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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화 〉십이장[十二章], 황혼지영[黃昏之影] 1 (74/130)



〈 74화 〉십이장[十二章], 황혼지영[黃昏之影] 1

해는 몸을 뉘이고, 그림자는 기지개를 켠다.

빛은 어둠에 덮여가고 그림자는 걸음을 옮긴다.


어두워져가는 길은 멀기만 한데, 해는 야속하게 지는가.

행자여, 돌부리를 조심할 시간이 없다.

험한 길을 거슬러 올라야 할 시간이니.


*

꾸륵, 꾸륵!

어둑해져가는 강가에 드리운  하나. 기포를 뿜으며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실 끝에 이어진 낚싯대를 드리운 것은, 도복을 입은 사마문. 그는 지루한 표정으로 바위에 앉아 낚싯대를 들어올렸다.

낚싯대가 낭창거리며, 거구의 사내를 강가에서 끄집어냈다.




“푸흑! 어헉! 살려, 살려줘…!”


“좀 더 간절하게 울어야 나에게 닿지 않겠어?”

“대체 무엇을, 무엇을 말하라는 거요?”


거구사내가 공포에 젖어 울부짖자, 사마문은 뚱한 표정을 지으며 낚싯대를  손에 힘을 풀었다. 거구사내의 어깨를 꿰뚫고 있는 갈고리가 아래로 움직이며 다시 그를 강물에 집어넣었다. 그런 그의 옆으로 요재가 나타났다.

“소교주님.”


“요재. 꺼져라. 작업 중이니까.”


“…예.”

요재는 다시 모습을 감춘다. 사마문은 다시 낚싯대를 끌어올려 거구사내를 건져냈다. 거구사내는 물을 잔뜩 먹었는지, 입가로 물을 토해내며 사색이 되어 있었다.


“컥, 커억…!”


“그저 무서워하기만 하는 얼굴은 지루한데.”



사마문은 따분한 듯 눈을 반개하며 하품을 했다. 당소소를 만난 후로, 그는 더 이상 공포감이 즐겁지 않았다. 좀 더 다양한 감정을, 좀 더 색채있는 감정을 느끼길 원하고 있었다. 그는 지루함을 버티지 못하고 낚싯대를 움직이며 거구사내를 담갔다 빼는 행동을 반복했다.




“어푸, 윽, 커억!”

“질리는군. 그냥 죽여야겠다.”

“말, 우웁…. 말 하겠…. 끄르륵!”


“괜찮아. 그냥 죽어.”



사마문이 낚싯대를 놓으려 하자, 거구사내는 발악적으로 외쳤다.



“마교의 부교주, 그의 계획이었소!”


“알아.”


“그럼 대체…?”


“고맙다. 잠깐 지루함을 덜어줘서.”

사마문은 그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낚싯대를 놓았다. 거구사내는 그대로 강물의 물결에 쓸려나가며 사라졌다. 사마문은 고개를 저으며 바위 위에 누웠다. 그런 그의 곁으로, 흑색의 도복을 입은 사내가 걸어온다. 금색으로 불길을 수놓은 옷깃이 펄럭이며 범상치 않은 느낌을 자아냈다.

“흑림총련주는  곳이 많을 텐데요.”

“따분한 족속이야.”


“그 감정이 본래의 계획을 침범하시면  됩니다. 딸아, 내려놓아라.”



흑의사내의 말이 떨어지자 푹 젖은 흑림총련주가 바닥을 나뒹군다. 요재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마문의 시선에 곧바로 오체투지를 하며 말했다.




“부교주님이 오셨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자리를 비키라고 하셔서….”


“알았어.”


사마문은 몸을 일으켜 요재에게 사라지라 손짓했다. 요재는 몸을 일으켜 허리를 굽히곤, 사마문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사마문은 옷을 툭툭 털며 부교주를 바라봤다.

“어쩐 일이지. 마교엔 당분간 가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뭐가 쉽지 않지?”

사마문은 뒷짐을 지고 부교주의 앞에 섰다. 그의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 아래에서, 이글거리는 정념이 있었다.

“어려운건 없어.”

“…후후.”

“내가 하고자하면, 하는 거야.”


