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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화 〉십삼장[十三章], 불이불조[不餌不釣] 1 (79/130)



〈 79화 〉십삼장[十三章], 불이불조[不餌不釣] 1

찌가 움직이질 않는다. 물고기도 먼 곳에서 휘적휘적 유영할 뿐이었다.


낚시대를 쥔 손을 놓고 강가에 떡밥을 던진다.


떡밥이 없다면 물고기가 몰리지 않는 법이니.

이윽고, 낚싯바늘을 무시하던 놈들의 지느러미가 움직인다.

*


당소소는 또 다시 침상에서 일어났다. 독봉당의 침소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당소소. 별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당소소는 안도하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런 씨발, 대체 내가 무슨 짓거리를?’



머리카락을 혹사시키며 과거의 기억을 잊어보려고 했지만, 마치 방금 전인 것처럼 생생했다. 감정에 휘둘려 시녀와 하인들에게 틱틱대는 모습, 진명에게 장난을 치던 모습. 옛 일을 떠올리며 백서희에게 막연한 증오를 보내던 모습, 당진천에게 어리광을 부리던 모습.



‘나이가  살인데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참았어야했는데.’


당소소는 숨을 크게 뱉으며 부끄러운 감정을 희석시키려 노력했다. 다행인 점은, 더 이상 단전이 부글거리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다는 것이었다. 별다른 변화도 없는 것 같았다. 의식적으로 태도를 점검해보았을 때, 여성스러운 태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김수환의 이성을 깔고 앉은 당소소의 감정 또한 잠잠해졌다.

‘산책이라도 해야겠어. 지금 몇 시지?’

당소소는 옷장을 열어 외투를 걸치며 창문을 열었다. 아침이 오기 전, 군청색 새벽이 드리워진 하늘이었다. 내뱉는 숨결에 김이 뿜어진다. 시선에 닿는 솔잎들엔 서리가 내려앉아있었다.

완연한 가을의 아침.


당소소는 새벽같이 출근해 기름통으로 만든 화로에 손을 녹이던 때를 떠올린다. 제아무리 당소소로 살아간다고 다짐을 했어도, 그녀에겐 편히 쉬는 것이 어색한 일이었다. 당소소는 외투를 여미며 침소를 나섰다.



“누워계시지요.”


“으악! 누, 누구야!”



갑작스레 들려오는 저음에, 당소소는 다소 방정맞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런 그녀의 뒤통수를 낯선 이가 막아섰다. 당소소는 어깨를 움찔거리며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씨, 씨발! 누구냐고!”

“…….”



당소소는 욕설을 뱉으며 뒤돌아서서 주먹을 내밀었다. 위협적으로 내민 앙증맞은 주먹은, 전혀 위협이 되진 않았다. 회색 무복을 걸친 사내가 그런 당소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주께선 아가씨의 뇌린은루가 나찰염을 중화시키는 과정에서 잠시 이성을 잃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당웅?”

“이제 가라앉았다곤 하지만, 몸에 무리가 갈 수도 있으니 다시 침상으로 가셔야합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목소리. 평소와는 달랐지만, 확실히 당웅의 목소리였다. 당소소는 주먹을 살짝 내리고 당웅의 얼굴을 바라본다. 멀끔하던 얼굴엔 자잘한 상처들이 가득했고 사천교류회때와는 비교할  없을 정도로 몸집은 부풀어 있었다. 당소소의 눈은 당웅의 손가락으로 향한다.



“그거, 대체 어쩌다가…?”


“…….”

“한동안 안보이더니, 무슨 일이 있던거에요.”



당웅은 당소소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약지가 잘려나간 왼손을 뒤로 감출 뿐. 낯선 이를 경계하던 당소소의 표정은 어느새 걱정만이 가득 담겨 당웅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웅은 그런 당소소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쉬시지요.”


“저 때문인 거예요? 사천교류회에서의  때문에?”

“아닙니다. 그저 임무 중에 잠시 넋을 놓은 것뿐입니다.”



