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십일장[十一章], 화무파종[花舞播種] 5
“으, 응. 갈게.”
당소소는 의복점을 나와 백서희에게 향했다. 백서희는 어색해하는 당소소가 못마땅한 듯, 혀를 차며 말했다.
“목숨 구해준 값 아니니까 그렇게 쩔쩔매지마. 내가 사주고 싶어서 사주는 거니까.”
백서희는 그렇게 말하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르는 많은 상인들. 당소소는 난감한 기색을 보이며 그녀를 따랐다. 그녀는 종종 발걸음을 멈추며, 매대에 놓여있는 상품들을 쥐고 쭈뼛거리는 당소소의 몸에 대본다.
“음, 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건 안경이잖아…?’
당소소는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댄 색안경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백서희는 그런 태도를 신기한 물건을 보는 것이라 생각해,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내려놓았다.
“이건 서역에서 만들어 낸 애체[靉靆]라는 거야. 서역과의 교역로인 비단로[緋緞路]가 이곳을 지나거든. 사천성의 비단인 촉금[蜀錦]은 옛날부터 중원 최고로 치는 비단이니까.”
“그렇구나.”
“이거 가격이 얼마죠?”
“비단 열 필정도…. 금 한 관정도 될 겁니다.”
백서희가 매대를 지키고 서있는 상인에게 묻자, 상인이 쩔쩔매며 답한다.
“뭐 그렇다네. 필요해?”
“…괜찮아. 정말 괜찮아.”
다른 물품을 뒤적거리며 대수롭지 않은 듯 물어보는 백서희. 당소소는 그런 그녀의 금전감각에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전생으로부터 각인 된 절약정신이 본능적으로 그런 백서희의 태도에 파르르 떨고 있었다.
‘뭐야. 이 정도의 사치는 자기도 부리고 다녔으면서. 왜 이렇게 어색해 하는 척 하는 거야?’
백서희는 이상하다는 듯 잠시 당소소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백능포목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포목점앞에서 멈춰 섰다. 포목점 상인이 재빨리 걸어나오며 자신의 가게를 소개했다.
“질 좋은 비단들로 구비해두었습니다. 우선 이 비단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번에 새로운 기법으로….”
“촉금[蜀錦]은 지금 있나요?”
백서희는 포목점 상인의 말을 냅다 자르며 물었다.
“그것이 수요가 많은지라, 수량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이곳 사천성의 비단, 그것도 성도의 비단은 특별한 물품 아니겠습니까? 벌써 예약이 모두 들어차는 통에….”
“아, 예약이 가득 찼다.”
백서희는 팔짱을 끼고 에둘러 말하는 상인을 바라본다. 그 시선에 상인이 몸을 움찔거린다. 백서희는 손을 들어 자신의 입술을 매만진다. 잠시 뜸을 들이던 백서희는 그에게 말했다.
“아저씨.”
“예, 아가씨.”
“저 아시잖아요.”
“당연히 알지요, 아가씨. 사천성 비단의 거래권을 움켜쥐고 있는 백능상단의 둘째 따님 아니십니까? 거기에 뛰어난 무공 실력으로 철혜검봉이라 불리기까지….”
백서희는 그 아첨에 피식 웃었다. 그리고 포목점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한쪽 벽면엔 비단들이 펼쳐져 있었고, 또 다른 벽면엔 비단을 수납하는 수납장에 비단들이 꽂혀있었다. 매대를 보던 상인이 백서희의 등장에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그러게요. 절 그렇게 잘 아시면서, 왜 저한테 그런 걸 숨기고 그러세요. 일이 귀찮게끔.”
“예?”
“비싸게 살 테니까 감추지 말고 꺼내요. 촉금 한 필 있는 거 다 아니까.”
