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십장[十章], 불굴일향[不屈一香] 6
거대하고 시끄럽고 더웠다.
당소소에게 연철전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거대한 창고, 거대한 건물들. 확 트인 모양새의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구슬땀을 흘리는 대장장이들. 흩날리는 철가루들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쇠를 두드리는 소리. 담금질하는 소리와 고함소리가 화로에서 풍기는 열기에 담겨 훅 끼쳐왔다.
독무후는 연철전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죄다 바뀌었네.”
“제가 연철전주가 된 지도 이젠 십 년이 다되어 가니….”
“그럼 가볍게 건물들을 소개하면서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느냐?”
독무후는 당회에게 그리 말하며 당소소를 바라봤다. 기억을 잃은 그녀를 배려하는 말이었다. 당회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건물들을 짚어가며 설명했다.
“일단 정면에 보이는 거대한 대장간이 연철전의 본관입니다. 그 주변으로 왼쪽에 있는 건물은 야금술에 필요한 보조재료가 있는 창고고,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광물들을 보관하는 창고입니다. 이게 요즘 광물들이 많이 들어와서….”
“저기는 휴식 장소로 보이는데?”
독무후는 슬슬 설명이 길어질 조짐이 보이자 본관의 앞에 있는 자그마한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회는 독무후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화로 앞에서 철을 두드리다 보면 심신이 많이 지칩니다. 그렇기에 휴식장소를 하나 만들어 놨습니다. 저희의 옆에 있는 건물은 바깥으로 내보낼 무기들을 내놓는 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오호라.”
독무후는 감탄사를 터뜨리며 외병고[外兵庫]라 적혀있는 전시장의 안으로 들어갔다. 검을 비치하던 대장장이 하나가 독무후를 바라보더니, 나가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어허. 여긴 어린아이가 들어올 곳이 못 된다. 다칠 수도 있어. 어서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가거라.”
“…후후.”
“이런….”
당회는 짧게 웃는 독무후의 반응에 화들짝 놀라 대장장이를 불러내 귀띔을 했다. 대장장이의 안색이 사색이 되더니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그 독무후님을 몰라뵙고…!”
“아직 제대로 활동하는 몸은 아니니, 몰라봐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여간 이 몸은 불편한 것투성이란 말이야?”
독무후는 투덜거리며 벽에 걸려있는 단도 하나를 집었다. 조그마한 손 덕에 단도를 집었어도 마치 박도를 쥔 것같은 모양새로 보였다. 손가락을 튕겨 도신을 가볍게 때린다. 맑은소리가 들려왔다. 단도를 앞으로 내밀어 도신을 훑어봤다.
“약간의 균열이 있는데…. 잘 막았군.”
“아마 경도를 높이는 열처리 과정에서 실수한 듯합니다. 그 정도의 균열은 다른 대장간에선 넘기기도 하는 것이라. 칼날 부분이 아니라 몸 부분에 수평으로 난 균열이라 검의 완성도에는 큰 문제를 일으키진 않습니다.”
전전긍긍하는 당회. 독무후는 단도를 다시 자리에 놓으며 말했다.
“책망하는 게 아니야. 내가 있던 시절엔 이것보다 못한 물품들이 많았거든. 심지어 당가의 고수들이 쓰는 암기들조차 균형이 안 맞았을 때가 태반이었지. 열심히 했구나.”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이곳이 외병고라면, 본가에서 쓰는 물품들은 따로 보관한다는 소리인가?”
“예. 본관 안에 따로 보관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당가의 물품만이 아닌, 완성도가 높은 무구들이나 특별한 무구들을 보관해놓기도 하죠. 그럼, 보러 가시겠습니까?”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 둘 바를 몰라하는 대장장이의 등을 두드려줬다. 당회는 서둘러 외병고를 나와 본관으로 향했고, 그런 당회를 독무후와 당소소가 따라갔다. 휴식장소를 지나는 셋에게, 대장장이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대장, 무슨 바람이 들어서 동생분을 데려오셨습니까?”
“어린아이는 아가씨와 똑같이 생겼네. 가주님의 친척인가?”
“아가씨는 연철전의 대장간이 꽤 힘드실 텐데, 용케 들어오셨군요.”
독무후는 그들의 발언에 발걸음을 멈춰 당회를 바라봤다. 그들의 발언에서 평소 당회가 당소소를 대하는 태도가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노골적이진 않지만, 빙 돌려서 은근히 깔보는 듯한 말투. 장인들의 자존심이라고 용납하기엔 간당간당한 선이었다.
독무후는 당회에게서 시선을 돌려 당소소를 바라봤다. 그저 대장간의 신기한 광경에 눈이 팔려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독무후가 땋은 머리를 매만지자, 당회는 헛기침하며 후회했다.
‘안으로 들어오실 줄 알았다면, 독무후님이 반로환동을 하셨다고 미리 경고를 해뒀어야 했건만….’
