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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화 〉육장[六章], 설중개화[雪中開花] 3 (34/130)



〈 34화 〉육장[六章], 설중개화[雪中開花] 3

“괴물들….”

운령의 말에, 어수선하던 강당엔 불온한 기운이 감돌았다. 고통에 일그러진 정유의 시선은, 그 미묘한 변화를 포착했다. 정유는 시큰거리는 자신의 손목을 부여잡고 말했다.

“피 냄새가 나는데…?”

찌직, 찌직!

나무판이 찢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모두의 시선은 사방으로 흩어져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다녔다. 당소소의 시선은, 나무 조각이 떨어지는 천장을 향해있었다.

“위!”



당소소의 짧은 한마디. 천장이 무너지고, 으깨진 등불이 비가 되어 내렸다. 자욱하게 일어나는 먼지 사이로,  괴한이 몸을 일으켰다. 반백발을 하고 있는 중년의 사내와, 마치 개방의 걸인 같은 행색의 사내.

그들의 손에는, 모두 살점이 붙어있는 무기가 들려있었다. 당소소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꼬챙이와, 방천극….”

“안녕하신가, 사천의 꼬맹이들.”



꼬챙이를 든 걸인이, 살점이 붙은 자신의 무기를 핥았다. 운령은 그 불결함에 눈살을 찌푸렸고, 걸인은 그 광경을 보며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어주었다. 당소소는 자신의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어서 도망가.”

“사천교류회를 망치려들다니, 배짱한번 두둑하군!”

당소소는 그들의 무기와, 행색을 보며 말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지금 이 곳에 있는 사람으론 당해내지 못한다. 묵전이 당소소의 말을 무시하며 검을 휘두르자, 당소소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재차 외쳤다.


“도망가야 해!”

“늦었다, 꼬마야. 칼을 휘두를 생각이었다면, 진작 휘둘렀어야지.”


“욱…!”



방천극을 들고 있는 무인은 순간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방천극의 하얀 칼날이 묵전의 어깨를 찢어발기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묵전은 그 충격에 주저앉아 비명을 지른다.



“우, 우아악! 으아아악!”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던가? 자신은 아는데, 적을 모른다면 위험에 처해야 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 아니겠나? 그것이 천리니까.”


“…천괴 담륭.”



천괴는 자신을 알아보는 당소소를 향해 웃어주었다.



“역시,  제압했던 독천의 자식이라 그런지 똘똘하다니까.”


“그렇다면 옆에 있는 자는, 학귀 번중….”

“아가씨, 그렇게 보채지는 마. 독천의 딸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요리할 생각이니까.”


“…….”



대강당의 소란을 인지했는지, 소강당에서 휴식을 취하던 호위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당소소에게 달려오는 진명과 하연, 그리고 당웅. 당소소의 곁에 다가가던 진명은, 천괴와 학귀의 얼굴을 확인하자 헛바람을 들이 삼켰다.



“씨발, 뭐야. 저 새끼들이  여기 있어?”



자신의 호위들을 발견한 당소소는, 곧장 당웅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웅. 흑풍대는 지금 어디 있죠?”

“바깥에서 대기 중입니다. 천괴와 학귀…. 긴급 상황이군요.”


“그래요, 긴급 상황. 저자들은…, 생각보다 더 강할 거예요.”


당소소는 긴장감에 적셔진 숨을 내뱉었다. 천괴와 학귀는 자신들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인원들이 몰려도, 그저 웃고만 있었다. 호위들은 자신들의 주군들을 감싸며, 검을 뽑아들었다. 당소소는  광경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모두 대피시켜야해요. 여기 있는 사람들론 저자들을 당해내지 못해요.”

“아무리 천괴와 학귀여도, 사천교류회의 쟁쟁한 인물들을 당해낼 수는….”


“아니에요.”

당소소는 불안이 엄습해오는 얼굴로 당웅의 말을 부정했다.


“저들은 아버지 정도 되는 고수가 와야 제압할 수 있어요. 실제로, 아버지가 제압했던 자들이고. 그리고….”

천괴와 학귀. 쌍검무쌍 사천성 편의 주요 악역이었으며, 독무후가 기연을 내주는 조건으로 내세운 토벌대상이기도 했다. 정파의 안온함을 주워 먹고 자란, 사파와 녹림의 괴물들. 독천 당진천의 손에 한번 제압된 적이 있었고, 그에 앙심을 품고 당가를 노리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을 토벌할 당시 주인공의 무력은, 구주십이천의 바로 밑인 초절정고수의 경지.


당소소는 당웅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흑풍대에게 전하세요. 여기 있는 사람들을 모두 피신시켜야 한다고.”


“그리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아가씨께서도….”



당웅은 당소소에게 손을 내밀며 대피할 것을 제안했다. 그 손을 바라보며 망설이는 당소소.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방천극의 이빨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묵전을 바라본다.

