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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화 〉육장[六章], 설중개화[雪中開花] 2 (33/130)



〈 33화 〉육장[六章], 설중개화[雪中開花] 2

당소소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백서희와의 일은 참을  있었다. 당웅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은 것? 물론 참을 수 있었다. 둘 다 당소소의 잘못이었으니까. 악의가 담긴 시선으로 험담을 하는 것도, 당소소의 업보였으니 참을  있었다. 묵가장의 남매가 자신을 헐뜯는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그런 자신을 보살펴준 사천당가와 하연의 노고를 무시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일과 관련이 없는 청랑검문을 끼워 넣기까지. 그리해서 꾹꾹 눌러 담았던 당소소의 감정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어, 씨발….”


그 결과, 적막이 내려앉은 강당. 정유의 외면을 받은 당소소는, 재빨리 자신을 구해줄 사람을 찾는다. 하지만 삭막한 교우관계를 맺었던 당소소에게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당소소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강당의 군중들을 돌아보고 묵가장의 두 남매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당연한 결론을 내렸다.



‘좆됐네.’


당소소의 욕설이 가져온 충격에서 벗어난 묵이현과 묵전. 묵이현은 고개를 흔들어 충격을 덜어내고, 이내 미소를 짓는다. 생각했던 상황과는 꽤 달랐지만, 소기의 목적은 이루었기 때문. 묵이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채로 입가를 가렸다.

‘이제, 저 발언을 가지고 판을 짜면 끝이야. 아아, 통쾌해라.’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그런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사천의 명가들이 한데 모인…!”


“그, 그 아가리 닫아, 화,  찢어버리기 전에.”

“…….”



당소소는 이리저리 떠도는 시선으로 욕설을 뱉었다. 기호지세라, 이미 올라탄 호랑이의 등을 내려올 순 없었다. 딱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도가 보이지 않아서 자포자기 상태인 것은 덤이었다.


‘해치워, 오빠.’


묵이현은 그 욕설에 묵전에게 슬쩍 눈빛을 던졌다. 그러자, 묵전은 계속해서 욕설을 뱉는 당소소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천천히 검을 뽑으며 당소소를 향해 겨눴다.

“묵가장을 이런 식으로 욕보이다니. 각오는 되었는가?”

정유는 그런 묵전을 큰 소리로 말렸다.



“이보시오, 묵전! 어찌 사천교류회에서 칼을 뽑을 수 있소? 그것도 연약한 아녀자를 상대로!”

“정유, 말리지 마시게. 이건 우리 묵가장의 명예가 걸린 문제니.”


“여긴 청랑검문이오. 묵가장이 아니란 말이외다. 어서 칼을 집어넣으시오.”


“이곳이 청랑검문인 것이, 묵가장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아줄  있단 말이오?”



정유는 그 말에 더는 대꾸할 수 없었다. 당소소가 도를 넘어선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녀가 행해온 악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니까. 정유의 입이 닫히자, 묵전은 당소소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몰라.”

당소소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외통수구나. 타개책은…. 하나 정도 있나?’



당소소는 체념과 함께 부끄러운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고개를 저어 잡념을 덜어낸 뒤 입을 열었다.


“…축하해, 날  먹이는 걸 성공해서.”


“그 칭찬, 고맙게 받지. 당문의 악녀.”




당소소는 쓴웃음을 지으며 묵전의 말을 받았다. 체념이 어린 웃음이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참지 못한 자신의 패배였다. 그들의 뻔한 덫에 걸린 것이다.

당소소는 새삼, 자신이 둔재라는 것을 되새겼다. 지금 이 자리에 운령이나 백서희가  있었다면, 단칼에 묵전을 쓰러뜨리거나 감히 이런 계략을 짜낼 엄두조차 내지 않았을 것이다.


묵전은 키득거리며 천천히 검을 출수하기 위한 자세를 취해갔다.


“당가에게 복수하기 위해 난 검술을 갈고 닦았다. 내 누이는 군소방파들을 규합시켜 묵가장을 당문과 비슷한 크기의 세력으로 만들었어. 그리고…, 이날만을 기다렸다.”


“내가 어지간히 몹쓸 짓을 했나 보네.”

“…가증스럽기 그지없군. 묵가장을 같잖은 문파라고 말하며 날 격분시키고, 녹풍대를 불러 비열한 독으로 날 중독 시키지 않았나? 마비된  비웃던 모두의 비웃음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해. 그 모욕적인 행동을 모르는 체하겠다?”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미안하게 됐어.”


“그저 말만…!”

“근데, 오직 나만 건드렸으면 나도 별말 없이 당해줬을 거야. 나도 내가 나쁜 년이라는 자각은 있거든. 근데, 다른 이들을 건드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 아니겠어?  씨발놈아.”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팔을 슬쩍 내린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 죽통 하나가 잡혔다.  죽통을 포착한 순간, 묵전은 자세가 흐트러지고 황급히 뒷걸음질 쳤다.