당웅은 여전히 건조한 말투를 유지하며 당소소의 말을 부인했다. 당소소의 뺨이 움찔거렸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당소소는 당웅에게 다가간다. 당웅은 성큼성큼 다가오는 당소소를 바라본다.

“아가씨.”



어떤 말을 해줘야할까. 너무 열심히 하지마라, 몸이 가장 소중한 법이다? 열심히 하면 손해만 본다? 몸이 다치면 다 무슨 소용이냐.


 이치와 맞지 않는 말이었다. 그런 입에 발린 말들은 자신도 듣지 않았었으니까.




“산책을 갈 거예요.”


“쉬셔야….”


“따라와.”




당소소는 단호한 태도로 말하고 발걸음을 돌려 밖으로 나섰다. 새벽이 내려앉은 독봉당은 성에 같은 고요가 끼어있었다. 쌀쌀한 공기가 당소소의 뺨을 가볍게 친다. 당소소는 익숙한 새벽의 분위기를 들이키며 독봉당의 정원을 거닐었다.




“이제 쌀쌀한 날씨입니다. 무리하시지 마시고 들어가시지요.”

“넌 왜 무리를 했는데?”

“…당가의 무사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당소소는 그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정원을 벗어나 독봉당의 입구를 나선다. 하나 둘 밝혀둔 등불은 군청의 새벽을 먼저 밝히고 있었고, 분주하게 아침을 준비하는 하인들은 당가에 내려앉은 고요의 성에를 떼어내고 있었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달라진 것은 부림을 받는 사람에서, 부리는 사람이 되었을 뿐. 그렇다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 것인가. 당소소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고통스러웠을 때 타인에게 가장 바라던 것을 내밀었다.




“수고했어요.”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을 내민다. 당웅은 그 손을 바라본다. 자신도 어떤 이해를 바라고 일을 하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할 수 있었던 것을 했을 뿐. 김수환에게 가정은 일말의 희망을 지불했고, 김수환은 그 일말의 희망을 받고 집안의 빚을 대신 갚았다.

그가 바라던 것은 이해와 공감이 아니었다. 단지, 덤덤한 위로 한마디 뿐. 당웅은 왼손을 내밀어 당소소의 손을 잡았다.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네 손가락의 감촉이, 약간의 허전함을 느끼게 한다.




“앞으론 정신 좀 차리고 다니고.”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놓고 하늘을 바라봤다. 떠오르는 해가 당소소의 눈을 찌푸리게 했다.


“문안인사를 하러 갈 건데. 따라올 거예요?”


“저도  일이 있기에 같이 뵈러가긴 어려울 듯싶습니다. 가주님껜 따로 보고하겠습니다.”


“그래요. 조심하고.”

당소소는 당웅의 팔을  치며 가주전으로 발길을 향했다. 당웅은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왼손을 바라본다. 직전까지 지끈거리던 환상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져있었다. 굳은 얼굴에 균열이 간다.



‘정말 폭군이시군.’


암풍대의 수장이 되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버둥거렸던 나날들이, 그녀의 악수 한번에 아련하게만 느껴졌다. 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더는 주먹이 허전하지 않았다.



*

당진천은 서류를 놓고 앞에 서있는 당소소를 바라봤다. 다소 거만한 태도와 절도 있는 자세를 보이던 어제와는 다르게, 부끄러움을 타고 자신의 눈치를 보는 당소소가 서있었다. 무언가 말을 할까 잠시 망설이다, 당진천은 다소 싱거운 태도로 안부를 물었다.


“…멀쩡하니 다행이구나.”

“네, 아버지.”




당진천은 긴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거라.”

“네.”

쪼르르 의자에 다가가 눈치를 보며 앉는 당소소. 당진천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당웅에게서 이야긴 들었느냐?”

“뇌린은루가 나찰염을 중화시켜서 소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흡수를 했단다. 뇌린은루는 하나하나가 극독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독들. 이번 나찰염을 복용하며 결국 하나의 독정으로 거듭나버렸다.”

“무언가 안 좋은 건가요?”