백서희는 매대의 상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인은 그 눈빛에 떨리는 손으로 매대 아래에 감춰놓은 비단 한 필을 꺼냈다. 고귀해 보이기까지 한 광택과 부들거리는 질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최상품의 비단이었다. 백서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귀찮은 것과 거짓말 하는 걸 싫어하는 거 아시잖아요.”“예,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왜 그러신 거예요? 따로 예약이 잡힌 것도 아닐 텐데. 중요한 손님이 왔을 때 긴급하게 팔기 위해서 촉금 한 필을 남겨놓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중요한 손님을 위해서 남겨 놓는 것이라….”
백서희는 뒤를 돌아 포목점 상인을 바라본다. 포목점 상인은 눈치를 보며 뇌까린다. 심각한 분위기가 비단들을 적셔갔다. 당소소는 그 둘의 눈치를 보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난 괜찮아. 옷은 충분해. 굳이 저런 비싼 비단으로 지어 입지 않아도 괜찮은걸.”
“…너, 속이 없어도 너무 없구나.”
“응?”
자신이 중요한 손님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포목점 상인의 발언. 하지만 영문을 몰라 하는 당소소의 태도에, 백서희는 마음이 쿡쿡 쑤셔오기 시작했다. 대체 무엇이 당소소를 이렇게 만들었는지에 관한 의문이 백서희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백서희는 고개를 저으며 의문과 동정을 털어내고 말했다.
“아니야. 일단 뭐라도 먹으러 가자. 백능상가엔 객잔도 있으니까.”
“그래. 그러자. 난 의복점에서 산 옷들로 충분하다 못해 넘쳐.”
당소소는 찡그린 얼굴의 백서희를 달랬다. 백서희는 자신의 앞머리를 입으로 후 불며 화를 털어낸 뒤, 거리 가운데에 위치한 계단으로 향했다. 당소소가 계단을 오르는 백서희의 뒤를 따라가자, 온갖 음식의 향기가 그녀의 몸을 감쌌다. 백서희는 한 식탁에 걸터앉아 당소소를 불렀다.
“이리로 와.”
“아이고, 서희 아가씨! 이런 누추한 식탁에 앉지 마시고 제대로 된 곳으로….”
호들갑을 떨며 잽싸게 달려오는 주방장. 백서희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금방 먹고 내려갈 거니까. 소소, 뭐 먹고 싶어?”
“소….”
당소소가 걸터앉자, 백서희는 당소소에게 물었다. 당소소는 반사적으로 소면이라 말하려는 자신의 입술을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 눈을 깜빡이며 조심스레 말했다.
“차림표를 좀 볼 수 있을까?”
“그러던지. 여기, 차림표를 좀 가져다주시겠어요?”
“이것아, 더 빨리 안 오냐? 이 곳에 온지 이제 삼 일이 다 되가는데, 이리 굼떠서야. 으흠. 여기 있습니다.”
주방장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점소이를 구박한 뒤, 그의 손에서 차림표를 뺏어 백서희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백서희는 그 차림표를 받아 당소소에게 내밀며 말했다.
“왜 저한테 주세요? 직접 주시지 않고.”
“하하…. 그럼, 주문이 끝나는 대로 말씀해주시면 바로 조리를 하겠습니다.”
주방장이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자리를 떠나자, 당소소는 받아든 차림표를 훑었다. 고급품만을 취급하는 곳 아니랄까봐,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이 즐비해있었다. 불도장[佛跳牆]이라던지, 백능특선 라조기[辣子鷄]라는 음식이라든지. 백능정식[白陵定食]라는 음식은 무려 금자 하나를 호가하는 가격이었다.
‘라조기…. 중국음식점에선 보기만 했던 건데.’
고급 음식들에 짐칫 겁을 먹은 당소소의 시선이 자연스레 밑으로 내려갔다. 그나마 가격이 낮은 소롱포, 고추잡채가 다소 높은 가격에 형성되어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면은 없었다. 당소소는 더 싼 것이 없나 시선을 쭉 내려 본다. 배가 부르다는 핑계로 값 싼 음료수나 마실 속셈이었다.
“…백호은침[白毫銀針], 은 열 냥? 이거 금자 반 냥 아니야?”
