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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화 〉십장[十章], 불굴일향[不屈一香] 8 (64/130)



〈 64화 〉십장[十章], 불굴일향[不屈一香] 8

호리병을 들고 있는 독무후가 당무고의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무궁검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당소소의 곁으로 다가갔다.

“무엇이 그리 좋아서 실실 웃고 있느냐?”

“아하하.”

“단전과 혈맥을 수복하는 게 그리 기분이 좋나보구나.”




독무후는 당소소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이겠지요.”

“그래도 너무 좋아만 하진 말거라. 사람의 몸에 독과 쇠를 주입하는 방법이야. 지레 겁먹는 것보다야 낫다지만, 너무 풀어져서도 안 되는 법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너야 알려주면 곧잘 배우니까 더는 말하지 않으마.”



독무후는 당소소의 뺨에서 손을 떼고 당소소가 바라보고 있던 무궁검에 시선을 던졌다. 눈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시선을 당소소에게 가져간다.


“저걸 보고 있었느냐?”

“아, 네.”

“눈썰미가 꽤 있구나. 아무래도 당가의 혈육이라 그런 건가?”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무궁검을 집었다.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면, 그저 길쭉한 부지깽이처럼 보일만한 생김새였다. 투박한 질감의 검신과 날이 서있지 않은 양날. 둔탁한 검의 끝부분만이 이것이 검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건  학문을 가르치는 학사가 가져온 검이란다.”


“…그렇군요.”


‘역시.’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에 쾌재를 불렀다. 도올일맥의 학사는 외관상 보기엔 그저 수염이 뜯겨나간 백발의 노인이었다는 묘사뿐이었다. 그렇기에 처음엔 깨닫지 못했다. 작중의 도올일맥은 수염이 모조리 뜯겨나간 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무궁검을 보고나서야 학사님이 도올일맥의 전승자라는 것을 깨달을  있었어.’


독무후는 무궁검의 검신을 훑어보며 말했다.



“우연찮게 사천성을 방문하게 된 학사를, 네 아버지가 당청을 가르쳐달라 사정하며 눌러앉게 했었지. 난 그쯤에 가문을 떠났었다.”


“그런데 이 검은 어떻게 저희 가문에 들어오게 됐나요? 비범한 물건일 텐데.”

“비범하니까.”



독무후는 무궁검을 내려놓았다.


“너야 느끼지 못하겠지만, 무림인들은 무공과 병기에 꽤나 심한 집착을 한단다. 때때로 선을 넘을 정도로.”


“종종 들은바 있어요.”


“네 학문스승은 유명한 사람이야. 그래서 종종 그에게 무공이나 병기를 얻어  게 있을까 싶어 찾아오는 이들이 많지. 그런 그에게 사천당가라는 곳은 꽤나 괜찮은 장소였단다.”



독무후는 과거를 회상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네 아비와 교우를 나눈 이후엔 사천당가를 방패로 쓰면서 시빗거리가 생길만한 물건들을 맡겨놓곤 했어. 저건 그 중 가장 큰 시빗거리가 될 물건이고.”


독무후의 말에 당소소는 무궁검을 바라봤다. 투박하기 짝이 없는 저 검의 기능은, 무려 내기를 증폭시키는 것이었다. 한 줌의 내기를 불어넣으면 한 다발의 검기를 토해내는 검. 당장 강호에 던져놓으면 피바람을 몰고 올 만큼의 공능이었다.

‘물론, 영약이란 영약은 모조리 주워 먹은 주인공에겐 쓸모가 없는 기능이었지만.’


당소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시선을 거뒀다. 독무후는 그런 당소소를 바라봤다. 그리고 비수가 걸린 벽으로 시선을 돌리며, 그중 투박해 보이는 비수 하나를 쥐고 이모저모를 뜯어봤다. 가볍게 던지는 시늉을 해보고, 뇌기를 불어넣어 한차례 검명을 울리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너도 무공을 배울 건데, 네 무기가 있어야겠지.”

“이걸 제가 받아도 되나요?”


“그럼.”




당소소의 물음에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소소에게 그 비수를 내밀었다. 당소소는 조심스런 손짓으로 비수를 쥐었다. 비수의 손잡이부근엔 독무후의 손길이 자아낸 온기가 느껴졌다. 당소소는 양손으로 그 비수를 품에 안으며 옅은 웃음을 지었다. 누군가에게 온기가 담긴 선물을 받은 적이 얼마만이던가.

독무후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고개를 젖히고 말했다.



“가져가도 되겠지, 연철전주?”

“…현천비[玄天匕]라 부르는 것입니다. 달리 기능이라 할 것은 없지만 제가 만든 비수 중에 가장 완성도 있고, 흠결이 하나 없는 것이고….”


“그래서 가져가도 되느냐?”



