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0화 〉십삼장[十三章], 불이불조[不餌不釣] 2 (80/130)



〈 80화 〉십삼장[十三章], 불이불조[不餌不釣] 2

“커억, 커억!”

독각혈가주, 독마 류시형은 입가에서 독혈을 뱉었다. 그가 독마의 칭호를 얻은 이후로, 처음 독에 중독된 것이었다. 떨리는 손을 가져가 자신의 입가를 쓸어 피를 확인한다. 번개에 말라비틀어진 손에 증세가 완연한 검은색의 피가 묻어나왔다.

“누구냐! 누가 감히 본좌에게 이런 치욕을 준단 말이냐!”




들판에서 울부짖는 독마. 하지만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주변엔 오로지 독각혈가의 무인들만이 풀처럼 쓰러져있었다. 몸 안에선 벗이라 생각했던 기운이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고, 바깥에선 코를 찌르는 독향과 휘하의 무인들이 토해낸 피내음이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일 리[里] 밖에선 그들의 손을 조심해라.”



낭랑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독마는 미친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피를 뿌렸다. 독기가 사방으로 퍼지며 시체와 대지를 가리지 않고 융해시켰다. 하지만 여인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십 리 밖에선 그들의 암기를 조심해라.”


“으아아!”

독마는 눈에 핏대를 세우며 팔을 휘두르고, 주먹을 겨냥해 내지른다. 그곳에 아무것도 없음에도. 종국엔 독혈이 묻은 흙을 사방으로 뿌린다. 격렬한 독마의 부름에도, 응답하는 건 고요한 혼잣말뿐이었다.


“백 리 밖에선 그들의 독을 조심해라.”


“나와, 나오라고!”

독마는 울부짖으며 독기를 뿌린다. 그리고, 쓰러진다.



“마교의 독마여, 당가의 아이를 가지고 놀 때는 즐거웠느냐?”



건조한 음성이 독마의 귓가를 울린다. 독마는 또다시 발작하는  안의 독기에 못 이겨 피분수를 뿜는다.

“본좌가, 독의 종주인 본좌가…!”

“너 따위가 어찌 본녀를 앞에 두고 독의 종주를 칭한단 말이냐?”

조소하는 말투. 흐릿해지는 독마의 시선에, 익숙한 얼굴이 비친다.

“독무후…!”


“패를 너무 많이 보여줬더구나. 나찰염과 독각혈사연[毒角血沙淵]까지.”


“…독각혈사연을 어떻게 파훼한 거지?”


“사천당가의 독심은 어떤 독보다 유독하다, 조무래기야.”




절망하는 독마의 머릿속으로 독무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백색의 가루가 그의  위에 뿌옇게 깔려간다.


“당가의 칠대극독, 신선폐[神仙廢]다.”



목소리가 멀어진다.


“살아남는다면, 독의 종주를 자처해도 아무 말 않으마.”

들판에 깔린 하얀 침묵.

그것을 젖히고 일어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여기까지, 쌍검무쌍에서 서술되던 독무후와 독마의 생사결이었다.

당소소는 떠올린 내용을 정리했다.

독각혈가주, 독마 류시형. 중후반부에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마교의 일익. 독으로 주인공의 앞길을 막아서고, 당소소를 회유하고 갖은 환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아홉 기연  하나인 농천자[弄天子]의 서고[書庫]에서 격돌.


본래는 만독불침지체인 주인공이 상대해야 할 상대였으나, 당가의 은원을 언급하며 독무후가 전면전에 나섰다. 그리고 장장 이틀에 걸친 독무가 평야에 깔렸었다.


‘독마가 스승님을 위협하던 것은 단 두 가지. 마공과 독공으로 만든 독강시들을 죽인 뒤, 그 피로 주변에 독안개를 펼치는 독각혈사연. 그리고 몸 안에 독을 키워 스스로 사후경직을 만들고, 자신을 살아있는 강시로 만들어 검기와 이능에도 상처 입지 않는 몸이 되는 것.’



