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4화 〉구장[九章], 만화백절[晩花百折] 3 (54/130)



〈 54화 〉구장[九章], 만화백절[晩花百折] 3

당소소는 가주실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철전을 바라봤다.




‘그런 말을 들었어도, 많은  바라지 않는데.’



당소소는 철전을 소매에 넣으며 돌계단을 내려갔다. 자신의 재능은 자신이 가장  알고 있었다. 평생 공부와 담을 쌓고 일용직을 전전하던 사람이었고, 죽어선 재능조차 없는 망나니 아가씨였기에.



“…왜 이렇게 조용해?”


당소소는 주변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주전은 내각의 중심에 있는 곳이었다. 해가 떠있을 동안은, 조용할 나날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주전 내부와 장원을 왁자하게 메우던 소리들과 사람들이 사라졌다.

연철전의 쇠를 두드리는 소리와 정신없이 오가는 하인들의 조잘거리는 소리가 없었다. 가주전을 바쁘게 오가며 새로 개발한 독의 성분과 약재들을 보고하던 제독전의 사람들도 없었다. 당소소는 고개를 돌려 가주전의 정문에 놓아둔 해시계를 바라본다.


‘방금 오시[午時:11시~13시]가 되었어. 그럼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을 텐데.’




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가주전의 정문을 나섰다. 한창 일거리가 쏟아질 시각,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야할 내각의 통로들이 텅 비어있었다. 수상함을 느낀 당소소는 내각의 통로를 걸었다.


‘학사님도 오늘은 안 오시겠다, 한번 둘러볼까.’



당소소는 내각의 곳곳을 쏘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가주전과 인접해있는 녹풍대의 사무실, 녹풍각[綠風閣]. 담벼락 너머로 소박한 건물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당소소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녹풍각의 안쪽을 관찰했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군.’

그녀의 시선에 들어오는 두 명의 녹풍대 무인. 그들은 짧게 담소를 나누다가, 무거운 짐을 들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녹풍대는 원체 외부의 일로 당가를 비우는 일이 잦은 곳이기에, 당소소는 다른 곳을 관찰하기 위해 고개를 내려 통로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가씨.”


“흐익!”

그녀를 바라보며 용건을 묻는 녹풍대의 무인이 당소소의 앞에 서있었다. 당소소는 화들짝 놀라며 이상한 괴성을 질렀다. 녹풍대원은 그런 당소소의 모습에 튀어나오려던 웃음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두 달 전과는  다른 사람 같군.’




그는 헛기침을 하며 당소소의 괴성을 못들은 체 했다. 당소소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씨발 깜짝이야.’

“기, 기척이라도  내시지….”


“죄송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로 오셨는지?”

“가문의 사람들이 한창 북적일 시간인데도 보이질 않아서…. 새참시간인가요?”

“새참…. 하하.”




녹풍대원은 당소소의 말을 듣고 쓰게 웃었다. 당가가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가문의 일에 깊게 관여하지 않던 당소소조차 느끼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녹풍대원은 이것을 사실대로 말해야하나, 깊은 고민에 잠겼다.




‘하인들은 모두 총관실에 불러놓고 죄를 추궁하고 있다. 제독전의 핵심인원들과 당청의 세력으로 추정되는 자들은 녹풍각의 지하에 있는 감옥에 구류해놨고….’



녹풍대원은 고개를 저으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접었다.

‘알아야 했다면, 가주님께서 먼저 알려주셨겠지.’

“가주님께서 시키신  덕에, 내외적으로 꽤나 바쁜 모양입니다. 그래서 인원이 없어 보이는 것이겠죠. 더 여쭤볼 것은 없으십니까?”

“음, 그거 말곤 딱히 없네요. 앗, 잠깐….”

녹풍대원의 고개를 저으며 돌아서려는 당소소의 시선에, 골목을 두리번거리는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당소소는  소녀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여자아이는 누군가요?”

“예? 여자아이…?”



녹풍대원이 고개를 돌리자  소녀는 골목길로 쏙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소녀를 발견하지 못한 녹풍대원은 다시 당소소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당가의 내부는 꽤나 바빠서, 외각의 사람들이 내각으로 들어오거나 자신의 아이를 견학시킬 만큼 만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아마 잘못 보셨을 겁니다.”

“…그런가. 그럼, 저쪽엔 뭐가 있죠?”

“저쪽이라면…, 제독전으로 가는 길이군요.”

“안내감사해요. 그럼….”

당소소는 꾸벅 인사를 하며 녹풍대원을 지나쳤다. 은근히 느껴지는 땀냄새. 당소소는 무거운 짐을 들던 두 녹풍대원과 자신의 앞에 서있는 녹풍대원을 겹쳐본다. 그리고, 고된 일에 지쳤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쉴 땐 쉬는 게 좋아요.”

