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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화 〉십삼장[十三章], 불이불조[不餌不釣] 3 (81/130)



〈 81화 〉십삼장[十三章], 불이불조[不餌不釣] 3

독봉당의 침소 안. 탁자에 앉아있는 당소소는 피로에 젖은 눈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얇게 고약을 펴 바르고, 붕대를 감아놓은 모습. 약간의 움직임에도 비명이 나올 것 같은 근육통이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당소소는 인상을 찌푸리며 턱을 괴었다.


‘이제 사 일. 그 사 일마저도….’



당소소가 창문으로 눈길을 던지자, 흐붓한 달빛이 종잇장을 뚫고 방안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고운 손에 혹여 흉이라도 질까 걱정하던 시녀들 덕에, 하루의 절반 이상을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당소소는 턱을 괸 손가락으로 뺨을 두드렸다.




‘하루를 꼬박 새워서 겨우 익혔던 감각인데, 이렇게 하루를 통째로 쉰다면 다시 조정하는 데 하루가 걸리겠지. 그렇게 된다면 남은 기간은 이 일. 약재를 구하긴 빠듯한 시간이야. 방법이 따로 없으려나….’


당소소가 그런 고민을 하던 사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하연입니다.”


“들어와.”




당소소의 허락이 떨어지자, 하연이 침소 안으로 들어와 꾸벅 인사를 한다. 당소소는 턱을  손을 풀고, 붕대에 감긴 손을 감추며 하연을 맞았다.



“이 저녁에 웬일이야? 시녀장 업무를 인계받느라 바쁘다고 들었는데.”


“불경인 줄 압니다만, 아가씨가 염려되었기에….”

“불경은 무슨. 난 괜찮으니 가서 쉬어.”

당소소는 하연의 말을 받으며 자조했다. 상처를 감추며 말을 돌리는 자신의 행동이, 추궁하던 당웅의 태도와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하연은 그런 당소소를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아가씨.”

“손가락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거든 그만해. 종일 들었으니.”

“…물론 그 이야기도 하고 싶기야 하지만, 바깥에서 백서희 소저께서 서성거리고 계신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백서희가?”



당소소는 하연의 말을 듣고 백서희가 서성거릴 이유를 생각했다.




‘나찰염을 먹고 저지른 행동들이 문제가 된 건가?’



그녀는 감정이 이끄는 대로 백서희에게 악다구니를 쓰던 자신을 떠올린다. 충분히 사과를 요구할만한 상황이었다. 당소소는 머리를 긁적인다. 기껏 호전된 사이가 나빠진 것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소소는 손을 내리며 하연에게 말했다.



“이쪽으로 오라고 할 수 있겠어?”


“말씀을 전하고 오겠습니다.”




하연이 침소를 빠져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명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당소소는 턱을 쓰다듬으며 이후의 상황을 예상했다.

‘우선 사과는 해야겠지. 그러면 백서희를 통해서 약을 얻는다는 건 어려워지는 건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아가씨, 백서희 소저께서 뵙고자 하십니다.”

“들어오라고 해.”



당소소는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하연의 말에 답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백서희가 침소 안으로 들어왔다. 불안해 보이는 눈동자와 다소 초췌해 보이는 기색이 당소소의 마음을 켕기게 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와도, 백서희는 당소소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당소소는 백서희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우선 앉을래?”


백서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당소소를 마주보며 앉았다. 당소소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힘겹게 운을 뗐다.

“그, 미안해.”


“미안?”


“그때 내가 말한 건 진심이 아니었어. 독을 먹고 정신이 나가버려서 그런 거라서.”


“그게 왜 미안한 건데?”



백서희는 꾸짖듯 질문을 던졌다. 당소소는 묘하게 밀고 들어오는 백서희의 말투에 살짝 풀이 죽어 횡설수설했다.


“그게 너더러 비키라고 했던 거랑….”


“그것 때문에 난 오히려 널 더 믿을 수 있게 됐어. 부정적인 욕구를 터져도 나에게 험한 짓을 하지 않으려는 의지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다른 거야.”

백서희는 그렇게 말하며 탁자를 두드려 당소소의 주의를 끌어당겼다. 당소소가 자신을 바라보자, 백서희는 천천히 물었다.

