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칠장[七章], 징악징선[懲惡懲善] 1
악은 징계해야한다. 때때로 이뤄지지 않는다지만, 그것은 마땅히 그래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악을 징계하는 이들은 누구의 몫일까?
묻는다면, 대부분은 선인의 몫이라 답할 것이다.
선인은 타인의 안위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악인의 비행을 파헤치고, 악인을 규탄하며, 악인을 단죄한다.
하지만 타인의 안위를 위해 살아왔던 선인이, 타인의 안위를 박탈한다는 것은 선인에게 있어서 어떤 것일까.
결국 우리는 악당을 처벌하기 위해, 선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또 다른 이름의 징계였다.
*
“해독제가 필요해?”
웃음과 함께 던져진 당소소의 말.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웃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천괴의 머릿속은 무형지독에 관한 생각으로 엉망진창이었다.
‘무형지독…. 독천을 죽이기 위해 상상했던 것 중, 가장 최악의 수. 무색, 무취, 무형. 심지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떤 변고도 느낄 수 없다.’
천괴는 팔로 코와 입을 막으며 눈을 굴렸다. 독천의 딸이 무형지독을 사용한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인가.
‘우리의 습격 당시엔, 많은 이들이 있었다. 아직 열여덟에 불과한 소녀, 우리를 구별해서 독을 쓰는 독공을 사용하기엔 어려웠겠지. 그래서 나를 도발해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고 무형지독을 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터무니없는 꼬맹이군.’
천괴는 무형지독이 들어있는 죽통을 내민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당소소를 노려봤다. 그는 당소소가 팔이 찔리는 순간까지도, 지금 이 순간을 노렸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천괴의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절로 주먹이 꽉 쥐어졌다.
‘나는 그 누구보다 독천의 딸을 경계했어야 했다. 철혜검봉, 파랑검객, 청성의 신예는 내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안하무인의 망나니라는 같잖은 소문에 눈이 멀어, 내가 수싸움에서 진 것이다.’
그는 정파의 후기지수라고 불리던 이들 하나하나를 떠올렸다. 묵전은 우둔했고, 묵이현은 심약했다. 백서희는 너무 정직했으며, 운령은 우유부단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손 위에 두고 주무를 수 있었다.
오직 당소소만이, 자신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씨발, 씨발! 해독제를 어서 내놔! 빨리!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죽여버리겠다!”
학귀의 괴성에, 천괴는 미간을 찡그렸다. 무형지독에 중독된 시점에서, 이미 칼자루는 넘어갔다. 본신의 모든 무력을 쏟아낸다고 해도, 온 힘을 다해 저항하고 있는 운령을 한 수에 패퇴시킬 순 없었다. 그녀의 재능은, 적을 속여 빈틈을 찌르는 자신의 무공과 상극이었다.
생포하라는 명령을 무시한다고 해도 시간은 필연적으로 지체될 것이고, 해독제를 탈취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지원이 당도할 가능성이 컸다. 해독제를 취하지 못하면, 그냥 개죽음을 당할 뿐이었다.
‘그리고, 생포하지 못하고 이대로 물러나도 죽는다.’
사천교류회를 습격했다. 호위들을 죽이고, 아미파와 청성파의 귀한 후기지수들의 피를 봤다. 심지어, 독천의 딸을 다치게 했다. 사천의 사파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향했다. 뒤를 돌아본다면, 죽음뿐이었다. 천괴가 입을 열었다.
“…거래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군.”
“난 필요하냐고만 물었어. 준다고는 한 적이 없을 텐데?”
“그렇기에 거래다, 당소소.”
천괴는 더 이상 꼬맹이라는 말로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 당소소를 꼬맹이라고 부르기엔, 천괴의 머릿속에서 그녀는 후기지수라는 범주를 넘어선 거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천괴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
“해독제를 받고, 우리는 깔끔하게 사라진다.”
“내가 아는 깔끔이랑 다른 것 같은데.”
“그럼 반대로 물어보지. 무형지독의 발작은 대략 이 각[刻]. 그 안에 우리가 너희를 죽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나?”
“…….”
당소소는 자신보다 무형지독을 잘 아는 천괴의 말에 순간 식은땀을 흘렸다.
‘저 새끼 저거, 이빨깐 거 아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다면 당장 자신을 인질로 붙잡고 청검각을 빠져나갔을 것이다. 오히려 저 말을 통해, 그 의심 많은 천괴마저 믿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당소소는 그의 의도를 생각했다.
‘저들은 지금 이 자리에 오래 있다간 죽는다. 지금까지야 생포에 목적을 두고 전력을 다하지 않았겠지만, 이제부턴 저놈들도 목숨이 걸렸어. 심지어 해독제를 받아 빠져나간다고 해도, 살 수는 없을 테니까.’
‘해독제를 넘기는 순간을 노린다. 거래성사의 직전은 누구나 심리적으로 안심하기 마련. 동료를 죽일 때 자주 겪었던 바야.’
