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오장[五章], 군학일계[群鶴一鷄] 9
우는 여자를 달래는 방법은 어떤 방도가 있을까.
공감을 한다?
“흑, 우리 사형 저런 나쁜 년한테 잡혀 살아서 어떻게 해….”
“어….”
‘납치를 한 건 그 새낀데.’
상대의 말을 경청해준다?
“사형에 이어서 나까지 자기 방에 데려가 해코지 하려고 하고 아아, 청성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
“…너 뭐라고 했어.”
당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복도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청성파의 여도사는 꽤나 이목이 쏠렸다. 당소소는 그런 그녀를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데려와 어떻게든 달래보려고 했으나, 그녀는 막무가내인 상태였다. 진심으로 자신의 사형이 당가의 악녀에게 상처를 입어 폐관수련에 들어갔다고 믿고 있었다.
‘콱 네 사형은 마도공자라고 까발릴 수도 없고, 말해봤자 믿지도 않을 거고…. 모르겠다.’
당소소는 그녀를 달래는 것을 포기한 후, 엉킨 털실을 품에서 꺼내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도사가 그녀의 행동에 딴죽을 건다.
“너 지금 내 말 무시해?”
“밑도 끝도 없이 우는 걸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해?”
“사죄해. 당장. 운류 사형이 폐관수련에 들어간 것은 다 네 탓이잖아?”
당소소는 한숨을 푹 쉬며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 가장 먼저 물어봤어야 할 것을 물어본다.
“일단, 네 이름부터 말하는 게 예의 아니야?”
“네가 예의를 운운….”
“말하기 싫어?”
“…운령.”
그녀의 이름을 듣고 당소소의 골치가 한층 더 아파오는 듯했다.
청홍검봉[靑紅劍鳳] 운령. 그녀 역시, 쌍검무쌍의 등장인물이었다. 청성파의 무예를 이어받은 대제자로, 청성파의 절기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의 유일한 전승자였다.
작중에선 항상 차가운 태도와 감정이 없는 눈동자를 고수하며, 백서희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일 년 후배로 서술되어 있었다. 물론, 주인공에게 반하는 건 여지없었지만.
당소소의 눈엔 퉁퉁 부은 눈으로 훌쩍거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운령이 보였다.
‘이렇게 동글동글하고 감정이 풍부한 아이가 그런…?’
당소소는 그 생각과 함께 팔짱을 꼈다. 그녀가 쌍검무쌍의 등장인물인 것을 안 이상, 더 조심스럽게 대해야 했다. 해결책이 딱히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냥 내가 나쁜 년이라고 해?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억울한데. 이걸 꿀밤을 먹일 수도 없고….’
그녀에게 손을 댄다면, 장담컨대 당소소의 몸은 반으로 접히고 뼈와 살이 분리될 수도 있었다. 운령은 작중에서도 주인공의 일행 중에 상위권의 무위를 가진 천재 중의 천재였으니까. 당소소는 다시 이마를 짚었다. 그녀의 고뇌를 엿본 건지, 운령은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그래서, 사과는 언제 할 건데?”
“일단, 폐관수련을 떠난 게 왜 내 탓인데?”
“뻔한 거 아니야? 폐관수련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당신이야. 당신이 우리 사형을 가지고 놀아서, 그 충격에 폐관수련을 한 게 분명해.”
“음….”
당소소는 어디서부터 짚어줘야 할지 감조차 오질 않았다. 그래도 겨우겨우 아픈 머리를 쥐어짜, 설득을 시작했다.
“화검공자라는 별호가 어떻게 생긴 건진 알고 있어?”
“사형이 엄청 잘생겨서 붙은 별호 아니야?”
“그 잘생긴 얼굴로 여자를 후리고 다녀서….”
“후리고…?”
“…가벼운 만남을 자주 하고 다녀서 그런 거야. 그 사람 주변에 그렇게 여자가 많은데, 나 따위가 눈에 들어오겠어?”
당소소의 설명을 운령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럴 리 없어. 운류 사형이 얼마나 순진한데. 그냥 날파리들이 꼬인 것일 뿐이야. 그리고, 그중에 가장 예쁜 당신한테 빠진 거지.”
“…….”
“이 흑단 같은 머릿결과 신비한 보라색 눈, 남자들이 안 빠지고 배기겠어? 사형도 결국 남자였어…. 이 악녀, 어디 말 좀 해보시지?”
“그, 그만….”
느닷없이 당소소의 외모를 칭찬하는 운령. 당소소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 아름답다는 말은, 역시 그녀에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말이었다.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두 사람만의 공간에 낯선 이들이 난입했다.
“아가씨, 저희 왔…. 어머. 이 귀여운 도사님은 누구세요?”
“귀엽다고 말하지 마!”
“뭐야? 뭔데 우리 방에 사람들이 몰려있습니까? 다 쫓아내긴 했는데.”
“아, 왔어?”
