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십장[十章], 불굴일향[不屈一香] 1
내공은 쌓을 수 없었다.
육체는 나약했다.
의지는 피어있었다.
그렇기에, 여기 사그라지지 않는 한 줄기의 향기.
백절불굴[百折不屈]의 마음.
*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큰 보폭으로 걸어가는 독무후. 당소소는 그 뒤를 따라 주변을 훑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외각과 별채의 사이. 독무후는 잠시 멈춰 서서 인상을 찌푸리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이십 년 동안 자리를 비웠더니, 길이 바뀌었나 보네.”
“어딜 가시는 건데요?”
“내 옛날 별채가 여기 어디 쯤 있었을 텐데….”
독무후는 콧소리를 내며 가늠을 하더니 외각의 담장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당소소는 그녀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섰다.
비교적 후미진 길이었지만, 잡동사니나 쓰레기가 굴러다니지 않는 골목이었다. 독무후는 그 길을 바라보며 빙긋 웃으며 당소소에게 손짓했다.
“이리 오거라. 하연이 내가 살았던 건물이라고 매일 치운 듯하구나.”
“네, 음. 이모할머니…?”
“…흐흣, 스승님이라고 부르거라.”
장난기어린 웃음을 지은 독무후는 길의 끝에 있는 단출한 건물을 올려다봤다. 무후당[武后堂]이라는 현판이 없었다면, 영락없이 창고로 착각할 만한 정도의 작은 건물이었다. 독무후는 무후당의 대문을 밀었다. 매일매일 관리를 했는지, 오래된 경첩 특유의 삐거덕거리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녀석, 굳이 나를 따랐던 티를 내지 말라고 했건만.”
직계나 가신에게 주어진 땅이라기엔, 너무나도 작은 곳이었다. 무후당의 장원은 무척이나 작았고, 그 작은 땅엔 목각허수아비 하나만 덩그러니 서있을 뿐이었다. 독무후는 추억이 어린 손길로 목각 허수아비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이런 쓸모없는 것 까진 안 닦아도 될 텐데.”
“…스승님의 건물이라기엔 너무 작네요.”
“난 제독전안이나 연무장에서만 죽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가문 안에 있던 시간보다 가문 밖에 있던 시간이 더 길었지. 여긴 그냥 잠만 자는 곳이었어.”
독무후는 당소소의 말에 대답해주며 다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녀의 손엔 자그마한 비수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독무후는 가볍게 비수를 허공으로 한 바퀴 휘돌리며, 엄지와 검지로 비수의 손잡이를 쥐고 팔을 어깨너머로 젖혔다.
팍!
목각허수아비의 머리 정중앙에 비수가 깊게 박혔다. 독무후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당소소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산류수는 어느 정도 익혔느냐?”
“그, 그게….”
당소소는 품안에 있던 철전을 느끼며 독무후의 시선을 피했다. 솔직하게 실뜨기를 떼고, 철전을 굴리는 것을 하고 있다고 말하긴 부끄러웠기에. 독무후는 그런 당소소의 얼굴과 벗겨진 손가락 사이를 보며 그녀의 경지를 어렵잖게 유추할 수 있었다.
“이제 첫 걸음을 떼고, 기초에 들어섰구나.”
“…철전을 손가락에서 굴리고 있어요.”
“그것이 산류수의 일성[一成]이니, 단단히 배우거라.”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목각인형의 머리에서 비수를 뽑아 날을 쥐고 당소소에게 내밀었다. 당소소는 그 비수를 양손으로 받으며 독무후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기대로 번뜩이고 있었다.
“오늘 가르치시고자 한 것은, 잘못을 저지른 자들이 어떤 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관한 것 아니었나요?”
“그건 아직 때가 이르단다. 네 의지를 무시하진 않을 것이니,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말고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오거라. 오늘은 네 성능을 좀 점검해 볼 생각이니까.”
“그럼 무공을…!”
“후후, 그래. 조금 뒤로 멀어지거라. 거기 서서 배워보자꾸나.”
독무후는 당소소의 설렘 가득한 눈길에 웃어주며 그녀의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조막만한 발이 발꿈치를 툭 치자, 자연스럽게 왼발이 안쪽으로 약간 각도가 비틀리며 반보 앞으로 내밀어졌다.
“불편하진 않느냐?”
“괜찮….”
“버티고자 하는 의지를 보는 것이 아닌, 네 최적의 자세를 찾는 것이니 솔직히 말하거라.”
“…그렇게 불편하진 않아요.”
“그럼 왼발을 아주 약간만 더 앞으로 내딛거라. 대략, 한 촌[寸]정도겠네.”
당소소의 왼발이 약간 앞으로 나아가자, 자세가 불안해지며 골반에 걸리는 부하가 급작스럽게 커져갔다.
“좀 불편해요.”
“오른발의 발꿈치를 떼며 밖을 향해 반 바퀴 돌려보거라.”
“흣!”
오른발이 세워지며 반 바퀴 회전했다. 다리에 엉켜있던 힘의 축이 뒤틀리며, 골반으로 가해지는 힘의 부하가 더욱 커졌다.
“곧게 펴.”
