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칠장[七章], 징악징선[懲惡懲善] 2
사천교류회의 분란은 비교적 빠르게 수습되었다.
적진을 꿰뚫고 간다는 정유의 판단 덕분에, 지원은 빠르게 도착했다. 각 문파에서 차출된 대표격의 고수들이 한데 모여, 흑림총련의 잔당들을 순식간에 소탕했다. 흑림총련을 이끄는 두령은 보복이 두려워 몸을 숨긴 상태. 남은 이들은 희생자들을 추스르고, 장례를 치르며 혈사를 마음속에 새기고 아픔을 씻어냈다.
하지만, 이 혈사에 대한 책임은 누군가 져야했다.
*
새의 지저귐이 창틀을 넘어온다. 창백한 얼굴의 당소소는 아침햇살을 받아도 여전히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침상에 누워있는 당소소를 바라보던 당진천. 옆을 슬쩍 돌아본다. 하연은 고개를 숙이며 창문에 장막을 드리웠다.
“…….”
당진천은 정신을 잃은 당소소의 뺨을 매만졌다. 딸은 칠혼독을 먹었던 병자의 몸이었다. 병상에서 일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납치를 당해 또 병상에 누웠다. 이젠 그 아픈 몸으로 절정의 고수를 상대했다고 한다. 그는 한 손으로 이마를 감싸며 고뇌의 한숨을 뱉었다.
“후우…. 딸아. 차라리 말썽만 피우지 그러느냐….”
차라리 말썽만 부리고,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병상에서 일어난 그녀는 더 이상 말썽을 부리지도, 다른 이들을 막 대하지도 않았다. 무례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겐 한없이 무례해졌다. 당청과 맞서고, 납치를 당해도 별 대수롭지 않은 척을 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녀는 웃으면서 아무것도 아닌 척을 할 것이다. 고통을 참기 위해 마비독으로 자신의 몸을 속이면서까지 움직였는데도.
언젠가 사라질 것 같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당소소를 보며, 당진천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가주님.”
들려오는 음성에 당진천은 손을 떼고 고개를 돌린다. 온 몸에 붕대를 감은 당웅이 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당진천은, 걱정스런 눈으로 옆을 지키고 서있는 하연에게 눈짓한다. 하연은 고개를 숙이며 방 안을 빠져나갔다. 당진천은 굳은 얼굴로 당웅을 바라봤다.
“아가씨를 지키지 못한 죄, 목숨으로 갚겠습니다.”
“…….”
당진천은 그의 말을 듣고, 그의 얼굴을 보며 깊은 시름에 잠겼다. 당진천의 기억 속에서 당웅은 기본적으로 성실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시야가 좁고 견식이 짧아 종종 아집에 빠지기도 하는 경향이 있긴 했지.’
방계, 그것도 세력이 약한 곳에서 태어난 자였다. 피해의식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오로지 당가만을 바라봤기에 시야가 좁은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배경에도, 당웅은 노력으로 당가의 두 번째 무력집단인 흑풍대의 가장 윗자리에 앉았다.
그렇기에 그를 어찌 처분할지 고심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당진천이 고심에 빠져있자, 당웅은 고개를 더욱 깊게 숙이며 자신의 과오를 덧붙인다.
“흑풍대는, 그동안 아가씨를 업신여겼었습니다.”
“…….”
“사실 흑풍대 만이 아니라, 당청의 묵인 하에 모든 인원들이 아가씨를 업신여겼었습니다. 가주님은 항상 무림맹의 일에 바빠서 자리에 없으셨고, 내정은 결국 당청이 도맡아 처리했기에.”
“…그렇군.”
많은 감정이 섞인 낮은 목소리. 당웅은 고개를 숙이며 처분을 기다린다. 당진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더 말하게.”
“…예. 당청은 우선 총관을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독봉당의 시비들을 모두 갈아치우고, 새로 들어온 신입들로만 구성했습니다. 독봉당에 소비되는 물품들은 모두 값싼 것이나, 망가진 것들이었지요. 당가의 가풍인, 실용을 강조하며 쓸모없는 곳에 돈을 쓸 필요 없다고….”
당진천의 굳은 얼굴이 꿈틀거린다. 당웅은 말을 끊었다. 당진천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더 말하게.”
“나날이 응석받이가 되어 가시는 아가씨를, 가문의 어떤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무인들은 아가씨를 무시했고, 시녀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가씨에게 험담을 했습니다. 당청이 묵인했으니까요. 그리고 점점 그 무례는 커져갔습니다.”
당진천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 무림의 일로 단혼사와 같이 바깥으로 나돌며, 당청에게만 가문의 내정을 맡긴 채 가주로서의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도 반성하고 있었다. 당소소가 가문의 소외를 받고 있다는 것도, 반성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자식들보다 조금 더 사랑을 주었었다.