“차에 관심이 많았다니 뜻밖인데. 어린 싹을 그대로 건조시킨 백차 중, 가장 으뜸으로 취급하는 게 백호은침이야. 저 멀리 복건성[福建省]에서 들여 온 거라 좀 비쌀 거야. 그럼 차는 그걸로 시킬게.”
“아니, 아니! 그냥 소롱포 하나면 돼.”
당소소가 차림표를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잠시 그 차림표를 바라보던 백서희. 고개를 끄덕이며 점소이를 불렀다.
“흐음. 알았어. 여기 주문을 좀 받아주실래요?”
백서희는 점소이가 그녀에게 다가오자, 차림표를 내밀며 말했다.
“백능정식으로 둘 내오세요. 차는 백호은침으로.”
“예, 백능정식 둘과 백호은침.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자, 잠깐…!”
“기왕 왔으니 백능상가의 자랑인 음식을 먹어봐야 하지 않겠어? 여덟 번의 순서로 나오는 특선음식들을 차례로 먹는 거야.”
백서희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다리를 꼬고 당소소를 바라봤다. 당소소는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 바짝 긴장한 듯한 태도의 당소소. 백서희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편하게 있어도 괜찮아. 나도 마침 배가 고파서 먹는 거니까.”
“그래도….”
“…….”
백서희는 당소소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한차례 노려본 뒤 고개를 돌렸다. 한 줄기의 땋은 머리가 고집스레 흔들렸다. 당소소는 한숨을 쉬며 체념했다. 한번 노려본 뒤 고개를 돌리는 것은, 쌍검무쌍의 작중에선 백서희가 의견을 꺾을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서술되었었다.
주인공들은 백서희가 선뜻 내미는 금전과 물품들을 한사코 거부했었지만, 백서희가 노려보고 고개를 돌리면 꼼짝없이 받게 됐었다. 당소소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잘 먹을게.”
“그래. 그거면 돼.”
백서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었다. 그런 그녀들에게, 복잡거리는 음성이 들려온다. 백서희는 눈을 돌려 그 음성의 발원지를 바라봤다. 채 그녀와 인사하지 못했던 상인들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이래서 백능상가엔 잘 안가는 건데.’
그녀가 백능상가에만 가면, 백서희와 대외적으론 그녀를 아끼는 것처럼 보이는 백진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상인들이 부대껴왔다. 당연히 취해야할 태도였지만, 그렇다고 귀찮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백서희는 길게 숨을 뱉으며 언짢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백능철물의 고심이라고 합니다.”
“예. 저번에 봤던 검은 꽤 인상적이었어요.”
고심이 살갑게 인사해오자, 백서희는 팔짱과 꼰 다리를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심은 은근한 음성으로 백서희에게 말했다.
“아가씨, 말씀하셨으면 좀 더 제대로 준비를 하는 건데요.”
“괜찮아요. 시찰을 나온 것도 아니고, 잠깐 들러서 옷을 조금 사는 것뿐이니까.”
“헌데 저 분은…?”
“사천당가의 당소소입니다.”
고심이 눈을 찌푸리며 묻자, 당소소는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했다. 고심은 잠시 몸을 굳히더니, 과한 몸짓으로 알은 체를 하며 그 인사를 받았다.
“아, 알고 있습니다. 명성이 자자한 독화를 이곳에서 뵙는군요.”
“…과찬이십니다.”
자신을 독화라 부르는 고심의 말에 당소소는 시선을 바닥으로 향했다. 그 말을 끝으로 고심은 당소소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백서희와 사소한 대화들을 나누며 다소 작위적인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되었더군요.”
“그런가요.”
심드렁한 백서희의 말투. 고심은 백서희의 태도에서 그녀의 의사를 읽었다. 그만 식사시간을 방해하라는 의미였다. 고심은 헛기침을 하며 대화를 마쳤다.
“크흠. 그럼 즐거운 식사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해요. 고심 아저씨도 번창하시길.”
