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십장[十章], 불굴일향[不屈一香] 9
“넌 이 뇌린은루를 삼켜야 한단다.”
독무후는 뇌린은루를 집었다. 은빛 곡면에 방전이 일어나, 독무후의 손을 타고 흘렀다. 파직거리는 위협적인 소리에, 당소소는 침을 삼키고 뇌린은루를 바라봤다.
“…감전되진 않을까요?”
“이제야 겁이 좀 나느냐?”
독무후는 킬킬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뇌린은루를 비단방석에 다시 올려놓으며 말했다.
“방석을 들고 따라오너라. 뇌린은루를 복용하기 위해선 몇 가지 준비할 과정이 있으니.”
“네, 스승님.”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런 손길로 비단방석을 들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독무후의 뒤를 따라갔다. 독무후는 무후당의 장원으로 나가, 덩그러니 놓인 목제 허수아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너도 자주 올 곳이니, 잘 보고 배우거라.”
“비밀장소인가요?”
당소소가 관심을 보이자,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련을 위해 만들어놨던 장소지. 자, 여기 가슴을 이렇게 세 번 치면 된단다.”
독무후는 천천히 주먹을 쥐더니, 허수아비의 가슴을 세 번 가격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서는 독무후.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독무후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이, 이상하구나. 이게 왜 안 될까? 아까 당회에게 시켰을 땐 분명히 제대로 작동했었는데.”
독무후는 다시금 허수아비의 가슴을 세 번 가격한다. 여전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독무후의 얼굴이 움찔거렸다.
“…….”
그리고 자신의 작은 손을 바라본다. 몸이 작아진 통에, 제대로 기관이 작동하질 않았던 것이었다. 독무후의 눈썹이 한 차례 움찔거리고, 섬광이 일었다.
우르릉!
번개소리가 들려오며 허수아비의 상체가 뜯겨져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독무후가 그어 내린 손을 거두자, 초라하게 서있는 허수아비의 하체가 움직이며 느릿하게 통로를 열었다. 독무후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당소소의 시선을 피해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자, 들어가자꾸나.”
“어…. 이걸 따라하라는 건가요?”
“…….”
당소소가 물었다. 독무후는 딴청을 피우며 자신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찾아오는 어색한 분위기. 당소소는 자신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것을 당회와의 일화에서 배웠었다. 당소소는 억지로 입꼬리를 틀어 올리며 말했다.
“…노력해볼게요.”
“후우. 몸이 작아지니, 별 부끄러운 일도 다 겪어보는구나.”
독무후는 너스레를 떨며 고개를 저었다.
“원랜 가슴을 세 번 가격하면 열리는 곳이었는데, 몸이 작아지니 제대로 기관이 작동하지 않은 듯싶구나.”
“그렇군요. 확실히, 어려진다면 불편한 점이 많아 보여요.”
자신도 이 바뀐 몸에 적응하는데 꽤나 난항을 겪었기에,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그러나 독무후가 느끼기엔 스승의 위엄을 살려주기 위해 억지로 말을 하는 것으로만 보였다. 독무후는 고개를 저으며 당소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굳이 그런 배려는 할 필요가 없단다.”
“예?”
“들어가자꾸나.”
독무후는 평소보다 더 큰 보폭으로 허수아비 아래로 나있는 계단을 밟았다. 당소소는 독무후의 말에 숨겨진 저의를 고민하며 천천히 그녀를 따라갔다.
*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 마치 별을 뿌려 놓은 듯, 계단의 천장엔 은은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당소소는 천장을 바라보며 계단을 밟았다.
‘조그마한 전구들 같네.’
“천장에 박힌 빛들은 뭔가요? 혹시 야광주[夜光珠]?”
당소소는 무협소설 속에서 자주 나오는 야광주를 떠올렸다. 말 그대로 밤에도 빛나는 돌로, 그 가치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높은 귀한 물품이었다. 독무후는 그런 당소소의 모습이 귀여운지,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귀한 것을 이런 쓸모없는 곳에 이렇게 많이 박아두었겠느냐?”
“그럼….”
“독이란다.”
“예…?”
“독들은 화려한 색을 지니고 있단다. 종종, 어둠에서 빛나는 성질의 것들도 있지. 그걸 잘 제련해 천장에 박은 거야.”
당소소의 안색이 흐려졌다. 느긋하던 걸음은 어느새 독무후의 바로 뒤까지 따라붙었다. 독무후는 웃음기가 서린 어투로 말했다.
“그리 겁먹지 않아도 된다. 안전하게 제련해 떨어지지 않으니까. 뭐, 중독되더라도 내가 있지 않느냐?”
