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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화 〉팔장[八章], 적의환향[赤衣還鄕] 5 (51/130)



〈 51화 〉팔장[八章], 적의환향[赤衣還鄕] 5

사마문과 운령을 바라본 당소소의 얼굴이 굳었다. 백서희는 그런 당소소의 태도에 의아함을 느꼈다.




‘운류와는 각별한 사이 아니었나?’



사마문과 당소소의 시선이 교차한다. 당소소의 입꼬리가 내려가고, 사마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마문은 그런 그녀를 지나쳐, 백진오에게 다가가 포권을 했다.


“청성파의 운류라고 하오. 운령의 보호자 자격으로 왕래하게 되었소.”

“여기서 실제로  줄은 몰랐는데. 백능상단의 후계자 백진오요.”


“…청성파의 운령이에요.”

“이 귀여운 여도인이 천괴를 상대한 검술의 대가셨군.”

“아, 아니에요.”

운령은 긴장한 태도로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백진오가 웃음을 터뜨리며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사마문은 자상한 손길로 운령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녀의 자리에 앉혔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당소소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렇게 모두 부른 이유는, 사천교류회를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요.”



사마문까지 자리에 앉자, 백진오는 손을 튕기며 사용인을 불렀다. 그러자 부채를 가져다주었던 사내가 천에 감겨 있는 검과 또 다른 상자를 가지고 나타났다. 백진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 위에 올려놓으라는 손짓을 했다.


“이건…?”


“이번에 운령 도인께서 애검을 잃으셨다고 들었소. 그래서 저희가 작게나마 위로를 해드리고자 그럭저럭 괜찮은 검 하나를 공수해왔는데, 한번 보시겠소?”

백진오의 말에 운령은 우물쭈물하며 사마문을 바라봤다. 사마문은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 위의 검에 손을 가져간다.



“내가 대신 봐도 괜찮겠소?”


“기꺼이.”



백진오의 허락을 받은 사마문은, 천을 묶은 매듭을 풀고, 검집을 손에 쥐었다. 투박한 모양의 검집과, 각진 검병에 휘감아 둔 거친 가죽. 사마문은 검손잡이를 역수로 쥐고, 조심스레 검을 뽑았다.

찰칵!


쇠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검이 뽑혀 나온다. 검이 검집에 부딪히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백서희의 눈은 사마문의 손을 주시한다.




‘…예상은 했다지만, 저 정도의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니.’



사마문은 살짝 드러난 검의 속살을 바라본다. 섬찟한 예기가 눈가를 찌른다. 사마문은  검날을 응시하더니, 이내 검을 다시 집어넣으며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백진오는 사마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습니까? 사천당가의 연철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렵게 공수한 장인의 철검입니다.”

“포철공방에서 두드린 검이야. 오빠의 말대로, 당가를 제외하면 사천성 내 최고의 공방에서 만든 검이지. 운령, 사양하지 않아도 돼.”

백진오의 미진한 설명에, 백서희가 설명을 덧붙이며 운령을 바라봤다. 난감해하는 운령에게, 너그러운 웃음을 지어준다. 사마문은 고개를 끄덕이며 운령에게 물었다.

“나름 괜찮은 검 같구나. 어때, 사매. 가져보겠니?”


“네, 서희언니가 주시는 거니까 괜찮아요.”


자상한 체하는 사마문을 보며, 당소소는 당장이라도 구역질이 나올  같았다. 하지만 내색을 해선  됐다. 그녀는 눈을 감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백진오는 그런 당소소를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최근 화검공자와 헤어졌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


백진오의 머릿속 주판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천성의 세 세력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지. 독천이 무림맹에 있어서, 독무후가 최근 수십 년을 강호에서 보이지 않아서 겨우 비슷해 보이는 거야.’



백진오는 손가락을 비비며 운령을 바라봤다.



‘독천은 우리에게 기회를 줬다. 무림맹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겠지. 이제 사천성을 평정하려 들 거야. 하지만, 청성파에게도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 순 없다. 아미파에는 동생이 있어. 요는 중용이야….’

백진오에게 가장 중요한 손님은 당소소였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당가에 손을 내미는 것이 보인다면, 동생이 몸을 담고 있는 아미파와 그와 손을 잡은 청성파는 백능상단에게 극단적인 수를 써올 것이다.

그렇기에 백진오는 운령을 불렀다. 당소소에게 값비싼 선물을 하는 자리를, 사천교류회의 영웅들에게 치하를 하는 자리로 포장했다. 그 결과 당소소는 시화선의 부채를 받았고, 운령은 검을 받았다.



‘태도는 퉁명스러웠지만, 서희의 공이 크군.’


