일행에서 활약. 청랑검문의 검술인 풍랑천식검[風浪千蝕劍]의 달인. 성격은 호방하고….’
당소소의 눈길을 느꼈는지, 정유는 당소소쪽으로 걸어온다. 수면을 걷어차며 훌쩍 뛰어오른 그는, 당소소의 앞에 착지하며 유난스러운 포권을 취했다.
“이거, 이름 높은 당가의 꽃을 볼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청랑검문의 소문주, 정유가 인사드리지요. 부족하지만 파랑검객이라는 별호라고 불리고 있지요.”
‘호색한.’
당소소는 눈을 찡긋거리며 자신의 환심을 사려는 정유를 바라봤다. 앞머리를 그러모아 한줄기로 묶어 올린 머리와, 물결문양의 머리띠. 그리고 시원시원한 쾌남형의 얼굴. 소설에서 묘사된 얼굴 그대로였다. 그런 그가 주인공의 일행에서 맡았던 역할은, 짐짓 딱딱해질 수 있는 분위기에 윤활유를 바르는 역할이었다.
“역시, 미인은 차가워야 그 고고함이 돋보이지요. 어떻습니까, 독화 소저. 소협에게 아가씨를 안내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주로 그 역할을 주인공에게 반해있는 미녀들에게 껄떡이는 쪽으로 행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정유는 포권을 푼 뒤, 한 손을 내밀며 자신의 인도를 따르라는 적극적인 표현을 하고 있었다. 당소소는 살짝 눈썹을 씰룩였다.
‘글로 볼 땐 웃으면서 봤다지만, 막상 저런 우스꽝스런 구애를 받는 처지가 되니까 좀 난감한 걸….’
인간관계가 좁았던 전생 덕에, 당소소에겐 이런 대화가 꽤 부담스러웠다. 그 대화가 남자의 정신으로 받아야하는 남자의 추파이니 더더욱 거북했다. 당소소는 애써 그 말을 웃음으로 받으며 그의 포권을, 포권으로 답했다.
“사천당가의 당소소입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방을 배정받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
당소소는 그렇게 말한 뒤, 자신을 안내하던 청랑검문의 무인을 바라봤다. 어서 안내를 재개하라는 무언의 신호. 하지만, 그 무인은 난감한 기색을 보이더니, 정유를 흘깃 바라보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곳부턴 청랑검문의 영역, 저 같은 일반 제자가 안내하는 것보단 소문주님의 안내를 받으시는 편이 훨씬 유익하고, 빠르실 겁니다.”
“괘, 괜찮은데….”
“그럼, 전 잔업이 바쁘기에…. 소문주님, 그럼 수고하십시오.”
“어, 수고해라! 그럼, 가실까요?”
정유는 서둘러 사라지는 무인의 등 뒤로 손 인사를 건네고, 당소소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당소소의 볼살이 살짝 떨려왔다. 서둘러 그 떨림을 숨기고, 미소로 덮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 감사해요.”
“별말씀을. 이런 호의는 미인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아, 예.”
당소소는 웃는 낯으로 그의 말에 대충 대꾸를 하며 청랑호의 풍경을 바라봤다. 푸른 하늘을 잔잔히 받아 햇빛을 부수는 물결은, 그녀의 마음에도 옅은 감동을 일으켰다.
‘괜찮네….’
하지만, 정유의 요란한 음성이 그 감동을 거칠게 밀어내며 당소소의 귀에 때려 박히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당소소 소저의 나이가 열여덟이라고 들었는데. 제가 한 살 더 많은 셈이군요.”
“네.”
“전 열아홉입니다. 아핫핫! 뭐, 그렇다고 제가 한 살 더 먹었다고 유세를 부리는 것은 아니고. 그저 친해지자는 차원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뭐, 좀 더 친해진다면 더 친근한 표현으로 불러도 괜찮을 것 같고.”
“그렇네요.”
“지금 청랑호 위의 저 큰 배를 보고 계신 거죠? 저건 제가 아버지를 따라 강호 유람을 할 때, 남해도에서 있었던 일인데….”
당소소는 더는 정유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마치, 귀에서 피가 나오는 듯한 짜증과 통증이 느껴졌다. 활달하고 명랑한 목소리에, 우렁찬 성량. 그리고 끊이지 않는 대화가 그녀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었다.
