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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화 〉십장[十章], 불굴일향[不屈一香] 3 (59/130)



〈 59화 〉십장[十章], 불굴일향[不屈一香] 3

짤그랑!


철전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침상에 앉아있던 당소소는 불만스런 콧소리를 내며 철전을 줍는다. 당소소는 다시금 철전을 손가락 위에 올리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놀리며 철전을 손가락 사이로 움직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철전은 다시 당소소의 손가락을 거부하고 땅바닥으로 되돌아갔다. 그녀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이런 씨….”



욕설을 뱉으려던 당소소는 인기척을 느끼고 입을 꾹 다물었다. 하연이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일어나셨습니까, 아가씨.”


“하연도 잘 잤어?”

당소소는 하연의 인사를 받으며 바닥에 떨어진 철전을 주웠다. 하연은 서툴게 묶인 옷의 매듭을 보며 살포시 웃는다.




“네. 그런데 벌써 환복 하셨네요.”

“…누가 옷을 입혀주는 건 아직 좀 어색해서.”

당소소가 철전을 품안에 넣으며 자신의 이불을 개려고 하자, 하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가씨. 침실은 제가 정리할 테니, 어서 아침식사를 하러 가셔야 할 듯싶습니다. 오늘부턴 가주님과 드시기로 하시지 않으셨나요?”

“아참.”


당소소는 이불을 쥔 손을 놓고 하연을 보며 웃었다. 아가씨처럼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곤 있지만, 스물다섯 해 동안 쌓아둔 삶의 양식을 쉽게 털어내긴 힘들었다. 하연은 당소소의 멋쩍은 웃음에 마주 웃어주며 시비들을 불러 이불을 정리했다. 당소소는 감사의 의미에서 눈인사를 보낸 뒤, 침실을 나섰다.


짹짹!


침실을 벗어나자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당소소의 모습이 보이자, 독봉당을 돌아다니며 분주히 움직이던 시비들이 허리를 숙이며 당소소를 반겼다.



“기침하셨습니까, 아가씨.”

“네. 좋은 아침이에요.”



당소소는 그녀들에게 일일이 눈인사를 보내며 독봉당의 장원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장원을 빗질하고 정원을 가꾸던 하인들이 당소소의 모습을 확인하고 다시 허리를 숙인다. 본가의 하인들은 꽤나 줄었지만, 독봉당의 하인들은 오히려 수가 늘었다. 당소소는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기 위해 발걸음을 멈췄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처음 빙의되었을 때 봤던 사람들은 하연을 제외하곤 없구나.’

당소소는 쓴웃음을 지으며 독봉당의 대문을 나섰다. 문을 넘어 저 멀리 보이는 가주전을 바라본다. 어쩔  없는 동질감이 든다. 그녀는 저들보다 더 파리 같은 인생을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황철이 옳아.’


그들은 상처였다. 적절히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곪아버려 지독한 냄새를 풍길 것이다. 자신에게 막대하던 사장들도, 이런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봤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당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시선은 가지고 싶지 않았다. 가벼운 숨을 뱉었다.


“후.”


생각은 환기된다. 독무후의 가르침들이 떠오른다. 식생활에 신경쓰고, 많은 경험을 하도록 하라는 가르침에서부터 가벼운 운동은 괜찮다는 가르침까지. 마침 가주전까지의 거리는 그럭저럭 멀었다. 당소소는 익숙한 자세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근육을 당기고, 몸을 데웠다. 팔목과 손목을 돌리며 뻣뻣한 관절을 조금씩 풀어준다. 목을 돌리며 가벼운 운동을 끝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안전, 좋….”


당소소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얼굴을 붉히며 사람이 있는지 살폈다. 아침에 가볍게 몸을 풀어주면 항상 외쳐야 했던 단어였기에, 자신도 모르게 말할 뻔 했다.



‘미친놈. 안전 좋아를 외치려고 했네.’

당소소의 귓가엔 ‘안전 좋아, 좋아, 좋아!’ 라고 외치는 공사장의 목소리가 들리는  했다. 당소소는 헛기침을 하며 생각을 털어냈다. 그리고 가주전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발을 놀렸다.



*


“흐윽, 흐억…!”


“…딸, 아침부터  죽상이더냐?”


“허억. 그게, 몸이 괜찮은 것 같아서. 흐윽, 뛰어왔는데 힘들어서….”


당진천은 식탁에 앉아 당소소의 얼굴을 바라본다. 식은땀을  오듯 흘리며 창백한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당진천은 옆에 서있던 시비에게 눈짓을 했다. 시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소소에게 다가가 얼굴에 흥건한 땀을 닦았다.




“짧은 숨을 쉬지 말거라. 깊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어라.”


“후읍, 후우…!”