독무후는 당소소의 양 허리를 움켜쥐며 정중앙에 위치시키고, 그녀의 등을 살짝 때려 꼿꼿하게 세웠다. 골반에 엉켜있던 힘이 등줄기의 근육을 타고 흐르며 상체를 덮었다.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균형을 만들어.”
독무후는 까치발을 들어 당소소의 내밀어진 턱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왼팔을 수평으로 뻗게 했으며, 비수를 강하게 움켜쥔 오른손을 매만졌다. 독무후의 손길을 따라 긴장했던 당소소의 오른손이 느슨해졌다.
“어디에도 나아갈 수 있게 느슨하게.”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당소소의 오른팔을 어깨 위로 젖혔다. 느슨하게 쥔 비수가 살짝씩 흔들린다. 그리고 탐탁찮은 듯, 콧소리를 내며 물었다.
“흠, 던지거라.”
파라락!
바람을 거스르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수가 불안정하게 회전하며 포물선을 그렸다.
타닥!
돌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수는 목재 허수아비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곳에 추락했다. 독무후는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눈가를 살짝 찡그리자, 비수는 마치 시간을 역행하는 듯 비척거리며 일어나선 독무후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무엇이 문제인지 느끼겠느냐?”
“…힘이 없다?”
“그건 수많은 문제가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란다. 음. 어느 정도인지 알겠네.”
독무후는 아직도 뻣뻣한 자세로 손을 뻗고 있는 당소소를 보며 실소를 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소소에게 말했다.
“그 자세는 그만 취해도 되니, 편하게 있거라.”
“네.”
“방금 네가 했던 자세는, 당가 암기술의 기초가 되는 삼양귀원[三陽歸元]이란다. 땅을 딛고 힘을 끌어올리는 다리는 지양[地陽], 힘을 손실 없이 하늘로 전하는 몸통은 인양[人陽], 힘을 전달받아 분배하는 팔은 천양[天陽]. 그리고 그 힘을 한 점에 모아 쏘아내는 행동은 귀원[歸元]이라고 하지.”
“…….”
당소소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위로 올리며, 자신의 자세를 되새김질해본다.
‘다리를 벌리고, 오른발을 뒤틀고…. 몸을 꼿꼿이 펴서, 양 팔로 균형을 잡고 휘두른다? 아니야. 내가 휘두른 건 너무 단순했어.’
“의욕이 넘치는 건 좋구나. 그럼, 오랜만에 글줄을 좀 써볼까.”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무후당의 안채에 들어갔다. 그리고 목탄 하나를 꺼내와 네모진 돌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돌바닥에 검댕이 묻으며 회색의 몸에 검은 흔적이 생겼다.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소소에게 말했다.
“무공을 전혀 익힌 적이 없구나. 그렇지?”
“…네.”
“그럼 대충 우리가 어떤 것을 익혀야 할지 알려줘야겠구나. 많은 곳에서 이 두 단어를 각각 따로 가르치지만, 당가는 이 두 단어를 묶어서 사용하고 있어.”
독무후는 목탄을 가볍게 휘두르며 일필휘지로 글씨를 써내려갔다. 가로로는 심기체[心氣體]라는 단어를, 세로로는 심기체의 가운데를 관통하는 정기신[精氣神]이라는 단어를 아래에서부터 썼다.
십자로 교차한 심기체와 정기신. 그중 독무후는 체라는 단어에 목탄을 짚었다.
“무공은 이 다섯 가지의 요소를 단련하는 것을 기초로 한단다. 먼저, 체는 무엇일까?”
“육신이 강한 것인가요?”
“물론 그것도 맞아. 하지만 체는 좀 더 넓은 영역을 포함하지. 방금 내가 보여줬던 암기술 삼양귀원같은 무술까지 포함하고 있단다.”
“음, 그러니까….”
당소소는 자신의 둔중한 머리를 원망하며 신경질적으로 눈을 감았다. 독무후는 그녀가 이론을 정리할 때까지 미소 섞인 얼굴로 기다렸다. 당소소는 독무후의 눈치를 보며 자신 없는 말투로 말했다.
“다섯 가지 요소 중 체는, 강인한 몸과 그것을 휘두르는 방법을 포함하는 건가요?”
“제법 똘똘하네, 우리 제자.”
독무후는 당소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근골[筋骨]과 무술[武術]이 바로 체라 부를 수 있는 것이지. 외공[外功]이라 불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럼, 다음.”
독무후는 목탄을 왼쪽 사선으로 내리며 정이라는 단어를 짚었다. 당소소는 쌍검무쌍의 내용을 떠올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정기신의 합일[合一]이라던지, 하단전[下丹田]이라던지 라는 내용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당소소는 그 단서를 잡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독무후가 요구하는 정확한 설명과는 맞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은, 배꼽 아래에 있다는 단전, 그러니까 하단전을 뜻하는 건가요?”
“그 역시 작게 본다면 그렇겠네. 그런데, 단전은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있겠느냐?”
“역시 내공인가요?”
“단전의 어원을 잘 생각해보거라.”
당소소는 머리끝을 매만지며 고심했다.