푸른 안광이 작게 웃는 부교주를 훑는다. 부교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헌데 그런 것 치곤 아직 사천은 멀쩡하군요. 아미파와 청성파는 아직 미래를 잃지 않았고, 백능상단의 금력은 굳건하며, 사천당가는 오히려 내실을 다지게 됐습니다.”

“내가 하기 싫었으니까.”


“왜 하기 싫었습니까?”



부교주의 눈이 곡선을 그린다. 짙어지는 웃음은 사마문에게 경고를 하고 있었다. 사마문은 그 경고에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싫증이 난 것을, 설명해야하나?”

“싫증이 나셨다면, 교에서의 명을 받들어 돌아오면 그만 아닙니까?”


“같잖은 명령이야.  아직 돌아갈 생각이 없다.”

“교의 명령은 신성의 영역입니다. 그리 간단히 얼버무릴 것은 아니지요.”

부교주는 자신의 수염을 쓸어내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독화. 그 당가의 여식이 이유였습니까?”


“그저 흥미가 가는 계집일 뿐.”



사마문은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하지만, 이미 표정은 굳어있었다. 여유롭게 뒷짐을 지던 손은 어느새 앞으로 나와 있었다. 부교주는 그 변화를 눈으로 훑으며 생각했다.




‘이 어린 마귀를 홀릴 여자가 있을 줄이야.’


사마문은 부교주에게 한걸음 다가선다.

“요재냐?”


“제 딸아이는, 소교주의 심복입니다.”


“그녀가 아니라면?”


“당혁이  손에 있습니다.”


부교주의 고개가 슬쩍 기울어진다. 서로간의 시선은 지척. 불온한 기운이 감돈다. 부교주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소교주께 넘기겠습니다. 교로 돌아오십쇼.”


“…….”


“사천당가를 제대로 무너뜨리지 못한 것, 사천교류회의 습격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은 점. 불문에 부치겠습니다. 저 바닥에 나뒹구는 멍청이에게 뒤집어씌우면 그만이니.”

“날 움직이려 들지 마라.”

사마문은 부교주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부교주는 그 경고에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위로 올렸다.

“제가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천산혈로에서 희생된 소교주님의 가신들이 움직이는 것이지요. 정말 이곳에 계시길 원합니까?”


“말을 조심히 해야 할 것이다.”

사마문은 부교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 행동에 부교주의 웃음기가 흩어졌다. 그의 눈엔 읽을 수 없는 감정이 어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교주는 그 감정을 침잠시키며 말했다.


“지금 가지 않으면, 소교주의 자리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뭐?”

“사천에 분란을 가져와 세력을 심는 것도 실패했고. 교의 명을 듣냐면, 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의 안에서 당신을 지지해줄 거대한 세력이 있냐면, 그것도 아니고.”


“전부 짓밟아버리면 돼.”

사마문의 거만한 말에, 부교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천지분간 못하는 마귀새끼.’




사마문은 섬길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심성은 잔학했고, 행동은 제멋대로. 협조성이라곤  한 톨도 가지지 않은 자. 그런 그가 가진 것이라곤, 의미 없는 과거와 무재가 넘치는 몸뚱이뿐이었다.




‘당장이라도 잘라내고 싶지만….’




하지만 부교주에겐 다른 선택이 없었다. 마도육가 중 가장 세력이 약했던 그의 가문이, 다른 가문에 흡수되지 않기 위해선 사마문을 선택해야 했다. 사마문이 천마가 되어야, 비로소 그가 살 수 있었다.

그렇기에 변수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다면 소교주님의 혈육을 찾는 일이 늦어집니다.”

“네 놈….”

“천마신교의 현 상태를 생각해보시길. 해는 지고 있고, 갈 길은 험합니다. 서두른다고 해도 모자를 터.”


“…….”

사마문은 부교주의 말에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한차례 멱살을 흔든 뒤, 손을  뿐. 부교주는 구겨진 옷깃을 정리하며 말했다.




“화검공자의 신변은 제가 정리해두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다.”

사마문은 살기가 느껴지는 말투로 대답했다. 부교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요재가 사마문 앞에 부복했다.


“소교주님, 저희 가문의 마차가 대기 중입니다.”


사마문은 그 말에 안내하라는 턱짓을 보냈다. 일어서서 멈춰선 마차로 향하는 요재. 사마문은 그녀를 따라가다, 고개를 돌려 말했다.


