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3화 〉구장[九章], 만화백절[晩花百折] 2 (53/130)



〈 53화 〉구장[九章], 만화백절[晩花百折] 2

당진천은 장막을 걷어 창밖을 바라본다. 하루가 지난 바깥엔, 중천으로 솟은 해가 땅을 내리쬐고 있었다. 당소소의 뺨을 밝히는 햇볕. 능숙하게 실뜨기를 하고 있던 당소소는 자신의 뺨을 건드리는 빛에 눈을 살짝 찌푸린다. 그런 당소소의 모습에, 당진천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뜨기는 이제 능숙하게 하는구나.”


“나름 열심히 했어요.”

“그럼, 다음단계로 가야겠지.”


당진천의 말에,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걸어둔 실을 풀어 품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당진천의 손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당진천은 당소소에게 빈 손을 보여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그의 손에 쥐어진 철전 한 닢. 당소소는 그 철전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당진천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돈다발로 싸대기를 때리는 건가…?”

“백능상단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린 사천당가란다. 실뜨기로 집중력과 손재주를 조금 다듬었으니, 철전을 굴리면서  안에서 무언가를 다루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지.”


“앗.”

당소소가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히자, 당진천은 당소소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철전을 손가락 위에 올렸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넘나드는 철전. 처음엔 느릿하던 철전의 속도는, 어느 순간 눈으로 쫓기가 버거울 정도로 빨라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철전은 사라졌다.


“철전이…?”


“산류수[散流手]. 암기를 다루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수법[手法]이란다. 이 작은 손짓이 하늘을 메우는 암기를 던지게  수도 있고, 어둠에 숨은 자의 혼마저 꿰뚫는 암기를 던지게 하기도 하지.”


당진천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펼쳐 당소소에게 보였다. 당진천의 손바닥 위에, 철전이 올려져 있었다. 당소소는 그 철전을 받으며 자신의 손등에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흘려내며 사이사이로 굴리기 시작했다.


짤그랑!


하지만 철전은 손가락 위에서 구르는 대신, 손을 빠져나가 마차의 바닥을 나뒹굴었다. 당소소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그녀의 손은 철전을 다시 쥐었다. 당진천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공심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초식을 가진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몸을 강하게 하는 외공을 알려주는 것도 아닌 것이 좀 섭섭하지 않느냐?”

“아니라고 하면 거짓이겠죠.”


당소소는 그렇게 답하며 다시 철전을 굴리기 시작했다. 철전은 다시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녀는 다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하지만 전 제 주제를 잘 알고 있어요. 전 다른 후기지수들처럼 뛰어난 무재나 번뜩이는 지혜도 없죠. 그저, 느리게나마 쫓아가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것도.”

“아니란다.”



당진천은 바깥을 바라봤다. 창을 넘어 넘실거리던 햇빛이 숲에 가려 옅어졌다. 당진천이 손을 접었다 펴자, 그의 손에는 철침  자루가 쥐여져 있었다.



“백일창, 천일도, 만일검.  말을 알고 있느냐?”

“네, 어느 정도는….”



당소소는 쌍검무쌍의 주인공이 기연을 얻을 당시를 떠올렸다. 쌍검술을 쓰던 짓궂은 기연의 주인은,  무림의 격언을 언급하며 내 무공은 이만일이 걸릴 것이니 서둘러 포기하라는 말을 먼저 했었다. 그녀는 그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각각의 무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걸리는 시간이라고 들었어요. 창은 다루기 쉽고, 도검은 다루기 어렵다는 말이라는 뜻이라는 것도.”

“…올바른 해석이구나. 그러나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그 격언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단다. 수많은 이치가 담긴 검은,  자체로 만병지왕[萬兵之王]이라고.”

“창이 가장 길이도 길고, 숙달되기 쉬우니 그것이 만병지왕이 아닌가요?”




당소소의 물음에 당진천은 웃으며 부정했다.



“너에겐 올바른 해석이지만, 무림인들은 좀 다르게 해석하지. 무림인들은 인간의 몸으로 불가능에 이르는 자들이란다. 검으로 창보다 더 긴 거리에서 공격을 할 수도, 도보다  거친 참격을 휘두를 수도 있지.”


당진천은 그렇게 말하며 철침에 슬쩍 내공을 불어 넣었다. 검기가 서리며 뾰족하기만 하던 철침에 예기가 서렸다.




