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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화 〉십장[十章], 불굴일향[不屈一香] 5 (61/130)



〈 61화 〉십장[十章], 불굴일향[不屈一香] 5

“독을 먹어야 한다….”


당소소는 굳은 얼굴로 독무후의 말을 곱씹었다.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방식의 차이는 있겠지. 하지만 결국 독으로 상한 네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선, 독을 이용해 체내에 남아있는 독을 중화하고 단전과 혈맥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요?”

“선천적인 질병 같은 것이라면 영약을 구해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네 몸은 그런 것도 아니지. 그렇다면 상단전을 열어 환골탈태하는 것뿐. 그건 너무  이야기지 않겠니?”

“…그렇네요.”


독무후는 눈을 깜빡이며 당소소의 기색을 훑는다. 의연한 체를 하고 있지만, 숨길 수 없는 긴장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독무후는 땋은 머리를 움켜쥐며 생각했다.




‘아무리 담이  아이라도 독성이 있는 쇳덩이를 삼키는 것은 무리인 듯 보이네.’


‘작중에서 독을 삼키는 것으로 내공을 늘려가는 것은 스승님의 뇌람심공[雷濫心功]과 독각음녀가 된 당소소가 배운 마공밖에 없어. 그렇다면, 뇌람신공의 전승자는 누구였지? 어떤 능력이었지?’

당소소는 쌍검무쌍의 내용을 훑는다. 사용자는 독무후. 작중 모습을 드러낸 것은 무림맹과 마교의 전쟁인 정마대전. 그리고 혼돈을 쪼개 세상을 창조해냈다는 도끼인 파천황부[破天荒斧] 쟁탈전. 모두 독무후만 사용했으며, 따로 전승자는 없었다.


‘전승자의 기연을 빼앗는 흐름은 아니야. 그럼 마음 편히 배울 수 있겠어.’



당소소는 한시름을 놓으며 뇌람신공에 관한 정보를 훑었다.




‘뇌람신공에서 발현되는 양뢰[陽雷]와 음뢰[陰雷]를 이용해 독을 융해시키거나 증발시키며 마교의 주력을 홀로 막아섰다는 서술이었어. 함정으로 깔려있던 독무를 흡수하고, 파천황부로 가는 지름길을 만들었었지. 나머지는….’


정보가 머릿속에 쥐어진다. 그리고 그에 딸려오는 정보들을 훑는다. 작중 주인공이 얻는 아홉 개의 기연과 주인공의 동료들이 자신들의 신병이기를 얻게 되는 거대한 기연 하나. 알고는 있으나, 지금의 지식과 힘으론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당소소의 사고는 계속 움직였다.

‘적이 쟁탈하는 기연은….’


그녀의 깊어지는 회상을 자르고, 독무후가 걱정스런 어투로 말했다.


“영 꺼림칙하면 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되지 않겠느냐?”

“네?”


“말없이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란다.  안에 독성이 있는 쇳덩이를 집어넣는다는 게 그리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지.”



독무후가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당소소를 달래자, 당소소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스승님이 저한테 나쁜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 독은 먹을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말하며 맹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녀. 독무후는 당소소의 그런 모습에 머리칼을 움켜쥔 손을 놓았다.


칠혼독을 강제로 주입 당했던 아픔이 채 가시진 않았을 당소소. 그러나 마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위태롭다고 생각될 정도로 몸을 기대어오는 제자였다. 베풀어준 온기에 몸을 비벼대는 그 모습.



“…조그마한 동물 같구나.”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당소소의 옆머리 끝을 매만졌다. 독무후의 손길에 잠시 멈칫하는 당소소. 독무후는 손길을 거두고 뒷짐을 지고 돌아섰다.


“무섭지 않으냐?”


“어떤 것이요?”

“독을 삼킨다는 것. 단전과 혈맥을 재생하기 위해 먹는 광물독은 해독이 어렵다. 가뜩이나 약한 몸, 더욱 큰 고통에 빠질지도 모른다. 게다가 넌 칠혼독을 먹었던 끔찍한 기억이 있잖느냐. 의연한 척은 하지 않아도 된다.”



등을 보이며 쏟아내는 걱정들. 당소소가 물었다.

“스승님은 제가 잘못되길 바라시나요?”


“그럴 리가 있느냐.”


“그럼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돌아 독무후의 뒤에 바짝 붙었다. 독무후의 질문은 쌍검무쌍의 내용을 떠올려 묻어두었던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당소소의 감정은 독을 먹는다는 것에 떨고 있었다. 김수환의 이성은 골방에서 쓸쓸히 죽어갔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 또한. 당소소는  숨에 그 모든 감정과 생각을 섞어 뱉었다.

