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십일장[十一章], 화무파종[花舞播種] 3
“네가 그걸 어떻게…?”
의문을 담아 바라보는 백서희에게 당소소는 자신 있게 웃었다. 둘러댈 수 없다면, 처음부터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당회와의 일화에서 배웠던 그녀였다. 그렇기에 단순히 선택지가 그것밖에 없었기에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주인공은 당가의 마차를 타고 서안으로 갔었어.’
독무후는 주인공에게 서안까지 가는 마차를 내어주었다. 당소소는 마차를 몰던 당가의 마부에 관한 서술을 떠올린다. 서안으로 향하는 여행 도중 월화원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당가의 인물. 주인공은 그 이야기를 듣고 월화원으로 향했다. 당소소는 그 구절에서 당가가 월화원과 관계가 있음을 짐작했다.
‘독과 암기. 누가 봐도 암시장과 땔래야 땔 수 없겠지.’
당소소는 시선을 돌려 당진천을 바라본다. 당진천은 찜찜한 표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 표정에서 당소소는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졌다. 원작의 지식을 제대로 활용할 생각에, 당소소는 들뜬 마음으로 백서희의 질문에 답했다.
“난 사천당가의 인물이야. 월화원을 모를 리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백서희는 새삼 당소소가 고약한 당가의 규수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어둠에 숨은 지하의 경매장은 고운 시선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었으니까. 하물며 백서희는 상가의 자녀였다. 월화원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쾌한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싫지만, 백진오 그 자식이 좋아할만한 것이긴 해.’
백서희는 눈가에 고인 의문을 털어내고, 납득과 함께 경계의 태도를 보였다. 당진천은 묘해진 둘의 기류를 훑으며 한숨을 쉬었다.
“후우.”
당진천은 당소소의 입에서 튀어나온 월화원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당가와 지하암시장은 밀접하기 싫어도, 밀접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맹독성을 지닌 물건들, 야금술의 연구에 필요한 희귀한 광물들을 양지에서 구하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당가의 가주가 대대로 물려받는 것들 중엔 월화원의 입장권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가의 어둠에 관해선 나중에나 알려주고 싶었건만. 이리저리 쏘다니더니 기어코 들었나보군.’
당가는 구매자이기만 하진 않았다. 당가가 가진 힘은 월화원의 회원들에겐 구미가 당기는 것들이었기에. 치명적인 독과 암기들, 그를 이용한 일처리들. 전대 가주가 취임하기 전까지 당가는 월화원의 주요 구매자이자, 그들이 요구하는 어둠을 파는 판매자였다.
당진천은 이마에 둔 손을 내리며 말했다.
“…자네의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월화원은 당가와 꽤연관이 있었네. 독물과 광물은 상단을 통해 구매하기 쉽지 않은 물품들이니 말이네.”
“그렇군요…. 그렇지만, 월화원의 입장권은 그리 쉽게 구할 수 없을 텐데요.”
“썩 자랑할 물건은 아니다만, 당가에선 오직 나만 가지고 있네.”
백서희는 당진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당소소의 말을 곱씹었다. 그녀가 제시한 월화원의 입장권은, 당가에서도 오직 가주만 가지고 있을 만큼 엄격한 심사를 거쳐 발급되는 물품이었다. 그런 희귀한 물품을, 당소소가 만들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확신하는 태도로 말하고 있었다.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진 않아.’
백서희의 시선은 당소소의 표정에 닿아있었다. 감출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의기양양한 기색은, 이미 월화원의 입장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최근 들어 표정을 감출생각을 하지 않는다. 백서희는 고개를 당소소 쪽으로 조금 숙였다.
‘협상을 시작해야할까?’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달싹거렸다. 비록 검의 길을 걷고 있지만 상가의 딸인 백서희. 기본적으로 협상을 이끌어내는 교묘한언변정돈 터득하고 있었다. 저 어수룩한 아가씨가 자신있게 내민 물품에 흠집을 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누구 좋으라고.’
백서희는 반항적으로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거래를 하는 것은 이미 예정된 미래였고, 아미파와 청성파가 압박을 해온다고 해도 큰 피해는 이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 백서희를 당가에 보내 협상의 탈을 쓴 협박을 하게 한 것은 백진오였다.
백진오에겐 아쉽게도, 백서희는 은원관계에 있어선 칼 같은 인물이었다.
“확실히, 월화원의 입장권을 구할 수 있는 거야?”
“난 이런 거 이빨 안 까.”
“이빨…?”
“…….”
당차게 내뱉는 당소소의 말에, 가주전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당소소는 어색한 헛기침과 함께 자신의 말을 고쳤다.
“으흠,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진 않아.”
“그게 사실이라면, 서로간의 보증으로 여기기엔 충분하겠지.”
