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구장[九章], 만화백절[晩花百折] 5
“그래. 그리고 독무후의 두 번째 제자란다.”
당소소는 독무후의 말을 듣고 눈을 깜빡였다. 잠깐의 침묵이 그녀들 사이에 찾아왔다. 독무후는 고개를 갸웃하며 침묵하고 있는 당소소에게 물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냐?”
“네? 아니, 그게…. 제가 독무후님의 제자를?”
“구배지례니 뭐니 그런 같잖은 건 생략하자고. 네 아버지한테도 안 받았거든.”
독무후는 영악한 웃음을 지으며 땋은 머리를 쥐고 비틀었다. 그녀의 시선엔 아직도 자신이 왜 독무후의 제자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당소소가 있었다. 독무후는 머리에서 손을 놓으며 말했다.
“그래, 말해보아라.”
“예?”
“납득하지 못하고 있잖느냐?”
“그건…, 예.”
“내가 천하십강 중 하나라는 과분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지만, 그리 깐깐한 사람은 아니란다. 오히려 베풀고 싶은 사람이지.”
독무후의 말에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베푸는 쪽의 사람이었다. 주인공에게 주었던 해독제와 만독불침지체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주인공이 장차 마교의 발호를 막을 천하기재이기 때문에 주었던 것. 재능이 부족한 자신에게 베푸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독무후는 혼란스러워하는 당소소에게 말했다.
“하연을 왜 내 시비로 들였는지 아느냐?”
“아뇨…. 하연이 독무후의 시비였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아는 사실이에요.”
“녀석, 티를 내고 싶었을 텐데. 칭찬을 좀 해줘야겠구나.”
독무후는 실소를 터뜨리며 턱을 괴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하연은 내가 황궁에서 독을 관리하기 시작할 즈음 마지막 기미상궁이었단다. 상당히 독특한 독을 쓴 터라, 살리는 데 꽤 애를 먹었었지.”
“…황궁? 황궁에 계셨었나요?”
“그래. 내가 독을 관리할 적엔 황실은 그야말로 암투의 온상이나 다름없어서, 끼니마다 기미상궁이 죽어 나갔지. 그래서 길거리의 아무나 들여와서 기미상궁을 시키는 일이 다반사였단다. 하연도 그중 하나였고.”
“하연이….”
“홍노갈[虹魯蝎]의 진액[津液]. 그녀가 먹은 독의 이름이니라.”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입맛을 다셨다. 당소소는 그런 독무후를 바라보며 식은땀이 흘렀다.
“홍노갈은 사막에서 살지. 독특하게도 홍노갈은 전갈답지 않게 꼬리의 침으로 독을 투사하지 않는다. 입가에 머금은 자신의 진액을 뱉어 먹이를 무력화하고, 침이 없는 대신 둔기처럼 뭉툭해진 꼬리로 마무리를 짓지.”
“그래서 하연이 독무후님의 시비가 된 이유는…?”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성격이 급하네. 참고해야겠어.”
독무후는 키득거리며 악동처럼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홍노갈의 독은 꽤나 독특하지. 사람의 살을 녹이는 점은 여느 산[酸]과 비슷하다곤 하나, 매개체에 닿아도 중화가 되질 않는다. 홍노갈은 그것을 이용해 먹이를 온전히 녹여서, 자신만 먹을 수 있는 액체로 만들지.”
“그렇게 대단한 독을, 어떻게 식사에 탈 수 있죠?”
“독을 정제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야. 독성을 어느 부분까지 살려야 할지, 어떤 특색을 죽이고 또 어떤 특색을 덧씌울지…. 하연이 먹었던 것은 산성을 낮추고, 향과 냄새를 음식의 향에 맞게 어울리는 조합을 했다. 중화되지 않는다는 악독한 특성은 그대로 살려놨지.”
“그렇다면….”
“그래. 내가 하연을 거둬서 몇 년 동안 돌보지 않았다면, 그녀는 죽었을 거다.”
독무후의 말에 당소소는 헛숨을 들이킨다. 독무후는 웃음을 지우고 당소소를 바라봤다.
“칠혼독을 섭취한 넌, 단전과 혈맥이 녹아내려 정상적인 무공을 배울 수가 없다. 네 아비가 무공을 가르치는 것을 꺼리던 것도 그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어. 제대로 무공을 배우고, 운기조식으로 내공을 쌓아간다면 넌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죽을 테니까.”
“…….”
당소소는 창백해진 얼굴로 독무후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쌍검무쌍에서의 묘사를 기억했다. 분명 자신은 주인공의 앞길을 방해하는 역할이 되어 나타났었다. 독각음녀라는 추악한 모습이 되어서. 비록 정천무관에선 무공을 배우지 않았었지만.