“후우. 갈까요, 스승님?”


당소소가 말했다. 당소소가 했던 말은, 처음 만났을 때 독봉당을 나오며 했던 말과 판박이였다. 독무후는 잔망스러운 당소소의 말에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녀의 한숨에서 앓고 있는 공포를 느끼고 짓궂은 웃음을 지었다.

‘흐흣, 모를  아나 본데…. 진천을 가르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제자야.’



그저 올곧은 청년이기만 하던 그녀의 조카와는 다르게, 그 딸은 짧은 만남에서도 다채로운 모습을 보였다. 조숙하기도 하고 대범하기도 한데, 어딘지 모르게 소심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티 내지 않으려 애쓰지만 감추는 것이 서툴러 얼굴에 다 드러나는 것도.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냅다 삼키려고 드는 것까지.

독무후는 뒷짐 진 손을 풀고 당소소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소소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바라보자, 독무후가 짐짓 화난 음성으로 말했다.


“뭐하니? 잡지 않고.”

“네? 손을 잡으라고요?”

“그럼 내 땋은 머리라도 잡을 테냐?”

“아, 아뇨.”

당소소가 독무후의 자그마한 손을 쥐자, 독무후는 콧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옮겼다. 당소소는 낯선 느낌의 접촉에 어색해하며 얼굴을 붉혔다.

내각으로 이어지는 담벼락을 따라 걷는 독무후. 그녀는 당소소에게 물었다.

“네가 뭘 배울 것인진 생각해 본 적 있느냐?”

“스승님의 무공인 뇌람심공을 배울 것 같은데. 아닌가요?”


“내 무공이 어떤 것인진 들어본 바가 있긴 한가 보구나.”

“네. 뇌기[雷氣]를 이용해 독연이나 독액을 만들고, 암기의 살상력을 늘리는 기술이라고 알고 있어요.”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잡은 손을 슬쩍 들어 올렸다. 짜릿한 감각이 손바닥에 흘렀다. 당소소는 화들짝 놀라 손을 떼고 눈망울을 크게 뜨며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독무후는 킬킬 웃곤 당소소의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지금이야 다양하고 강력한 암기들과 죽통에 담은 독을 편리하게 사용한다지만, 내가 활동할 당시엔 그런 것이 없었단다. 그러니 검으로 온갖 기예를 부리는 자들과 상대가 될 턱이 있나. 검으로 꽃을 피우고 방패를 가르며 심지어는 검기로 방패를 만드는 자들인데.”


“확실히….”


당소소는 작중의 고수들을 떠올린다. 주인공부터가 쌍검술을 쓰는 인물이었으며, 동료들 또한 대부분 검객이었다. 천하십강과 구주십이천은 또 어떠한가? 대부분이 검객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 위력이 쇠하지 않는 압도적인 범용성. 수많은 활용이 가능한 현묘한 이치. 익히는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지만, 천하를 논하는 천재들에겐 그렇게 와닿는 단점은 아니었다. 그들은 일반인의 삼십 년을 하루 만에 깨우칠 수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당소소는 마차 안에서 나눴었던 당진천과의 무론을 떠올린다. 무림에서 왜 검이 만병지왕이라 불리는지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검기는 손을 떠나면 급격하게 기운이 흩어진단다. 그래서 투척술과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지. 장법이나 권법을 익혀 장풍을 쏘아낸다고 해도, 그 위력이 암기에 담기긴 어렵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뇌기를 담는 것이었지.”


독무후가 손가락을 튕겼다. 조그마한 뇌전이 손가락에서 퍼졌다 흩어진다.


“내기가 벼락의 속성을 띄게 되니 속도가 늘어나고, 그 힘도 늘어난다. 투척술에 이것보다 더 어울리는 무공을 찾기 힘들지. 하지만 이렇게 좋은 면만 있을 순 없지 않겠느냐?”

“광물독을 먹어야 하군요.”



독무후는 당소소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아비가 말했던 것 마냥, 하나를 말해주면 그래도 하나는 제대로 이해하는구나.  뇌람기공을 익히기 위해선, 독성이 있는 쇳덩이들을 삼켜 단전에 박아넣어야 한다. 그리고 오독문의 독문무공인 오뢰전리공[五雷電離功]으로 쇳덩이들이 몸에 들러붙지 않게 계속해서 떼어내야 하지.”


“그럼 아버지도 오뢰전리공을…?”

