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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화 〉십이장[十二章], 황혼지영[黃昏之影] 4 (77/130)



〈 77화 〉십이장[十二章], 황혼지영[黃昏之影] 4

“나찰염은 어떤 독인가요?”




백서희가 당진천에게 물었다. 당진천은 백서희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교의 특정집단이 자주 쓰는 독이네. 기승을 부리던 것은 약 삼십 여 년 전. 아버지가 가장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이자, 당가가 정파로 인정받게  이유 중 하나지.”

“마교….”


“인간의 몸을 해하는 것은 같지만, 꽤 독특한 성질의 독이야.”

“독특하다면, 어떤?”



당진천은 난감하다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람 내부에 있는 마성[魔性]을 자극하거든.”

“마성이요?”


“영혼은 세 요소로 나뉘어져 있다. 혼, 귀, 백. 백은 본능이고, 귀는 기억과 감정. 그리고 혼은 이것을 이끄는 이성이지.”

“사문에서 듣긴 했던  같아요.”

“뭐, 기억해두는 것이 좋을 게다. 상승무공의 기초니까.”


백서희는 당진천의 대수롭지 않은 듯 지나가는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 당진천은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혼이 귀를 이끌고 귀는 백을 이끈다. 하지만, 혼은 귀에 영향을 받고, 귀는 백에 영향을 받지.”

“이성은 기억에 영향을 받고, 기억은 결국 육체의 본능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거군요.”

“정확하네. 그리고 그 육체의 본능은 주변 환경이 길러주는 셈이야. 몸가짐, 충동, 태도, 말투 같은 것들. 나찰염은 육체의 성분을 조작해, 그 본능들 중 나쁜 욕구들을 증폭시킨다.”

백서희는 당진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볼을 긁었다. 당진천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꽤 심각한 상황이었으니까.

“그, 따님께선….”

“왜 그러지?”

“걱정하지 마십쇼. 독무후께서 직접 독기를 치료하고, 몸과 마음에 이상이 없다 말씀하셨으니.”




황철이 백서희의 걱정을 짐작한다는 듯, 당소소의 완치를 설명해왔다. 당진천도 고개를 끄덕이며 황철의 말을 도왔다.


“나 또한 걱정된다만, 스승님께선 거짓을 말하시지 않으시니 너 또한 마음을 편히 먹거라.”


“예.”

백서희는 당진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주전의 문을 바라봤다.




“정말이겠죠…?”

그 곳엔, 잔뜩 인상을 구긴 당소소가 서있었다. 심술이 가득해 보이는 그 얼굴은, 백서희의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이었다.




*




당소소는 산발인 머리를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쿡쿡 쑤시는 단전이 신경을 긁는 것을 빼면, 딱히 몸에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당소소는 짜증 섞인 한숨을 쉬며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기감은 혈맥과 단전을 훑었다. 호흡은 단전에 깃든 만류귀원신공의 쌀알을 움직이게 했다.

‘이상은…. 없네.’




단전과 합쳐진 뇌린은루가 조금 과열되었을 뿐, 백금을 씌운 혈맥은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당소소는 호흡을 거두고 이불을 걷었다. 정신을 잃던 와중 흘렸던 땀 때문인지, 얇고 하얀 옷에선 톡 쏘는 땀 냄새가 풍겼다.

“…뭐야.”




그 누구보다  냄새와 친했던 당소소인 터라 별 생각이 없어야 했건만, 묘하게 짜증이 났다. 당소소는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요.”

“예.”




다소 격양된 당소소의 부름에, 황급히 시녀가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당소소는 자신의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갈아입을 옷 좀 가져다주세요.”


“예. 무사히 깨어나셔서 다행입니다.”


“…….”




살갑게 대하는 시녀. 당소소는 그런 시녀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리고 새끼손가락으로 눈썹을 긁으며 말했다.


“잠깐만요.”


“네, 넷!”


시녀는 축 내려앉은 당소소의 목소리에 바짝 긴장을 하며 대답했다. 당가에 공공연한 비밀인 당소소의 기억상실. 언제든 기억이 돌아올 수 있다는 공포감이 모든 식솔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시녀는 고개를 더욱 깊이 숙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고야, 하필 나냐.’