천괴는 겨누고 있던 방천극을 내리며 생각했다. 서로의 눈이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하지만 적은 천괴. 해독제를 받고 우리를 죽이지 않는다는 보증이 없어. 거기에 저들이 살기 위해서라면 우리의 목숨이 필요해. 확신이 부족하다.’
‘내상을 각오하고 모든 내공을 끌어모은다면 꼬마 도사와 거슬리는 당가의 개 정돈 빠르게 정리 할 수 있다. 학귀가 백서희만 맡아준다면…. 당소소를 제압하는 것은 쉬울 것이다. 무형지독을 다뤘을 뿐, 무공에 깊은 조예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어떻게 확신을 받을 수 있지?’
‘청성의 운령은 애물단지. 죽인다고 해도 그렇게 큰 반향은 없을 것이다. 혹여 움직인다 하더라도 백서희와 당소소를 납치해간다면 두 세력이 청성의 경거망동을 억제해주겠지. 답은 이것 하나뿐이다.’
천괴의 확신에 찬 시선. 하지만, 당소소는 아직 거래에 대한 답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은 천괴에게서 흩어져, 학귀에게로 향했다. 그는 몸을 피가 나도록 벅벅 긁어대며, 원망에 찬 눈으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이 씨, 씨발! 빨리 해독제를 내놔!”
증오에 찬 말투에서 느껴지는 건 오로지 분노뿐. 내외의 조화를 이룬 고수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이성을 잃고 있었다. 당소소는 학귀를 바라보며 의심했다.
‘연기일 가능성은?’
자신도 연기하는 만큼, 적도 연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 당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쌍검무쌍의 서술에선, 그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살인을 원하는 마음과, 살인을 쉬이 할 수 있는 육체가 부합되어 절정의 경지에 이르게 된 학귀. 그가 감정을 통제할 때는, 오로지 자신의 쾌락을 추구할 때뿐이었다. 당소소의 눈이 빛난다. 주인공이 그들을 죽이기 위해 사용했던 계책이 떠올랐다.
“둘 중 하나만 해독제를 주겠어.”
“…둘 중 하나라.”
“누가 받을지는 알아서 결정하시고.”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천괴를 바라봤다. 천괴의 얼굴엔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천괴는 눈을 돌려 학귀를 바라본다. 학귀는 천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나에게 넘겨.”
“이성적으로 생각해라. 번중. 누가 받아야 이 국면을 효율적으로 이끌 수 있는지 생각해.”
“그건 바로 나지, 이 친구야.”
학귀의 눈에는 살심이 번들거렸다. 천괴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진다. 거래에 관한 이야기에 소비한 시간은 일 각. 천괴는 당장이라도 학귀를 설득하고 싶었으나, 실랑이를 벌일 시간 따윈 없었다. 천괴는 미간을 좁히며 생각했다.
‘지금 학귀는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수야. 말로는 이미 설득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야. 어차피 다 죽일 생각이었다. 학귀를 족쇄에서 풀어주고 멋대로 날뛰게 한 뒤, 나는 당소소를 제압해 해독제를 얻으면 된다.’
“좋아. 해독제는 학귀가 받겠다.”
“그, 그래. 내가 받을 거야!”
“좋아. 학귀에게 주겠어.”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감색의 주머니가 천괴의 눈에 걸렸다. 천괴는 시간을 가늠한다. 아직 일 각이 남았다. 그들을 모두 죽여버리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당소소는 주머니에서 갈색의 환약을 꺼낸다.
“이게 해독제야.”
“줘, 빨리 주란 말이야!”
“줄 거야. 줄 건데….”
당소소는 환약을 슬쩍 바라보며 운을 띄웠다. 그 뜸 들임에, 학귀의 분노는 임계치에 달했다. 한눈에 봐도 울그락불그락 한 얼굴. 당소소는 환약을 휙 던지며 말했다.
“몸놀림이 굼뜬 당신이 이걸 먹고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모두의 시선이 던져진 환약으로 향한다. 천괴의 시선은, 당소소를 향하고 있었다.
콰아악!
당소소가 환약을 던짐과 동시에, 천괴가 움직였다. 나무바닥을 짓이기며 쏘아지는 천괴. 운령은 곧장 그 움직임에 반응했다. 천괴의 진로에 뻗어오는 이가 빠진 고검.
땅!
천괴는 창대를 올려치며 검을 튕겨낸다. 운령은 그 여파에 튕겨 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운령이 막아서는 것을 실패하자, 백서희가 몸을 날리며 막아선다. 불혼패엽공의 웅혼한 성질은, 녹초가 된 그녀의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검기를 뽑아내는 것을 허락했다. 천괴의 입술이 비틀린다.
‘안침풍!’