백서희는 눈치 있게 자리를 비키는 고심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고심은 몸을 돌려 자신이 있는 무리로 걸어갔다. 고심이 합류한 그 무리들은 백서희에게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던 무리들은 소리를 죽여 고심에게 말했다.
“정말 아가씨를 이렇게 대접해도 되는 겁니까? 뭔가 좀 더 선물같은 거라던지 그런걸 줘야하지 않나….”
“이걸 더 편하게 여기시는 분이야.”
“그나저나 저 안하무인의 왈패는….”
고심은 조심스레 뒤를 돌아본다. 계단너머로 슬쩍 보이는 당소소는 천진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고심은 다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왜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군. 백능상가에서 진상을 부리던 일들이 떠오르지 않는 건가? 제대로 돈도 쓰지 않으면서 말이야. 패악질이나 하던 년이 어떻게 아가씨를 설득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거 아닙니까? 사천교류회에서의 그 소문.”
“아하. 무슨 천괴와 학귀라는 사파의 고수들을 막아섰다는? 헌데 그걸 믿는 자가 있었습니까? 저 왈패가 무슨.”
“으흠. 가지.”
고심은 헛기침으로 무리의 대화를 끊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
백서희의 입가가 움찔거린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그 무리들을 향해 걸어갔다. 철혜검봉이라 불리는 그녀는 어릴 때부터 쌓아온 영약으로 검기상인의 경지에 이른 몸. 제아무리 작게 조잘거리는 소리일지라도 그녀에겐 또렷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미안해. 내가 또 너에게 피해를 끼쳤구나.”
당소소의 음성이 백서희의 발목을 붙잡는다. 백서희는 걸음을 멈추고 당소소를 바라봤다. 당소소는 처연히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잘못한 거잖아? 마땅한 비난은 받을 수 있어. 오히려 내가 저들을 찾아가서 사죄할 생각이야.”
단전과 혈맥이 복구되어 기감을 깨우친 몸은, 다른 감각들도 날카롭게 했다. 그 덕에 당소소 또한 고심들의 소리죽인 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당소소의 잘못은, 내 잘못이니까. 그리고, 이 잘못들은 이야기의 그늘들이니까.’
당소소는 울적한 심정이 되어 웃음을 지웠다.
‘당소소에게 닥칠 미래의 고난을 덜기 위해서라면, 지금 사과를 해야 할 거야.’
당소소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고심에게 향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백서희는 당소소를 노려보며 말했다.
“앉아있어.”
백서희는 인상을 찌푸린다. 당소소의 울적한 표정에서 과거의 장면이 묻어났다. 미풍객잔에서 몸을 돌려 서럽게 울던 그 장면. 마치 친한 사람에게 소박맞은 듯이, 서럽게 울었었다. 분명 친한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이거…?’
백서희의 정신이 번뜩이며 당소소의 모습들을 조립한다. 백능상가를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 과거의 패악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잃어버린 아가씨의 품행. 자신을 친한 사람이라 생각하던 그 모습.
백서희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 그러고 보니 네가 옛날에 날 괴롭혔던 것도 사과했었지. 뭘 먹였었더라? 구토약이었던가?”
“어, 응. 구토약. 정말 미안해.”
백서희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사과하는 당소소를 바라봤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조립이 끝난 진실을 내뱉기 위해 입을 열었다.
“너 설마…?”
“백능정식, 첫 번째 요리 나왔습니다.”
백서희의 말을 끊으며 점소이가 그릇 두 개를 내려놓았다. 식초와 간장, 소금에 절인 싱싱한 오이 한토막이 그릇에 다소곳이 담겨있었다. 점소이는 젓가락을 그릇 옆에 두며 말했다.
“소채[小菜], 박황과[拍黃瓜]입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점소이는 허리를 숙이며 다음 요리를 가져오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당소소는 백서희가 하려던 말에 대해 물었다.
“무언가 내가 더 잘못이라도 한 거야?”