“예?”


“일하다 다치면 서럽거든요.”




 말을 하며 당소소는 총총거리며 멀어졌다. 녹풍대원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결국 참지 못한 웃음 한 줌을 얼굴에 담았다.


*


당소소는 고개를 들어 정문에 걸린 현판을 확인했다. 날카로운 서체로 새겨진 제독전이라는 글자가 문 위에 걸려있었다. 약간 열려있는 문. 당소소는 문을 슬쩍 밀어본다. 낡은 경첩소리가 들리며 문짝은 쉽게 젖혀졌다.

그녀는 문을 밀던 손을 떼고 누가 있는지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아까 봤었던, 소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죄다 살펴봤었는데 없었어. 있다면 여기일 것 같은데.’


당소소는 침을 삼키고 제독전의 안으로 들어왔다. 녹풍각과 비교해서 꽤나 화려하고 큼직한 건물들이 여러 채가 있었다. 안뜰은 가주실의 장원에 비견될 만큼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잘 깎은 돌들은 산책로를 평탄하게 다져놓고 있었다.

당소소는 그 안을 걸으며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당소소의 기억인가.’

그녀는 안뜰의 연못을 바라봤다.   연못에는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아져있었다.  관리 되었는지, 맑은 물가엔 잉어들이 몸을 놀리고 있었다. 당소소는 그 잉어를 바라보며, 흠칫 돋는 소름에 자신도 모르게 오른쪽 팔을 움켜쥐었다.

“뭐지…?”



감정이 날을 세우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당소소는 팔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며 억지로 감정을 눌렀다. 하지만 날이 선 감정은 통제하려는 이성을 마구 찔러댔다.




‘이건, 위험해.’

어두운 방안에서 홀로 있을 때의 그 감정이 억누르고 있는 이성의 손아귀를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요즘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당소소는 숨을 몰아쉬며 필사적으로 발작을 억눌렀다. 지금 감정이 폭발한다면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하연은 어젯밤부터 따로 일을 맡아서 잠시 자리를 비웠고, 진명은 사천교류회에서 돌아온 전후로 하루 종일 단혼사에게 붙잡혀있었다.


당소소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부여잡은 옷은 구겨졌고, 숨은 점점 거칠어졌다. 점점 흐릿해지는 시선에 한 흑의의 노인이 나타났다. 연못의 다리에 올라가있던 노인은, 혀를 차며 잉어들에게 먹이를 뿌리고 있었다.




“쯧, 가끔은 시종이 불쌍하단 것도 알아야  텐데…. 늙어서 성질만 고약해져가지곤.”


“저, 저기….”

가냘프게 들리는 당소소의 목소리가 노인에게 닿았다. 노인은 고개를 돌려 주저앉아있는 당소소를 바라봤다. 잠시 미간을 좁히며 당소소의 상태를 확인하던 노인은, 손에 쥐고 있던 잉어의 먹이자루를 놓고 당소소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신가?”


“잠시만, 잠시만 옆에 서계셔주세요….”



노인이 다가오자 당소소는 초췌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마음이 점점 가라앉았다. 겨우 감정을 진정시킨 당소소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인은 그런 당소소에게 물었다.




“괜찮은가?”

“네, 이제 좀 괜찮네요. 감사합니다.”


“헌데, 어여쁜 아가씨가 이곳까진 무슨 일인고?”


당소소는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어여쁘다는 말에 잠시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고개를 거세게 저으며 부끄럽다는 생각을 털어내고 답했다.


“전 사천당가주의 여식, 당소소라고해요.”

“아, 자네가 그 소녀였나.”


“소녀라뇨?”

노인은 당소소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뜯어봤다. 그리고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수염을 쓸어내렸다.

“마치 친족마냥 똑같이 생겼군.”


“무슨 말씀이신지…?”

“아닐세. 참, 내 소개를 잊었군. 난 자네의 아버지가 도움을 요청해 잠시 제독전에 머무르게 된 황철일세.”


“황철 대협이셨군요. 아버지껜 어떤 요청을 받으셨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당소소의 말에 수염을 쓸던 황철의 손은 멈춘다. 그는 그 손으로 뒷짐을 지며 당소소의 물음에 답했다.

“별  아니네. 제독전의 불순분자들을 소탕하라는 내용이지.”


“불순분자라면….”

“당청과 당혁의 반란에 동조한 이들. 어찌 보면 자네에겐 원수라고도 할 수 있겠군.”



황철의 말에 당소소는 팔을 움켜쥔 손에 더 힘을 줬다. 머릿속에 늘어져있던 울퉁불퉁한 이유들의 요철이 맞물렸다.