당소소의 물음에 당진천은 고개를 저었다.



“뇌린은루보다 기운이 약한 것들은 전부 뇌린은루가 끌어당겨 흡수해버릴 것이다.”

“그거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아닌가요?”

“그런 편리한 것은 아니란다. 나찰염을 흡수하면서  고통스러웠지 않았느냐?”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꾸역꾸역 참아내던 단전의 고통은 종국엔 칼로 쑤시는 듯한 고통으로까지 번져가며 정신을 갉아먹었었다.


당연하게도, 그것이 천하의 모든 독이 듣지 않는다는 만독불침지체일리 없었다. 작중에서도 오직 주인공만이 가졌던 것이었으니까. 당진천은 잠시 망설이다, 한숨을 쉬고 말한다.


“어제처럼 독이 몸을 해하지 않는다고 해도, 독의 고통은 그대로 느낄 것이다. 항상 조심해야한다.”


“네, 아버지.”




당소소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진천의 시선은 당소소의 득의에 찬  끝을 놓치지 않았다.

“뇌린은루를 믿고 네 몸을 험하게 다루지 말라는 소리다.”

“네? 전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요.”


“…누굴 닮아서 이렇게 솔직한지.”

당진천은 노골적으로 마음을 보여주는 딸의 얼굴을 보며 혀를 차곤 다시 서류를 쥐었다. 잠시 찾아온 적막. 당소소는 눈을 깜빡이며 자신이 복용했었던 나찰염이라는 독에 대해 떠올린다.




‘독각혈가가 주로 쓰던 독. 분명 초반부엔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었지. 사람의 악한 마음을 충동질하는 독이야. 모든 일의 배후엔 마교가 있다는 설정을 납득시키기 위한 장치였지.’

당소소는 작중의 일들을 떠올린다. 나찰염을 주로 사용했던 사람의 이름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독각음녀 당소소. 독각혈가의 독들을 주로 사용했었어. 나찰염은 내가 주로 사용하던 독이었지.’



당소소의 마음이 심란해진다. 크게 숨을 뱉으며 번뇌를 덜어내고, 지금 상황에 대해서 떠올린다.


‘나찰염이 지금 등장했다는 건, 마도육가의 한 곳인 독각혈가의 인물이 여기에 있다는 거야. 그것도 거물로.’



나찰염은 악역을 마교에게 떠넘기는 전가의 보도였던 것만큼,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았다. 작중에서 나찰염을 사용한 인물들은 천마 사마문, 독각혈가주, 독각음녀 당소소 뿐. 나찰염을 제대로 정제하는 데에 그들의 독공이 필요하다는 설정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아직 변절하지 않았고, 사마문은 아직 교주의 직위에 오르지 않았으니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독각혈가주가 이곳에 있어.’



당소소는 그 생각이 들자 당진천의 눈치를 살핀다. 독천인 그녀의 아버지에게도 마교에 대한 제대로된 정보가 없는 듯했다. 그저 독각혈가의 몇 명이 마교에서 침입해온 것이라 생각할 뿐.  생각을 확실히 하기 위해 당소소는 슬쩍 질문을 던진다.



“아버지.”

“왜 부르느냐.”


“연회에 갈 준비는 언제부터 하면 될까요?”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침을 삼켰다. 그저 가문의 일을 덜어주고자 자원했던 연회였으나, 이젠 의미가 달라졌다. 이야기의 저변을 바꿔가던 자신의 행보가, 직접적으로 이야기의 줄기에 영향을 끼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기꺼이 가주마.’



기왕 바꾸기로 한 이야기의 비극들. 그 비극들 중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한 독각혈가의 독들을 초반부에 치울  있다면, 다소의 위험은 가볍게 감수할 수 있었다. 그의 과정과 결말은 모두 당소소의 머릿속에 있었으니까.


‘사마문의 지시인지, 아니면 나를 독각음녀로 만들기 위함인지. 어떤 연유인진 모르겠지만 독각혈가의 목표는 나야. 내가 연회로 가면, 그들도 움직인다.’