“네, 네 년! 무슨 짓을 하는 게냐? 그건….”

“아, 이거. 아버지가 주신 거야. 무형지독이라고 하던데. 혹시 뭔지 알아?”

“……!”



그녀의 발언에, 악녀의 단죄로 들떠있던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무형, 무향의 당가의 칠대극독 중 하나. 사천교류회에 참석한 무림인들 중, 그 치명적인 독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을까? 애초에 사천교류회의 목적은 서로 간의 화합을 다지는 것을 핑계 삼아, 사천당가의 감시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당가의 독을 모르는 이는 전무하다고 볼  있었다.


고로, 독천이 끔찍이 아끼는 딸이 무형지독을 들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서 농담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면한 현실이었다.

“저, 저 미친년이!”


“당가가, 올바른 길을 저버리는구나!”


당소소를 둘러싼 군소방파의 무리들이 당소소를 비난하며 뒤로 물러섰다. 당소소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들을 돌아봤다. 솔직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밀었던 계책이었다. 그녀는 뒷걸음질 치는 자들에게 물었다.



“뭐야. 이거 알아?”


“무형지독을 어느 무식한 자가 모르겠느냐? 어서 집어넣지 못할까!”

“이 악독한 년! 과연, 독화라는 말이 어울리는구나!”

“그, 그 독을 푼다면 네 아버지도 네년이 욕을 먹이는 것이야! 부정적인 생각은 그만둬!”



그리고, 웃었다.



‘먹히네?’

“훠이!”

“으아악!”


“저, 저 미친년!”

당소소가 죽통을 살짝 흔들자, 강당의 모든 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뒤돌아 도망쳤다. 당소소는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묵이현과 묵전을 바라봤다. 시종일관 웃고 있던 묵이현의 얼굴에, 그늘이  있었다. 당당하게 검을 뽑았던 묵전도 마찬가지.

당소소가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간다. 그 발걸음에 맞춰, 그 둘도  걸음 멀어진다.



“네, 네년! 정파로서의 의를 저버릴 셈이냐?”


“기다리세요. 우리 대화로 해결해요.”


“대화?”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간다. 물러서는 묵이현과 묵전. 그녀는, 한번 잡은 승기를 놓아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묵이현은 황급히 당소소를 설득했다.



“네, 네! 우리는 지체 높은 정파의 무인들, 무력으로 해결하는 것은 야만인들이나  법한….”


“묵이현, 네 옆에 지금 누가 있는지 안 보이나 보다.”

“…….”

묵이현은 그녀의 말에 대꾸할  없었다. 복수를 위해 먼저 칼을 뽑은 것은 자신들이었기에. 묵전은 당소소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에 눈엔, 오로지 그녀가 쥐고 있는 무형지독이 든 죽통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출수를 한다면?’


묵전은 당소소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그녀와의 걸음은 대략  걸음.

‘제압하는  필요한 호흡은?’

묵전은 길게 숨을 뱉었다. 상대는 내공과 외공을 수련한 적 없는 일반인. 제압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무형지독을 풀어버리기 전에 제압이 가능하냐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내공을 몸에 휘돌리는 것이 한 호흡, 다섯 걸음에 한 호흡, 그리고 나머지 다섯 걸음을 딛고 손목을 자르는  마지막 한 호흡. 총 세 호흡이야.’

무형지독이라는 단어에 머릿속이 마비된 그는, 당소소가 독천의 딸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조금이라도 흠결이 나는 순간 묵가장이 맞이할 운명 같은 것은 눈곱만큼도 머릿속에 없었다.


묵이현은 자신의 오빠가 풍기는 위험한 기운을 눈치채고, 그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뭐, 뭐 하려는 거야. 독천의 딸이라고! 처음부터 그냥 대결을 빙자해 옷을 찢어서 치욕을 주려는 것뿐이었잖아.  정도까진 독천도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결론이었잖아!”


“아니, 드디어 당문이 숨겨둔 독니를 보인 거야. 처음부터, 독과 암기를 쓰는 저열한 문파가 정파의 오대세가로 불리는 것이 이상했어. 자, 봐. 무형지독으로 군중을 위협하는 쪽이 어디인지.”

“오빠, 지금 눈이 제정신이 아닌 눈이야. 진정해.”

“이건, 정파의 대의를 위한 일이야.”



묵전은 자신의 어깨를 쥔 묵이현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당소소는 그런 묵전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네가 모욕을 준 청랑검문에게 사죄를 한다면 무형지독은 집어넣어 줄  있어. 솔직히, 나도 씨발년놈이라는 말은  심했다고 생각해. 앞으론 서로 처신 잘하자고.”


“피, 피햇!”