그렇기에, 합리적으로 도출 할 수 있는 답이 있었다.
‘…마공[魔功]이 아니면 난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었어.’
서술되진 않았지만, 정천무관에서 무공을 배우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그것이었을 것이다. 정당한 실력행사에 나서지 못하고, 그저 당가에서 훔쳐온 독으로 다른 이들을 질투하던 이유도 아마 그것이었을 것이다. 최후엔 당가가 아닌, 마교에 투신했던 이유도.
독무후는 창백해진 당소소의 얼굴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당소소는 숨을 골랐다.
‘포기해도 되나? 아니, 포기해야 하나?’
당소소는 떨리는 손을 가슴에 짚었다. 온갖 사건들을 바꿔가며 느꼈던 바는, 이제 그렇게 노력하지 않더라도 당가에 콕 박혀서 산다면 평온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삐걱거리긴 하지만, 김수환이 진정으로 갈구하던 화목한 가정 안에서.
이젠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주인공이 모든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적으로 해독제와 만독불침지체만 쥐여준다면.
당소소는 가슴에 짚은 손을 떼며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바라는 해결은 아니야.’
주인공은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건의 발생 동안 일어나는 비극과, 사건의 이후에 터져 나오는 후유증은 막지 못했다. 그것은 묘사에 짤막하게 나오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비극을 모두 담기엔 소설의 분량은 한정되어있었으니까. 당소소는 그중 하나를 떠올렸다.
‘파산검[破山劍].’
암약하는 악역이 뽑아 휘두른, 산을 무너뜨리는 검. 주인공은 그를 막는 것에 성공하고 칭송을 받으며 정천무관으로 귀환했다. 하지만 산이 무너져 터전을 잃고 친지를 잃은 사람들을 제대로 구하는 장면은 없었다. 파산검은 주인공의 애검이 되었고, 난민들은 그를 칭송하는 장면으로만 끝맺음 됐을 뿐.
당소소는 눈을 감으며 뻗어 나간 잡념의 가지를 쳐냈다. 모든 관심사를 끊고 당가의 안에서 평안하게 산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평안하지 않은 일이었다. 당소소는 숨을 뱉으며 말했다.
“그럼 절 제자로 거둔다고 하시는 것도, 칠혼독의 관리는 독무후님만 할 수 있기 때문인 건가요?”
“반은 정답이란다.”
“반…?”
“칠혼독은 꽤 독특한 성질의 독이지. 혈맥과 기를 좀먹는 독이라는 것들만 알려졌을 뿐, 아직 그 성분이 명확하게 분석되진 않았어. 어떻게 해독했는지 혼돈의를 불러서 물어보고 싶다니까.”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괴었던 손을 풀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서 칠혼독의 분석이 첫째 이유란다. 하지만 나도 독무후라는 이름의 무게가 있는지라, 막 제자를 들이진 않는단다.”
“그럼…?”
“당가는 빛과 그림자 중 어느 쪽이었냐 묻는다면, 어둠에 가까운 가문이었지.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런 어둠을 싫어하셨다.”
독무후는 너무 꽉 쥐어서 새하얗게 변한 당소소의 손을 잡아, 그녀의 주먹을 펴준다.
“그리고 넌 어둠을 무서워하잖니.”
“어떻게…?”
“실재하는 어둠만이 아닌, 이 세상의 어둠까지도 무서워하잖니. 천괴와 학귀를 상대했을 때도, 그들이 가져올 어둠이 무서워서 앞으로 나선 거잖니. 잘못을 저지른 자들을 처형하는 것도 혹여, 당가가 그늘을 벗 삼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서 그런 거잖느냐.”
당소소는 놀란 눈으로 독무후를 마주했다. 독무후는 흥미가득한 눈으로 호선을 그리며, 그녀의 손을 주물러주었다.
“난 네가 걱정되고, 가르쳐주고 싶었단다. 내 조카의 딸이라서.”
“제가요…?”
“세상은 빛만으로 살 순 없어. 빛이 있기에 어둠이 있는 거지. 네 아비는 이제야 겨우 그것을 깨달은 것 같다만…. 그래도 그 아이는 제 몸은 갈고 닦아 더 큰 화는 입지 않았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아이의 딸은 더 심하네.”
독무후의 손에서 번져오는 온기가 그녀의 얼굴에 혈색을 돌게 했다. 독무후는 그런 당소소를 보며 말했다.