그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순간, 그가 어떤 존재였고 그녀에게 어떤 일을 벌였는지 더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소망은 쌍검무쌍의 모든 비극이, 희극으로 쓰이게 되는 것.


당소소는 당웅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전, 여기에 남겠어요.”

“안됩니다. 그게 무슨 헛소리입니까? 아가씨는 무공도 익히지 않았잖습니까! 어서 절 따라오세요!”

“전 제가 얼마나 무력한지 알고 있고, 저자들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어요. 무리는 하지 않을 테니. 진명, 날 따라오세요.”


“예, 아가씨.”


진명은 체념한 듯, 혀를 차며 당소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강제로 당소소를 데려가려는 당웅을 막아선다.



“쯧. 마교에 끌려갈 때도 막무가내더니, 여기서도 그러시는군요.”

“이곳에 제가 없다면, 이 이야기는 비극이  거에요. 그래선  돼….”

“어련하시겠습니까, 아가씨.”

“안됩니다! 제가 무슨 낯으로 가주님을…!”

당소소는 당웅을 바라봤다. 그리고, 단호한 어투로 말한다.


“명령이야, 당웅. 당문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구해. 당가의 직계로서의 대우는 충실히 하겠다며?”

“…….”



당웅은 이빨을  깨물며 당소소를 바라봤다. 자신이 알던 그 망나니 당소소가 할 생각은 아니었다. 당웅이 당소소의 낯선 모습에 혼란스러워할 때, 당소소는 고개를 돌려 하연을 바라봤다.


“아가씨….”


“하연.”

“그냥, 안전하게 피하시면 되잖아요. 무공을 익히지 않은 아가씨가 이곳에서 뭘 할 수 있다고…!”



하연은 눈물을 흘리며 당소소를 바라봤다. 당소소는 다만, 웃으며 예정된 사실 하나를 말해주었다. 진명을 안심시킬 때처럼.

“괜찮아. 난, 아직 죽지 않아.”

“그게 무슨 소리에요…!”


“당웅. 하연을 피신시켜.”

“…예.”


“아가씨!”

이윽고 결정을 내린 당웅에게, 당소소는 명을 내린다. 하연이 절규하지만, 당웅은 무심하게 당소소의 명을 따랐다. 당웅과 하연이 사라지자, 당소소는 천괴와 학귀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명.”


“예.”


“너, 쟤네한테 걸리면 죽는다.”




평소의 말투를 내려놓고, 날을 바짝 세운 당소소의 말투에 진명은 웃으며 답했다.

“잘 알고 있죠. 가까이에서 많이 봤으니까. 씨발놈들. 무공실력만큼 사람들도 어찌나 잘 죽이던지, 흑림총련에 저 새끼들이 보였다하면 피비린내 때문에 코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니까요?”


“시선, 끌 수 있겠어?”



그 둘의 시선은, 천괴와 학귀에게 달려들어 몸을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호위들의 시체에 머물러 있었다. 당소소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진명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절 너무 좆밥으로 보시는데요?”


“너 좆밥 맞잖아.”


“…….”




당소소는 진지한 표정으로 진명의 말에 대꾸했다. 진명은 머리를 벅벅 긁더니,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거, 자기 부하에 대한 예우는 하나도 없소?”

“죽으면 안 되니까.”

“참, 사람 무안하게 하긴….”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런 당소소의 뒤를 따르며, 진명이 말했다.



“아가씨. 저들이 움직였다면, 흑림총련의 숲그림자들도 같이 움직였을 겁니다.”

“숲그림자?”

“정확히는 흑림영[黑林影]이라곤 하는데…. 그냥 싸움 잘하는 산적과 사파를 한데 모아둔 부대죠. 대충, 이백 명 정도.”




진명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강당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며 수많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당소소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이런 큰 사건이 있었나?’




당소소의 의문. 하지만 사천성 편 어디에도 사천교류회의 습격 건에 관한 것은 적혀있지 않았다. 하지만, 예측할 수 있는 배경 자체는 있었다. 청랑검문주인 정휘가 일련의 사건에 의해 죽었고, 망해가는 청랑검문을 되살리기 위해 정천무관에 입학했다는 사실.


당소소는 그 기억을 꺼내며, 청랑검문을 망하게 한 원인이 바로 이 곳에 있었다는 것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확보해야할 것은 청랑검문주의 생존….’


당소소는 손목을 잡고 신음하는 정유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를 노리며 걸어오는 학귀. 당소소는 진명에게 물었다.


“진명, 너 단혼사님한테 도망갈 수 있어?”


“도망이라면 칠 수 있긴 한데…. 그런데 그걸  물어보십니까?”

“그럼 저기 걸어오는 기분 나쁜 거지새끼의 주의를 좀 끌어봐.”