“응?”


묵이현의 외침에, 당소소는 묵전에게 시선을 돌렸다.

묵전은 숨을 뱉으며 도약했다. 검은빛의 내기가 터져 나오며 강당의 바닥이 움푹 파였다. 공중을 한 바퀴 돌며 회전력을 더한 뒤, 지상을 밟으며 그대로 당소소에게 쏘아졌다. 묵전의 눈에 걸려있는 목표는, 무형지독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목.


‘묵뢰일섬!’

한줄기의 검은색 벼락이, 당소소의 손을 향해 나아갔다.


으득!


벼락은, 물결에 막혔다.

“더…, 이상. 소란은 금하겠소.”

정유가 황급히 검집째로 그의 공격을 막고 있었다. 정유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묵전은 동공이 풀린 눈으로 정유를 바라봤다.

“…….”

“당 소저도, 어서 그 물건을 집어넣으시오.”

“소, 손목이…!”



당소소는 기괴한 방향으로 뒤틀린 정유의 손목을 바라봤다. 정유는 고통에 젖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이 정도, 상처야 뭐…. 풍랑천식검을 수련하면 항상 있는 일이니, 호들갑 떨지 않으셔도 됩니다.  형도 조금 머리가 식었소?”

“…그래. 미안하군. 하지만, 저 여자가 악의를 품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시지요.”


정유는 검집을 떨구며, 묵전을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그에게 호통을 치고 싶었다. 그도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근래에 군소방파들을 흡수하며 몸집을 불려 나가기 시작한 그들을 견제하는 것은, 꽤 큰 각오를 해야  수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 상대는 사천당가의 당소소. 함부로 끼어들었다간 청랑검문이 어떤 화를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정유는 손목을 움켜쥐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으음….”

“내가 좀 볼게.”



그런 정유에게, 백서희가 다가와 그의 손목을 살폈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뒤틀린 뼈를 맞출 거야. 참아.”

으득!




“으으윽!”


“의원에 가보도록 해. 그리고….”




백서희는 정유의 손목을 제자리로 되돌려놓고, 당소소를 바라봤다.




“이게, 네가 내놓은 해답이야?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어쩔 수 없었어. 나만을 건드렸다면, 나도 참았을 거야. 하지만 가문을 모욕하고, 청랑검문의 제자를….”


“남을 괴롭히지 못하니, 사천교류회 자체를 망친다…. 너다운 행동이야. 그래도 사과를 하고 다녀서 조금은 달라진 줄 알았는데.”

“…….”




백서희의 차가운 말에, 당소소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의 곁으로, 운령이 다가온다.


“서희 언니, 그만 하세요. 제가 지켜봤었는데, 소소 언니도 처음엔 좋게좋게 가려고 했었어요….”

“흥….”



운령의 두둔에도, 백서희가 보내는 경멸의 시선은 거둬지지 않았다. 당소소는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좆같네….’



최악의 상황이었다. 묵이현과 묵전이 어떤 짓을 했었는지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자신은 묵가장에 욕설을 하고, 독으로 그들을 위협한 악녀가 될 것이다. 그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는지는, 다른 이들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 묵가장은 그것을 위해 세력을 키워 나갔으니까. 그리고, 악녀가  그런 짓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하는 것은 꽤 귀찮은 일이었으니까.



‘난,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결국,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했다는 결과만이 남을 뿐이었다.


“그래, 다  잘못…?”




당소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하려고 했다. 그 순간, 천장이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보였다. 당소소는 시선을 내려 운령을 바라봤다. 운령도 흔들리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령 뿐만이 아닌, 모든 이가 흔들리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뭐야?”




당소소는 그들에게 물음을 던졌다. 운령은, 경계심을 가득 채운 채로 입을 열었다.

“괴물들….”

*



“학귀야, 적당히 해라.”

말끔한 중년의 무사가 시체를 마구 쑤시고 있는 걸인을 말렸다. 걸인은  말을 듣고, 꼬챙이를 거두었다. 그리고, 입가에 묻은 피를 혀로 핥았다. 시체의 가슴팍엔, 청랑검문이라는 자수가 수놓아져 있었다.

“오랜만에 몸 좀 풀고 있는데, 초를 치는구나. 너도 잔학첨[殘虐尖] 맛  볼 테냐?”

“더 좋은 푸닥거리가 있는데, 그런 잡졸에게 힘을 낭비해서야 쓰겠나.”

“흐흣, 듣고 보니 그렇군. 천괴, 역시 살인에 있어선 자네를 따라갈 순 없지.”


“그럼, 경고는 이쯤이면 적절히 준 것 같으니…. 두령의 명령을 수행하러 가볼까.”

천괴가 발걸음을 옮기자, 학귀가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봤다. 즐비한 시체들 너머, 청랑검문의 본채인 청검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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