독무후의 물음에 뒤편에서 걸어온 당회는 당소소를 바라본다. 상기된 얼굴로 단검을 꼭 쥐고 있는 그 모습. 당회의 눈가가 한차례 꿈틀거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갑작스레 당소소를 마주볼  없었다. 마치 가슴에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 무거워졌다.


“…예.”


당회는 고개를 돌린 채로 미세하게 끄덕였다.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가슴에 올려진 돌덩이를 치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을 짓누르던 외압이 사라지니, 생각하지 않던 것을 생각해야 하던 탓이었다.


그저 조막만한 비수 하나를 받았다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당소소에 관한 생각을.


독무후는 혼란스러워하는 당회를 바라보며 콧바람을 한차례 뿜었다. 그리고 발걸음을 떼며 말했다.

“난 먼저 제독전으로 가있을 테니, 할 말들이 있거든 천천히 하고 오거라.”

독무후가 당무고를 떠났다. 남겨진 둘은 말없이 애꿎은 땅바닥만을 발끝으로 긁고 있었다.



“…….”


“…….”

당소소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그녀도 상당히 소심한 성격이라지만,  쉬기 조차 힘든 이 분위기를 좋아하진 않았다. 당소소는 현천비를 슬쩍 내밀며 말했다.




“이거….”


“그 도철일맥….”



서로의 말이 겹친다. 당소소와 당회는 곧바로 입을 닫았다. 당소소는 짜증을 담아 미간을 구겼다. 답답한 공기를 뿜는 한증막에, 장작을 더 집어넣은 셈이었으니까. 당소소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현철비를 내밀며 말했다.



“주기 싫다면….”

“무궁검을 어떻게….”

또 겹쳤다. 적막은 더 고요해졌고, 당소소의 미간이  좁혀졌다.

‘씨발.’


더 짙어진 어색함. 당소소는 서둘러 말을 이어갔다.




“주기 싫으면 주지 않아도 돼.”

“…줬다 뺏는 옹졸한 짓은 하지 않는다.”




당회는 옹졸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며 눈가를 움찔거렸다. 당소소는 잠시 당회를 바라보다, 현천비를 품 안에 넣었다. 그러면서 경계심 가득한 어투로 말했다.


“무르기 없기야.”

“그럼 이제 말해. 어떻게 도철일맥을 알고 있고, 이 검이 무궁검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도올일맥인 학사님께서 이십  전 쯤, 당가에 맡기신 거라고 하셨어.”


“학사가…. 도올일맥?”



당소소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얼굴엔 근심이 어린다. 허가도 받지 않고 이름을 파는  같아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회는 무궁검을 바라보더니 절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과연. 그래서 도철일맥의 무궁검이 여기에 있던 것이었군. 도올일맥…. 칠혼독을 치료하기 위한 혼돈일맥의 혼돈의도 그의 영향으로 왔던 것인가?”


“그럼. 이제 가도 되는 거지? 그…. 연철전주님?”


당소소의 말에 당회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찾아온 정적을 발걸음으로 털어내며 당회가 말했다.

“…오라버니라고 불러.”

나무상자들을 들고 당무고를 나가는 당회. 당소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뒤를 바라봤다.


‘언젠 부르지 말라며. 미친놈인가?’

무궁검을 앞에 두고 했던 고민 덕분인지, 다행히도  생각을 입 밖으로 내밀진 않았다.

*




당회의 발걸음은 제독전 앞에서 멈췄다. 그 뒤를 졸졸 따라오는 당소소도, 제독전의 앞에서 멈춰 섰다. 잠시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는 당소소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안색이  좋은데?”

“…별 것 아니야.”

당소소는 자신도 모르게 오른쪽 팔에 손을 올려 상처부위를 감쌌다. 제독전 안을 들어가 본 탓인지, 이젠 제독전의 간판만 봐도 몸이 반응하는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소소는 고개를 저어 불쾌한 감정을 털어내고, 제독전의 문을 열었다.


끼익.

들리는 경첩소리. 당소소의 몸이 흠칫 떨린다. 당소소가 문에서 손을 떼자, 열린 문으로 당회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당소소는 그 뒤를 느릿하게 따라갔다.


당회의 뒤를 따라가는 길. 처음 방문했을 땐 어린소녀를 찾는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기에 그리 많은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었다. 그러나 의식하게 된 지금은, 제독전 안에서 걷는 걸음 하나하나마다 기억들이 번져왔다. 당소소는 걸음을 멈추며 생각했다.



‘이건  좋은데.’




정원 앞에서 친근한 체를 하던 당혁. 독 실험을 하기 위해 걸어가던 당혁과 함께 걷던 돌길. 제독전의 본관에선 독을 먹여놓고, 태연한 얼굴로 잉어들에게 먹이를 먹이는 당혁. 입에 강제로 쑤셔 넣어지는 독단, 그걸 뱉자 잔인하게 웃던 당혁. 그 뱉어낸 것을 집어 실험을 위해 가둬놓은 사람들에게 먹이는 당혁.