당소소를 설득해 데려온, 운령과 각별한 사이인 백서희가 백진오의 선물을 받게 했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그녀는 투자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백진오의 손가락은 멈췄다. 그리고, 백서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백서희는 길게 숨을 뱉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럼  일어나도 되겠지? 영 불편한 사람이 있어서.”


“그러려무나. 수고했다.”



백서희가 일어서자, 당소소도 따라서 일어났다. 백진오는 시선을 돌려 당소소를 바라본다.




“소저, 어디로 가시오?”

“저도  불편한 사람이 있어서….”


“아차, 내 미처 기억하지 못했네. 화검공자와 독화의 소문이 요즘 화젯거리였었지.”

“무슨 소문이죠?”




당소소가 정색을 하며 백진오에게 물었다. 백진오는 턱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저 붙어 다니던 화검공자와 독화가 요새 좀 소원하다는 소문이네.”


“그렇군요.”


“하핫. 소문이 참 짓궂군.”



사마문을 바라보며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당소소. 사마문은 빙긋 웃으며 딴청을 피웠다. 백진오는 불청객 사마문을 바라보며 아쉬운 눈빛을 했다.

‘아쉽군. 운령, 당소소 모두 어리숙해서 좀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었을 터인데. 예정에도 없는 화검공자가 등장할 줄이야. 아니, 변수를 예상하지 못한 내 불찰이지.’


“사천성의 미래들이  자리에 어렵게 모였는데,  아쉽네. 하지만, 소저가  그렇다면야 어쩔  없지. 춘부장께는, 차후에 찾아가겠다고 전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고.”

“그럼 이만 실례할게요. 선물은 감사합니다. 아버지껜 백능상단에서 뵙고 싶어 한다고 말씀드릴게요.”


“소소.”

금으로 장식된 상자를 꼭 껴안고 등을 돌리려던 당소소를, 백서희가 불러세운다. 백서희는 탁자 위에 놓인 상자를 집어 당소소가 쥔 상자 위에 올려둔다.



“그러고 다니지 말고, 이거 가져가. 내가 안 쓰는 노리개나 비싼 장신구들이야.”


“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백서희를 바라보는 당소소. 백서희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팔을 툭툭 친다.


“힘들면 이상한 방식으로 표현하지 말고, 앞으론  찾아와.”


“무슨 이상한 소릴…?”


“날 구해준 은혜를 아직  갚았잖아? 언제든지 백능상단으로 놀러와도 돼.”


“음, 무슨 대가를 바라고 널 구한 건 아닌데….”



백서희는 애잔한 눈빛으로 당소소를 바라보다, 이내 자리를 뜬다. 당소소는 인상을  채 고개를 갸웃거린다.


‘뭔가 학귀에게 습격당하는 것을 막아줘서 잘 대해주는거 같긴 한데…. 묘하게 기분이 나쁘단 말이야?’


“그럼, 나도 가봐야겠군.”

사마문은 운령의 허리에 칼을 채워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당소소를 바라본다. 당소소는 고개를 슬쩍 옆으로 가져가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들을 바라보던 백진오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서희도 갔고 당 소저도 갔으니,  이야기하는 것도 우스운 광경이겠지. 사천교류회를 지켜주시느라, 수고하셨네. 앞으로 종종 봄세.”



당소소는 백진오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사마문도 빙긋 웃으며 운령의 등을 떠밀었다.



“먼저 가서 당 소저와 이야기라도 나누고 있거라.”


“네? 아, 네. 사형도 얼른 오셔야 해요.”

운령이 사마문을 돌아보며 당소소가 사라진 방향 쪽으로 걸어 나갔다. 사마문은 백진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의도가 불순했지만, 딱히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니 봐주지. 나름 괜찮은 선물들을 쥐여 줬고.”

“무슨 말이시오?”

사마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화검공자 운류는 참을  있네. 하지만 난 못 참아. 지금도 널 혼내주고 싶어.”


“……?”


“하지만 난 화검공자니까 한번 봐주는 거야. 무슨 말인지 궁금하면 한번 다시 두 사람을 불러봐도 돼.”

사마문은 그렇게 말하며 뒤돌아 사라졌다. 백진오는 고개를 비틀어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대놓고 실력을 숨기고 있다는 티는 내왔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온다라. 당소소와는 그냥 잠깐 사랑싸움을 한 건가? 지금 나타난 것도 백능상단의 사업을 방해하기 위해서 고의로?’

백진오의 멈췄던 엄지와 검지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의 주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당소소는 상자 두 개를 끌어안고 청검각의 강당으로 향했다.



“언니이!”


그녀를 부르는 운령의 목소리에 당소소는 뒤를 돌아본다. 당소소의 품 안을 운령이 비집고 들어왔다.


“왜 먼저 가요? 같이 가지 않고. 논검을 하던 사형도 왔는데. 좀 더 이야기를 나누시지.”