‘좆됐네….’
“…저 용골이 무려 수백 년 묵은 해송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아십니까? 참, 선원들은 또 얼마나 성실한지. 그래서 전 저 배를 청랑의 심장, 청심[靑心]이라고 부르곤 하죠. 아버지도 제 말을 듣곤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무척 좋아하셔서 그날 가족끼리 외식을 나가게 됐는데….”
당소소가 귀를 움찔거리며 당웅을 바라봤다. 제발 저 끔찍한 수다의 지옥에서 구해달라는 간절한 신호를 보냈으나, 당웅은 고개를 슬쩍 돌리며 정유에게서 한 발짝 멀어졌다. 당소소는 눈을 질끈 감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아니 소설 어디에도 이 사람이 수다쟁이라는 이야긴 없는데…?’
“핫핫, 소저도 참. 겉보기엔 차가워 보이시지만, 감수성이 참 풍부하십니다. 눈을 그렇게 감으시고 제 이야기를 음미하시다니. 그럼 그 식사의 방식에 관해서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 자, 잠깐만!”
당소소는 화색을 띠며 다시 입을 열려는 정유를 막아섰다. 그녀의 등줄기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당소소는 청랑검문과의 거리를 슬쩍 가늠하며 정유를 바라봤다.
‘본채에 도달하려면 꽤 걸릴 것 같은데, 저 입이 다시 열리면 이대로 끝이야….’
이대로 그가 다시 대화를 재개하게 두었다간, 그렇게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궁금하지도 않은 정유의 신변잡기 이야기에 범벅이 되어 혹사당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당소소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그를 억제할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맞장구 쳐줘? 아니, 그랬다간 끝이야. 무시한다면, 더 신나서 말을 토해낼 거고…. 무언가 방법이….’
당소소의 시선은, 그의 입에서 허리춤의 검으로 떨어졌다. 그녀의 기억에서 쌍검무쌍의 작중에서 그가 유일하게 진지했던 상황이 떠올랐다. 바로, 여자에게 차였을 때와 검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당소소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기도 좋지만, 정유 대협의 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제 검 말입니까?”
“네. 정유 대협이 펼치는 풍랑천식검이 그렇게 매섭다는 소문이 돌아서.”
“핫핫, 조금 쑥스럽군요….”
검술이 대화의 주제가 되자, 명랑한 태도로 수다를 떨던 정유의 분위기가 진중해졌다. 당소소는 그런 정유의 자세에 안도하며, 청랑검문의 본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정유는 당소소의 걸음을 따라붙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당소소 소저는, 제 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굳이 왜 제 의견을. 전 무공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걸요.”
“때로는 일반인의 시선도 중요한 법이지요.”
정유의 은근한 요구. 당소소는 쌍검무쌍 속, 풍랑천식검의 묘사 중 일부분을 떼어와 입에 담았다.
“매서운 파도처럼 적을 집어삼키는 검, 아닌가요?”
“집어삼킨다…. 재밌는 의견이십니다.”
정유는 당소소의 답변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리곤 줄곧 열고 있던 입을 굳게 닫으며 청랑검문 본채의 입구로 걸어갔다. 말 없는 걸음이 이어지다, 정유는 입구 앞에 멈춰 섰다.
“이곳이 청랑검문의 본채, 청검각[靑劍閣]입니다. 배정받으실 방은 청검각의 대강당을 우회해, 뒤편의 별채로 가시면 입구에 표시가 되어 있을 겁니다. 그럼, 이번 청랑검문에서 열게 된 사천교류회. 마음 편하게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당 소저.”
“배려에 감사해요.”
당소소가 감사의 표시로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자, 정유가 웃음으로 받으며 말했다.
“한데, 저와는 달리 소저는 소문과 다른 것 같습니다.”
“네?”
“당가의 악녀 당소소는 거만하고, 질투와 시기의 덩어리이며, 무능하다…. 듣기엔 거북하실지 모르겠지만, 이런 소문들이 횡행하고 있기에.”
정유의 노골적인 발언에도, 당소소는 태연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이 그렇다면 뭐, 그런 인물 아닐까요?”
“…하하, 그렇습니까?”
“그럼, 먼저 실례를.”
