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7화 〉막간[幕間], 생식협객[生食俠客] 1 (67/130)



〈 67화 〉막간[幕間], 생식협객[生食俠客] 1

기연이란 무엇일까?


그렇다.

날로 먹는 것이다.



*




“헉헉!”



추레한 몰골의 사내가 가파른 산을 달리고 있었다. 그 뒤를  무리의 무인들이 뒤쫓고 있었다. 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이 사내의 등을 때린다.

“저놈을 잡아!”


“놈, 감히 형인장의 행사를 방해해? 쫓아!”

“네 놈, 지금 선다면 팔 한 짝으로 봐주도록 하마!”

사내는  목소리에 오만상을 쓰며 내달렸다. 점점 험해지는 산세, 우거져가는 숲. 점점 가팔라지는 산길은 숫제 직각에 가까운 경사로 변했다. 사내는 꾸역꾸역 돌부리를 잡으며 산을 오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무인들은 고개를 떨구며 숨을 몰아쉬었다.



“저 새끼 저거, 무술도 안 익히고, 내공도 없다는 새끼 맞아?”


“후우, 맞습니다. 저놈은 그저 놀기를 좋아하는 나무꾼입니다.”

“그런데 씨팔, 너넨 고작 나무꾼에 불과한 새끼를   쫓아가!”



근육질의 거한이 내지르는 노호성에, 숨을 고르던 모두가 시선을 피한다. 대답하던 무인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지도  쫓아갔으면서….’

“이 새끼 이거, 불순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거한은 허리춤에 매단 몽둥이를 움켜쥐었다. 무인은 극구 부인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형인장주님을 오랫동안 모신 이 장추를 의심하시다니, 너무하십니다.”


“흥,  눈깔 조심히 뜨고 다녀.”



형인장주가 몽둥이에서 손을 떼자, 장추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성질도 더럽고 멍청한 놈이 무식하게 힘만 좋아선….’


“그나저나, 이대로 그를 올려보내면 안 될 텐데요. 이곳은 무당산입니다. 그자가 좀 더 올라가 무당파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순간, 형인장은 끝입니다.”


“나도 아니까 지금 빨리 쫓는  아니야!”



형인장주는 버럭 화를 내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올려 그의 앞에 펼쳐진 절벽을 바라본다. 그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쉬이 쫓아갈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왕추는 씩씩거리는 형인장주의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한마디를 읊조렸다.

“그러게 무당파의 영역인데, 어느 무식한 새끼가 여인을 희롱해?”


따악!




“으겍!”

“오랫동안 모신 장추는 지랄, 저놈 대신 일단 널 두들겨 패고 봐야겠다.”


형인장주가 왕추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몽둥이를 빼내 내리치려고 하자, 왕추는 몸을 잔뜩 웅크리며 말했다.


“방도, 방도가 있습니다!”


“뭔데. 시원찮은 거면 네 턱주가리를 으스러뜨려주마.”




형인장주는 왕추의 턱을 몽둥이로 들어 올리며 물었다. 가끔씩 건방진 소리를 하지만, 왕추는 형인장의 지낭이었다. 형인장주는 무식한 힘만큼이나, 눈칫밥으로 험한 강호를 누비고 다니던 인물이었다. 왕추의 머리통을 으스러뜨리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그렇게 한다면 형인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는 눈치 정돈 있었다.

“놈에게 혐의를 덮어씌우는 겁니다. 놈을 형인장의 인원이라는 말을 하고, 그동안 해왔던 악행을 그놈이 했던 것이라 뒤집어씌우는 것이지요. 마침 놈도 떠돌이 출신이라 호북성[湖北省], 그것도 무당산에 모습을 보인지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오호라….”


“문제가 된다면 저희가 길을 막아섰던 여인인데…. 형인장주님께서 희롱하려던 찰나에 그놈이 등장했으니 그리 문제가 되진 않을 겁니다. 문제가 된다면 몰래 죽이면 될 일이고.”


“그래, 그거면 되겠군.”