당소소가 무릎에 얹어놓은 손가락이 꿈틀거리며 수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들은 거물. 미끼가 제아무리 매력적이더라도 그럴듯한 떡밥이 없다면 움직이지 않을거야. 하연이 알려줬잖아? 혼이 담긴 언변이 있어야한다고. 그럼….’




손가락의 움직임이 멎는다. 그와 동시에 당진천의 입이 열렸다.



“산류수는 어느 정도 익혔느냐?”


“예? 갑자기 왜 산류수를….”


“한번 해보아라.”


다소 뜬금없는 당진천의 요청. 당소소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품 안에서 철전을 꺼내 손등 위에 올렸다. 손목이 부드럽게 꺾이며 철전이 미끄러진다. 철전은 물 흐르듯 손가락 사이를 넘나들고, 두 번을 왕복한 뒤 당소소의 주먹에 쥐여지며 움직임을 멈췄다.




“아직 움직임이 뻣뻣하다만, 얼추 산류수 이 성[二成]이라고 칠 수 있겠구나.”

당진천의 말에 당소소의 눈이 크게 뜨여지며 감출 수 없는 미소가 지어졌다. 틈틈이 시간  때마다 손가락이 붓도록 연습했던 움직임이 결실을 맺었다. 당진천은 당소소의 미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삼양귀원은 연습 중이냐?”


“그건 아직 잘….”



천양, 지양, 인양을 한 몸에 담고 본래의 한 점으로 회귀하라.

그녀는 소설을 읽었을 뿐이지, 무공을 익힌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당가 무술의 기초라 할  있는 삼양귀원의 자세조차 이해하기 벅찼다. 무공이라 설명한 것들 대부분 뜬구름을 잡는 듯한 구절들뿐. 스승인 독무후조차도 뭉뚱그려 설명하고, 자세만 잡아줬기에 난해한 것은 더욱 배가되었다.



‘게다가 최근에 발생한 여러 일들 때문에 제대로 연습할 시간조차 부족했었어.’



당소소는 그렇게 생각하며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당진천은 그 기색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삼양귀원의 자세를 제대로 취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 연회에 갈 준비를 하거라.”

“예?”


“제 한  지키지 못해서, 어딜 나돌아 다니겠다는 게냐?”




당진천은 단호한 말투로 당소소를 꾸짖었다. 어찌 말리겠냐 말은 했었지만, 당연하게도 병상을 벗 삼아 누워대는 딸을 성도바깥으로 내돌릴 수 없었다. 심지어 이유는 모르겠다만 마교의 종자들이 노골적으로 목표로 삼는 모습을 보여줬다. 더더욱 허락할  없었다.



‘딸아이의 무재는 범재에 비해 좀 떨어지는 수준.  일 안에 삼양귀원의 자세를 제대로 취할 리는 없다. 연회엔 스승님을 보낸다. 마침 모습을 드러내기 괜찮은 무대니까.’


“그리고 네가 스승님의 제자라고 칭하기 위해선, 적어도 기본적인 자세만큼은 제대로 취해야하지 않겠느냐?”

당진천은 그렇게 말하며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원망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들려온 것은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알겠어요.”




당소소는 순순히 대답하며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엔 원망도, 체념도 아닌 한 아름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독각혈가주를 꾀어내는 작전이야. 아버지의 말마따나 비수조차 제대로 던지지 못해서야, 내가 하는 행동은 그저 재앙을 불러오는 행동일 뿐이겠지. 소설 속에서 그가 어떻게 죽었었는지 검토도 해야 해.’

“며칠 뒤에 출발하실 생각인가요.”


“오 일 뒤란다.”




당진천의 말에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주전을 나섰다. 소심하지도, 도도하지도 않았다. 성큼 걷는 보폭에선 사내에게서나 볼법한 호방함이 느껴졌다.


“삼양귀원, 터득하고 오겠습니다.”




독각혈가의 수괴를 낚아채기 위한 당소소의 출조[出釣]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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