당소소는 당진천의 말대로 천천히 숨을 골랐다. 가쁘던 숨은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창백하던 안색이 어느 정도 혈색을 띄자, 당진천은 땀을 닦아주던 시비에게 눈짓을 했다. 시비는 당소소의 옆에 있던 의자를 빼주며 당소소에게 말했다.



“앉으시지요.”


“…네.”


빼준 의자를 어색하게 바라보던 당소소는 감사의 눈인사를 건네며 의자에 앉았다. 당소소가 앉자, 시비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당진천은 당소소에게 물었다.



“스승님이 시키더냐?”

“아뇨, 그냥 제가 과하게 움직인 것뿐이에요.”

“…너무 무리하진 말거라. 넌 아직 환자니까.”


당진천은 그렇게 말하며 음식을 내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건두부를 썰어 볶은 요리, 고추와 함께 신선한 채소를 채썰어 돼지고기와 함께 볶아낸 고추잡채와 곱게 찢은 닭고기를 차게 식힌 닭냉채가 식탁에 올라왔다. 당소소가 부담스런 눈치로 그 음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생선찜과 소롱포가 올라왔다.



“어….”


“고기를 그리 좋아하던 너에게 고기만 먹지 말라는 말은 했었건만, 이젠 제발 고기를 먹으라 말할 줄이야. 참 재밌는 일이야.”

“이정도면 충분….”



당소소가 눈을 가늘게 뜨며 들어차는 식탁을 바라보자, 값비싼 향신료를 버무려 매운 양념으로 채소, 죽순, 장어, 새우 등을 볶아낸 음식이 올라온다. 고급스런 마라볶음이었다. 당진천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정도면 제대로 먹겠느냐?”

“아침 아닌가요…?”

“이모님이 소면을 먹인다고 어찌나 들들 볶아대던지. 나도 신경을 써주지 못해 미안했다, 딸아. 요새 일이 좀 바빠서. 그래도 네가 소면만 먹고 있다는 걸 제대로 알았어야 했는데.”



당진천은 지긋지긋하다는 듯, 피로로 거뭇해진 눈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당소소는 잔뜩 질린 음성으로 말했다.


“이걸 누가 다 먹어요….”

“내가 무공을 배울 땐  배도 먹었단다. 자, 그럼 먹을까.”

“그 오, 오라버니는요?”



당소소는 쪽팔린다는 생각을 무릅쓰고 당회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온다면 자신의 몫을 조금이라도 덜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젓가락을 들어 올렸던 당진천은 옆에 있던 시비를 바라봤다. 그녀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철전의 공방에서 따로 챙겨 드십니다.”

“그렇단다.”

“으휴.”

당소소는 비싼 음식을 먹는다는 거부감을 털어내고 젓가락을 들었다. 당진천이 건두부볶음을 덜어가자, 당소소도 앞접시를 들어 고추잡채를 조금 덜어갔다. 그리고 덜어간 고추잡채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아삭한 식감과 적절히 매콤한 고추, 잡내가 전혀 나지 않는 돼지고기가 당소소의 혀를 감쌌다.

‘부담스럽긴 한데, 맛있기도 하네….’

당소소는 그런 생각을 하며 숟가락을 들어 닭냉채를 덜고 그 국물을 앞접시에 가져왔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닭냉채를 맛봤다. 결을 따라 잘게 찢은 닭고기는 부들거리는 식감이었다. 살짝 시큼한 국물은 고추잡채의 매콤함을 덜어냈다. 그리고 흑단같은 머리칼은 꺼끌거리는 식감이 났다.




‘…머리칼?’




당소소는 이상함을 느껴 눈을 아래로 내렸다. 어느새 앞접시에  담겼던 오른쪽 옆머리가 자신의 입에 들어가 있었다. 당소소는 재빨리 머리를 뱉어냈다. 당진천은 난처하게 웃고 있었고, 무표정을 유지하던 뒤편의 시녀가 쿡쿡거리고 있었다.




“꽤 맛있나보구나.”


“아니, 이건 그….”

“닦아 주시게.”



당진천의 명에 시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소소의 머리칼을 닦아줬다. 그리고 옆머리를 귀 뒤로 훑어 넘겨주곤, 애써 건조한 목소릴 유지하며 말했다.

“식사를 하실 땐, 긴 머리는 넘기시거나 묶으셔야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당소소는 눈을 질끈 감으며 감사인사를 했다. 시녀는 헛기침으로 웃음기를 덜어내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식사가 이어졌다. 당소소는 큼지막한 소롱포를 덜어와 젓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만두인가. 오랜만에 먹어보네.’



당진천은 그 광경을 보며 말했다.

“안의 육즙이 뜨거우니 반으로 갈라먹어야 한단다.”


“웁, 읏, 앗!”