날아가던 와중 한발을 디딘다. 힘을 쏘아낼 수 있는 지반이라는 활대에 시위가 걸린다. 전사경의 묘리가 담긴 방천극은, 검기가 서린 그녀의 검을 교묘하게 피하며 그 초승달 같은 날을 백서희의 목에 걸었다.
텅!
백서희는 화들짝 놀라 검기를 두른 장검을 위로 올려친다. 하지만, 급조된 자세에는 제대로된 힘이 실리지 않는다. 안침풍의 묘리에, 그녀 또한 튕겨 나갔다.
천괴의 눈에 당소소의 창백한 얼굴이 보인다. 당웅과 진명이 기진맥진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천괴에게 내달린다. 천괴는 비웃음을 짓곤, 창을 위로 휘돌리며 그 둘을 튕겨낸다.
“커억!”
“윽!”
그 둘을 튕겨내고, 천괴는 당소소의 앞에 선다. 파리한 입술, 창백한 얼굴. 흐르는 식은땀과 애처롭게 떨리는 온몸. 곧 시들어 버릴 것 같은 꽃과 같았다. 그런 꽃에, 천괴는 방천극의 날을 걸었다.
“흑림총련으로 같이 가줘야겠어.”
“흐흣, 같이?”
당소소가 천괴의 말에 의문을 표하며 웃었다. 득의에 찬 천괴의 얼굴이 굳었다. 천괴는 뒤를 돌아봤다. 몸을 일으키는 운령과 백서희, 자리에서 일어나 살기를 쏘아내는 당웅과 진명이 있었다.
“…허. 이런 어리석은 새끼.”
천괴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한마디 욕을 뱉었다. 학귀가 없었다. 그가 해독제를 받고 도주를 한 것이었다. 당소소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속삭였다.
“배신으로 남을 죽이던 자가, 배신에 당하는 기분이 어때?”
“…….”
“내가 너 여기서 뒤진다고 했지, 씨발놈아…?”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욕설. 천괴는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방천극을 당겼다. 하지만 방천극에 걸리는 것은 허공뿐이었다. 당소소가 쓰러지며 이미 바닥에 누워있었다. 그런 천괴를 막기 위해 네 명의 인원이 달려든다. 천괴는 정신을 차리고 녹초가 된 넷을 튕겨낸다.
진명과 당웅이 긴 자상을 입으며 나가떨어지고, 창대에 맞은 운령은 바닥을 구른다. 그리고 발에 차인 백서희가 저 멀리 나가떨어진다. 백서희가 바닥에 닿는 시각까지 포함해, 이 각이었다.
아무런 이상이 생기지 않았다. 천괴는 살기가 어린 표정으로 당소소를 내려봤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뗀다.
“네가, 날, 속였구나.”
당소소는 팔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무언가 던지는 시늉을 하며 입으로 소리를 냈다.
“피슝.”
피슝!
거대한 철침이 그의 미간에 박힌다. 시야가 점점 꺼진다. 그의 마지막 장면은, 격노하고 있는 독천 당진천의 모습이었다.
*
“흐핫, 하핫! 씨발, 살았다!”
학귀는 그렇게 부르짖으며 거리를 내달렸다. 그는 천괴가 항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 자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불쾌감. 동료살해가 취미인 그에게 환약을 넘겼다간, 자신이 버려질 것이라는 합리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학귀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보이는 청검각을 확인했다. 구름처럼 몰려든 무인들이 청랑호를 빈틈없이 포위하고 있었다. 그를 도와서 두령의 명을 수행했다면, 학귀는 이미 몰려든 고수에게 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라? 덕분에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살아남았지.’
꾸르륵!
배에서 격렬한 소리가 들려왔다. 학귀의 한쪽 눈썹이 일그러진다. 참고 달려보지만, 배출을 요구하는 몸의 항의는 거세졌다. 학귀는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그늘진 숲으로 들어간다.
‘독이 배출되는 모양이야.’
학귀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지를 까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구릿한 냄새가 퍼지며, 학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그의 앞에, 훤칠한 사내의 얼굴이 보인다.
“뭐, 뭐야?”
“오른팔이던가?”
“뭐?”
푸슉!
학귀의 오른팔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린다. 학귀는 괴성을 내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사내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한다.
“크아아악!”
“천마의 비가 될 고귀한 여인에게 상처를 입혔으니, 아쉽겠지만 살아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내는 학귀의 왼팔에 손가락을 꽂아 넣었다. 마치 두부를 쑤시는 듯, 그의 손가락은 아무런 저항감 없이 학귀의 팔을 꿰뚫었다.
“크읏, 으악…! 너, 너 뭐야! 뭐 하는 새끼야?”
“음…. 글쎄. 지금은 운류라고 알려줄까.”
사내의 푸른 눈이 빛난다. 그리고 평온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그의 배를 잡아 뜯는다.
“아니다. 마교의 소천마 사마문이라고 알려주는 편이 좋겠네.”
고통에 물든 학귀의 표정에, 경악이 어린다. 사마문은 그 표정을 바라보며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