형인장주는 그 말에 설득되며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왕추도  미소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나름 잔꾀로 먹고살던 인물이었기에, 형인장주가 자신을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형인장주는 왕추의 미소에 잠시 생각하더니, 그의 머리를 후려갈기며 말했다.

“악!”

“그런데 그걸 왜 이제와서 알려주냐?”

“저도 방금 생각한 것입니다. 악! 정말인데…!”



형인장주는 왕추가 겨우 머리를 쥐어짜 생각해냈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챘지만, 모르는 체하며 또 한 대를 후려갈겼다.




‘머리만 좋은 놈들은 이렇게 콱콱 밟아줘야 한단 말이지.’

“그럼 어서 내려가서 작업 시작해야지. 무당파에서 먼저 내려오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예!”

형인장의 무인들이 절벽 아래에서 모습을 감추자, 사내는 고개를 빼꼼 내밀며 한숨을 쉬었다.



“왜 안 하던 짓을 했을까….”


사내는 고개를 저으며 형인장의 무인들이 여인의 앞을 가로막던 것을 떠올렸다. 육감적인 몸매에, 경장[輕裝]으로 차려입은 옷. 삿갓에 드리운 얼굴을 가리는 얇은 천. 그도 형인장의 무인들도 별안간 불어든 바람에  천이 흔들려 그녀의 얼굴이 드러나지만 않았다면, 이렇게 엮일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내 평생 그렇게 예쁜 처자는 처음 봤긴 해.”


사내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큰 눈망울과 시원하게 뻗은 코, 엷은 입술이 조화되어 자아내는 고고한 미모의 여인. 추운 겨울에도 푸른 대나무 같다는 세한고절[歲寒孤節]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여인이었다.

이후의 일은 상투적인 이야기였다. 눈이 돌아간 형인장주가 그녀의 앞을 막아서고, 눈이 돌아간 사내도 형인장주의 머리에 돌을 던지고 무당산으로 도망갔다는 이야기. 사내는 또다시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무공을 배운 무림인이었다면 형인장주를 물리치고 그녀를 안전하게 보내줬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도망갔겠지.’


사내는 부모의 가르침 덕에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부모와는 다르게 합리적인 인물이었다. 고작 나무꾼에 불과하던 자신의 아버지가, 협이니 뭐니 하다가 된통 당해 호북성까지 쫓겨난 이후론 더욱 그런 성향이 짙어졌다.

‘일단 올라가야겠지. 무당파의 도인들을 만나야 한다.’



사내는 짚신을 바짝 조이고 뒤를 돌아봤다. 호피로 옷을 지어 입은 노인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와아악!”

“우와아악, 이라니. 내가 할 말이거늘.”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놀라 나자빠진 사내를 바라봤다. 사내는 숨을 고르며 노인에게 물었다.

“누, 누구요?”


“여긴 내 집인데, 자네가 먼저 정체를 밝혀야 하지 않겠나?”

“…집?”


노인의 말에 사내는 고개를 젖혀 뒤편의 동굴을 바라본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내에게 다가갔다.

“이곳 무당산에서 산지기를 하며 먹고 살고 있지. 그래서, 자네는 계속 무례를 저지를 셈인가?”

“한휘라고 합니다. 이 지역에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무꾼입니다.”

“나무꾼이라. 산지기와는 꽤 접점이 있는 친구였군그래.”


노인은 나무꾼이라는 한휘의 몸을 훑으며 웃었다.

“…그리고 고작 나무꾼이라기엔 꽤 탄탄한 근골을 지녔고.”

“과찬이십니다. 그럼 노부께선 대체…?”

“여러 이름이 있네만…. 지금은 궁기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한휘는 궁기의 이름을 듣자, 곧장 몸을 일으켜 세우며 사죄를 표했다.



“궁기 어르신. 자택을 침범한 것은 사죄드립니다.  목숨이 달린 문제인지라.”

“목숨이라? 자세히 듣고 싶네만.”