기억을 잃을 당시처럼 독을 치료를 받은 당소소. 그리고 짜증 섞인 표정, 위압적인 목소리. 시녀는 당소소가 기억을 되찾았다는 생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당소소는 천천히 시녀에게 다가갔다. 시녀는 그녀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움츠러들었다. 당소소는 시녀에게 손을 뻗었다.



“히, 히익!”


“당가의 시녀가, 이런 꼴을 하고 다니면 써요?”


당소소는 시녀의 어깨를 툭툭 털어 옷에 얽혀있는 거미줄을 털어냈다. 시녀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제독전을 청소하던 와중인지라, 미처 인지를 하지 못했습니다.”

“머리도 헝클어졌네.”


당소소는 가벼운 손길로 잔머리가 튀어나온 시녀의 머리를 툭툭 쳤다. 시녀는 황급히 머리에 손을 가져다댔다. 당소소는 그런 시녀의 팔을  치며 말했다.


“그렇게 하면 오래 걸리잖아요. 이리 내세요.”


당소소는 능숙한 손길로 시녀의 머리를 다시 동여매주었다. 그리고 혀를 차며, 어서 나가보라는 턱짓을 했다. 시녀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당소소는 무언가 짜증난다는 얼굴로 다시 침상에 앉았다.


‘뭐지, 뭔가 이상한데.  이렇게 짜증이 나지.’




당소소는 무언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단전을 쿡쿡 찌르는 고통은 다른 생각을 하기 힘들게 했다. 그저 심술궂은 얼굴로 입을  내밀고 있을 뿐.



“아가씨, 갈아입을 옷을 가져왔습니다.”

시녀가 간단한 옷을 가지고 들어오자, 당소소는 자리에서 일어나 빼앗아들 듯 옷을 받았다. 그럭저럭 어울리는 색조와, 그렇지 않은 옷의 형태. 짜증이 팍 솟았으나, 당소소는 불만스런 한숨을  쉬고 갈아입을 뿐이었다. 쓰러지기 직전까진 이런 옷을 선호했었으니까.

“무언가 마음에 안 드시는지…?”


“…아니에요.”



하지만 잔뜩 심통이 난 목소리는 그렇지 않다는 듯 들렸다. 당소소는 익숙한 손길로 옷의 매듭을 매고, 시녀의 옷을 바라봤다. 평범한 당가의 시녀복이었지만, 어쩐지 색이 바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옷은 됐고, 그 옷.”

“네, 네? 제 옷이요? 분명 제대로 입었는데. 죄송합니다…!”

“낡았잖아요. 하연에게 말해서 새 거 받아 입으세요.”



팍 짜증을 내며 당소소는 병상을 벗어났다. 시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당소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병상을 나선 당소소는 제독전의 복도를 익숙한  걸으며 고개를 저었다. 툭 튀어나온 입을 집어넣진 않았지만.



“왜 이렇게 열 받지?”

당소소는 가늘게  눈으로 복도를 훑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원래 몸이 갖고 있던 불쾌한 기억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소소는 산발이  머리를 매만지며 혼잣말을 했다.


“에휴, 머리도 엉망이네.”

당소소는 한숨을 푹 쉬며 제독전을 벗어나 외각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외각과 내각 사이에 있는 연무장에서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나 진짜 이러다 죽는  아니냐?”

“형님, 그러다가 진짜 단혼사 영감님에게 죽으실 수도 있소. 빨리 일어나는 게 신상에 좋을 듯싶은데.”

“쯧쯧. 왕오 이놈아, 네 말을 들을 아해였으면 이 고생을 하고 있겠느냐? 그러게 조용히 살라니까, 아가씨의 분냄새에 취해선. 에잉!”

“흑규야. 나 주먹하나 믿고 살아온 놈이야. 여기 쌍괴파아닌거 서로 알잖아. 그렇지? 자꾸 긁지마. 서로 조심하자고, 응?”

당소소는 홀린 듯 연무장입구로 가서 팔짱을 끼고 문턱에 몸을 기댔다. 다른 흑풍대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진명과 왕오, 흑규만이 남아 바닥에 팔다리를 쭉 펴고 누워 있었다. 당소소는 흥미가 돋는다는 듯, 콧소리를 내며 그 셋을 지켜봤다.



“내 말이 틀렸냐? 여자한테 꽂혀서 인생 망치는 건 예로부터 박복한 놈들 몫이라더니!”

“하, 참. 몇  참고 넘어가주니까 계속 긁네. 여기 우리  명밖에 없어. 목격자도 없다고.  이성 잃어, 진짜로.”