“독화를 건드리지 마라.”

“예, 기꺼이.”


부교주는 조소를 지으며 답했다. 사마문은 다시 요재의 등을 바라보며 걸어갔다. 그러다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위로 올리며 생각했다.

“청성의 애송이도 목숨만은 살려두고.”

“정이라도 드신 겁니까?”


“설마.”

부교주의 떠보는 듯한 말에 사마문은 고개를 내리고 웃었다.




“그 애송이의 얼굴이 배신감과 쾌락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기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데.”

“…하하. 여전하십니다.”

사마문은 그렇게 대답하며 요재를 따라 마차에 올랐다. 한 줄기의 말 울음소리를 뿌리며 마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교주는 그 광경을 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하….”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흑림총련주의 배를 지그시 밟았다.




“쿨럭, 컥, 크윽!”

“내가  숨어있으라 하지 않았나? 어쩌다 소교주한테 걸린 거지?”

“흐윽, 허억!”



흑림총련주가 물을 토해내며 정신을 차린다. 부교주는 몸을 기울이며 그의 눈을 마주한다. 그는 공포에 젖은 눈으로 뒷걸음질 치려고 했다. 그러나 부교주의 발은 태산같이 그의 몸을 눌렀다.



“기껏 살려놨더니….”

“당, 당가가 나를…!”

“…사천당가?”


“이상한, 이상한 놈들이었소. 회색의 옷을 입고, 부하들을 독살시키고, 흐으윽!”



부교주는 흑림총련주의 턱을 걷어차며 울부짖으려고 하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손으로 그의 입을 움켜쥐며 자신 쪽으로 당겨왔다.

“왜 자꾸 죽여 달라고 재촉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몸의 피를 빨아줄까?”


“읍, 으읍!”




흑림총련주가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부교주는 입을 틀어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며 고갯짓이 멈췄다.


“환요대주.”

“예.”




부교주의 부름에,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부교주는 흑림총련주를 내동댕이치며 말했다.


“독각혈가[毒角血家]는?”


“산양 목장 두 곳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음산한 자들이 환유요가[幻幽妖家]의 산양 목장이 오직 세 곳 뿐이라는 것은 모르지 않을 테고….”


“예. 산양 목장을 내줄 수 없다면, 가주님께서 데리고 계신 당혁을 넘겨달라는 전언을.”

부교주는 환요대주의 말에 혀를 찬다. 당가의 비의가 한 몸에 담긴 사천당가의 적통을 넘기고, 마도육가 중 한 곳이 사마문의 진영에 합류시키는 것. 겉보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거래 같지만, 실상은 달랐다.




“가주님. 당혁을 독각혈가에 넘긴다면, 필시 마도육가 중 첫 째가 될 겁니다.”

“알고 있다. 놈은 사천당가에서도 독을 다루던 제독전주. 독각혈가에게 엄청난 촉매가 될 것이야. 당혁만 가진다면 천마신교를 암중에 놓고 주무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당혁을 죽일까요?”

“아니지. 넘겨야지.”


부교주는 환요대주의 말을 부정했다.

“냉정하게 우리론  마귀새끼를 감당할 수도, 천마로 옹립할 수도 없다. 손이 하나  필요해.”


“그럼, 후의 일은 어떻게….”

“사천당가에 누가 있느냐?”

“누가 있느냐고 말씀하신다면…. 천하십강의 독무후와 구주십이천의 독천이 있습니다.”




부교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흑림총련주를 가리켰다.




“당혁을 넘겨라. 그리고 저 자에게 독각혈가의 병력을 쥐어줘.”


“증오를 던지시려는 거군요.”


“독은, 독으로 막으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



부교주는 그렇게 말하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정보는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게다. 독각혈가가 당소소를 죽이는 데 성공하면, 넌 청성파로 가서 운령을 죽여라. 사천의 환란은 내가 직접 일으키마.”


“그렇지만 당소소와 운령은 소교주님께서….”


“놈은 죽이는 데에만 재능이 있지, 모든 것이 서툴다. 아닌척하지만 놈은 그 하찮은 계집들과 정이 든 거야. 그런 사사로운 정은 끊어줘야 하는 법.”