“그럴 시간이 없는데….”


“내가 해결해 줄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닌가? 사정을 설명한다면, 자택을 침범한 것은 없던 일로 해줄 수도 있네.”


한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이 사죄는 제가 나중에 기필코 하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궁기를 지나쳐, 눈앞에 있는 가파른 절벽을 올랐다. 무당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있는 무당파를 가기 위함이었다.

‘한시가 급하다. 그들이 정녕 나에게 죄를 덧씌운다면,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위험에 처한다.’

한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절벽의 끝을 부여잡고 올라섰다. 다시 펼쳐진 평지. 잠시 주저앉아 숨을 고르려고 하던 찰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또 실례를 저질렀군?”


“……?”

궁기가 돌에 걸터앉아 한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휘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서 자신이 지나쳐온 절벽의 아래를 바라봤다. 궁기가 있어야 할 장소엔 자신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르던 형인장의 무인들이 있던 막다른 길이 있었다.



“이게 무슨…?”


“사정을 설명하면 용서해주겠네.”


궁기는 씨익 웃으며 한휘를 바라봤다. 한휘는 한숨을 쉬며 형인장의 무인들과 척을 지게  계기를 토해냈다. 그 이야기를 듣던 궁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휘에게 물었다.

“과연. 이 시대에 보기 드문 협객이야.”


“그렇게까진….”

“아무런 무공을 익히지 않은 몸으로 무인이라 거들먹대는 놈들에게 돌을 던지고, 그것을 맞췄다? 정말 드문 협객이지.”




궁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슬쩍 본 바로는 형인장주라고 하던 녀석은 내공을 다룰 줄 아는 이류무인정도 되는 놈이었는데, 그런 무인이 평범한 필부가 던진 돌을 맞았다? 흥미롭구나.”

“우연일 뿐입니다.”

“우연이라.”


궁기는 킬킬 웃으며 한휘의 손목을 휘어잡았다. 손목이 잘려나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한휘는 황급히 궁기의 손길을 뿌리치려고 했건만, 마치 영혼을 제압당한 것처럼 움직여지질 않았다.

“오호. 체[體]는 비옥한 대지와도 같고, 정[精]은 거대하게 흐르는 강물과 같도다.”

“윽, 무슨 짓을 하는 겁니…. 컥!”



궁기는 한휘의 울대를 후려쳐 그의 입을 틀어막고, 가볍게 발을 걸어 한휘를 넘어뜨렸다. 궁기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에 쓰러진 한휘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심장을 꿰뚫는 날카로운 기운에, 한휘는 헛숨을 들이켰다.




“흡!”

“무공을 익히지 않았어도 기[氣]의 통로는 마치 대로를 보는 듯하구나. 신[神]은 아직 부족할 테고, 심[心]은 협을 행하려는 것으로 증명된 셈이겠지.”

궁기가 한휘의 가슴에서 손을 떼자, 한휘는 바닥에 누운 상태로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 뒷걸음질도 결국 뒤의 절벽에 의해 막혔다. 궁기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려가도 다시 여기로  테니, 괜히 헛짓하지 말거라.”

“대, 대체 저에게 무슨 볼일이 있기에 그러시는 겁니까?  큰 사죄를 요구하시는 거라면 제가 무당파에 다다른 뒤에 본가에 들러 사례를 하겠습니다.”


“한휘, 한휘…? 누구랑 닮았는데….”




한휘가 절박하게 부르짖는 동안에도 궁기는 한휘의 얼굴을 이모저모 뜯어보며 고심하고 있었다. 한휘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이상한 노인 하나에 붙잡혀 꼼짝없이 흉악범으로 몰릴 위기였으니까.



“궁기 어르신, 어서 무당산에 오르지 못한다면  정말 죽습니다.”

“죽는다? 자넨 그리 쉽게 죽지 않을 텐데.”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관에서 절 죽이기 위해 온다는 겁니다!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악행을 저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당산에 가서 호소를…!”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이는 무당파의 아이니까.”