“…아니야. 일단 먹자.”
백서희는 머리를 짓누르는 진실을 외면하고 젓가락을 쥐었다. 하지만 당소소에 관한 생각에 좀처럼 젓가락이 나가질 않았다. 백서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소소는 싱글거리며 젓가락으로 오이를 집어 입에 넣었다.
와삭!
오이를 씹는 소리와 목 뒤로 넘기는 소리. 그리고 당소소는 잠시 침묵했다. 백서희는 조용한 당소소를 보며 젓가락으로 오이를 집었다.
“아무 말 없는 거보니, 맛있나보네. 나도 생으로 먹는 건 싫어했는데, 나름 절이니 맛있더라고.”
탁!
당소소는 백서희의 젓가락을 쳐냈다. 백서희는 당소소의 손이 날아오는 것을 보며 피할까, 라는 생각을 하다 순순히 그녀의 손길을 허락했다. 백서희의 시선엔 당소소의 얼굴이 들어온다. 사천교류회에서 자신을 막아섰을 때, 그 진지한 얼굴이었다. 백서희는 당소소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독이야.”
“뭐…?”
당소소는 길게 숨을 뱉었다. 심장이 격하게 요동쳤다. 혈맥을 긁어대는 독성에, 단전이 된 뇌린은루가 격하게 요동쳤다. 당소소의 시선은 격하게 떨고 있는 자신의 손으로 향했다.
‘난 사천당가의 금지옥엽.’
그 시선은 당황하고 있는 백서희에게 옮겨진다.
‘그리고 이곳은 백능상가의 객잔.’
뜨거워진 머리에선 고뇌의 증기가 가득 메워졌다.
당소소를 독살할 사람. 지금 당장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는 주인공에게 죽으니까.
사천교류회를 습격했던 흑림총련은 이미 문파간의 합동에 의해 괴멸상태였다.
당진천에게 얼핏 들은 바로는, 당혁의 흔적이 운남성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 누구인가.
당소소의 눈은 여전히 백서희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니. 독이 왜…?”
백서희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흉수를 찾고 있었다.
연기일까?
당소소의 시선은 백서희의 박황과로 옮겨졌다. 그녀는 부들거리는 다리를 굽혔다. 풀썩 쓰러진 당소소는, 몸을 굽혀 바닥에 떨어진 오이를 주웠다.
그리고, 그 오이를 삼켰다.
아삭!
꿀꺽거리는 목넘김과 함께 오이가 당소소의 목으로 넘어간다. 당소소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당소소는 힘없는 손짓으로 백서희에게 다가와 달라 요청했다. 커다래진 눈으로 다가와 몸을 굽히는 백서희. 당소소는 그런 백서희의 귀에 나지막이 말했다.
“다행이야.”
“무, 무슨 말이야 그게? 뭔데!”
“네가 안전해서.”
당소소는 웃으며 말했다.
‘백서희는 주인공의 곁에서 희극을 피워낼 씨앗이야.’
당소소의 시야가 흐려졌다.
‘이건…. 나라서 다행이야.’
이내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백서희는 거친 숨을 내쉬며 그녀를 안아들었다. 사천교류회에서 느꼈던 무기력함이 그녀의 이성을 끊어가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칼날이라면 쳐낼 수 있었다. 쏘아지는 화살이라면, 대신 맞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독은 그녀가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어떻게 구해야 하는 거야…!”
백서희의 절규를 들었는지, 녹색 무복의 무인들이 당소소의 곁에 홀연히 나타났다.
녹풍대였다.
녹풍대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백서희에게 다가간다. 백서희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올려다본다. 녹풍대의 우두머리는 눈물투성이의 백서희를 달래는 대신, 그녀의 그릇을 손으로 찍어 맛본다.
“독이 없군.”
우두머리의 살기어린 시선을 담은 눈물이, 백서희의 뺨을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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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독심[一片毒心] - 십일장[十一章], 화무파종[花舞播種]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