당소소가 학귀를 가리키며 명령하자, 진명의 얼굴이 구겨진다.


“학귀…? 아니, 천괴와 학귀가 둘 다 그 영감만큼 강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내가 아는 상태라면.”


“뭐…. 알겠습니다. 헌데, 아가씨는 당가에만 있으면서 그런 걸 다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툭 던지듯이 물어오는 진명의 물음에, 당소소는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했다.


“으, 음. 다 아는 수가 있지. 응.”


“수상한데….”




의뭉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진명에게, 당소소는 어색한 태도로 윽박질렀다.

“…너, 사천당가가 좆으로 보여?”


“아니, 언제 그렇다고 했습니까? 그냥 궁금하다 이거지. 막상 사천당가에서도 세력이라곤 하연 한 명 밖에 없던데. 하연이 알려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폐부를 찌르는 진명의 답변. 당소소는 울상이 된 채로 진명에게 말했다.



“…내가 좆으로 보여?”


“어휴. 알았습니다. 말하기 싫으시면, 말하지 마십쇼.”



진명은 주군의 귀여운 울상을 바라보며, 한숨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혀로 입술을 적시며 앞으로 걸어오고 있는 학귀를 바라봤다.



‘참, 신기한 아가씨란 말이지.’


진명은 그런 생각을 하며 학귀를 향해 걸어갔다. 진명이 학귀의 시선을 끌기 위해 출발하자, 당소소는 서둘러 정유에게 다가갔다. 손목을 움켜쥐고 있던 정유는 당소소를 발견하자마자 엄포를 놓았다.

“도망가지 않고 뭐하는 것이오, 당 소저!”


“걱정은 고마워요. 하지만 도망가야 하는 건, 저만이 아닌 사천교류회의 모든 이에요.”

“무슨 소리십니까? 여긴 청랑검문이 맡을 테니 당 소저가 먼저 피신하십시오. 무공도 모르는 연약한 소저가 어찌 여기에 남으셨습니까! 여긴 우리 사천성의 후기지수가 맡을테니 어서 도망가시오. 이 정유, 비록 손목이 부러졌다곤 하나 검의 날카로움은 여전히 예리하니…!”

당소소의 발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발언. 당소소는 한숨을 쉬었다.



“에휴, 씨발.”

“예? 씨, 씨발?”


이런 태도의 사람들을, 당소소는  알고 있었다. 웬만해선 설득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전생에서 지독하리만치 겪었다. 공사장의 선배들이 일러주는 자잘한 요령들. 신입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결국 다음날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모르는 자들은 설득  수 없다는, 간단한 이치였다. 당소소는 정유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맞대었다. 시선과 시선, 호흡과 호흡이 교차하는 거리. 그리고, 한자 한자 힘을 주어 말했다.



“천괴와 학귀는, 우리 아버지가 와야 제압할 수 있는 자들이야. 청랑검문이 대체 뭘 하겠다는 건데?”

“그, 그게…. 얼굴, 얼굴이 너무 가깝….”


그녀의  있는 말에, 정유는  둘 곳을 찾지 못하며 청산유수처럼 쏟아내던 말을 더듬었다. 사실,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네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바깥의 악적들을 제압하고 사천교류회의 모든 인원을 무사히 대피시키는 거야. 청랑검문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네 아버지까지. 그리고 최대한 빨리 아미파와 청성파, 당문에 천괴와 학귀의 등장을 알려. 그게, 유일한 살길이야.”


“알겠, 알겠소…. 그러니까 일단 얼굴을….”


정유의 동의를 받아낸 당소소는, 밀착했던 얼굴을 뒤로 물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정유는 새빨개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 소저도, 꼭 피신해야 하오.”

“내 걱정보다 우선, 문주님 먼저 피신시키세요.  여기서 죽지 않으니까.”



당소소는 그렇게 말한 뒤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신이 무형지독으로 소란을 일으킨 덕에 웬만한 사람들은 대강당을 빠져나간 상태였다.

빠져나가지 못한 자들은 차가운 시체가 되어 누워있거나, 곧 시체가 될 이들이었다. 아니면, 칼을 빼들고 그 운명에 저항하려는 자들이거나.



“사파의 악적이, 잘도 정파의 심부에 기어들어 왔구나.”

백서희는 그렇게 외치며 등에 차고 있는 장검을 빼들었다. 마치, 여명이 번지듯 금빛의 서광이 장검을 타고 흘렀다. 내공의 수련이 극에 달해야 도달할 수 있는 일류의 경지, 검기상인[劍氣傷人]의 경지였다.


방천극을 이리저리 휘돌리며 묵전을 가지고 놀던 천괴는, 백서희의 검기를 보며 감탄의 웃음을 지었다.