그렇게 말하는 독무후의 발이 지하의 비처에 닿았다. 반구형의 모양을 한 비밀장소는, 거대한 탁자 하나와 여러 개의 횃불이 걸려있었다. 탁자 위엔 다섯 개의 상자가 놓여있었다. 공기가 통하는 장소가 있는지 횃불이 한 방향으로 일렁였다. 비처의 안은 다급하게 치우는 통에 차마 걷어내지 못한 먼지들이 구석구석에 쌓여있었다.
“이리 내려놓아라.”
“예, 스승님.”
당소소는 방석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나무상자를 바라본다. 무언가 불길한 기분에,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독무후는 나무상자들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게 뇌린은루를 만들어 낸 독물[毒物]들이란다. 우리 문파가 오독문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오행[五行]에 기반을 둔 독들이지. 넌 이 독들의 관계를 알아둬야 해.”
“뇌린은루를 흡수하기 위해서인가요?”
“삼킨다면, 흡수야 어렵지 않아.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으니. 문제는 그 다음이지. 네 단전에 안전하게 정착시켜야 한다. 여기서 광물독의 성질이 문제가 된다.”
“광물독의 성질?”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광물독은 독특한 방식으로 육체를 붕괴시킨다. 제 독성을 활용해 신체 내부의 요소와 결합하고, 변질시키지. 변질된 물질은 사람에겐 치명적인 독소가 되고, 내부의 요소가 결핍된 몸은 그 독소의 공격에 더 허약하게 되는 게야.”
“그럼 뇌린은루는 다른 건가요?”
“같아. 단지, 오뢰전리공으로 그 힘의 길항을 맞춰주고 있을 뿐이지.”
독무후는 손을 올려둔 나무상자를 툭툭 치며 설명을 이어갔다.
“대부분의 무공은 오행의 생[生]을 이용한다. 물은 나무를 살리고[水生木], 그 나무는 불씨를 지피지[木生火]. 그 불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며[火生土], 비옥한 토양에선 금속이 생겨난다[土生金]. 그리고 금속은 다시 물을 빚어내지[金生水].”
“아, 이건 배운 것 같네요.”
당소소는 화색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공의 무공인 궁기일맥의 양의쌍절태극혜가 음양오행에 기반을 둔 무공이었기 때문이었다. 독무후는 다른 나무상자를 짚으며 말했다.
“하지만 독은 다르다. 오행의 극[剋]을 사용해 그 독성을 통제해야하지. 물은 불을 꺼뜨리고[水剋火], 불은 쇠를 녹인다[火剋金]. 쇠는 나무를 베며[金剋木], 나무는 토양의 지력을 훔친다[木剋土]. 마지막으로 흙은 물의 흐름을 가로막지[土剋水]. 이게 오행의 극이란다.”
“기운을 억눌러 통제하는 건가요?”
독무후는 당소소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문제를 던졌다.
“독을 배우기 위해선, 우선 독을 알아야겠지. 소소야, 어떤 것을 독이라고 불러야 할까?”
“음, 사람의 몸에 해를 끼치는 물질…?”
“대략 맞췄단다. 그럼 네가 마시는 물은 독이 아닐까?”
“아마 그렇겠죠?”
독무후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나무상자에서 손을 떼며 엄지와 검지를 살짝 비볐다.
“틀렸단다. 세상의 모든 것은 독이야. 단지, 죽음을 일으키기까지의 양이 다를 뿐이지.”
“물이요…?”
당소소의 의문에,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을 많이 마신다면 어떻게 될까?”
“건강에 좋다고 들었는데.”
“더 많이 마신다면? 많이 마시고, 그것의 세 곱절 네 곱절을 마신다면?”
독무후의 말에 당소소는 대답할 수 없었다. 독무후는 엄지와 검지로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그렇게 되면 수독[水毒]이 몸을 해한단다. 과도한 물이 육체에 필요한 요소를 묽게 만들어, 종국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거지.”
“물에 독이 있다는 건 처음 들어봐요.”
“무식하게 많이 마셔야 하니까 잘 알려지지 않은 게야. 반대로 독이라 알려진 물질들을 아주 극소량만 사용해 독으로 사용되는 대신, 약으로 쓸 수 있지. 내가 말한 것들이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느냐?”
“치사량. 양의 차이가 독을 만들어 내는 거로군요.”
독무후는 당소소의 대답에 슬쩍 웃으며 당소소의 옆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아이야. 진천은 귀염성 없게 자기 혼자 깨달아서 뭐 가르칠 것도 없었는데.’
“오독문의 독공은 그 개념에서 기초한단다. 치사량의 독을, 어떻게 하면 통제할 수 있을까. 양을 줄인다면 그저 몸을 잠깐 불편하게 하는 요소가 될 것이고, 양은 늘린다면 독을 다루는 술자조차 통제하지 못하게 되겠지.”
“오행의 극을 사용해서…!”
“그래. 만약 오행의 화를 함유한 독이라면, 그와 반대되는 수를 북돋아 그 독성을 통제해야하지. 그것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 오뢰전리공이란다.”