“그, 새로 제독전주로 오시게 된 독무후님이시다. 발언을 조심하도록.”
“……!”
나른하게 퍼질러져 있던 대장장이들이 독무후라는 말에 몸을 빠릿빠릿하게 세우고 독무후를 바라봤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당황이 느껴졌다. 당가의 식솔들도 독무후가 복귀했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저런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독무후는 코웃음을 치며 손사래를 쳤다.
“난 그저 옛사람이니, 굳이 의식하지 말고 편히 쉬도록.”
“예, 옛!”
“각 잡고 있지 말고 편하게 있게. 자네들 작품도 좀 훑어봤는데, 꽤 완성도가 높아. 내가 없는 동안 노력한 흔적이 보여 내심 흐뭇했네.”
“감사합니다!”
대장장이들은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독무후의 칭찬에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천하십강의 일인인 독무후는 그 자체로 당가의 자랑거리고, 당가의 모든 식솔이 선망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독무후의 칭찬이었기에, 평소 삭막한 태도의 대장장이들도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대장장이들의 굳은 몸이 조금 풀리는 조짐이 보이자,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칼을 매만지던 손을 놓고 턱을 쓰다듬었다.
“아 참. 그런데 소소는 지금 직계혈족아닌가?”
“…….”
“난 옛사람이지만, 소소는 현재의 사람일 텐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제아무리 힘든 일이라곤 하지만, 신경 쓸 건 신경 써야 일에 집중을 할 수 있겠지. 외부적인 일로 그 힘든 일이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상심하겠나?”
독무후의 말에 고개를 숙이는 대장장이들. 자신의 말을 대충 알아들었다고 생각한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소소를 불렀다.
“소소야?”
“허리를 저렇게 쓰면 내일 고생할 텐데….”
“…소소야?”
“네?”
쇠를 두드리는 소리와 여기저기 나무를 나르고 돌덩이를 나르는 모습에 정신이 팔려있던 당소소. 독무후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독무후는 안쓰러운 웃음을 지으며 당소소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제자야, 신기하느냐?”
“네. 재밌어 보여요.”
독무후의 입에서 나온 제자라는 단어에 당회와 대장장이들이 침묵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독무후의 제자는 현 가주인 당진천 하나. 그런 그가 가문을 자주 비우고 온건한 태도를 보여도 그 신뢰를 잃지 않았던 이유가 여러 개 있었다.
높은 무공 수위와 소가주 시절부터 쌓아온 가문에서의 좋은 평판. 무림맹에서 쌓아둔 명성 등등.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문의 최고 고수인 독무후의 제자라는 점이었다.
독무후는 전 가주와 협력하여 당가를 사천의 패자로 만든, 전무후무한 인물이었다. 제독전의 초대 전주였으며, 그녀의 무력은 좋은 외교수단이 되었었다. 게다가 오독문의 독을 제독전에 공유하는 대인배적 심성과 가문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그녀의 제자를 함부로 대한다는 것은 곧 사천당가의 권위를 함부로 대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독무후는 당회를 바라보며 픽 웃었다.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 줄은 안다.”
“…예.”
“그래도 이젠 미워만 하지 말고 지켜보거라. 이 내가 보증할 테니.”
“…….”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턱짓으로 본관을 가리켰다. 당회는 독무후의 말에 차마 대꾸할 수 없었다. 독무후의 말에도 풀릴 수 없는 깊은 감정의 골이 있었다. 당회는 그저 마른 입술을 입안으로 당겨 적시고, 본관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녀석, 새침하긴.”
독무후는 끌끌 혀를 차며 그 뒤를 따랐다. 당소소는 걱정이 어린 표정으로 물건을 나르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한마디를 던졌다.
“허리 굽히지 말고, 쭉 펴세요!”
“……?”
그녀의 말에 잠시 넋을 놓고 있던 대장장이들은, 대답을 하는 대신 손을 들어 본관으로 걸어가고 있는 당회와 독무후를 가리켰다. 당소소는 당황하며 고개를 숙이곤, 총총걸음으로 독무후의 뒤를 따라갔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는데?”
“여인들은 내숭을 떤다더니, 그거 아니야?”
대장장이들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당소소의 뒤를 바라봤다.
*
연철전의 본관에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는 숫제 이글거리는 느낌까지 들었다. 하나의 거대한 건물 아래, 여러 집이 둘러서 있는 형식이었다. 집 안에는 화로를 비롯한 담금질을 위한 수로, 철을 제련하기 위한 모루 등. 무기를 만들기 위한 여러 장비가 갖춰져 있었다.
각 화로는 화염을 품고, 눈부신 빛과 열기를 토해내고 있었고 그 앞에서 당가의 대장장이들이 땀범벅이 되어 철을 다듬고 있었다. 당회가 들어온 줄도 모르는 듯, 무아지경으로 철을 때리고 있었다.
