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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화 〉십이장[十二章], 황혼지영[黃昏之影] 5 (78/130)



〈 78화 〉십이장[十二章], 황혼지영[黃昏之影] 5

“다행입니다, 아가씨. 무사….”


“그래요.”


“어디 편찮으시진…?”

“괜찮아요.”

당소소는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대꾸하며 가주전으로 향했다. 단답형의 대답이 꽤나 쌀쌀맞았지만, 이유를 알  없는 속의 열화를 겨우 짓누르고 던진 대답이었다. 마음같아선 당장이라도 멈춰서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짜증나.’

감정을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뇌린은루가 끓어오르며 단전의 통증이 진해졌다. 당소소는 입가를 비틀며 가슴속의 울화와 단전의 통증을 겨우 참아냈다. 그리고 걸음을 멈춰, 뜨거운 숨을 뱉는다.

“하, 미치겠네.”




당소소가 숨을 뱉자, 채 억누르지 못한 감정이 그녀의 머리에 기억을 쑤셔 넣었다. 당청의 묵인아래에 자신을 업신여기던 하인들. 자신을 건성으로 돌보던 시녀들. 당소소의 눈가가 움찔거렸다.




‘…정말 아가씨도 속이 없지.’

‘칠칠맞지 못한 거 봐.’

‘성질머리하곤.’


당소소는 눈을 감았다. 숨을 들이키며 기억과 덜어내고, 내쉬며 감정을 밀어낸다. 그리고 자신의 묘하게 여성스러워진 태도와 몸가짐을 인지했다.


몸에 배인 습성이 되살아나고, 감정이 들불처럼 일어나 이성을 태우려고 들고 있었다. 이 들불에 휘말리면, 예전 당소소처럼 행동을 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솟아났다. 그녀는 주먹을 쥐어 힘겹게 정신을 차렸다.



‘아빠…, 아니. 아버지한테 가면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환한 안색으로 자신을 맞아주는 사람들을 무시했다. 단답으로 대꾸해주는 것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입을 열었다간, 남을 책잡는 말을 쏟아낼 것 같았기에.


당소소는 가주전의 입구에 서서 숨을 골랐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도 한계에 달했기에.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당소소는 발을 동동 구르며 감정을 토해냈다. 그리고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백서희. 꾹 누르고 있던 이성의 손을 젖히고 감정이 솟구쳤다.

선명한 색의 질투와 증오.


표정이 일그러진다. 당소소는 바짝 말라가는 입술을 적시며 고개를 돌렸다. 목이 바짝 타는 기분이었다. 그런 그녀의 곁으로 시녀 한명이 쪼르르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다행입니다, 아가씨. 병상에서 일어나신지 얼마 되지 않아 걱정했습니다.”

“…….”

살갑게 자신을 대하는 시녀. 당소소의 시선엔 반가운 표정을 짓는 그녀의 얼굴 대신, 그 주변에 있는 그녀의 흠결이 밟혔다.  톨이 어긋난 매듭, 채 펴지 못한 눈에 띄지 않는 옷주름.  더 깊이 숙이지 않은 고개의 각도. 미약하게 어긋난 두 발의 위치 등등.


“하아.”


당소소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피했다. 시녀는 평소와는 다른 기색의 당소소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편한 것이 있으신지요?”


“없어!”



당소소는 고함을 지르며 대꾸했다. 시녀가 몸을 흠칫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백서희의 눈길에 담긴 반가움은 의심으로 바뀌어 물결쳤다. 당소소의 고함소리에 당진천이 고개를 돌려 당소소를 바라봤다. 더 이상 시선을 둘 곳이 없던 당소소도, 당진천의 시선을 마주했다.


“으윽.”



당소소는 가슴께에 손을 올리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움, 미움. 선망, 증오. 온갖 감정이 모순을 일으키며 당소소의 마음을 괴롭게 했다.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맷돌처럼 맞물려 이성을 갈아내고 있었다. 당소소는 당진천을 바라보고 나서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건 당소소의 감정과 기억이구나.’



육신에 남은 과거의 상흔을 잠시 더듬는 것이기에 자각할 새도 없이 스쳐지나가는 발작과는 달랐다. 잊고 있었던 사실을 회상하는 것에 가까운 것이었다. 원작의 그녀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당소소 자신이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뭐야. 가는 거야?’