“수신제가하고, 치국평천하하라는 말이 있다. 제 몸을 연마해, 집안을 안정시킨다. 그렇게 안정된 내부로, 나라와 천하를 생각하라는 말이지. 넌 지금, 네 몸조차 돌보지 않고 천하를 생각하는 중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었는걸요.”
“그래서 어쩔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었단다. 이건 조카의 딸이라서가 아닌, 의협을 흠모하는 한 명의 무림선배로서야.”
독무후는 당소소의 손을 놓고 웃었다. 당소소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독무후를 바라봤다.
“제가 무공을 익힐 수 있나요?”
“독무후의 제자가 무공을 쓰지 못한다니, 그런 농담 같은 일이 있을 리가 있나.”
“제가, 저는. 그게, 천재도 아닌데…. 폐만 끼칠 거고…!”
“나도 천재는 아니었단다.”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팔짱을 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천재가 된 거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던 당소소의 옆머리를 매만졌다. 그리고 당소소의 몸을 훑어봤다.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과 몸의 떨림. 묘하게 당가의 규수답지 않은 이질적인 습관들. 그리고 십팔 년간 사천당가의 혈육으로 자란 것 같지 않은, 소심하지만 온건한 가치관.
꽤 흥미로웠고, 아쉬웠다. 가문의 연장자로서 흠결은 깎고, 장점은 남겨주고 싶었다. 그리고.
‘넌 과연, 어떤 무인이 될까.’
개인적인 호기심의 발로였다. 분명 그녀는 최악의 재료였다. 나이는 무공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열여덟, 가문의 총애를 받는다곤 하나 칠혼독에 중독됐던 편력 때문에 영약은커녕 제대로 된 내공심법을 알려줄 수조차 없었다.
기억을 잃기 전엔 모든 이의 증오를 받았고, 기억을 잃은 후엔 그 증오를 감내하며 어둠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 공포에 젖은 손길로 타인의 어둠을 걷어내려 하고 있었다.
‘그 괴리의 연원에 대해서도 짐작은 간다. 그 점까지 포함해서, 날 즐겁게 하는 아이야.’
독무후는 온갖 사슬을 몸에 메고, 오로지 올곧은 마음 하나로 나아가려는 그 모습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고행을 혼자 보내고 싶진 않았다. 지금의 당소소의 모습은, 언니를 보내고 홀로 오독문에 남겨져 길을 잃고 헤매던 자신의 모습 같았으니까. 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오독문은 말 그대로 독을 다루는 운남성의 문파였단다. 정파도 아니고 사파도 아닌, 새외의 무림으로 취급되던 곳이었지. 오히려 난 그 점이 좋았다. 신경을 끄고 독을 연구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언니는 다른 생각이었더구나.”
독무후는 자신의 자매가 웃으며 말하던 목소리를 떠올린다.
‘너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언니가 사천당가의 가주와 결혼을 한다. 당시엔 잘 이해되지 않았어. 그저 독에 있어서 부족함을 느낀 사천당가가, 오독문의 지혜를 탐내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 그래서 난 오독문주의 자리를 물려받고 언니와 형부를 미워하며 독을 연구하는 나날만을 보냈었지.”
독무후는 당소소의 머리칼을 매만지던 손을 떼고, 당소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형부와의 대화가 들려온다.
‘세상은 처제를 필요로 하오. 아마 처제도 세상을 필요로 할 것이오.’
‘내가 아니라 내가 연구한 독이겠지.’
‘그런 것 같소?’
독무후는 자신을 향해 되묻던 그 물음을, 반세기가 훌쩍 넘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당가의 가신이 되어 무공을 익혔다. 그리고, 그녀는 언니의 말이 어떤 말이었는지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난 네 할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당가로 갔다. 그리고 독예[毒藝]라 불리기도 했고 수절[手絶]이라 불리기도 했다가, 비화[匕花]라고도 불리기도 했었지. 결국 난 독무후로 불리게 됐다.”
“…행복하셨나요?”
당소소의 당돌한 물음에 독무후는 씩 웃었다.
“썩 재밌었단다.”
“다행이네요.”
“그래서 난 다시 너에게 말해주고 싶었단다.”
독무후는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세상은 널 필요로 한단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소소를 향해 일어나라는 눈짓을 보낸 독무후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필요에 응하기 위해서 넌 더 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볼 필요가 있다. 내공을 쌓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욱 끔찍한 행동을 해야 하고, 네가 품고 있는 그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서 더 끔찍한 광경을 목도 해야 한다.”
“…….”
“그럼 갈까, 제자야?”
독무후는 그렇게 물었다.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름답게 핀 꽃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 눈보라를 마주했다.
----
일편독심[一片毒心] - 구장[九章], 만화백절[晩花百折]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