“검은 난해하지만, 현묘하다. 그렇기에 많은 도가의 문파들이 검을 주력으로 삼고 도를 탐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게야.”


“그렇군요….”


“애초에 무림인은 칼을 휘두르는 업에 인생을 건 자들, 만일이라는 시간은 그들에게 있어선 꽤나 적절한 시간이야. 그렇게 된다면 휘두르고, 찌르고, 꺾고, 베는 압도적인 범용성의 검이 진실로  가지 무기들의 왕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만,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당소소의 반문에 당진천은 미소를 짓는다.

“무림인들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자들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들은 나정도 되는 사람들에게나 통용되는 말이지. 결국 일정한 경지를 넘지 못한다면 이치에 지배될 수밖에 없다는 게야.”

“그럼….”


“백일만에 숙련된 창은, 구천구백일동안 검을 이길 수 있어. 그리고 숙련된 만일의 창이, 겨우 완성된 만일의 검과 비교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까?”

“잘 모르겠어요.”

“그거란다. 아무도 그 결과를  수 없어.”


당진천은 그렇게 말하며 검기가 서린 철침을 창밖으로 던졌다. 거대한 나무의 가지가 구멍이 뚫리며 떨어진다. 당진천은 당소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武]란 무엇일까, 소소야.”

“그것도 잘….”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단다. 태초의 사람이 맨 몸으로 호랑이를 상대할 수 있었느냐?”

“상대하지 못했겠죠.”


당소소의 대답. 당진천은 고개를 끄덕인다.


“가장 기초적인 무란, 그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단다. 상대할 수 없는 적에게 저항할 수 있는 수단. 그곳에서부터 사람의 손엔 무기가 쥐여지고,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다루는 수단이 하나 둘 발견되는 게지. 그것이 하나의 목표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무의 흐름이란다.”


“그 이야기와 제가 후기지수를 쫓아갈 수 있다는 이유랑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사람이 야수를 이기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행동이 무엇일까?”



당진천은 어려워하는 당소소에게 무언가 던지는 시늉을 하며 단서를 주었다. 당소소는 그의 행동을 보며 미심쩍은 말투로 말했다.


“돌팔매질?”


“그래. 사람은 야수를 이기기 위해 바닥에 떨어진 돌을 주워서 던졌다. 이 투척이라는 행위는, 단 하루에도 숙달될 수 있는 행동이야. 깊이 있게 들어간다면 훨씬 걸린다만.”

“아…!”

“넌 그들의 삼십년을, 하루에 쫓아갈 수 있다. 물론 각 문파에서 촉망받는 후기지수들이라 순수하게 삼십년은 아닐 게야. 그래도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가까운 출발점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지. 부족한 범용성과 내공은, 잔기술과 암기의 성능으로 채우면 된다. 당문의 연철전은 그것을 위해 존재해.”

당진천은 재차 던지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수많은 무의 흐름은, 이  행동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것이 당문의 내공심법인 만류귀원신공[萬流歸元神功]의 이치야. 당문의 모든 무공의 기저에 깔린 가르침이기도 하단다.”


“그럼…. 그럼, 둔재인 저도…?”



당소소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당진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섣불리 포기하지 말거라. 넌 내 딸이잖으냐.”


“…….”


“강호엔 수많은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지. 마치 신화속의 괴물들 마냥, 삼십년의 세월을 단 하루 만에 단축시키는 놈들도 있는가 하면 백일의 시간동안 수천 년의 세월을 부정하고 더 뛰어난 무술을 창조해내는 자들도 있어.”

“알고 있어요.”



당소소는 쌍검무쌍의 주역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백서희만 해도 성인 무림인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내공을 지니고 있었고, 운령은 절정고수조차 감탄할 정도의 무재가 있었다. 당진천은 어두운 그늘을 만들며 웃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들을 따라가면 돼. 이것이 당문의 가풍인 실용이란다. 생은 정할 수 없지만, 삶은 정할 수 있지 않느냐?”




푸륵!

말의 콧소리가 들리며 마차가 멈췄다. 당진천은 창문을 바라봤다. 사천당가의 대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네 생각대로 네가 정말 둔재일 수도 있겠지. 후기지수들이 너무나도 뛰어나서 낙오가 될 수도, 결국 그들을 쫓지 못할 수도 있겠지.”