당소소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당진천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당소소가 겪었던 기억이 그려진다. 그리움이 마음을 꽉 움켜쥐었다.




‘소소야. 잠시 무림맹의 일을 보러 가야겠구나.’

‘가든지 말든지…. 언제부터  말을 그렇게 잘 들어줬다고.’


미움.

당진천은 당소소의 뺨을 쓰다듬기 위해 손을 가져다 댔다. 당소소는 당진천의 손을 쳐내며 그를 노려봤다.



‘…빨리 돌아오마.’


‘흥.’

그리움.

당진천이 멀어진다. 당소소는 멀어져가는 당진천을 바라보며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 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틱틱대는 것일까. 유일하게  집에서 자신을 좋게 봐주는 사람은 그 뿐인데. 이유를 생각한다.



‘난 폐품이니까.’


체념.


누구에겐 어머니를 죽인 원수취급을 받고, 누구에겐 실험을. 누구에겐 그저 정략결혼의 도구로. 무의 재능, 상인의 재능, 대장장이의 재능, 학자의 재능. 온갖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 어떤 곳에도 재능이 없었다. 그저, 물려받은 미모 하나.

그러나 독화라 불릴법한 미모 또한 시달림을 받아 시들고 있었다. 당진천을 그리워하며 가까이 다가가면, 괴롭힘은  심해진다. 그래서 멀어지려 애쓴다. 하지만  고독을 달래  사람은 당진천 뿐이었기에, 다시 다가가고 괴롭힘을 받는다.


‘내가 떨어져 나간다면. 오물인 내가 떨어져 나간다면. 아버지는  잘 될 거야. 당가의 자랑이시잖아. 난 당가의 수치라고 그랬어.’


선망.

자신이 멈춰 서자 당진천이 다가온다. 항상 원하던 손길이었다. 하지만 당소소는 그 손길을 밀쳐낸다.

‘맹의 일이 끝나서 돌아왔단다, 소소야. 한번 안아보자꾸나.’

‘저리가. 꼰대.’

‘꼬, 꼰대…?’


‘아니면 아저씨라고 부를까? 언제부터  그렇게 위했다고.’




당진천의 손이 아래로 내려간다. 멀어진다. 당소소는 주저앉는다.


여긴 어두운 늪이었다.

허우적거려도 잡히는 것은 나태와 자괴가 엉킨 진흙뿐. 구해줄 이가 없기에, 이내 모든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아래로,  아래로.

이성은 수렁에 잠긴다.



“…….”



서글서글하던 당소소의 눈빛이 일변한다. 새초롬한 눈빛은 공격적으로 시녀를 바라봤다. 시녀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당소소는 미세하게 어긋난 매듭을 잡고, 살짝 끌어당겨 조정한다.

“정신 차리세요.”

“네, 넷…! 죄송합니다.”


“그리고….”


당소소는 핀잔을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평소와 같이. 하지만 어째서인지, 내키지 않았다. 당소소는 핀잔을 주는 대신,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어깨에 주름진 부분을 툭툭 털었다.



“…아니에요.”


당소소는 움츠러든 시녀를 지나친다. 그리고 고까운 얼굴을 하며 백서희의 앞에 섰다. 백서희는 침을 삼키며 당소소에게 말했다.


“몸은 좀 어떤….”

“아빠.”


당소소는 그런 백서희를 무시하며 당진천을 부른다. 당진천은 자신을 아빠라 부르는 당소소에게 당황하며 말했다.




“딸아,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어찌나 걱정했는지 모른단다.”



그렇게 말하며 당소소에게 다가가는 당진천. 당소소는 안색을 뒤바꾸며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당진천은 당소소의 차가운 응대에 발걸음을 멈췄다.


“딸아…?”

“일단 얘를 다른 곳으로 보내.”

당소소는 차가운 눈길로 백서희를 바라본다. 백서희는 익숙한 표정의 당소소를 바라보며 당진천에게 묻는다.




“이건 그, 나찰염의 부작용이 아닌지….”

“나가. 어서 내  앞에서 사라지라고. 제발.”



당소소는 백서희를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더 쏟아내고 싶은 말들은 많았다. 비꼬고 싶은 말도, 질투하고 싶은 마음도 많았다. 하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선 눈앞에서 치워두고 싶었다. 당진천은 황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해독하지 못한 부분이 있나보군.”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황철. 백능상단의 사신을 객실로 모시거라.”