“이쪽으로.”
당회는 건물들 사이로 나 있는 큰 복도를 걸었다. 긴 복도를 걸으면 걸을수록 쇠를 두드리는 소리와 열기가 옅어졌고, 끝에 이르러서는 한기마저 느껴졌다. 당소소는 고개를 들어 문의 현판을 살핀다. 당무고[唐武庫]라는 이름이 걸려있었다.
“그냥 암기만을 보관하는 곳이 있고, 이곳은 잘 만들어진 암기와 특별한 무기들을 보관하는 내부의 창고입니다. 독무후께서 준비하라 말씀하신 것도 이곳에 있습니다.”
당회는 그렇게 말하며 당무고의 문을 열었다. 코를 감싸 쥐는 쇠냄새와 몸을 절로 긴장시키는 한기가 묻어나왔다. 당회가 안으로 들어서자, 독무후와 당소소도 그 뒤를 따라간다.
“호오.”
독무후의 시선은 벽면을 따라 쭉 걸려있는 다양한 암기들을 훑고 있었다. 그녀는 그중 하나를 집어 이모저모 뜯어봤다. 적색의 색깔과, 약간 뭉툭한 생김새의 비수였다. 독무후는 손잡이의 뒷부분에 자리한 요철을 눌러본다.
찰칵! 푸슉.
비수의 칼날이 갈라지며 마치 꽃처럼 피어났다. 그리고 안쪽에 자리하고 있던 원통모양의 장치가 힘없는 소리를 냈다. 요철에서 손을 떼자, 비수는 다시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갔다. 당회는 흥분한 얼굴로 그녀에게 비수를 설명했다.
“적혈비라고 하는 것입니다. 적을 찌르면 그 피가 안쪽의 원통 모양의 장치에 쌓이고, 요철을 누르면 그 피를 뱉어 시야를 차단할 수 있습니다.”
“독특하네.”
“예. 그저 독특하기만 하면 당무고에 비치할 이유도 없지요. 그 자체로도 완성도 높은 비수입니다.”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적혈비를 제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턱을 쓰다듬으며 적혈비를 평가했다.
“그런데 비수는 던지고 끝이잖나? 거기서 피를 빨아내 다시 사출한다…. 난 잘 모르겠군.”
“…아.”
“뭐 원통 모양의 장치 대신 독침을 박아 놓는 게 더 나아 보이긴 하네. 완성도 높은 비수라는 말에는 동의하겠지만, 이것저것 넣다 보니 무게중심도 앞으로 쏠렸고 날도 얇아져 내구도도 떨어졌고 본래의 목적인 살상력도 꽤 떨어졌어.”
“과연. 참고해야겠군요.”
당회는 벽에 걸어둔 적혈비를 품안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독무후를 바라보며 물었다.
“수은과 주사, 금리철이라고 하셨지요? 어디에 쓰일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일단 독공을 수련한다고 알고 있거라.”
“독공에 철을 사용한단 말씀입니까?”
독무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당회는 눈살을 찌푸렸다.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쇳독이라는 말이 있잖느냐. 무튼, 재료들은 안쪽에 있겠지?”
“예. 이 길을 따라 쭉 가시면 안쪽의 나무상자에 있을 겁니다.”
“소소야.”
“네.”
무기들에 눈이 팔려있던 당소소가 독무후의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독무후는 당회가 말했던 곳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내가 가져와야 할 것들은 위험한 물건이니, 잠시 여기에 있거라.”
“네, 스승님.”
“그럼, 얌전히 있거라. 당회 너도 따라오도록 하고.”
독무후는 당무고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당회도 그녀의 뒤를 따라가려고 하던 찰나, 당소소가 바라보는 무기가 무엇인지 눈치챘다. 손잡이조차 달리지 않고, 쇳덩이로만 보이는 투박한 검. 당회는 당소소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너, 그거 만지지 말고….”
“도철일맥[饕餮一脈], 무궁검[無窮劍]…. 이게 여기 왜 있지?”
당회는 숨을 멈추고 당소소를 바라봤다. 무궁검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당소소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옆을 바라본다. 가느다래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당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네가 저 검을 어떻게 알고 있지?”
당회는 떨리는 음성으로 당소소에게 물음을 던졌다.
쌍검무쌍 작중 최고의 대장장이, 도철. 그의 대장간으로 향하는 열쇠검인 무궁검. 사천에서 손꼽히는 대장장이인 당회조차 몇 년 동안 저 철검의 정체를 알기 위해 연구했었다. 하지만 수확은 없었다. 연철전주인 당회가 그럴진데, 아무것도 모르고 세월을 허비하던 망나니가 알법한 검은 절대 아니었다.
당소소는 침을 삼키고 당회의 눈빛을 받았다. 당소소와 당회의 시선이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