당소소가 별채를 향해 걸음을 옮기자, 날카로워진 정유의 시선이 그녀의 등 뒤에 꽂혔다. 아무런 내공도 느껴지지 않고, 굳은살조차 보이질 않는 손. 그녀 자신의 말 대로, 당소소는 무공을 익히지 않은 평범한 여자였다.
“풍랑천식검의 완성단계인 식[蝕]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무공을 모르는 아녀자라….”
정유는 뒷짐을 지고 당소소에 대한 판단을 보류했다. 정유의 풍랑천식검은, 두 번째 단계인 랑[浪]. 사천성 내의 퍼져있는 소문은, 그 두번째 단계에 걸맞게 검이 매섭게 몰아친다는 내용이었다. 집어삼킨다라는 완성단계인 식에 관한 묘사는 정유에게도 아득히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당소소는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밌는 처자인데.’
거만한가? 그렇지 않았다. 질투와 시기가 넘치는가? 아직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능한가? 그녀는 풍랑천식검의 완성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정유는 당소소에 관한 험담을 일삼던 사천교류회의 인원들을 떠올렸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것이 못 돼.’
정유는 그런 생각을 품으며 청검각의 대강당으로 걸어 들어갔다.
*
“당문, 당문….”
“이쪽입니다.”
별채에 들어선 당소소.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며 당가에 배정된 방을 찾자, 청랑검문의 제자 한 명이 걸어 나와 방까지 안내했다.
“감사해요.”
당소소는 그에게 감사하단 뜻의 눈인사를 건넨 뒤, 당웅과 함께 방안으로 들어섰다.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원목을 깎아 만든 탁자와 솜이 가득 차 있는 침상. 창가와 침실에 드리운 비단으로 된 장막은 청랑검문의 위세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듯했다.
당소소는 탁자 옆의 의자에 앉아, 소매에 넣어둔 당가의 문서를 꺼내 들었다.
“이제 이걸 청랑검문의 문주에게 전달만 하면 되는 거군요?”
“예. 청랑검문주에게 전달만 한다면, 그자가 알아서 정파의 연합인 무림맹[武林盟]에 전달할 겁니다.”
“무림맹….”
당소소는 무림맹에 대해서 떠올린다.
정파의 수뇌부들이 머리를 맞대고 결의한 거대한 연합체. 정파의 분쟁을 조율하고, 정천무관을 설립해 정파의 미래를 가꿔나가며, 나아가선 마교와 새외의 세력에 맞서 힘을 응집시키는 구실을 하는 곳이었다.
당웅은 생각에 잠긴 당소소를 바라보다, 창가 너머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흑풍대의 숙소는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을 해보고 와야겠습니다. 그리고 진명과 하연을 이쪽으로 불러오겠습니다.”
“감사해요.”
“그럼….”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웃음 짓는 당소소를, 당웅은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방을 벗어났다. 그런 당웅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 당소소는, 털실을 꺼내 손가락에 걸었다. 그리고 조급한 손놀림으로 도형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한참, 한참 멀어….’
당소소는 물 위를 걸어 다니던 정유의 모습을 생각한다.
수상비[水上飛].
발바닥에 휘돌리는 내공이 조금이라도 치우치거나, 그 내공과 보법의 조화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도 실현할 수 없는 고강한 경지의 신법[身法]이었다.
정유는 그 수상비로 자신이 내공적으로, 외공적으로 완성의 단계로 나아가는 무인임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절정의 경지를 향해 도달해 가는 무인. 쌍검무쌍의 주연들은 이 이상이었으면 이상이었지, 더 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따라가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당소소의 시선은 엉터리로 얽혀버린 털실을 바라본다. 그녀는 착잡한 심정과 함께 털실을 품 안에 집어넣고, 기분을 환기하기 위해 방문을 열고 방 밖으로 나갔다. 별채의 복도는, 여러 사람이 부대끼며 분주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예전부터 그녀는 이런 왁자한 분위기를 좋아했다.
마치 시체같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집안은, 김수환에겐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종종 사람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 공원이나 번화가를 거닐곤 했었다. 당소소는 팔짱을 낀 채 그 광경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당소소의 촉각에 잡혔다. 당소소는 느껴지는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사특한 년.”
“……?”