“너, 일  전 일을 기억 못 하고 있지?”

“에이, 그걸 내가 왜 기억을 못 해. 내가 잘못 한 건….”


“네가 나에게 먹이려고 했던 약은 구토약이 아니라 설사약이었어.”


“…….”

“너는 왜, 기억에도 없는 일을 사과하는 거야.”



그녀의 말에 당소소는 입을 다물며 침을 삼켰다.

만감이 교차했다.

백서희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기억을 잃었냐는 말을 물어왔을지, 수많은 생각이 기화되어 증기처럼 당소소의 머리를 가득 메웠다.


기억을 잃고서 사과하는 것에 진정성이 없다고 느낀 것일까. 아니면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것이기에 화가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보는 것일까.


당소소는 제 발이 저려 먼저 사과를 했다.



“미안해. 정말. 잊었지만, 그래도 기억해내려 노력하고 피하지 않으려고….”

“네 기억에도 없는 걸 왜 사과하는 거냐고.”

백서희의 말에 당소소의 머리를 뿌옇게 흐리던 생각의 증기들이 달아났다. 그제야 비로소 백서희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표정에 어린 감정의 정체는, 연민이었다. 당소소는 당황하며 눈을 깜빡였다.




“으, 응?”


“기억이 나지 않으면, 그냥 그런대로 살면  것이지. 미련하게 왜 사과를 하느냐고.”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잘못한 거니까. 내가  것이니까….”


“너 정말 바보야?”



백서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당소소를 내려다 봤다. 당소소는 그런 백서희를 영문을 모른다는 눈빛으로 봤다. 그는, 그녀는 자기 일에 책임을 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 사소하게 잘못된 일에도 크게 사죄를 해야 했으며 종국엔 금전적인 불이익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자신을 버린 가정에 대한 책임, 월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직장에서의 책임들을 져왔다.

차분히 따지고 보면 자기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배웠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왔으니,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당연한 일이었다.

백서희는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는 당소소의 눈빛에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기억하고 있는 일에만 책임을 지면 될  아니야. 그런 부채감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고.”


“하지만 내가 잘못한 거야. 책임을 져야 한다고.”

“잘 들어. 책임은 없어. 있더라도, 이미 채무가 끝난 상태야. 넌, 예전의 넌 충분히 불행했어.”

백서희는 몸을 당소소쪽으로 기울이며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감정을 눌러 담아 말했다.


“그리고 난 널 진작 용서했어.”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



백서희는 책상을 내리쳤다.




“앞으로 내 앞에서 그런 천치 같은 행동은 하지 마. 책임져야  것에만 책임을 지라고.  몸을 던져서,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목숨을 거는 그런….”

백서희의 목이 메어왔다. 좀 더 논리적으로, 좀 더 모질게 다그치고 싶었다. 그리고 좀 더 미안한 감정을 담아 사죄하고 싶었다. 하지만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검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탓일까, 당소소를 대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사죄는 그만 됐다고 하는데,  계속 부채를 가진 것처럼 행동해. 학귀의 칼에 대신 찔리고, 혹여 내 음식이 남아있으면 나에게 의심이 갈까 봐 독이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내 음식을 먹어.”

“백서희.”

“제발 그러지  말라고! 넌, 넌 마음이 아프지도 않아…?”



볼이 축축해졌다. 그런 백서희를 바라보던 당소소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백서희의 뺨에 느껴지는 낯선 감촉. 백서희의 시선엔 당소소의 손끝에 동여맨 붕대들이 감겨왔다.

“손, 그 손은….”


“아, 이거. 암기를 던지는 연습을 좀 했어. 아버지가 제대로 던지기만 하면 연회에 보내준다고 하셨거든. 그런데 알다시피 내가 영 재능이 없어서 말이야. 잘 안되더라고.”




백서희는 흐느끼며 붕대의 연원을 물었다. 당소소는 난감한 듯 볼을 긁적이며 답했다. 백서희의 눈에선 또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대체 왜 그렇게 널 혹사하는 건데 멍청아….”

“난, 당소소야.”


당소소는 처연히 웃으며 백서희의 물음에 답했다.