‘붉을 단과 밭 전의 단어. 사람의 몸에서 붉은 것.’
“…피?”
“그래. 내공을 심고 기르는 붉은 밭의 정체는 피와, 그 내공의 씨앗을 저장하는 단전. 무림인들은 그것을 정이라 부르지. 내가기공을 수련하는 이들은 내공심법을 통해 받아들인 내공을 피를 통해 하단전에 저장한다.”
독무후는 자신의 단전을 짚으며 말했다.
“그렇기에 정은 하단전이라는 말로 치환되기도 한단다. 하지만 피를 포함한다는 것을 제대로 깨우치고 있어야해. 피를 제하고선, 순환을 설명할 수 없으니. 내공을 담은 피는 혈맥이라는 수로를 통해 퍼져나가니까. 그렇다면 다음.”
목탄이 위로 올라가며 기라는 단어를 짚는다. 독무후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당소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단서를 주자면, 내가 짚는 순서로 연결고리가 있단다. 그럼 피는 어느 곳에서 유래해서 어느 곳으로 향할까?”
“역시 중단전[中丹田]이라 불리는 심장인가요?”
“맞단다. 정확히는 오장육부. 하단전의 내공이 담긴 피는 장기에 뻗어나간다. 내공은 영양분이 되어 장기의 기운을 북돋고, 장기는 토양이 되어 내공의 씨앗을 발아시키지. 그렇게 해서 우리는 내공을 발현할 수 있단다.”
독무후는 단전에서 끄집어낸 내공을 몸 안으로 던졌다. 그리고 비수를 꺼내 쥐었다. 격렬히 맥동하는 육체와, 독무후의 손 위에서 구슬프게 울어대는 비수.
“정혈[精血]의 기화[氣化]. 이것을 연정화기[鍊精化氣]라 부르며 일류고수의 초입이라 일컫고….”
혈액에 실려 날아온 내공은 몸을 매개로 내기[內氣]가 된다. 그리고 각 장기에서 뻗어 나온 난잡한 내기가, 피가 휘도는 혈맥이 아닌 다른 길을 통해 뻗어나간다. 중단전인 심장에서 비롯된 기가 움직이는 통로인, 기맥[氣脈]이었다.
우웅!
한 번의 울음을 끝으로 비수의 구슬픈 울음이 멈췄다. 대신 그 비수엔, 녹색의 검기가 맺혀있었다.
“그 기화한 내공인 내기를 심장과 연결된 기맥에 넣으면. 절정고수에게만 허락된 내기의 실체화인 검기상인[劍氣傷人], 즉 검기를 휘두를 수 있다.”
독무후는 비수를 한 차례 휘저으며 검기를 거두고, 목탄을 위로 그어 올렸다. 목탄은 이제 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당소소는 잽싸게 답을 뱉었다.
“상단전[上丹田], 뇌로군요?”
“또 일부만 맞췄단다.”
독무후는 비수를 목각허수아비에게 던졌다. 이전과 같이 비수는 목각허수아비의 머리통에 박히지 않았다.
다만, 허공중에 멈춰있을 뿐.
“신[神]은 사상이고, 곧 인리[人理]란다.”
“인리라면….”
“자연이 부여한 규율이 천리라면, 인간이 부여한 규율은 인리 아니겠느냐?”
독무후는 손을 뻗었다. 비수는 다시 뒤로 움직이며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쏘아진 것은 뻗어나가고, 떨어지는 것은 떨어진다는 천리가 그 비수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정혈이 내기가 됐듯이, 내기는 사상이 된다. 그것이 연기화신[鍊氣化神]. 내기를 매개체로 실체화 된 생각과 사고는 천리를 지우고 인리를 쓴다. 그야말로 입신[入神]의 경지라 부를 수 있지.”
독무후의 말에 당소소의 뺨은 기대감으로 붉어졌다. 활자로만 기록되있던 무예가,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연기화신이라 부르는 그 경지엔 이르지 못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쌍검무쌍의 이야기는 언제나 자신을 흥분시키고 즐겁게 해주었다. 하물며 그 이야기에 나왔던 무공들을 실제로 익히는 일이었다. 이르지 못하더라도, 눈앞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그녀에겐 충분했다.
“흥미롭느냐? 그러나 쉬운 길은 아닐 게다.”
“네, 알고 있어요.”
당소소는 독무후의 경고에 조용히 웃었다. 그런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뒤돌아 걸어가 안식에 드는 것을 제외하면, 그녀의 앞에 드리운 길들 모두 가파르기 짝이 없는 모진 곳들뿐이었으니까.
독무후는 어린 제자의 당찬 목소리에 기꺼운 웃음을 지으며 목탄을 좌하단으로 그었다.
심[心].
“무엇일 것 같으냐?”
“심장? 아니, 심장은 이미 기라고 하셨는데….”
“별 것 아니란다.”
독무후는 당소소의 눈을 바라봤다. 우울한 기운이 감돌지만, 의지와 활기가 가득한 보라색의 눈동자. 자애가 묻어나는 갈색 눈동자가 그 속에 비쳤다. 그녀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한 줌의 의지.”
독무후는 속삭이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