“네 아버지는  제자라고 하긴 민망하게 당가의 무공만 익혔단다. 하지만 그 아이가 평범하게 검기를 두르고 던지는 암기가  뇌기를 담은 암기보다 더 강할 게야. 걘 나한테 배울 때 밥보다 영약을 더 많이 먹었거든.”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멈췄다. 연철전이라는 현판이 걸린 대문 앞이었다. 문 앞에 다다르자 열기가 훅 끼쳐온다.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귀를 시끄럽게 때려댔다. 그리고 그 문 앞에 서서 독무후를 바라보고 있는 두 남자가 있었다.

“어쩐지 제 얼굴에 금칠하시는가 했더니, 또 그 영약 타령입니까?”

“그래서 안 먹었느냐?”

당진천은 쓰게 웃으며 독무후에게 말했다. 독무후는 콧방귀를 뀌더니, 당진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 주셨는데 버리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나저나….”



당진천의 시선은 당소소에게 머물렀다. 당소소는 눈을 끔뻑이며 당진천의 시선을 마주했다.



“먹기로 한 거구나.”


“네, 뭐…. 달리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서.”


“이리 와 보거라.”

당진천의 손짓에 당소소는 쭈뼛거리며 당진천에게 다가갔다. 당진천은 그녀를 꼭 안으며 말했다.

“난 너까지 굳이 무리할 필욘 없다고 생각한다. 넌 너무 많이 아팠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바람이고 선택이라면. 난 존중을 해 줘야겠지.”

“…….”

“언제라도 무섭거든 말하거라.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당진천은 그렇게 말하며 당소소를 놓아주었다. 당진천은 당소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독무후에게 걸어갔다. 독무후는 짝다리를 짚으며 당진천을 올려다 봤다.



“쯧쯧. 팔불출 짓은 그만하고 썩 일이나 보러 가거라. 안 그래도 장로들이 사천교류회와 내부정리 때문에 독이 바짝 올라있을 것인데, 이리 여유 있어도 되는 게야?”

“…그래야지요.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취해야 할지, 아직도 정해지질 않아서.”

“암풍대는?”

“대부분이 장로들 측에  있는지라 그쪽도 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합니다.”

독무후는 당진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당소소를 노려보고 있는 당회에게 시선을 던졌다. 당회는 미심쩍은 눈으로 독무후를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연철전주 당회입니다. 독무후님을 뵙니다.”


“…그래. 손재주가 뛰어나다는 말은 들었다.”

“과찬이십니다.”

“네 아비로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는 들었느냐?”




독무후의 물음에 당회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백금과 주사[朱砂], 수은[水銀]이라고 들었습니다.”

“금리철[金理鐵]은?”

“…그 쇠를 정말  아이한테 먹이시는 겁니까? 제가 의술에 조예는 없지만, 장담컨대 몸에 쇳독이 올라 죽을  뻔합니다. 애초에 강도조차 무른 금속을 대체 어디에 쓰시려는 건지, 전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지금 네 동생을 걱정해주는 게냐?”

독무후가 웃으며 묻자, 당회의 얼굴이 팍 구겨진다. 그러나 독무후는 까마득한 가문의 어른이었다. 당회는 서둘러 표정을 관리하고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려운…, 시기니….”

“큭큭. 사이좋게 지내거라. 그럼, 먼저 들어가 있으마. 가주님께서도 서둘러 일하러 가시고.”


“딸을 잘 부탁드립니다.”

“누가 들으면 괴롭히는  알겠다, 제자야.”

당진천은 독무후의 말에 입꼬리를 올리며 가주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독무후가 당진천의 뒤를 바라보고 있자, 당회는 당소소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무슨 바람이 들어 이러는 건진 모르겠다만, 적당히 해라.”

“…음. 그러니까.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난감한 표정의 당소소. 당회는 볼을 움찔거리더니 고개를 팩 돌리며 말했다.




“네 맘대로 불러.”


“…오라버니?”


“누가 네 오라버니야.”




당소소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오라버니라는 호칭을 입에 담자, 당회는 곧바로 으르렁거리며 당소소를 노려봤다. 당소소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이 씨발놈은 왜 이렇게 까다로워?  내가  한 거야?’

“아하하….”

“웃지마. 정떨어져.”


“…….”


웃음으로 언짢은 기분을 덜어내려던 당소소에게 핀잔을 주는 당회. 당소소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독무후가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서로 인사는 끝났느냐?”


“…….”


“…….”




당소소와 당회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독무후는 입을 가리고 쿡쿡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안으로 안내를 해주었으면 하는구나, 당회.”

“예, 독무후님.”


당회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철전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후끈한 열기가 세 사람의 품으로 내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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