“어, 그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서로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리는 흑규와 진명. 왕오는 말을 더듬으며 당소소와 눈을 마주쳤다. 당소소는 손가락을 입술에 올리며 침묵하라는 의사를 보냈다. 왕오는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명은 침을 튀겨가며 흑규를 향해 말했다.



“제일 먼저 아가씨를 납치하자고 했던  누군데, 인생이 꼬인 게 누구 때문인데! 어휴 진짜 이놈의 아가씨, 어디 못 가게 묶어놓던가 해야지.”

“…….”

“뭐야,  아무 말도  해? 쌍괴파에서 날 고생시킨 생각이 솔솔 들지 이제?  땡깡을 받아 주던 나에 대한 존경심이 이제야 들어?”



진명은 낄낄거리며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봤다. 분명 푸른 하늘이 보여야 할 시야엔, 잔뜩 심통이 나있는 자신의 주인이 있었다. 진명은 눈을 깜빡이며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잔뜩 내리깐 음성으로 말했다.

“다행입니다. 건강엔 이상이 없으시군요.”


“인생이 꼬였다.”


“아, 그게. 그런 게 아니라.”




진명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했다. 당소소는 손가락을 휘휘 저으며 웃었다.


“아니, 아니야. 괜찮아.”



당소소는 그렇게 대답하며 허리를 숙여 흩어진 진명의 옷깃을 만져줬다. 진명은 턱을 위로 당기며 잔뜩 긴장했다. 당소소는 그런 진명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싫어?”

“아니, 아닙니다! 절대 아니죠. 암!”


축축한 눈가를 끌어올리며 바라보는 시선. 진명은 필사적으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 숙연해진 분위기에, 당소소는 배를 움켜쥐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핫! 표정 좀 봐!”

“…예?”


“내가 설마 진짜 화났겠어? 난 이런 반항적인  좋아해.”

당소소는 진명의 가슴팍을 툭툭 치며 콧노래를 부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넋이 나간 표정을 짓는 진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냄새나.”

“아니, 그. 방금 훈련을 한 터라.”


“촌스러워.”


“어….”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얌전히 앉아있는 왕오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미묘한 촉감. 당소소는 자신도 모르게 왕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반짝아.”


“옛, 예? 저 말씀하시는 겁니까?”

“여기  말고 누가 반짝이겠니.”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왕오의 머리에서 손을 땠다. 그리고, 눈치를 보며 슬슬 자리를 피하는 흑규의 소매를 슬며시 잡았다. 흑규는 벼락을 맞은 듯, 자리에 멈춰서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흠흠! 무슨 일이신지요?”

“이 사람 잘 타일러서 나한테 보고해. 예전부터 영 밉상이란 말이야.”


“타이르라시면…?”

왕오의 물음에, 당소소는 영악한 웃음을 지으며 흑규의 소매를 놓았다. 그리고 흑규를 향해 눈짓했다. 왕오는 짙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소소는 왕오의 수긍을 받아내자, 진명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진명.”


“예, 예?”




아직도 눈가를 적신 당소소의 얼굴을 잊어버리지 못하던 진명은 화들짝 놀라며 당소소의 부름에 대답했다. 당소소는 진명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얼굴이 못생기면, 옷이라도 신경 쓰고 향기라도 신경 써야지. 안 그래?”

“아니, 저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에이.”

당소소는 진심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일 당장 하연한테 가서 다듬어. 알았어? 옷도 새로 사 줄 테니까, 그거 입고. 어떻게 훈련복도 그렇게 촌스러울 수 있어?”

“그래도  얼굴 정도면…?”


“너 정말 그 꼴로 내 부하를 자청할 수 있어?”

당소소는 으르렁거리며 말하자, 진명은 입술을 집어넣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 문제시 되는 것도 유명한 사파의 말썽꾸러기였기에 전면에 나설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으니까. 당소소는 고분고분해진 진명을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그러니까 잘하자, 응?”


“예에….”


“짜증나게 하지 말고.”



당소소는 싸늘해진 표정으로 연무장을 떠났다. 성큼성큼 걷던 평소와는 다르게, 도도한 걸음걸이는 아가씨의 표본인 듯 했다.