“독봉당의 시녀를 괴롭히는 것도 묵인되었습니다. 이젠 보이는 곳에서 아가씨에게 험담을 해도,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가씨에게 들리지만 않는다면. 무인들이 아가씨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도, 허락되었습니다. 밤마다 애월루를 찾는 아가씨를 호위하는 것은, 언제나 흑풍대에 갓 들어온 견습들의 몫이었습니다.”
당웅의 말이 이어질수록, 당진천은 스스로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갈기고 싶어졌다. 협행, 올바름, 대의를 운운하며 사천당가의 얼굴에 금칠을 하기 위해 바깥으로 돌아다녔던 나날들. 정작 그 얼굴을 들춰보니, 그 아래는 이미 썩어문드러진 상태였다. 당진천은 당소소가 뱉었던 말들을 떠올린다.
‘아니, 그냥 금화 다섯 닢만 달라고. 아버지라고 불러 줄 테니까.’
아주 가끔 가문에 들러서, 자신이 주는 용돈을 제외한다면 그녀가 마음껏 쓸 수 있던 돈은 얼마나 됐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겠다는데 무슨 참견이야? 꼰대가.’
가문에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곤,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당청은 쓸모없는 동생에게 투자할 가치가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당혁에게 당소소는 당가의 혈통을 이은 좋은 실험체였을 것이다. 당회는 당소소를 어머니를 죽인 원수로 대하고 있었다.
당진천은 코끝이 아려왔다. 입술을 꾹 다물며 마음속을 벗어나려는 비애를 숨긴다. 당웅은 잠시 말을 멈췄다. 당진천은 그에게 계속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아가씨는 나날이 더 응석받이가 되어가셨고, 아가씨를 비방하는 것은 어느덧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가씨는 그 상처받은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표출하기 시작하셨죠. 전년도 사천교류회처럼.”
“그건, 알고 있네.”
당진천은 유독 바빴던 전년도 사천교류회를 떠올린다. 당청이 주관했던 사천교류회. 당소소는 퉁명스런 얼굴로 후기지수들을 질투하고 다녔다. 당진천은 그녀를 엄하게 꾸짖고, 독봉당에서 두 달간 근신하라는 처벌을 내렸었다. 당진천은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젠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후기지수들을 질투했던 이유를.
‘모두에게 사랑 받는 것이, 부러웠을 테지….’
당진천은 그런 생각과 함께 당웅을 바라본다. 당웅은 떨리는 음성으로 당진천에게 말했다.
“그리고 전, 호위하는 동안 아가씨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악담을 하셨던 과거를 떠올리면서.”
“…그런가.”
당진천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몸이 피로했다. 미간을 좁히며 손가락으로 감은 눈을 꾹꾹 눌렀다. 좋은 일만 한다면, 좋게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그는 외동이었다. 그리고, 당가의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성품도 괜찮았고, 무재는 뛰어났다. 어떤 권력다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자신은 순조롭게 가주가 되었다. 가주가 되니, 보이는 시선이 달라졌다.
가문을 고깝게 바라보는 시선들, 독과 암기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 사실상 사파에 가까운 취급을 하고 있는 정파의 무인들. 그들에게 아첨하며 협행을 하고, 독과 암기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당가를 빛나게 만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렀다.
“…흑풍대에도, 아직 당청을 따르는 자들이 있는가?”
“부끄럽게도, 상당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흑풍대주는,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보는가?”
당진천은 당웅에게 그렇게 물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진천은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당웅은 그런 당진천의 모습에 두려워 몸을 떨었다. 그리고,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겨우 입을 열었다.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알겠네.”
당진천은 당웅에게 손을 뻗었다. 그런 당진천의 장포자락을 잡는 여린 손길. 당진천은 뒤를 돌아본다. 당소소가 일어나있었다.
“안, 돼요…. 죽으면, 행복하지 않아….”
“…….”
당진천은 손을 거둔다. 그리고, 당소소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는다. 당소소는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당진천을 부른다.
“아, 아빠….”
“왜 그러느냐, 딸아.”
“당웅은, 열심히 했으니까….”
당진천은 그녀를 토닥였다. 그러자, 당소소가 축 늘어지며 잠에 빠져든다. 그의 손에는 어느덧, 수면을 유도하는 약재가 쥐어져 있었다. 처량하게 잠든 그녀의 모습은, 당진천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아빠라는 말은 부끄럽다더니, 부탁이 하고 싶을 때는 잘만 부르는 것 같은데….’
그리고 당소소의 영악함에 못 이겨, 웃음을 짓는다. 당진천은 다시 당웅을 바라본다. 그 또한 당혹스런 표정으로 당소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진천은 다시 당웅에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은 수도가 되어, 당웅의 머리를 가볍게 내리쳤다.
“……?”
“자넨 이것으로 죽었네.”
“예?”