“당소소였던 나를, 당소소인 나를 긍정해야 해. 그래야, 난 비로소 내가 되는 거야.”


“…흑.”

백서희는 당소소의 손길에 더욱 서럽게 울었다. 뺨을 통해 느껴지는 거칠어져 가는 손의 감촉. 백서희는 당소소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처절히 움직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좀 더, 좀 더 요령 있게 살라고. 부정적인 감정은 조금 멀리하면서, 좋아하는 것들만 가까이하라고. 그렇게 살아도 힘든 것이  삶이야.”


“미안….”


“대체 네가  미안하냐니까!”


백서희는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마치 감정이 고장이 난 것 같았다. 원래 백서희는 이런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올바른 것을 좋아하고  이외의 것에는 무관심한 외골수라는 것을 자기 자신도 깨닫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백서희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 듯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백서희는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미안해.”

“응?”

“미풍객잔에서 모진 말들을 해서.  울려서. 사천교류회에서  상처입혀서 미안해.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좀 더 조심히 말했을 텐데….”



당소소는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곤, 고개를 저었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면죄부가 아니잖아?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너, 그러지 마. 제발, 그러지 말라고….”

백서희는 답답함을 담아 당소소의 어깨를 살짝 밀쳤다. 당소소는 그 말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자신이 이 감정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의에 의해 학습된 무지와 나태를, 과연 벗을 수 있을까.

장담을 할 수 없었다. 당소소는 자신의 단전에 손을 올린다. 전생의 일들. 자신이 받아들였던 당소소였던 일들. 그리고 살아가야 할 당소소의 일들.  모두를 부정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노력해볼게.”

김수환이 이제 당소소이듯이, 당소소도 이제 김수환이었다. 더 이상 김수환에게 무기력을 가르치는 사회는 없었다. 더 이상 당소소에게 악의를 주입하는 자들은 없었다.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노력을 할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둔재인 그와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소소는 백서희의 뺨을 훑어주던 손길을 거둔다. 흐느낌이 잦아들었다. 백서희는 울음기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어디서부터, 어디서부터 기억을 못 하는 거야?”

“음…. 내 신분을 빼면 전부?”


“…이 바보 같은 계집애.”



백서희는 당소소의 대답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그 대답에 현재 당소소의 본질을 깨우쳤으니까. 이해가 빠르다. 하지만,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존감이 매우 낮았고, 평생을 저런 감정의 족쇄 속에서 고통스러워할 사람이었다.

그래선 안 됐다. 기억을 잃어서 저렇게 되었을지라도. 지금의 그녀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악의에 제 몸을 긁혀 온갖 손해를 봐야 할 사람이 아니었다.


백서희는 자신의 눈가를 훔친 뒤, 당소소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네가 그렇게 살다간, 내가  명에  살 거 같아.”


“무슨 말인지….”

“친구 하라고, 나랑. 안 그러면 내가 답답해서 죽을 것 같으니까.”



백서희는 씩씩거리며 당소소를 바라봤다. 당소소는 백서희의 말에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며 난감해 했다. 그럼에도 불같이 쏘아지는 백서희의 시선. 당소소는 그런 그녀의 시선에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지었던 죄 때문에 가까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내심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이었다. 모진 그녀의 태도에 지레 겁먹어 거리를 두었지만, 그녀는 당소소가 가장 좋아하던 소설의 좋아했던 주연이었으니까.


“응.”

그렇기에 당소소는 쑥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




그저 새하얗게만 보이는 대답에, 백서희는 볼살을 들썩이다 한숨을 쉬었다.



‘이 순진무구한 애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백서희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당소소는 친구라는 말에 마냥 헤실거리다, 웃음기를 지우고 백서희에게 물었다.



“서희라고 불러도 돼?”

“그래. 왜?”

“내가 만약 연회에 간다면, 도중에 누군가 날 습격할 거야.”

“뭐? 그건 또 대체 무슨 소리야.”



백서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당소소를 추궁했다. 당소소는 백서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마교의 독마 류시형을 독살시킬 수 있는 독을 구해야 해.”


“…너 진짜 미쳤구나.”

당소소의 말에 백서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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