당소소는 그들의 등장에 화색을 띠었다. 그 낯선 이들의 정체는, 진명과 하연이었다.
진명은 들고 온 당소소의 짐을 내려놓았고, 하연은 소동물을 보는 시선으로 운령을 내려다 봤다. 인파를 물리고 뒤늦게 들어오는 진명. 운령은 진명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갑작스레 울먹이기 시작했다.
“흐윽, 흐윽. 어떡해!”
“뭐, 뭔데 이 계집애는 날 보고 웁니까?”
“당가의 악녀가 날 더럽히려고 이젠 저런 추남을 데려왔어. 흑, 사부님, 사조님…. 저는 여기서 불명예스럽게 가요…!”
“아니 대체 뭐라는 거야?”
당황하는 진명. 당소소는 둘을 번갈아 본 뒤, 체념하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진명, 나가 있어.”
당소소는 진명에게 나가 있으라 손짓했다. 진명의 얼굴은 억울함으로 구겨졌으나, 주군의 말을 거역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툴툴대며 문밖으로 나갔다.
“…내가 그렇게 못생겼나?”
진명이 나가고 상황이 조금 진정되자, 하연은 당소소에게 일련의 상황에 대해 물어왔다.
“그래서, 이 귀여운 도사님은 왜 저희 방에 찾아온 건가요?”
“그…. 내가 화검공자랑 사귀고, 차버려서 충격에 폐관수련을 하는 줄 알고 있어…. 저 아이는 화검공자의 사매, 운령이고.”
“어머….”
하연은 놀람과 함께,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당소소에게 귓속말을 하며 어떻게 할 지 물어왔다.
“그래서, 사실은 어떤데요?”
“…대충 설명하자면. 걔가 나한테 엄청 과도하게 집착하고 내가 거부하니까 도망간 거야. 운령은 내가 화검공자를 차서 폐관수련을 하러 갔다고 주장하고 있고.”
“집착이라. 확실히 아가씨처럼 귀엽고 아름다우면, 제가 남자라도 집착하겠는걸요?”
당소소는 마도공자와의 일화를 나름 합리적으로 정리해서 하연에게 전했다. 하연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당소소의 미모를 칭찬했다. 당소소는 몸을 꼬아, 부끄러움을 덜어내며 황급히 하연의 말을 잘라냈다.
“농담은 그쯤 하고…. 아무튼 해결책이 필요해.”
“해결책이라. 어떤 종류의 해결책이 필요하신데요?”
“일단 청성파와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어야 하고, 운령과도 관계가 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빌어먹을 자식이랑 사귀었다는 사실도 좀 없었으면 하고.”
“흠….”
하연은 잠시 팔짱을 끼고 고민하더니,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당소소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그 도망갔다는 부분을 각색하는 거예요.”
“각색?”
“네. 도망간 것이 아닌, 진지한 무공 토론 도중에 깨달음을 얻고 폐관수련에 들어갔다고 하는 거죠.”
“그치만, 난 무공에 대해 전혀 모르잖아?”
순진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당소소. 하연은 그런 당소소의 귀여움에 헤실거리더니, 정신을 차리고 단호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거짓말을 하는 데 있어서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개연성?”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하연은 한 손을 입모양으로 만들어 열었다, 닫았다 하며 말했다.
“혼이 담긴 언변!”
“…그러니까, 입을 잘 털라는 이야기잖아? 그게 개연성 아니야?”
“털…. 으흠! 아니죠. 잘 보세요.”
하연은 그 말과 함께 운령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너무 두서가 없어서 인사를 드리지 못했네요. 전 당소소 아가씨를 모시는 전속시녀, 하연이라고 해요.”
“…운령.”
서로 간의 통성명이 끝나자, 하연은 다짜고짜 물음을 던졌다.
“운령 아가씨, 혹시 여자와 남자 사이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나요?”
“다짜고짜 그게 무슨 소리야?”
“믿으시나요?”
하연은 지그시 운령을 바라봤다. 노려보는 것이 아닌, 애절한 감정을 담은 눈빛. 운령은 그 눈빛을 부담스러워하며 하연의 질문에 대답했다.
“…있어. 사형과 나의 관계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
운령의 그 말에, 하연은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으신다니, 그럼 설명이 빠를 것 같네요. 저희 아가씨와 화검공자님과의 관계도 그런 것이었어요. 진지한 태도로 무공을 연구하는 만남이었죠.”
“애월루에서? 무공도 배우지 않은 사람과?”
“그으건…. 정파의 두 기둥인 청성파와 당문의 수준 높은 토론이잖아요?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듯이, 그런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이 설마 무공에 관한 토론일 줄 누가 알겠어요? 그리고 비록 우리 아가씨가 내공은 없어도, 박학다식하신 분이에요. 무려 독천의 따님이신데요.”
“…….”