구름이 그려진 옷을 입은, 여자 도사 한 명이 당소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소소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자, 여도사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우격다짐으로 그녀에게 밀착해 시선을 마주했다.
“당소소, 운류 사형을 타락시킨 악녀!”
“…운류가 누군데.”
“화검공자, 운류! 시치미를 뗄 생각이야?”
“그 미친 새끼를 내가 왜…? 음?”
당소소는 그녀의 말에 잠시 생각이 멈췄다. 그리고, 시선을 슬쩍 아래로 돌리며 밀착해있는 그녀와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 그, 알겠으니 일단 좀 떨어지고….”
“우리 사형 돌려내!”
“아니, 내가 그 씹새끼를 왜 가져가겠니….”
“지금 우리 사형보고 씹새끼라고 한 거야?”
“아니,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일단 좀 떨어져 줄래?”
당소소는 얼굴을 붉히며 곤란해 했다. 당소소 자신의 몸에는 익숙했지만 타인의 여체엔 익숙하지 못했기에. 당소소가 부끄러움에 그녀를 밀어내자, 밀착해오던 그녀는 이내 울음을 터뜨리며 울부짖었다.
“으허엉, 이 나쁜 년이 청성파를 가지고 놀았어!”
“아니, 그건 그러니까…. 에휴….”
그녀의 울음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당소소에게 쏠린다. 당소소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
“으으윽!”
산적의 신음소리. 백서희는 무심하게 장검을 거둔다. 안도의 한숨을 쉰 상인들은, 산적들에게 달려가 발길질을 해댄다.
“이놈, 이놈!”
“금 한 냥이, 어디 개 이름인 줄 아느냐?”
“그만하세요, 어르신들. 끝난 싸움입니다.”
백서희는 장검을 등에 차고, 산적들을 바라본다. 나른한 눈매에 어리는 무심한 눈길에, 산적들의 몸이 떨려온다. 산적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부짖는다.
“흑림총련이, 네년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흑림총련?”
백서희는 산적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산적들은 정신이 나간 듯, 광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천의 산적과 사파가 너흴 쫒을게야. 흑림총련의 귀신들은 지독하고, 끈질기니…!”
“푸흣! 지랄은 지들이 먼저 해놓고, 누구더러 용서를 하니 마니….”
백서희는 그들의 말에 웃었다. 그리고, 뒤돌아섰다. 한줄기로 땋은 머리가 찰랑이며 허공을 유영했다.
“난 아미의 신검[神劍]을 물려받은 자, 벽사파마[辟邪破魔]의 업이라면 피하지 않아. 백이 오면 백을 벌하고, 천을 오면 천을 벌해주겠어. 하고 싶은 데로 해봐.”
백서희는 그 말을 던지곤 백능상단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말 위로 훌쩍 뛰어올라 안장에 앉았다. 그런 백서희를, 백능상단의 상인들이 말린다.
“아가씨, 저들을 그냥 두고 갈 순 없습니다!”
“귀찮은데…. 전 그냥 갈게요.”
“아가씨, 저들은 야비한 족속들입니다. 선처를 베풀어선….”
“저 놈들이 백이 오든, 천이 오든 제 상대는 아니에요. 그냥 가요.”
축 처진 음성으로 답하는 백서희. 상인들은 완강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후환은 남겨선 안 됩니다. 저희의 뒤를 쫓아, 무슨 해코지를 할 줄 모르는 놈들입니다!”
“그럼, 아저씨들 알아서 관아에 넘기던지 하세요. 전 사천교류회에 참석해야하니.”
“…알겠습니다. 먼저 출발하세요.”
백서희는 하품을 하며 상인들을 남기고 멀어져간다. 상인들은 곧장 산적들에게 달려들어, 구타를 하고 그들을 동여맸다.
“이놈들, 관아에 넘기면 포상금을 얼마나 줄지 궁금하군!”
“지은 죄들도 있으니, 바로 처형이겠지?”
“푸핫!”
우두머리 산적은 얻어맞아 부은 얼굴로 실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피가 뒤엉킨 침을 뱉으며 말했다.
“이제, 곧 귀신을 보게 될 거야.”
“이 빌어먹을 새끼가?”
상인들의 주먹과 발이 산적을 구타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웃음소리는 더 커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