그는 바닥에 새겨진 마차자국을 바라봤다.



“그 마귀가 오롯이 천마에 등극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게.”



*

여러 등불이 천장에 걸려있는 방안. 불빛은 약재를 수납하는 거대한 수납장과 독물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는 목함, 그리고  가운데에 놓인 침상을 비췄다.

돌을 깎아 만든 그 침상 위엔 당소소가 누워 있었다. 그 옆으로, 당진천과 독무후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그녀를 내려다봤다. 당진천의 얼굴엔 사천교류회에서조차 보이지 않았던 살기가 담뿍 담겨있었다.

“…….”

“일단 표정을 풀거라, 제자야. 단전의 거대한 독이 그 독을 중화시켜, 목숨엔 지장이 없으니.”


“백능상단이었나.”

당진천에겐 독무후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여윈 당소소의 뺨을 만졌다.

“모든 상인의 뱃속에 독을 쑤셔 넣고, 백진오의 모든 혈도를 비수로 틀어막아 흉수의 정체를 밝혀야겠구나. 그래도 흉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가주의 자리를 내려놓고 모든 사천의 무인들을 죽여주마.  맹세하겠다.”

“아니다. 그렇게 분노에 휘둘리는 것은 아니야, 진천아.”


“스승은 어째서 그렇게 평온하실 수 있으십니까? 소소가, 이 불쌍한 것이…!”


독무후는 당진천을 바라봤다. 당진천은 분노로 가득한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독무후는 당진천의 움켜쥔 주먹에 손을 올렸다.


“그 불쌍한 것이 너보다 야무지구나. 소소는 네가 그리 생각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 딴에는 백서희를 보호하려고 했던 모양인데, 그 아이의 음식까지 소소가 삼켜 혐의를 단정하게 어렵게 했었다. 뭐, 하나만 보고 둘은 보지 못하는 우리 귀여운 제자가 설마 그릇까지 생각하진 못했지만.”

“말씀대로, 소소의 그릇에선 독이 발견되고 백서희의 그릇에선 독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우선 그녀를 추궁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백능상단을 쳐서 흉수를…!”


“이 바보 같은 놈이!”


독무후는 벽력같은 소리로 당진천을 꾸짖으며 그의 주먹을  손에 힘을 주었다. 그 괴력에서 느껴지는 독무후의 억누른 분노. 당진천의 분노가 잠시 창궐을 멈췄다.



“네 딸이 그 아이를 보호해 달라 청한 게야. 아직도 모르겠느냐?”

“…….”


“네 딸은 뛰어난 무재나 오성은 없지만, 현명한 아이야.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아이란 말이야. 진정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아이가 아는 것을 네가 모르는 척 할 셈이냐?”


독무후는 당진천이 잠잠해지자 그의 주먹에서 손을 뗐다.



“곧 어떤 독인지 밝혀진다. 그때 행동해도 늦지 않아.”

“…이미 늦었습니다.”

“네 딸은 살아있고, 독의 정체도  밝혀진다. 녹풍대가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니 진정하라고 하잖니.”

“딸을 돌보긴 너무 늦었단 말입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집을 돌보지 못해서, 오직 공명심에 미쳐서….”




독무후는 고개를 저으며 당진천의 손등을 가볍게 때렸다.

“그런 네 딸이 원했던 요청을 들어줄 생각은 없는 게냐?”

“…….”

당진천은 독무후의 아쉬움을 담은 물음에 자책을 멈췄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방을 빠져나갔다.

독무후는 그런 당진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수납함으로 걸어갔다.



“나찰염[羅刹鹽]. 마교의 독각혈가인가.”



독무후는 서랍하나를 열며 그 안에 들어있는 잿빛의 가루들을 바라본다. 그런 그녀의 옆으로 노인  명이 다가왔다. 황철이었다.


“진정하시지요, 오독문주님.”

“독무후.”

“독무후님, 아직 세간에 정체를 드러내선….”


“옛 악우들에게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 정돈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뇌기가 그 수납함을 불사르고, 잿빛의 가루를 움켜쥔다.

“…살살하시지요.”

 뇌기를 바라본 황철은, 그녀의 온몸에서 넘실거리는 분노를 막을 생각을 조용히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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