약간 엉성한 하연의 거짓말에, 운령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심에 잠긴다. 하연은 그런 운령의 태도에도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운령을 바라봤다. 그 눈빛을 응시하는 운령. 그녀는 이내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일리 있는 말이야.”
“역시 그렇죠? 청성의 빼어난 검객, 화검공자님과 당가의 금지옥엽이 왜 애월루에 있었겠어요? 더군다나 화검공자님이 우리 아가씨와 교제를 할 리 없잖아요. 이렇게 귀여운 사매를 뒀는데.”
“으, 으응?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연은 슬쩍 운령에게 칭찬을 얹으며 거짓말을 기정사실로 만들어 갔다. 운령은 순진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연은 진명이 내려놓은 짐을 뒤져 사탕 하나를 꺼낸 뒤, 운령의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그러니까 무공에 관해 토론했던 것으로 따지면, 저희 아가씨는 어쩌면 호적상에 없는 사저[師姐]일 수도 있겠네요.”
“당가의 악녀가 아니라…. 사저?”
“하, 하연! 그만, 그만해.”
당소소는 서둘러 하연의 거짓말을 말렸다. 무언가, 더럽혀서는 안 되는 것을 더럽히는 기분에 당소소는 자리에서 일어나 운령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재빨리 던졌다.
“그, 내가 미안해요. 내가 다 미안하니까, 어서 청성파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세요. 그 사람들이 걱정할 수도 있으니까….”
“당신이 날 걱정해? 이렇게 나쁜 말을 했는데? 운류 사형과 진짜 진지한 무공 토론을…? 진짜 사저…?”
“아니, 진짜 미치겠네. 하연, 어떻게 할 거야?”
쩔쩔매는 당소소를 보며 하연은 쿡쿡 웃었다. 그리고, 능글맞은 어투로 말했다.
“좋은 것 아닌가요? 오해는 해결된 것 같은데….”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이 순진한 애를…!”
“제가 보기엔 아가씨도 만만찮게 순진한걸요.”
“…….”
당소소의 말에 하연은 싱긋 웃음을 던졌다. 당소소는 순간 말을 멈추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연은 이내 참지 못하고 파안대소를 하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소소 아가씨. 운령 도사님, 사저라는 말은 그냥 해본 말이었어요. 어디까지나 제 추측. 아셨죠?”
“으, 응….”
“그럼, 오해는 풀린 것 같네요. 석식 행사 때, 저희 아가씨를 잘 부탁드릴게요. 도사님.”
하연의 말에, 운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일으켜 세운 당소소를 바라봤다. 수많은 감정이 모순되고, 부딪힌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날 감싸줬어.”
“감싸준 거 아니야. 여기 있으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 빨리 돌아가는 게 좋아.”
당소소는 운령에게 말했다. 운령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생각을 토해냈다.
“사람들이 많은 복도에서 날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기 위해 방 안으로 데려온 것도, 운류 사형에 관해 가타부타 말하지 않은 것도, 내 추궁에 사형을 위해 거짓말을 한 것도….”
“진짜 돌겠네….”
“그리고, 당신의 악명이 혹시 나에게 피해를 끼칠까봐, 빨리 돌아가라고 말하는 것도.”
운령의 그 말에 당소소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당소소는 머리를 짚으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녀를 달래는 것에 지쳤긴 했지만, 이런 식의 결말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입씨름하는 것에 지친 당소소는 체념하듯 말했다.
“마음대로 해….”
운령은 미안함에 젖은 눈망울을 깜빡이며 말했다.
“미안해요. 당소소 아가, 씨?”
“아가씨라 부르기 어려우면, 언니라고 부르셔도 돼요.”
“…하연!”
당소소는 끼어드는 하연을 나무랐다. 하연은 당소소의 말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운령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미안해요, 언니.”
“윽.”
당소소의 얼굴엔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저 귀여운 생물에게 언니라고 불리는 부끄러움, 운령을 속인 것에 대한 죄책감, 지금 상황에 대한 난감함 등등. 지끈거리는 머리는 판단하길 거부했다. 그 모든 감정에 대해 생각하길 포기한 당소소는 눈을 감고 말했다.
“그래…. 이제 돌아가렴….”
“네, 이따가 석식 행사에서 봐요. 언니.”
“언니라는 말은…. 아니다. 그래….”
당소소는 미안함이 그렁그렁 맺힌 운령의 눈망울을 보며, 부정하기를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운령이 종종걸음으로 방을 나가자, 하연은 웃으면서 당소소에게 다가왔다.
“어때요, 혼이 담긴 언변. 대단하죠? 물론, 순진한 사람이 아니라면 약간의 개연성 정도는 있어야 하겠지만….”
“멈춰.”
“네?”
“…이 이상 다가오지 마. 나도 저렇게 될 것 같아.”
몸을 뒤로 당기며 하연을 피하는 당소소를 보며, 하연은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
‘귀여우셔라.’
당소소의 경계는 석식 행사에 갈 옷으로 갈아입기 전 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