당진천의 책상에 수많은 서류뭉치가 쌓여있던 이유. 한창 바쁠 시간에 사람들이 없던 이유. 한 명이 보여도 신기했던 녹풍대원들이 녹풍각에  이상 보였던 이유. 당가의 중심지 중 하나인 제독전이 텅 비어있는 이유.


황철은 말을 잊은 당소소를 보며 말했다.

“더러워진 마당은 빗자루를 들어서 쓸어야하는 법이지. 직접 손으로 치우는 방도도 있긴 하다만, 비효율적이지 않나?”


“…그들은 죽는 건가요?”


“당연한 이야기를 묻는군. 자네가 물어야 할  죽느냐 사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를 물어봐야지. 그래야 당가의 규수라고 할  있지 않겠나?”

황철은 낄낄 웃으며 당소소의 안색을 확인했다. 숨길  없는 비애가 그녀의 얼굴 전체에 묻어있었다. 그 얼굴을 보며, 황철은 미소를 지우고 뒷짐을 졌던 손을 꽉 쥐었다.




‘그동안 주인에게 들었던 말로는 작은 주인의 딸이 개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들었는데,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그럼, 그들은 어떻게 죽나요?”

슬픈 구색의 물음에 황철은 연못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내가 봐왔던 당가주의 성향이면 깔끔하게 덜 고통스러운 독을 먹여 죽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군.  독하게 마음먹고 있는 것 같던데, 새로운 독과 암기의 실험체로 활용할 수도 있겠어. 옛날의 당가는 그랬으니까.”

“독과 암기의 실험체….”

당소소의 볼살이 움찔거린다. 이야기를 바꾼다는 생각으로 길에 오른 그녀는, 드디어 처음으로 뒤를 돌아봤다. 자신의 선택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 당청과 당혁의 하수인들. 그들은 당소소의 입장에선 악인이었다. 이야기에 있어서도, 악인에 가까운 인물들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당청의 어쩔 수 없는 협박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은 아닌지, 만약 그가 죽는다면 이야기는 또 어떻게 될 것인지. 그들이 죽는다면 그와 관련된 인물들은 또 어떤 슬픔을 가지게  것인지. 수많은 고뇌가 그녀의 머릿속에 켜켜이 쌓여갔다.



‘허락 없이 이야기에 끼게  불순물이 오히려 모든 이를 슬프게 하는 것은 아닐까?’

황철은 어두워진 당소소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고민이 많은 것 같군.”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못을 바라보던 황철의 시선에 그가 놓고 간 모이자루를  소녀의 모습이 걸렸다. 소녀는 한 손가락을 세워 자신의 입술에 올리며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황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소소에게 말했다.




“자넨 이만 가시게. 몸이 안 좋은 것 같으니, 남아있는 제독전의 사람에게 말해 약  첩을 지어서 보내겠네.”


“죽이지 않으려면…. 그들을 죽이지 않으려면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하죠?”



황철은 당소소의 물음에 의문을 던졌다.




“왜 죽이려고 하지 않는 거지? 거부감 때문인가? 그들을 살려뒀다간 무슨 변고를 당할지 몰라.  번 시도했던 모반,  시도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 상식적으로 생각해야지. 그들은 당가의 해가 되는 존재야.”


“저도 그들이 죄를 지었다는 건 알고 있어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그렇다면 왜?”

“하지만 그 죽음이 저라는 별것 아닌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그렇다면…,  몫은 덜어주고 싶어서.”



황철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자신이 들었던 당소소의 모습과는 천양지차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소심하고 정이 깊으며, 이상하리만치 자존감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소녀의 모습을 확인했다. 소녀는 아무 것도 모르는 듯, 주머니에서 먹이를 꺼내 뿌리고 있었다.

황철은 다시 혀를 차며 말했다.

“일단 독봉당으로 돌아가게. 나와 할 이야기는 아닌  같군.”

“…네.”

황철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당소소에게 짧은 한마디를 던졌다.



“보내주는 약은 꼭 먹고.”

“노력해볼게요.”


당소소는 그 말에 답하며 제독전을 떠났다. 어느덧 황철의 옆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는 소녀. 소녀는 당소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어릴 때 보는 것 같네. 고년 참 가련한 거봐.”

“허, 오독문주[五毒門主]님의 어릴 적이요? 비슷하게 생겼다고 과거까지 날조를 하시면 안 됩니다, 주인님.”

“어허.”

소녀는 두 갈래로 땋은 머리를 들이밀며 으르렁거렸다. 황철은 몸을 움츠리며 한숨을 쉬었다.



“…예, 정말 꼭 닮았습니다, 오독문주님.”


“내가 그렇다면 그런게야. 그리고 여긴 당문이니 독무후라고 부르도록.”

“예, 독무후님.”




황철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독무후에게 말했다.



“작은 주인님께서 잠시 뵙자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안 그래도 지금 가려던 참이었어.”

독무후는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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