황철은 의문을 가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백서희를 가주전 바깥으로 안내했다. 백서희는 계속 뒤를 돌아보며 당소소를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묻고 싶은 말도 많았는데. 어처구니없이 지금의 당소소가 사라진다면….’

“저기. 한 마디만. 한 마디만 하게 해주세요.”

“일단은 가시지요. 가주님의 명입니다.”


미련이 남는 말투. 하지만 황철은 길을 재촉한다. 결국 백서희는 하릴없이 가주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당소소는 백서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의문을 가졌다.



‘내가 왜  계집애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안심하는 거지?’

그 의문은 오래가진 않았다. 당진천이 다가와 당소소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당소소는 입을 열어 당진천을 밀어내려고 했다.

“저리가. 꼬, 꼰대.”

“…….”



당진천은 충격을 받아 입을 뻐끔거렸다. 당소소는 눈을 찌푸리며 단어를 선정했다.


“아저씨?”


“…이리 와보아라.”



당진천의 나지막한 말. 하지만 당소소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당진천은 잔뜩 경계하는 당소소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과거의 당소소의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은 나찰염의 영향이 분명했기에.




“지금 넌 독에 중독되어 있단다. 금방 해독을 해줄 테니, 이리 와서 치료를 받거라.”


“금방…?”


“그래, 금방.”


“항상 금방 온다고 했잖아. 그런데 금방 안 왔잖아.”



당소소는 갑작스레 울먹이며 당진천을 바라봤다. 당진천은 손을 뻗다가 얼굴이 굳었다.

“너….”


“가까이 오지 마. 싫어.”

“…….”


“아니, 싫은 건 아닌데. 그래도 가까이 오진 마.”


당소소는 울적해진 당진천의 얼굴을 보며 횡설수설했다. 당진천은 뻗은 손을 거두고 당소소를 바라본다. 안쓰러움을 담은 당진천의 얼굴을 보며, 당소소의 희미하던 기억이 짙어진다.


“난 멍청해. 나도 알아.”


“아니란다.”

“하지만 이런 멍청한 나도 당시의 당가가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고 있어. 아빠…. 아니, 아저씨가 해야  일이 많았던 것도 알고 있어.”

“그건….”



당진천은 부정하지 못했다. 자신의 부모님의 금슬은 좋았으나 후계는 자신 한 명뿐이었다. 스승은 행방불명. 그렇기에 직계자손만이 맡을 수 있는 제독전과 연철전의 수장 또한 자신이 맡아야 했었다. 업무는 과중되고, 자신 혼자의 힘만으론 당가의 덩치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내부의 일에 치이고, 외압에 치인다. 그리고 당가가 흔들리는 낌새가 보이니 장로들이 불편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역의 유지인 독고씨의 장녀와 결혼했다. 오랫동안 후사가 생기지 않아, 둘째부인을 들인다.

그리고 둘째부인을 들이자마자 일들은 순풍을  듯 흘러갔다. 당청과 당혁이 태어나고, 곧이어 당회가 태어났다. 과중됐던 업무들이 한층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지역의 유지인 독고씨는 장로들을 쉬이 달랠 수 있었다.

그렇게 되고 나니,  보지 못했던 것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다른 것들은 넘길 수 있었단다. 하지만 폐쇄적인 성향을 유지하며 제 갈길 만을 가게 되었으면, 당가는 아마 멸문을 했을 지도 모른단다. 과거에 쌓았던 어둠이 갖은 오해들과 질투, 시기를 불러왔겠지.”

“알고 있다고!”



당소소는 소리를 지르며 숨을 헐떡인다.


“아저씨는…, 아빠는. 큰일을 할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어. 그래서 폐품인 나를 멀리했던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난…. 그래도 좋았어. 아빠가 잘되니까. 그게 내 유일한 소원이 되었으니까. 원망스럽긴 했지만….”

당진천이 큰 소리로 부정하지만, 당소소는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썩 괜찮았어.”


“그게 아니란다, 소소야. 나는 너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난 절대로 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단다.”

“잊진 않았다는 것을 알아. 알고 있어. 아주 잘.”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가문은 위태로웠고, 해야  일은 많았어. 그래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는  알고 있어. 오히려 괜찮았는걸. 아빠가 잘 되는 건 내 유일한 소원이라고 했었잖아?  그게 좋았어. 그런데 있잖아.”