궁기의 말에 한휘는 얼굴을 굳히며 궁기를 바라봤다.

“푹 빠진 얼굴을 보아하니 내가 아는 그 아이가 맞는  같은데. 마음씨가 고운 아이니 그리 조급해하지 않아도 될거야.”

“…그걸 어르신께서 어찌 아시는 겁니까?”

“내가 말했잖나. 이곳의 산지기를 하고 있다고.”

한휘는 궁기의 말을 곱씹었다. 무당산의 산지기. 얼핏 흘려듣고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이곳은 온전한 무당파의 영역이었다. 정파의 대문파 구파일방 중 소림사와 함께 수위를 다투고 있는 무당파. 그런 그들이 다스리는 무당산을 관리한다는 말은 쉬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체 어르신은…?”


“말했잖나. 궁기라고. 그래. 옛날엔 흉성[凶星]이라는 별호로 불릴 때도 있었네만, 다 옛날 일이니까.”

“그럼 어르신이  붙잡고 계신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한휘의 물음에 궁기는 잠시 뒷머리를 긁적이다 품 안에서 자그마한 호리병 하나를 꺼내 한휘에게 던져주었다.

“이게 뭡니까?”

“무당산의 정수[精髓].”

“정수?”

한휘는 호리병의 뚜껑을 뜯어 안을 들여다 봤다. 우윳빛의 액체가 출렁이며  몸을 빛내고 있었다. 한휘는 호리병의 뚜껑을 닫고 궁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오늘  번이나 반복했던 행동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공청석유[空淸石乳]. 제자에게 먹이려고 무당산에 눌러앉아 바득바득 긁어모았지.”


“공청석유…? 제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휘. 궁기는 그를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궁기일맥[窮奇一脈]의 무인이 된 것을 축하한다, 한휘.”


“예?”


이젠 생각하기를 포기한 한휘에게, 궁기는 호리병을 바라보며 말했다.


“얼른 마시거라. 그렇게 해서 언제 동굴안에 있는 영약을 다 먹겠느냐?”

“영약이라는 말씀은….”

“소림사의 소환단[小還丹]과 무당파의 소청단[小靑丹]. 화산파의 자하단[紫霞丹]도 있었고. 또 뭐가 있었던가….”


“……?”



급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한휘는 멍한 표정으로 궁기를 바라봤다.

“제가 왜 제자입니까?”

“네가 천무지체[天武之體]라서?”

“예?”


“넌 하나를 배워도 열을 알고, 그 열에서 새로운 하나를 창조할 놈이야. 가령 돌을 던지는 것에서 발견한 초식으로 이류무인의 머리통을 터뜨린 다던지.”



궁기는 그렇게 말하며 호리병의 뚜껑을  뒤에 한휘의 입을 강제로 벌려 집어넣었다.

“그렇게 됐으니 우선 마시고 생각하자꾸나.”

“웁, 으읍!”


“궁기일맥의 양의쌍절태극혜는 쌍검을 다뤄야 하는 무공이다. 검 하나를 배우려면 만일이 걸리니, 쌍검술은 이만일이 걸리는 무공. 과연 내 제자는 이만일을 며칠로 단축할까?”

“웁웁!”

공청석유를 뱉어내려는 한휘. 궁기는 호리병을 더욱 깊게 박아넣고 공청석유를 들이부었다.



“어허, 몸에 좋은 거야.  들이켜. 옳지, 올지.”

“흐읍!”




공청석유를 모조리 마시고 쓰러진 한휘. 곧장 눈을 까뒤집고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궁기는 그 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영약 하나 먹였다고 지 혼자서 연정화기의 경지에 이르러?”


궁기는 뒤를 돌아보며 곁으로 다가오는 여인에게 말했다.



“네 소원을 들어줄 이가 될 수도 있겠구나. 예향.”

“아직은 모르지요. 얼굴은 영 맹해보이는 걸요.”




예향이라 불린 여인은 삿갓을 벗고 자신을 구해준 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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