백서희는 당황한 기색을 털어내며 말했다. 당진천은 월화원의 입장권을 취득하는 방법에 대해 잠시 고심하다, 백서희에게 말했다.
“일단 그것으로 보증이 된다면, 연회엔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되겠나? 자네도 알다시피 소소는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네.”
“이번 연회는 대외적으로 당가와 결연을 맺었다고 알려야 하기에, 쉽게 무를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금의 손해도 용납하기 싫나보군.”
“…저희 오라버니가 좀 구두쇠인지라.”
“하핫!”
당진천은 백서희의 기어가는 듯한 말에, 실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당소소를 바라보며 물었다.
“입장권을 얻는 방법, 위험한 방식이냐?”
“아니요. 안전해요.”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경계하는 백서희에게 말했다.
“건전하고 합법적이기도 하죠.”
“월화원은 건전하지도 않고, 합법적이지도 않다는 거, 알고 있지?”
“설마 모를까. 난 그런 점에 있어선 철두철미한 사람이야.”
“…….”
또 다시 가주전이 조용해졌다. 당소소는 눈을 깜빡거리며 당진천과 백서희를 번갈아 바라봤다. 당진천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당소소에게 말했다.
“쉬어도 괜찮다. 내가 가도 되는 곳이야.”
“몸은 이제 괜찮아요. 제가 말했었잖아요? 아버지의 편이 된다고.”
“…넌 방금 일어났다. 그리고 수많은 일을 겪었지. 쉬어야 하는 몸이다. 지금 수련을 하는 것도 솔직히 말하자면 허락하지 않고 싶다.”
“정말 괜찮은데.”
당진천은 당소소의 시선을 외면하며 당회의 모습을 떠올렸다.
‘주력으로 팔아야 할 것은 아무래도 연철전의 물품들이 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된 이상 당회가 가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그림이 괜찮긴 하겠지. 허나 당회녀석의 성깔도 문제일 뿐 더러, 당가의 산하 상단인 사천상단을 맡은 일 장로가 가만히 있진 않을 터.’
탁탁.
팔걸이를두드리는 당진천의 손가락은, 당소소를 보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계산을 자아낸다.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바쁘게 돌아가야 할 당가의 업무가 정지된다. 당회를 보낸다면, 당가의 한 축을 담당하는 방계의 장로들이 그 의도를 짐작하고 압박해올 것이다.
아무런 직책이 없는 당소소를 연회에 보내는 것이, 이치상 맞았다. 독천이 아끼는 딸이며, 사천교류회에서 활약을 보였던 당소소. 결례도 되지 않을 것이고, 곧 성인이 되어 공식적인 자리에 나설 연습도 될 것이다.
“좋다. 연회엔 소소가 갈 것이다. 그래도 괜찮겠나?”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해두겠습니다.”
“그럼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당진천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소소도 만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진천은 그런 당소소에게 말했다.
“하연에게 일러둘 테니, 연회에 갈 채비를 하고 있거라.”
“네, 아버지.”
“그리고 네 귀여운 사촌동생도 함께 동행할 것이니, 그리 알고 있고.”
“네? 저에게 사촌동생이 있었…?”
“있으니 말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럼, 자네가 독봉당까지 같이 가주게.”
시녀는 당진천의 명에 허리를 가볍게 숙이며 당소소를 이끌고 가주전을 빠져나갔다. 가주전엔 백서희와당진천만이 남아있었다. 당진천은 다시 자리에앉으며 백서희를 바라본다. 긴장한 기색의 백서희. 당진천은 그 긴장을 깨고 입을 열었다.
“당가는 이번이 두 번째인가?”
“예. 작년에 한 번 왔었지요.”
“그렇군.”
당진천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다시 아무 말 없이 허공을 바라봤다. 초조해진 백서희는 마른 입술을 당겨 적셨다.
‘뭐지, 너무 무례한 협상이었나? 아니면, 당소소가 내밀었던 월화원의 입장권을 선뜻 수락해서 그에 대한 보복을 하려는 건가?’
“저어….”
“지금 출발한다면, 백능상단엔 언제 도착하지?”
뜬금없는 당진천의 질문. 백서희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시간을 가늠해 말했다.
“내일 저녁중에 도착할 듯싶습니다.”
“내일 저녁이라. 그럼, 당장 가서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은 있는가?”
“협상을 보고하는 것 외엔 딱히 없습니다. 애초에 수련 중이었던 몸이라.”
“그렇군.”
당진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뜸을 들였다. 그리고, 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보고는 동행한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당가에 잠시 머물러줄 수 있겠나?”
“…당가에 말씀이십니까?”
“크흠. 그렇네.”
백서희는 당진천의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당진천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서희는 당진천의 제안을 뒤집어보며 그 저의를 뒤적거렸다.