“흑풍대주 당웅은 죽었다는 게야.”
“…아.”
당진천은 손을 거두고, 뒷짐을 지며 말했다.
“당청의 세력에 대해 잘 알고 있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내각은 제독전, 외각은 흑풍대의 다수와 총관이 당청의 세력입니다. 대부분의 시비들도 당청과 당혁의 지휘 하에 있었습니다.”
“…당가에는, 내각과 외각 외에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집단이 있다는 건 알고 있나?”
“잘, 모르겠습니다.”
고개를 저으며 답하는 당웅. 당진천은 그런 당웅에게 말했다.
“암풍대[暗風隊]. 당가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하는 부대네. 녹풍대와 흑풍대에서 큰 죄를 짓거나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면, 죽음을 가장한 채 암풍대원이 되지. 암풍대에 관한 것은 가주인 나와, 멀리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장로들만이 알고 있어.”
“처음 듣습니다.”
“독과 암기를 다루는 당가의 시작은 깨끗하지 못했네. 우린 그 더러움과 당가를 분리시킬 필요가 있었어. 그 더러움을, 암풍대가 담당했네. 다른 이들의 눈을 속여 독물을 입수하고, 때로는 당가의 명예를 더럽히려는 자들을 암살하지. 온갖 추잡한 수법으로 정보를 모으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었네.”
당웅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당진천은 그런 당웅의 기색을 보며 자리에 앉는다.
“혐오스러운가?”
“…….”
당웅은 대답하지 않았다. 당진천은 그런 당웅의 태도에 픽 웃으며 말했다.
“난 그런 더러움과 작별을 해야, 당가가 비로소 모두의 인정을 받는 정파로 거듭날 것이라 생각했네. 내가 가주의 자리에 앉은 이후, 난 암풍대에 관한 모든 권한을 사실상 놓았어.”
“그렇습니까.”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더군.”
당진천의 눈이, 슬픔에 젖었다.
“진정 당가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선, 그것을 씻기기 위해 집어 드는 손은 반드시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는 걸…. 난 알아야 했네. 더러움을 가리자고 금칠을 해봐야, 결국 내부는 더러운 상태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네.”
“그렇다면 전, 암풍대로 가는 겁니까?”
“그렇네.”
당웅의 질문. 당진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암풍대는 아마 장로들의 수족이 되어있을게야. 암풍대를 손에 넣어. 그것으로, 소소에게 했던 무례와 불충을 속죄하게.”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자네의 목숨뿐만이 아닌, 가족의 목숨도 걸려있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할게야.”
당진천은 당웅에게 말했다. 본래 이런 사안은, 방계의 가족을 모조리 쳐내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그랬다간, 끝이 없어진다. 당청의 묵인 하에 당소소를 업신여겼던 모든 이들을 쳐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깨끗함을 추구하던 지난날을 잊고, 기꺼이 손에 더러움을 묻힐 각오를 해야 했다.
‘당청이 가문을 그런 식으로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묵인뿐만이 아닌 장로들의 조력도 있었을 터. 장로들은 독과 암기를 좀 더 요긴하게 쓰고 싶은 생각이었겠지. 방계에게 떨어지는 이득 또한 덤으로 챙기고.’
장로들은 의로운 인간인 체 하는 당진천을 못마땅해 했다. 당청의 말처럼, 독과 암기에 관한 연구를 좀 더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 사천당가의 이름만 듣고 모두가 공포에 떨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내가해야한다.’
당진천은 곤히 잠든 당소소를 바라봤다. 자신이 더러운 칼을 쥐어야한다. 그 칼로 당청의 세력을 뿌리 뽑고, 썩은 환부를 도려내야한다. 그래야, 비로소 당가는 깨끗해질 수 있을 것이다.
“난 자네의 충의를 이젠 믿지 않네.”
“예.”
“소소를 업신여기고 당가를 어지럽힌 모든 이를 숙청해버릴까, 생각하고 있었네.”
“…….”
“하지만 그래선 안 되겠지. 그래서 난 자네의 가족에게 칼을 들이밀게야. 자네가 잘못하면, 그들은 죽음보다 더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될 걸세. 그게, 내가 자네를 믿게 할 거야.”
당진천은 당웅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당웅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몸을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당진천은 본능적으로 그런 말을 뱉는 자신에게 거부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
진저리가 나는 불쾌한 감정을 가슴에 담는다.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불쾌감이, 손을 더럽히는 과정에서도 일선을 지키게 할 것이다. 당진천은 걸음을 옮기며 당웅을 지나쳤다. 그리고 침실을 빠져나왔다.
사천교류회에서 발생한 혈사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회의가 곧 시작될 것이다. 당진천은 문틀을 넘어 복도에 나왔다.
“아미의 못난 제자가 사천당가의 가주님을 뵙니다.”
병색이 완연한 백서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