벼락이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독을 분석하는데 하루. 그 후, 독무후는 약을 먹여 독을 치유하고 뇌심용융으로 독마를 구워버렸다. 기라성같은 괴물들이 종횡하는 쌍검무쌍 속에서, 독의 종주라 자칭할 법한 대응이었다.

“문제는 그 약을 구하는 건데.”

당소소는 목을 꺾으며 뻐근한 몸을 풀었다. 활동하기 편한 무복으로 갈아입은 당소소의 손엔 현천비가 들려있었다. 왼발을 안쪽으로 비틀고, 앞으로 내민다. 균형의 상실에서 오는 부하가 하체를 어지럽혔다.

오른발이 세워지며 회전하고, 힘이 골반으로 쏟아졌다. 곧게 서는 허리. 힘껏 세우는 등. 힘이 몸의 중심을 질주한다.  뻗은 왼손은 틀어진 균형을 다시 조정하고, 오른손을 휘두르며 격발.


짤그랑!


쇳소리가 들리며 비수가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목표인 목각인형에는 한참  거리였다. 당소소는 혀를 차며 비수를 줍기 위해 걸음을 뗐다.




“이제 하루긴 한데. 감이 안 잡히네.”



당소소는 몸을 굽혀 비수를 주웠다. 발갛게 일어난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아릿한 통증. 조금 더 손을 혹사했다간, 물집이 잡힐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비수를 꼭 쥐고 자리로 돌아갔다. 하늘은 노랗게 젖어 황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짤그랑!

어김없이 떨어지는 비수. 당소소는 다시 비수를 줍고 돌아오길 반복했다. 다시 들리는 철소리. 철소리, 철소리.

짤그랑!



“그렇게 요령 없게 던지기만 해서, 어느 세월에 익히겠느냐?”


“황철 어르신? 언제부터….”

“네 스승으로부터 지켜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단다.”

당소소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본다. 황철이 무후당 창가에 턱을 괴고 따분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당소소의 얼굴이 경계로 물든다. 아침 일찍 무후당으로 와서 삼양귀원을 연습할 때부터, 독마를 죽이는 장면을 떠올리던 때까지 자신을 지켜봤다는 것이니까.


황철은 당소소가 경계를 하든지 말든지 고개를 저으며 당소소에게 훈수를 던졌다.



“손끝이 잘못되지 않았느냐, 손끝이.”

“이렇게요?”


“에잉, 쯧쯧. 그게 손끝이더냐? 손가락이지.”


“그럼 이렇게?”


“그렇게 감각이 없어서야, 어찌 무공을 배울꼬.”



당소소는 오른손을 이리저리 꼬아가며 황철에게 자문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영양가 없는 조언들뿐. 퍽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가뜩이나 생각할 거리도 많은데, 자기들 일  한다고 옆에서 훈수나 두는 밉상인 놈들이랑 똑같은 짓을 하네.’

옛 기억이 떠오른다. 편의점의 궂은일은 모두 자신에게 몰아서 하는데, 마치 자신이 하는 것인 양 한마디씩 쏘아붙이던 다음 시간대의 직원. 얄미웠으나 굳이 분란을 일으키기 싫었던 김수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당소소는 황철을 지그시 노려보며 말했다.




“그런 말을 할 거면 가세요.”

“거 참, 조언을 해줘도….”


“제대로 조언도 안 하시면서.”


짤그랑!

묘하게 날카로워진 당소소의 태도에 황철은 킬킬 웃으며 생각했다.

‘녀석, 맹한 것이 골려 먹는 맛이 있구나.’

독무후의 종복이었던 황철은 팍팍한 인물들에게 둘러싸여 살았었다. 본래 주인인 독무후야 말할 필요가 없었고, 당가의 식구들은 하나같이 독종들이었으며 작은 주인인 당진천은 여태 만나본 당가의 인물 중에서도 손에 꼽을 독종이었다.