“음, 내가 좀 바빠서. 그나저나, 천괴를 상대했었는데 몸은  괜찮아?”


당소소의 상냥한 질문에, 운령은 활짝 웃으며 수많은 말을 떠들었다.




“저는 항상 튼튼하죠! 그런데 운류 사형한테도 물어봤더니, 정말 무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더라고요. 전 그런 것도 모르고…. 정말로, 그 시녀분의 이야기처럼 독천의 따님이라 이론은 정말 뛰어나신 것 같아요. 청운적하검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것도 그렇고.”

“하하…. 알겠으니 조금 떨어져.”




가까이에서 맡는 다른 여인의 살 냄새에, 당소소는 상당히 난감했다. 남성으로서의 이성이 그녀의 감정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얼굴을 붉히는 당소소가 운령을 떼어내기 위해 뒷걸음질 쳤지만, 운령은 그럴수록 더욱 엉겨왔다.



‘어휴, 왜 이렇게  달라붙는 거야? 부끄럽게….’

“언니, 진짜로 오해였네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서 그래요.”

“아니야. 괜찮으니까, 좀 떨어질 수 있겠니?”

“운령, 너무 귀찮게 하지 말거라.”



사마문이 운령에게 핀잔을 주며 나타났다. 그의 목소리에 당소소는 정색을 하며 사마문을 바라봤다. 사마문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운령의 옷의 뒷부분을 잡아끌었다. 운령은 아쉬운 표정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너, 이러면 진짜 훅 간다고 했지?”

당소소는 이를 부드득 갈며 사마문에게 말했다. 사마문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운령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허. 운령의 앞인데?”

“응? 왜?”


“…….”



눈을 끔뻑거리는 운령을 바라보던 당소소는, 한숨을 쉬며 사마문에게 말했다.


“후우…. 운령은 보내지?”

“그렇다는구나. 사매, 자리를 비켜줄 수 있겠니?”


사마문의 요청에, 운령은 눈을 아래로 내리며 당소소에게 말했다.




“네…. 언니, 정말 죄송했어요. 다음에도 꼭 찾아갈게요. 다음엔 저도 무공토론에 끼워주세요!”

“…그래. 조심히 가렴.”


운령이 사라지자, 사마문은 낄낄 웃으며 말했다.



“또 새로운 면이 있군. 귀여운 거짓말을  줄이야.”


“넌  귀여운 거짓말 하고 있잖아?”


“난 실제로 지금은 화검공자아닌가?”

거짓말이라는 단어에 뜨끔한 당소소는, 적의를 품고 사마문을 노려본다. 사마문은 어깨를 으쓱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얼굴에 거만한 웃음을 그리며 말했다.


“너무 무방비해. 곧  것이 되어야 할 여인이. 가짜 무형지독으로 그런 무모한 짓을 하면 쓰나? 귀한 몸에 상처가 났잖아.”


“진짜 그 아가리 조심해라. 주인 잘못 만난 하얀 강냉이 진짜 다 털어줄 수 있어.”

“큭큭! 내 실체를 알고서도 그런 소리를  수 있는  너뿐일 거야.”


“그래서  온 거냐고.”

“내 목적은 알고 있지 않나?”

당소소는 상자를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리고, 혐오를 담아 말했다.

“네가 죽기 전까지는, 안 좋아할 거라고 말했지? 더러운 마교 새끼야.”

“그건 불가능하잖나? 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납치해버릴 지도 모르잖아?”


당소소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뇌를 후벼 파는 것 같았다. 당소소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낸다.



‘사마문은 작중에서도 집착이 꽤나 심했어. 주인공의 여자에게 껄덕대다 한번 패하고, 절치부심한  그 여자를 죽였던 것을 보면.’


애매한 대응을 한다면, 그는 계속해서 들러붙을 것이다. 당소소는 쌍검무쌍의 기억을 뒤적거린다. 그를 떼어낼 수 있는 정보 자체는 많았다.


산을 가르는 검, 하늘을 쪼개는 태고의 도끼. 수많은 신병이기의 창고라던가, 하늘을 농락하던 예언자의 무공서재같은 것들. 그것도 아니라면 마교의 여러 반란이나 그가 잃었던 여동생, 사마연의 위치까지.



‘하지만 그런 걸 말한다면, 이야기는 내가 알  없는 곳으로 흘러가게 될 거야. 희극이, 비극이 될 수도 있어.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가야 해.’



당소소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타개책에 혀로 볼안을 훑었다. 그리고 사마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발언을 되돌아봤다.




‘잠깐,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했지…?’

“너, 정말 다른 대안을 알려주면 따를 거야?”

“불가능한 게 아니라면? 나와 평생을 함께해야  짝을 찾았으니, 그에 합당한 말은 들어 줘야지.”