독무후의 손에 전기가 튀었다.
“몸을 해하려는 독을, 뇌기를 이용해 괴리시킨다. 그렇기에 전리[電離]. 그 뇌기로, 다섯 가지의 독을 통제한다. 그렇기에 오뢰[五雷].”
독무후는 나무상자를 훑으며 말했다.
“뇌린은루는 오뢰전리공으로 만든 독단이란다. 우선 금의 기운을 품은 금리철을 중심으로 한다. 화의 기운인 주사[朱砂]를 겉으로 감싼다. 하지만 너무 사용해선 주사 또한 독으로서 작용해 몸을 붕괴시키겠지.”
독무후의 손이 다른 나무상자를 짚었다.
“주사를 통제하기 위한 수의 기운을 담은 수은. 하지만 이 수은은 금생수라, 소량을 사용한다고 해도 금리철의 영향을 받아 그 기운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 기운을 통제하기 위한 토의 기운이 담긴 홍노갈의 산액을 사용한다. 홍노갈의 산액은 그 자체로 기운이 강대하니, 목의 기운이 담긴 독버섯인 흉송균[凶松菌]을 함유시켜야하지.”
독무후의 설명을 들은 당소소는 침을 꼴딱 삼켰다. 결론은 다섯 가지의 독을 든든하게 비벼 넣은 뇌린은루를, 자신이 삼켜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독무후는 탁자 위의 상자를 아래로 내려놓으며 당소소에게 말했다.
“이 탁자 위로 올라가 몸을 눕혀라.”
“네.”
당소소는 경직된 움직임으로 탁자에 올라가 몸을 눕혔다. 독무후는 그녀의 옷섶을 끌러 저고리를 풀어헤쳤다. 당소소는 턱을 당기며 소심한 저항을 했다. 독무후는 잔뜩 굳어있는 당소소에게 경고했다.
“긴장하지 말고, 여태 알려줬던 가르침을 떠올리거라. 독을 통제하기 위한 오행의 극. 무공을 사용하기 위한 오행의 생. 오뢰전리공의 뜻을 기억한다면, 괜찮을 것이다. 기운은 내가 인도할 터이니, 그에 맞춰 호흡을 해야 한다.”
“운기조식[運氣調息]이군요.”
“그래. 몸 안의 기맥으로 내가 불어넣는 기운이 느껴질 것이다. 너는 그에 맞춰 짧게 여러 번 들이쉬고, 짧게 한번 내뱉거라. 뇌기는 벼락과 같아서, 긴 호흡에는 그 기운이 따라오지 않는다.”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흡을 연습했다. 들이 마시는 호흡을 세 차례에 걸쳐서 끊고, 짧고 굵게 숨을 뱉었다. 독무후는 당소소의 배를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좀 더 짧게 끊거라.”
다섯 차례로 끊어지는 호흡.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배를 누르던 손을 끌어올려 심장 부근의 거궐혈[巨闕穴]에 손가락을 얹었다. 중단전인 심장과 가장 가까운 기혈이었다. 당소소의 떨림이 손끝으로 번져왔다. 긴장하지 않으려 해도,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혁. 당혁때문이야. 그 놈이 독을 먹여서, 떨리는걸 거야.’
당소소는 눈을 질끈 감으며 두려움을 다른 이에게 전가시키고 있었다. 독무후는 그런 당소소의 머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소소야.”
“네.”
“어떤 무공을 사용하고 싶으냐?”
독무후의 물음에 당소소는 쌍검무쌍의 내용을 떠올린다. 천지를 휘감는 태극검, 검으로 꽃을 피우는 매화검. 산을 으깨는 검도 있었으며, 폭풍을 부르는 창술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자신에겐 허락되지 않은 천재들의 무공이었다. 그렇기에 당소소는 잊지 않고 있었다.
독천의 성명절기이자 사천당가의 상징인 그 초식을.
“만천화우[滿天花雨]를 한번 써보고 싶어요.”
“후후. 누가 제자의 자식 아니랄까봐, 똑 닮았구나.”
머리를 쓸어주는 독무후의 손이 거둬졌다. 손가락을 통해 전해오는 떨림은 다소 줄어있었다. 만천화우를 익히고 싶다는 열망이, 독을 삼킨다는 공포를 중화시켰던 것이다. 당소소는 독무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불빛에 어스름히 비치는 천장을 바라보며 뇌린은루를 삼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호흡을 잊지 말거라.”
독무후는 그렇게 말한 뒤, 뇌린은루를 집어 들어 당소소의 입에 떨어뜨렸다. 당소소의 울대가 물결친다. 뇌기를 방전해대는 것치고는, 아무런 생채기도 내지 않고 당소소의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읏, 으윽…!”
그리고, 당소소의 몸 안에 독기의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