그런 그들에 비해 목각인형에 비수 하나 꽂아보겠다고 버둥거리는 귀여운 아가씨는 황철의 입장에서 신선한 사람이었다. 짤그랑거리는 소리가 다시금 들려온다. 황철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암기를 놓는 순간이 너무 느리고 일정하지 않잖느냐.”


“놓는 순간이요?”


“자세는 부족하나마 천양, 지양, 인양을 따르고 있으나 귀원에서 어색하다. 본래로 회귀한다는 뜻을  떠올리거라.”


“너무 늦게 놓아서 제대로 돌아가야 할 힘이 어긋난다…?”



당소소는 그렇게 답하며 다시 비수를 던졌다. 이미 버릇처럼 굳어져 버린 몸을 의식적으로 움직이긴 어려웠으나, 최대한 비수를 빨리 놓기 위해 노력했다. 쇳소리가 들려온다. 비수가 한 뼘 앞으로 나아갔다.




‘감각은 없다시피 한데, 이해 자체는 빠르구나. 독특한 아이야.’

황철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당소소는 한 뼘 나아간 비수를 향해 걸어가며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본다. 아까의 감각과 함께 물집이 손가락에 맺혀있었다. 당소소는 물집이 진 손가락을 비비며 생각했다.

‘몸은 이미 패대기치는 각도에서 굳어있어.’

절망적인 반응속도와 운동신경은 항상 최악의 자세를 추구하고 있었다. 더욱 편한 자세를 바라며, 근골이 무리하는 것을 거부했다. 힘겹게 감각을 깨우쳐도, 언제 그랬냐는 듯 편한 자세로 돌아가려 발버둥을 쳤다.



“후우.”


당소소는 숨을 고르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비수를 던졌다. 한 뼘 나아갔던 비수는 다시 아까와 똑같은 자리에 패대기쳐졌다. 당소소의 입가가 아래로 비틀린다. 쇳소리와 함께 황철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큭큭. 그만 포기하고 쉬지 그러냐? 네 스승도 그걸 바라고 있을 게다.”

“에이, 씨팔. 좆도 안 맞네.”

“…….”




당소소는 씩씩거리며 욕을 뱉었다. 황철은 그 욕설에 잠시 당황하더니,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화가 날 법하지.”


“…정말 안 맞네.”

“푸핫.”

황철은 변명을 늘어놓는 당소소를 보며 웃다,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해가 모습을 감추고 밤이 찾아왔다. 황철은 여전히 비수를 던지고 있는 당소소에게 말했다.




“슬슬 저녁 시간이구나.”


“먼저 가세요. 시녀들에게 체득하기 전까진 얼씬도 마라고 해놨으니.”

“오  안에 익힐만한 상황이 아니란다.”

“…….”

“핫핫.  녀석, 까칠하긴. 적당히 하다 들어가거라.”

황철은 당소소에게 가볍게 경고하며 무후당을 나섰다. 당혁을 따르던 제독전의 인원들과 업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었다. 성의 없는 대답을 성의 있는 대답으로 바꾸는 것은 황철의 특기였으니까.


당소소는 떠나가는 황철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목각인형을 바라봤다.




“문제는.”


짤그랑!


비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놓는 순간을 의식해도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거.”



손끝에서 흥건한 촉감을 느꼈다. 당소소의 시선은 손가락으로 향했다. 물집이 짓이겨져 진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미미하게 신경을 건드는 자잘한 고통이 뒤따랐다. 당소소는 주먹을 쥐고 자신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


‘스승님은 이번 일의 주모자를 처리하시고 뒤처리하는 것 때문에 이틀 뒤에나  자세를 봐주실 수 있어.’


당소소는 아파져 오기 시작하는 발을 놀려 비수를 집었다. 찢어진 물집에서 피어나는 고통이 당소소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그럼 늦는다. 독마의 독각생시[毒角生屍]를 파훼할 약을 구할 시간이 부족해.’


독무후가 독마를 독살시킬 당시, 독무후는 자신이 쌍검무쌍 작중 등장한 모든 독을 연구한 상태였다. 거기에 정천무관에서 혼돈의와 교류를 하고 주인공에게 실험하며 독을 중독시키는 독공은 지금 없었다. 그렇기에  깨달음의 산물인 약을 구해야 했다.