“이거 진짜 웬만큼 미친새끼가 아니네….”




당소소는 한걸음 멀어지며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뱉었다. 그런 당소소의 태도에, 사마문은 마냥 웃으며 말해보라는 몸짓을 할 뿐이었다.

‘혼이 담긴 언변!’

당소소는 하연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숨을 골랐다. 자각몽에서 되새긴 자신의 목적을 떠올렸다. 그리고, 천괴와 학귀에게 무형지독을 휘두를 당시의 감각을 되살린다. 눈빛은 아련하게, 입술은 잘게 떤다. 가련한 말을 뱉어야 한다는 저항감을, 온 힘을 다해 누르고 입을 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봐. 그럼,  너에게 가줄 수도 있어.”

“너무 막연한데. 망상에 가득 찬 소녀같은 성격은 아니잖나? 무슨 어린 애들이나  법한 소릴….”

“…….”



당소소의 눈썹이 조금 떨려왔다. 당소소는 황급히 얼굴을 굳히며 생각했다.



‘씨발아, 내가  쪽팔려….’

“아수라신을 섬기고 모든 힘의 정점에 서서 하늘을 엿먹인다는 천마가, 그거 하나 못해?”

“…호오.”

“네가 천마가 될 거라면, 슬픔을 가져오려는 하늘을 엿먹여보라고.”



팅!

당소소의 말이 끝나자마자, 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녹색 옷을 입은 무인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당소소의 주위에 섰다.



“녹풍대입니다. 소리가 차단되어 곧바로 달려왔습니다. 아가씨, 움직이지 마시길.”


녹풍대원들이 사마문에게 암기를 겨누자, 사마문은 손가락을 두 번 튕기며 말했다.


“일 각이라. 과연 당가의 정예라 불릴 만하군.”

“운류, 무슨 목적이지?”


녹풍대원의 위압적인 목소리에, 사마문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혼수로 무엇을 가져가야 하나 물어봤습니다.”

“뭐?”


“아는 사람 이야깁니다.”




사마문은 몸을 돌려 사라졌다. 긴장이 풀린 당소소는, 휘청거리며 옆에 서 있는 녹풍대에게 몸을 기댔다.


*



녹풍대의 호위를 받으며, 당소소는 당진천에게 안내받았다. 그의 곁에는 하연과 진명이 있었다. 당진천은 녹풍대에게 물었다.

“누구였지?”

“화검공자 운류였습니다. 아가씨께 아는 사람의 혼수에 관해 물어봤다고….”

“사실이냐?”


매섭게 쏘아붙이는 당진천. 당소소는 그 기세에 놀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당진천은 굳은 표정을 풀며 당소소에게 다가가 그녀가 든 상자를 빼앗아 들었다.

얼마나 상자를 세게 움켜쥐고 있었는지 손톱의 앞부분이 깨져있었고, 팔은 제멋대로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럼 몸은 왜 그렇게 긴장했느냐.”

“그게, 그게….”

“무리하지 말라고 불과 한 시진 전에 말한  같은데, 그 새를 못 참고  놈팽이와 독대를 했느냐?”


“…….”

당진천의 꾸짖음에 당소소는 고개를 숙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당진천은 그 안쓰러운 모습에 혀를 차며 당소소를 타일렀다.



“소소야.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그는 조심해야 한다. 힘을 숨기고 있지만 자신의 힘에 취해있고, 너에 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단다. 그런 인물들은 대게 위험한 인물이란다.”

“네, 알고 있어요….”

당진천은 의기소침 해있는 당소소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하연에게 상자를 쥐여주며 말했다.


“곧 출발할 테니, 소소의 몸을 추스르고 준비하게.”


“예, 가주님.”



하연과 진명이 당소소를 데리고 물러났다. 당진천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고생한 딸아이를 꾸짖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당진천은 아직도 시체를 수습 중인 청검각의 장원을 향해 복잡한 시선을 던졌다.


‘이빨을 보이는 적의 몸에 칼을 꽂아 많은 것을 손에 넣었다.’



떠나지 말라 울부짖는 미망인의 통곡이 당진천의 귀에 들려왔다.

‘딸아이의 활약으로 명예라는 비단옷을 지어 입고 집으로 돌아갈  있게 되었다.’

다리를 잃어 목발에 기댄 채 청검각에서 멀어지고 있는 무인  명이 당진천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피로 물든 비단옷은 정말로 입기 싫은 것이구나.’

그 비단옷의 겉엔 살고자 몸부림치던 적의 피가 묻어있었고, 평생을 핍박받았던 딸아이의 상처에서 배어 나온 피가 옷감 안쪽에 묻어있었다.

당진천은 장포를 휘감으며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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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독심[一片毒心] - 팔장[八章], 적의환향[赤衣還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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