‘애지중지하는 독천의 딸을 보내는 것이니, 마찬가지로 날 당가에 묵게 하고 보내 처신에 주의하라는 경고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무례한 발언에 대해 책임을묻고 싶은 건가? 하지만 당가주는 사신을 그렇게 대할 만큼 몰상식한 인물은 아닌데.’
“그 연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음.”
주저하는 당진천. 이상한 그의 태도에 백서희의 의문은 더욱 커져갔다.
‘…뭐야저 태도는. 이상한데? 몰상식한 짓을 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같은 건가? 빨리 사과를 하는 편이 옳을 것 같아.’
“저, 협상 중 발언에 대해선….”
“딸이 친구가 없지 않나.”
“…예?”
“고약했던 성미 덕에 동성친구는 없는 듯 하고, 화검공자라는 놈팽이만 주위에서 껄떡댔었지.”
당진천은 턱을 쓰다듬으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말을 할 순 없지만, 저번에 말한 것들을 제하고서도 소소는 많은 일들을 겪었었네. 그러나 충분히 쉬어야 할 처지인데도, 자꾸만 일을 찾아 혹사하려고 하지.”
“그건, 뭐. 예. 그런 것 같더군요.”
백서희는 사천교류회에서의 당소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당진천은 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연회에 가기 전까지만 자네가 옆에 붙어서 좀 진정시켜줄 수 있겠나?”
“어, 그러니까.”
당황한 백서희의 눈이 갈 곳을 잃었다. 자신도 모르게당진천의 진의를 내뱉었다.
“소소와 놀아달라는, 그런…?”
더듬거리며 말하는 백서희. 당진천은 볼을 긁적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대충은 그렇네만…. 자네가 싫다면 거절해도 되네.”
“음.”
백서희는 부끄러워하는 당진천을 보며 입가를 씰룩거렸다. 하지만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얼굴을 굳혔다. 영락없이 주책없는 팔불출 아버지처럼 보이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은 당가의 가주이자 구주십이천의 독천이었다. 웃음을 터뜨리는 무례를 저질렀다간, 어떤 험한 꼴을 당할지 몰랐다. 백서희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러고보니 저번 사천교류회 때 내려주신 가르침이 있었지요.”
“큰 가르침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따님을 잘 돌봐주라던 말씀, 아직 유효하지 않나요?”
백서희는 웃음을 참느라 가빠진 숨을 뱉으며 자리에서일어섰다. 당진천은 자리에서 일어선 백서희를 바라본다. 백서희는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럼 짧은 기간이지만, 신세를 지겠습니다.”
“신세는 내가 지는 게지. 부디 편히 있도록 하게. 부족한 게 있다면, 시녀들을 통해 요청하도록 하고.”
“예. 그럼 보고를 해야 하기에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백서희는 그렇게 말하며 가주전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힘빠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당진천은 등받이에 기대 눈을 감았다. 애써 스치는 바람소리라 생각해봤지만, 고수의 육체는 그런 착각을 허락하지 않았다. 당진천의 고개가 부끄러움에 조금 아래로 떨어졌다.
*
독봉당의 처소에 당도한 당소소의 시녀. 시녀는 허리를 숙인 뒤 말했다.
“가주님께서 당부하셨습니다. 푹 쉬세요, 아가씨.”
“네, 걱정에 감사드려요.”
시녀가 가볍게 웃으며 독봉당을 떠나자, 당소소는 그제야 큰 숨을 내쉬며 침상에 다가가 벌러덩 누웠다.
“서안의 암시장….”
당소소는 작중의 월화원에 대해 생각했다. 주인공이 활개를 쳤던 장면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기를 한 다경, 당소소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주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래도 연철전에서 당회에게 겪었던 덕분에 성공적으로 둘러댄 것 같은데. 이번엔 잘 한 것 같아.’
당소소가 스스로의 판단에 푹 빠져있을 무렵, 백서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독봉당인가요?”
“예. 안 쪽에 들어가시면 아가씨가 계실 겁니다.”
“안내 감사드립니다.”
“아가씨, 백서희 소저께서 들어오십니다.”
대화가 끝나고 발걸음소리가 멈췄다. 시녀의 보고가 들려오고 방 안에선 인기척이 느껴진다. 하지만 당소소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후후.’
자신의 성장에 기뻐하며 은근한 웃음을 짓는 당소소.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 챈 당소소가 침상에서 슬쩍 몸을 일으켰다.
“누구…?”
“…….”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벌러덩 누워있던 당소소와, 그런 당소소를 바라보는 백서희. 둘의 어색한 시선이 잠시 부딪히다가 어긋났다.
“어…. 웃는 걸 보니까 되게 편한 것 같네. 예전엔 그런 느낌까진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
“…편한 게 좋지. 응.”
당소소가 얼굴을 붉히자, 백서희는 나지막한 말로 당소소의 부끄러움을 덜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