그 약을 구할 시간을 내기 위해서, 최대한 빨리 삼양귀원을 체득해야 했다. 삼양귀원을 체득하지 않는다면 운신의 폭이 좁을 것이고, 약의 재료를 구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일 테니까.

당소소는 삼양귀원의 자세를 취한다.



‘삼양귀원을 제대로만 익힌다면 약은 쉽게 구할 수 있을 거야. 제독전에는 접근할 수 없지만 백서희가 당가에 있으니까. 약재는 백능상가에서 구한다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어. 독이 아니니까. 잡생각은 버리자. 여기에만 집중하면 되는 거야.’


찰랑, 찰그랑!


비수가 멀리 날아가며 바닥을 미끄러졌다. 당소소는 주먹을 쥐며 그것을 바라봤다. 길이 보이는  같았다.

몸이 새로운 것을 거부하고 무의식적으로 자꾸만 돌아가려고만 한다면, 수천수만의 의식적 움직임으로 강제로 바꿔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당소소는 웃었다.


팔이 자꾸만 각도를 넓혀간다면?  번을 휘둘러 각도를 좁히고, 천 번을 의식해 본능을 강제한다. 놓는 순간이 계속해서 어긋난다면? 만 번을 던져 최적의 순간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당소소는 이미 그런 단순 반복 작업에 통달한 상태였다.



“그 정돈 나도 할 수 있지.”




당소소는 힘이 빠져 부들거리는 팔을 들었다. 힘과 함께 본능도 빠져나가 후들거리면서도 의식한 각도가 새겨졌다. 그토록 어색하던 손끝도 떨림이 있지만, 의식한 바와 같이 제대로 비수를 파지하고 있었다.


찰그랑!


달빛을 이지러뜨리며 비수가 땅바닥을 나뒹군다.

*



날은 밝았고, 햇볕은 어김없이 모든 것을 비추었다. 그것은 무후당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시녀 두 명이 기웃거리며 무후당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젯밤에도 독봉당에  보이시던데. 무후당에서 주무시는 모양이야.”

“늦게 시작하셔서 그런가, 열의가 꽤 있으신가 봐. 식사는 하셔야 할 텐….”


둘의 대화는 무후당의 문턱을 밟을 때까지만 이어졌다. 둘을 맞이한 것은 지쳐서 곤히 잠을 청하고 있던 당소소가 아닌, 찢어진 손가락을 축 늘어뜨리며 거뭇한 눈가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당소소였다.




“…아가씨!”

“이게, 이게 무슨…!”


“어서 약을….”

당소소는 호들갑을 떠는 시녀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이젠 몸 전체를 할퀴어대는 고통을 느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퍽!


당소소의 피가 묻은 비수가 손에서 미끄러져 나무인형의 밑동에 부딪혔다. 검날이 박힌 것도 아니고, 그저 손잡이가 닿았을 뿐. 당소소는 반사적으로 비수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 그녀를 시녀들이 서둘러 막아선다.



“아가씨. 안돼요. 쉬셔야 해요.”


“대체 왜 이런 무리를 하시는 거예요! 이 고운 손에 흉진  좀 봐…!”

“어서 빨리 금창약을…!”




시녀들에 의해 앞이 막힌 당소소는 고통에 못 이겨 제멋대로 움찔거리는 손가락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그제야 놓아놨던 넋을 되찾고 주변을 둘러본다. 피로가 눈을 짓누르고 무기력함과 통증이 전신을 주무르는 익숙한 감각이 찾아왔다.

“하루 정도 더 던지면 맞출 수 있을  같은데.”

“독무후님도 없이 대체 왜 이런 무모한 수련을 하시는 건가요?”

“쉬세요. 쉬시지 않는 게 더 가주님께 부담이 될 수도 있어요.”

당소소의 나지막한 말에, 시녀들은 기겁하며 당소소를 독봉당으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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