그러나 소롱포는 이미 그녀의 입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뜨거운 육즙이 그녀의 입안에서 물결쳤다. 당소소는 황급히 소롱포를 뱉어내며 뜨거운 입가를 식혔다. 당진천은 걱정되는 얼굴로 말했다.

“괜찮으냐?”

“읏. 뜨거….”




당진천은 젓가락을 놓으며 당소소를 바라봤다. 허둥대는 모습이 한없이 귀엽긴 했지만, 기억상실이 당가의 규수로서 갖춰야 할 예의마저 잊어버리게 한 듯 했다. 팔걸이를 잠시 두드리던 당진천은 시녀를 불러내 말했다.



“하연에게 전반적으로 아가씨가 가져야  몸가짐을 알려주게 하게.”


“가주님, 하연은 시녀장을 이어받느라 여유가 없을 겁니다.”

“자네는?”


“…마음 같아선 제가 알려드리고 싶지만, 저도 하연에게 인수인계를 하는 중이라.”



당진천은 시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심에 빠졌다. 당소소는 차게 식은 소롱포를  안 가득 넣고 우물거리며 뺨을 붉히고 있었다. 당진천은 피식 웃으며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며 시녀에게 말했다.

“…인수인계를 마치면 알려주시게.”

“네, 가주님.”



당소소는 소롱포를 삼키고, 젓가락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포만감이 몸을 가득 메웠다. 항상 차가운 편이던 손이 혈기가  돌아 따스함이 느껴졌고, 빈혈기에 창백하던 혈색도 어느덧 생기가 어려 있었다. 당소소는 그 포만감에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거구나. 헌데….’

당소소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음식들을 바라봤다. 배가 더 이상 음식을 거부하고 있었다. 남자일 적을 생각해 앞접시에 소롱포를 하나  올려놨건만, 차마 먹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여자의 몸이라 그런 건가.’



당소소는 이곳에 도착했을 때, 숨이 차서 헐떡이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분명 자신은 적절히 체력을 안배했다고 생각했건만, 생각 이상으로 몸이 나빴다. 조금 격렬하게 뛴다면 가슴이 불편했으며, 여성의 옷은 꽤나 거치적거렸다.



‘이런  좀 불편하네….’


당소소의 기색을 눈치 챈 당진천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




“왜 더 먹지 않고.”


“저, 배가 불러서요.”


“그 정도 먹어서, 힘이나 쓰겠나?”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김수환은 제법 많이 먹는 축의 사람이었다. 하루 종일 일해야 하기에, 기본적으로  끼에 밥 두 공기를 비우는 사람이었으니까. 산더미처럼 쌓인 아침식사여도, 얼추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당진천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게 눈치 보여서 그러는 게냐?”

“네? 그런 이유는 아니에요.”

“스승님께서 말하더구나. 네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형편없는 음식만 찾았더라고. 이젠 조금 사치를 부린다고 해도, 너에게 눈총을  사람은 없단다. 마음 놓고 먹거라.”

“아니 진짜 배가 불러서…!”


당진천은 당소소의 부정에 젓가락으로 생선찜의 살을 발라 그녀의 앞접시에 얹어주었다. 굳은 표정의 당소소. 당진천은 그런 당소소를 보며 푸근한 웃음을 던졌다.



“많이 먹거라.”




자애로운 웃음을 짓고 있는 당진천의 모습에, 당소소는 난감함에 볼을 긁었다. 어찌 느릿하게 먹는다면 소롱포  개정돈 더 집어넣을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미치겠네.’

“…싫으냐?”

풀이 죽은 당진천의 음성. 당소소는 굳어있는 입꼬리를 강제로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와, 맛있겠다.”




딱딱하게 웃는 당소소의 입에서, 무표정한 시녀처럼 건조한 어조의 말이 튀어나왔다. 시녀는 당소소의 말에 입가를 가리고 얼굴을 돌렸다. 당소소는 소롱포의 살을 갈라 반토막을 냈다.


 개를 먹는 데  각, 또 나머지를 먹는 데 일 각. 힘겹게 숨을 고르며 당진천이 올려둔 생선살을 먹는데  각.   시진이 걸렸다. 당소소는 당장이라도 안의 것이 튀어나올 것 같은 심정을 꾹 누르며 말했다.



“후우, 이제 산책을 좀 하다가 수련을….”

“차와 다과가 남았지 않느냐.”


“…….”


“명가의 자제로서 다도[茶道]를 배우는 건 중요하지.”

“그런가요…."




식탁의 그릇들이 치워지고, 다기와 찻잎통이 올려졌다. 그리고 말랑거리는 떡이 담긴 그릇이 그 옆에 놓인다. 당진천은 찻주전자에 찻잎을 넣으며 말했다.



“많이 먹거라. 꽤 유명한 음식점에서 가져온 팥떡이란다.”


“아….”



당소소의 얼굴에서 억지로 끌어올린 미소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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