당진천은 꼬았던 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독천의 딸은, 사천당가는 그들을 쫓아갈  있단다.”


당진천은 그렇게 말하며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차에서 내려 당소소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소소는 당진천을 바라봤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



“…아버지의 딸은, 사천당가는 가능하다고 하셔놓고.  무공을  알려주시는 거에요?”

당소소는 가주실의 긴 의자에 앉아 따분한 표정으로 철전을 굴리고 있었다. 실뜨기로 단련된 손가락 때문인지, 철전은 처음보다 부드럽게 손가락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당진천은 난감한 표정으로 서류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아직 몸이  낫질 않았잖느냐. 그리고 아직 철전은 완벽하게 굴리지 못하는  같은데?”


“와, 완벽한데…!”

짤그랑!


당소소가 철전을 좀 더 빠르게 굴리자, 철전은 당소소의 손을 벗어나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당소소는 울상이 되어 바닥의 철전을 주웠다. 당진천은 잠시 서류에서 손을 놓고, 턱을 괴며 말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거라.”

“하지만….”


당소소는 얼굴을 들어 당진천을 바라봤다. 비록 당진천의 무론을 들었다곤 해도, 자신이 따라가야 할 인물들 또한 당진천이 언급한 삼십년을 일년으로 단축하는 것이 기본인 괴물들이었다. 가야할 길도 멀었고, 자신의 다리는 너무나도 허약했다.



“왜 그렇게 조급해하느냐? 이 아빠는 어디 떠나질 않는데. 조금  넉넉하게 마음을 먹고 몸을 추슬러라.”


“…….”




당소소는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며 이 년 뒤, 정천무관으로 가겠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진천의 입에서 허락이 나오기란 만무했다. 아무런 무공도 쌓지 못했고, 심지어 허약하기까지 한 몸이었으니까. 당소소는 하릴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나을 테니, 그땐 무공을 알려주셔야 해요.”


“그럼 무공이 아니라 영약도 떠먹여줄 테니, 제발 건강하게만 있어다오.”

“네…. 업무를 방해해서 죄송해요.”

당진천은 기가 죽어있는 당소소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당소소가 그 퉁명스럽던 딸이 맞나 싶은 생각에, 푸근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단다. 언제든 찾아오거라.”

“…아니에요. 저도 나름 할 일이 있어서. 그럼, 쉬엄쉬엄하세요.”



당진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소소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당소소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당진천은 입을 열었다.


“하연.”


“네.”




당진천의 말에, 병풍 뒤에 있던 하연이 나와 당진천에게 고개를 숙였다. 당진천은 탁자를 두드리며 하연에게 물었다.

“스승님께선 언제 오신다고 하더냐?”

“무후께선 이제 황궁의 일을 마치고 잠시 독향[毒鄕]에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헌데, 갑작스레 무후를 찾으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소소의 상태 때문이다.”

“아가씨의 상태가 어떠한지요…?”



근심이 얽힌 당진천의 말에, 하연은 걱정스런 태도로 그에게 물었다. 당진천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소소는 복용한 칠혼독의 후유증으로 단전과 혈맥을 다쳤다. 정상적인 방도로는 내공을 쌓을 수 없어.”


“……!”


“평범하게 산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무술을 단련한다거나 내공을 수련하는데엔 큰 무리가 있어. 제대로 무공을 쌓다간, 그대로 혈맥이 찢겨 죽을 거야.”



당진천은 그렇게 말하며 멀리서 들려왔던 당소소와 정유의 대화를 떠올린다.


정천무관으로 가고자 한다는 말. 당진천은 그녀가 무공을 단련한다는 말에, 그저 몸이나 건강하게 하라는 뜻에서 간단한 호신술이나 알려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호신술이라고 알려준 무공으로 자신조차 애먹었던 천괴와 학귀를 막아섰다. 그리고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시대의 모든 천재들이 한 곳에 모이는 정천무관으로 향하려고 한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당진천은 큰 소리로 경을 칠지 아니면 현실을 알려줄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네 꿈이라면….’

당진천은 잠시 내려놨던 서류를 다시 움켜쥐었다. 그 서류의 상단엔, 제독전주[制毒殿主] 독무후[毒武后]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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