“후우….”

당소소는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온 몸의 피가 모조리 빠져나간 듯, 힘이  풀렸다. 눈앞은 캄캄해졌다. 분리한 이성 덕에 겨우 쓰러지지는 않고 있었다. 당회가 그 모습에 놀라 나무상자를 내려놓고 당소소에게 다가갔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


“오라버니가….”


“내가?”

“당혁 오라버니가, 독을….”


“당혁이…? 그게 무슨 말이냐?”



당소소는 가쁜 숨에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말을 섞어 내쉬었다. 당회의 눈썹이 치켜세워졌다. 당소소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들썩일 뿐이었다. 당회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당소소의 어깨에 손을 가져가다가, 화들짝 놀라 손을 거두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게, 이게 무슨…!”


“당혁이 소소에게 칠혼독을 주입했었다. 꽤 오랜 시간동안.”

당회의 뒤편에서 걸어 나오는 독무후. 그녀는 당회를 지나쳐 당소소에게 걸어가, 당소소의 등에 손을 얹었다. 고통스럽게 어깨를 들썩이던 당소소의 움직임이 멎었다. 당소소는 눈을 감으며 앞으로 쓰러졌다.




“소소의 몸으로 실험을 했다는 말은 가주에게 들었다만, 보아하니 실험은 제독전 안에서 이루어 졌나보구나. 불쌍한 것.”

“소소가 칠혼독을 먹은 것이 아니라 당혁이 실험을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독무후는 당소소를 들쳐 업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독천의 혈통을 실험하고 싶었던 것 같구나. 자신의 몸으론 실험하긴 무서우니, 소소를 꼬드겨 실험을 했겠지. 그리고 실험은 성공했다. 완성된 칠혼독은 소소의 혼을 썩어문드러지게 했어.”

“…….”

“운반하느라 수고했다. 그만 연철전으로 가도 괜찮단다.”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제독전의 바깥으로 걸어갔다. 당회는 잠시 멍하게 서있더니, 나무상자를 들어 독무후를 쫓았다. 독무후는 나지막이 말했다.


“돌아가도 괜찮다했잖느냐.”

“그 뭐냐. 그러니까 연철전주로서 물품의 사용처를 알기 위해….”


“어설픈 놈. 그냥 걱정된다고 해라.”

독무후는 피식 웃으며 제독전을 나섰다. 당회가 그 뒤를 따랐다.



*

“으윽.”

당소소는 고통어린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살피는 당소소의 눈에는 오래된 듯한 이불과 낡은 침상, 투박하게 느껴지는 가구들이 보였다. 당소소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침상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멀찍이서 독무후의 음성이 들려온다.

“일어났구나.”



모습을 보이는 독무후. 그녀의 손엔, 비단방석 위에 놓인 물방울 모양의 은색 물체가 들려있었다. 당소소는 아직 떨림이 묻어있는 음성으로 물었다.



“여긴 어디죠?”

“무후당의 안쪽이란다. 너에게 아직 제독전은 무리인 듯싶어서 내가 데려왔지.”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탁자 위에 비단방석을 올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당소소는 눈을 깜빡이며 주저앉았을 당시를 떠올린다. 휘발되지 않은 기억이 이성에 자리하고 있었다.


“저에게 독을 먹인 사람은 당혁이었군요. 전 제가 멍청하게 집어먹은 줄로만 알았는데.”


“…그렇다더구나.”

한 세기를 살아왔어도 으레 이런 종류의 일들이 그렇듯, 적절한 위로를 해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독무후는 눈을 굴려가며 위로의 단어를 생각하고 있었다. 수많은 생각 끝에 한다는 것은 그저 뻔한 위로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괜찮을 게다.”

“기억에도 없던 건데요 뭐.”



독무후는 가볍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고통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여러 의미에서 위험한 것이었다. 독무후는 당소소를 바라보며 걱정어린 말을 건넸다.

“그리 태연한 척 하지 않아도 된단다.”

“하하…. 정말 괜찮은데. 헌데, 저건?”



당소소는 독무후의 위로에 살포시 웃어 보이며, 은빛 물방울에 시선을 던졌다. 손가락을 슬쩍 가져다 대려다, 독무후의 눈치를 살폈다.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져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당소소의 손가락이 은빛 물방울에 닿았다.

물컹거리는 촉감이 그녀의 손가락을 감쌌다. 쑥 들어가는 손가락. 당소소가 깜짝 놀라 손을 떼자, 한차례 방전이 일어나며 구겨진 물방울이 천천히 모양을 되찾아갔다.




“이 눈물방울같이 생긴 것은 광물독으로 만든 오독문의 비의란다.”


독무후는 그 물방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뇌린은루[雷麟銀淚].”

번개를 뿜는 기린이 흘린 은색의 눈물. 독무후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 불빛을 받은 은빛 물방울이 우울한 색으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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