“열여덟 살의 나이로 검기상인…. 과연, 철혜검봉이라 불릴 만 해. 천리를 거스르는 듯한 실력이군.”


“당장, 그를 놔줘.”

“이 자를 놓아 달라?”



백서희의 으름장에, 천괴는 빙긋 웃으며 묵전의 어깨에 방천극을 더욱 깊게 박아 넣었다. 묵전은 그 고통에 눈물과 비명을 토해냈다.

“으, 으아아악!”

“오빠!”


“네 놈…!”

“이 자가 죽는 것은 천리[天理]야.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단다.”


백서희는 냅다 검을 내지른다. 금빛 검기가 뻗어나고, 적을 무릎 꿇리기 위해 하늘에서부터 적을 짓눌러갔다.


아미파의 절기, 복호검법[伏虎劍法]이 펼쳐졌다.

스륵.

얇은 절단음. 백서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촉감이 없었다.

천괴의 움직임은, 단 한발자국이었다. 그는  작은 움직임으로, 검기를 두른 참격을 회피했다. 백서희는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곧바로 직감했다. 백서희는 서둘러 검을 회수한 뒤, 흐트러진 자세를 잡아갔다. 하지만, 상대는 그것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큰 기술을 마구 질러대는 것은, 천리뿐만이 아니라 무리[武理]에도 어긋나는 거란다. 꼬맹아.”


“커흑!”

아쉽게도 회수되는 검보다, 그녀의 배에 틀어박히는 천괴의 주먹이 더 빨랐다. 백서희는 신물을 뱉어내며 배를 움켜쥐었다. 부들거리며 배에 박혀있는 주먹을 밀어내기 위해 손을 가져다 대는 백서희. 천괴는 그런 그녀의 턱을 발로 차 저 멀리 날려버렸다.


“윽…!”

“요즘 세상엔, 천리를 거스르는 인간들이 많단 말이지. 자꾸 사파의 권역을 침범하며 자신의 세력에게 나눠주고 있는 묵가장이나, 우리 귀여운 새끼들을 핍박해 흑림총련을 호출한 너희 백능상단같은 놈들. 뭐, 백능상단에겐 감사함을 느끼고 있긴 해.”




천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리고, 슬쩍 웃음을 보이며 방천극을 비틀었다.




“으으윽!”

“꼬마들아. 우리라고 너희를 건들고 싶었겠니?”

“오빠를 놔줘, 이 더러운 괴물!”




묵이현의 부르짖음에도, 천괴의 웃음과 고문은 그치지 않았다. 천괴는 그런 묵이현을 비웃었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가 아닌 곳에서 행사를 벌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들을 보호할 마땅한 고수도 없다? 꼬맹아. 너희가 해를 입는 것은 천리란다. 우리를 불러들인 백능상단에겐  번이고 감사를 표하고 싶은 지경이야.”

천괴의 말에, 백서희의 동공이 커졌다. 그리고, 자신이 사천교류회에 오기  제압했던 산적들이 떠올랐다.


‘흑림총련이, 널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쿨럭…!”

솟아오르는 수많은 감정에, 백서희는 피를 토했다. 자신이 이 혈사를 발생하게 했다는 죄책감, 아미의 신검이니 무엇이니 부르짖으며 악적 하나를 막지 못했다는 모멸감. 그리고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르는 무력감과 분노.



“…언니!”

 수많은 감정이 뒤엉키며, 백서희의 눈은 초점을 잃어갔다. 운령은 쓰러진 백서희를 보며 그녀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그런 운령을, 당소소가 막아섰다.



“운령, 멈춰.”

“비켜요, 소소 언니. 난 서희 언니를 구해야해!”


“천괴는, 적어도 우리 가문의 단혼사님 만큼 강할 거야. 무작정 들이받아선 상대할 수 없어.”

“그럼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데요!”



운령은 눈물을 흘리며 당소소를 바라봤다. 당소소는 대강당의 입구를 돌아보며 물었다.

“정유가 각 문파에 도움을 청하러 갔어. 그리고….”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운령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운령에 대한 믿음이 담겨있었다.




“청운적하검.”


“…내가 그걸 익히고 있다는 걸, 언니가 어떻게 알아요?”


“너라면, 익히고 있을 것 같았어. 넌 똑똑하잖아?”


당황하여 당소소를 바라보는 운령. 당소소는 그렇게 답하며 눈길을 돌려 천괴를 바라봤다. 천괴는 당소소를 향해 천진한 웃음을 보였다.


“하하…. 독천에게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할 날이 올 줄이야. 과연, 천리는 항상 순리대로 흘러가는 법이군!”

“나도 천리를   줄 아는데.”

그 웃음에 답하며, 당소소도 웃어주었다.


“초절정고수던지 길가의 망나니던지, 가는 덴 순서가 없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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