당진천은 그녀의 눈물에 아무런 말도  수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일모도원[日暮途遠], 도행역시[倒行逆施].


길은 멀었고 위기는 경각이었으니,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았으나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당소소의 모습은 그런 자신의 죄업이었다. 막연하게 자식들을 믿고 가문을 내버려둔 결과.


당소소는 말을 잃은 당진천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알고 있는데도 외로운 건 참을 수 없었더라고.”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미안하지 않아도 돼. 다만…. 응.”




당소소는 당진천을 올려다봤다. 애써 지은 서글픈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걸려있었다.


“내가 외로웠다는 것. 그것만 기억한다면.”

“딸아….”


“아저씨. 정말 이런 걸로….”



당진천은 당소소를 끌어안아주었다. 그 손길을 거부하진 않았다. 하지만,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아니다.”



당소소는 원망하는 마음을 더 토해낼까 생각했다. 하지만 내키지 않았다. 당소소는 그 이유는 왜 일지 고민을 했다. 외로움을 거부하는 욕망에 충동된 당소소의 감정. 아버지를, 당가의 모든 이를 증오하는 감정에 휘둘리는 이성.


 휘둘리기만 하는 이성이었다. 소심하고, 어리석은 마음. 너무 어리석어서, 제대로 증오해야할 대상에게 조차 증오를 품지 않는 그 마음. 그 마음이 감정의 소매를 잡고 고개를 젓고 있었다.

감정은 순순히 멈췄다. 진득이 뭉쳐있던 감정들이 토해내진 탓이었다. 당소소가 말했다.

“내 길도 험해, 아빠.”

“…알고 있단다.”


“날도 저물고 있어.”

“그렇구나.”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은 푸르른 하늘이었지만, 해가 서쪽으로 걸어가며 날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품안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외로움을 타던 욕망은 잠시 느슨해진다. 증오를 품던 감정도 손에서 이성을 잠시 놓아준다.


그러자 자신이 가야할 길이 떠올랐다. 비극을 희극으로 써야하는 일.  완벽한 주인공이 신경쓰지 못한 비극을 거두는 일. 당진천이 맡았던 당가가 가야 했을 길처럼 멀었다. 시간은 그보다 촉박했다. 하지만, 집은 따스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 싶었다.  온기가 당소소와 김수환이 바라는 모든 것이었으니까.


당소소는 팔로 당진천을 밀어냈다. 당진천은 동정의 눈빛으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그러니 서둘러야해. 이게  새로운 소원이야.”

“…넌 이제 걷지 않아도 된단다. 편히 쉬게 해주마.”



당진천은 당소소에게 아쉬운 손길을 내민다. 그녀가 무슨 길을 서두르려는 건지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상태의 길인지는 알  있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속죄하고, 자신을 증오하는 이들을 구원하는 길. 돌부리가 가득한 험로였다.


“알아. 서두를 수 없을 정도로 내가 못난 거.”

“아니란다. 제발. 자신을 깎아내리지 말거라.”



당소소는 당진천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그릇은 주연이 되기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기엔, 아쉽게도 세상은 혼란스러워  것이다. 이렇게 밝고 따스한 만큼, 춥고 어두운 것은 올 수 밖에 없었다.


대게 이야기는 갈등이 없인 전개되기가 어려웠으니까.




“이치에 맞지 않더라도.”




당소소는 결의에  표정으로 당진천을 바라봤다.


“그래도  가야해.”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배를 움켜쥐었다. 단전의 고통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당진천은 기겁하며 당소소를 업었다.



“일단 몸에 남은 독기를 빼자꾸나. 제독전으로 가야겠다.”

“아빠.”

당소소는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길이 많이많이 험해.”


“…그렇다면 가지 말거라.”

“하지만 나만 걸을 수 있는 길인걸.”


“그래도.”

“콱 아저씨라고 불러버린다?”



당소소가 나른한 음성으로 경고했다. 당진천이 아무런 말이 없자, 당소소는 힘 빠진 웃음을 뱉으며 축 늘어졌다.

“그러니까 연회 꼭  거야….”


“…내가  어찌 말리겠느냐.”



당진천은 고개를 저으며 움직였다.


서쪽으로 기운 해는 둘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늘어진 그림자는 곧, 빛인지 어둠인지   없는 모호한 황혼에 녹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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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독심[一片毒心] - 십이장[十二章], 황혼지영[黃昏之影] 완[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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