마치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듯, 만신창이가 된 분위기는 도저히 수습할 수가 없었다. 진명은 눈을 깜빡거리며 떠난 당소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흑규도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코를 후비곤 말했다.



“원래 저런 변덕이 죽 끓듯 하던 성격이었나?”


“아닐걸. 아마.”


진명은 홀린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퍼뜩 정신을 차리며 흑규를 바라봤다. 흑규는 어깨를 으쓱 하며 왜 바라보냐는 태도를 취했다. 진명은 짙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가 내려 주신 명이 있었지.”

흑규는 코를 후비던 손을 멈추고, 장난감을 앞에 둔 악동의 모습을 한 진명을 바라봤다.




*



당소소는 홀가분해진 얼굴로 독봉당의 입구로 들어갔다. 화색을 띠며 맞이하는 시녀와 하인들. 당소소는 또 다시 이유모를 짜증이 솟구쳤다.

“다행입니다. 아가씨. 별 탈이 없으시군요.”

“아이, 씨!”

“예…?”

“아니에요.”




시녀와 하인들이 당소소의 발언에 긴장했다. 당소소는 잔뜩 심통이 난 걸음걸이로 돌길을 콱콱 밟으며 걸어 나갔다. 그러다 도저히 참지 못하는 짜증이 당소소의 인내를 끊어버렸다.

“이봐요.”
“네, 아가씨….”




분노 섞인 당소소의 지명에 시녀가 잔뜩 움츠러들어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언제 기억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당가 내부의 소문은, 독봉당 시녀들의 마음속에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당소소는 미간을 콱 구기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월급 얼마 받아요.”

“예?”


“머리가 지금 푸석푸석하잖아. 피부도 그렇고.”



당소소는 시녀의 갈라진 머리끝을 매만지며 짜증을 냈다. 그리고 그녀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시녀가 그 손길에 겁을 집어먹으며 움츠러들었다.

“…….”


“흣, 죄송합니다. 아가씨!”



당소소는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그리고 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주의해요. 부족한  있으면 숨기지 말고 말하고.”

“죄송합니다, 아가씨. 좀 더 주의를….”

“됐어!”



당소소는 버럭 화를 내며 침소 안으로 휙 들어갔다. 변덕스런 그녀의 태도에, 시녀와 하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러시지?”

“성정이 뒤바뀌어도 온화하신 그대로니, 상관없잖아.”

“또 자기가 나쁜 짓을 했다며 겁먹으시고 화내시는 거겠지. 일이나 해.”



하지만 금세 일상으로 돌아가 업무를 수행했다. 그녀가 이상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오히려, 결혼을 하겠다며 가문을 뒤집고 갑작스레 납치되며 사천교류회에서 천괴와 학귀를 퇴치했다던 지금이 더 수상한 아가씨였으니까.



“아이, 씨!”

또 무언가 짜증이 나는 듯, 당소소의 고함소리가 시녀와 하인들에게 들려온다. 시녀와 하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방금 겁을 집어 먹었던 시녀가 고개를 끄덕이곤 당소소의 침소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아가씨.”

“아니, 가주전으로 가야하는데. 이 머리가. 그러니까. 아이, 참. 에이, 씨.”

당소소는 울상이  채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산발이 된 머리는 좀처럼 곱게 빗어지질 않았다. 평소 같았다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산발로 다녔을 터였다. 그러다가 하연에게 붙잡혀서 강제로 머리를 다듬어지는 게 일상이었다.  손으로 하려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해드릴게요, 아가씨.”


시녀는 그 모습에 살포시 웃으며 당소소의 빗을 받아들어 머리를 빗겨주었다. 당소소는 그 손길을 받아들이며 말했다.




“무슨 이상이 있으면 바로 말하세요? 혼쭐을 내기 전에.”


“별 이상이 없는 걸요. 아가씨가 얼마나 후하게 대우해주시는데요. 그냥 잠을 뒤척이다 그런 것일 뿐.”

“내, 내가 뭘.”

당소소는 어색하게 대꾸하며 깨진 동경을 통해 자신을 바라봤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외모였다. 시녀가 금색의 비녀를 집어 당소소의 머리를 고정시키고 손을 땠다.

“괜찮으신지요?”


“그럭저럭. 나쁘진 않은  같네.”



당소소는 그렇게 대답하며 자신의 비녀를 매만졌다.




“그럼 이제 아빠를 좀 만나고 와야겠어.”

당소소는 표정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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