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2화 〉십삼장[十三章], 불이불조[不餌不釣] 4 (82/130)



〈 82화 〉십삼장[十三章], 불이불조[不餌不釣] 4

마교.

혹자들은 마귀를 섬기는 종교라 말하고, 또 다른 자들은 그저 이방인들의 사이비[似而非]종교라 말한다. 그들은 인육을 먹는다는 사람들도, 사교[邪敎]의 무리들이 약에 취해 난교를 벌인다는 사람들도, 삿된 것을 섬기며 비인외도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백 명의 입에서, 수천 가지의 괴담이 퍼져 나오는 곳. 하지만 그 많은 낭설 중에서 단 한 가지, 모두가 입 모아 말하는 것이 있었다.

마교의 교주이자 천하십강의 일 인인 천마와 그 휘하의 십계십마[十界十魔].


중원이 아닌 머나먼 새외의 천산 한 구석에 박혀있는 교단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였다.


강했다.


악랄하게 강하고, 끔찍하게 강하다. 잔인하게 강하고, 절망적으로 강하다.

단지 그 이유였다.

그들이 가혹한 대지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족적은 무림대전이라는 이름으로 쓰였고, 아직도 가시지 않은 상흔은 무림맹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다시 발호할 그들을 대비하기 위해, 정천무관을 설립해 전체적인 무림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려는 시도 중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당소소는 그 악명 높은 십계십마 중 일인을 잡으려고 한다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각각의 무위가  무림에서 가장 강하다 평가받는 구주십이천에 비견되는 이들을. 다른 의미로 복잡해진 머릿속은 백서희의 두통을 늘려갔다. 백서희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찰염이 마교의 독이라는 것은 들었어. 하지만 독마 류시형이 직접 널 습격해온다고? 말이 되지 않아. 이런 말을 하긴 미안하지만, 수지가 맞지 않아. 널 죽이기 위해 그 먼 천산에서 이곳까지 십계십마의 일 인이 올 리가 없잖아?”

“나찰염은 독마만이 정제할 수 있는 독이야. 날 죽이려드는 이유는 모르겠어. 그래서 대응책이 필요한 거고.”

당소소의 대답에 백서희는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기억마냥, 너무 많은 곳에 논리의 구멍이 있었다. 십계십마인 그가 왜 중원에 잠입해있는지 하며, 그 악명높은 자가  하필 당소소를 노리는지. 게다가 그런 사실들을 기억을 잃은 당소소가 어찌 알고 있는지.



“좋아. 백보양보해서 그렇다고 가정할게.  그런 사실들을 어떻게 안거야? 기억도 잃었고, 대부분의 지식도 잃었을 텐데.”

“…….”



당소소는 백서희의 말에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자신의 상황을 밝힐 순 없었지만, 그럴싸한 핑계는 댈 수 있었다. 하지만  핑계를 방금까지 펑펑 울음을 터뜨렸던 백서희에게 밝혀도 되는지에 대한 고뇌가 잠시 스쳤다.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마교에 납치를 당했었어.”


“납치?”


“대략 십 일 정도의 고문을 당했었어. 다행히도 날 납치한 사람은 날 죽이고 싶지 않아하고 싶어 했었지.”



귀를 의심하는 백서희.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 이후에 그들에 대해서 조금 알아봤었지. 겸사겸사 내 기억들도 좀 찾아내고. 썩 좋은 인생을 살진 않았더라고.”


“…하아.”




백서희는 더욱 엉켜가는 심정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조금 아래로 떨궜다.


‘대체 얜 뭐야?’

그녀에게 업보가 있긴 했었다. 그러나 제 멋대로 굴던 행동의 인과치곤, 너무나 값비싼 응보였다. 학대의 끝에 기억을 잃고, 칼에 찔리며 기억하지 못하는 악의를 갚아나가고 있었다. 거기에 마교의 음습한 손길마저 그녀에게 내밀어 지고 있던 것이었다.

“납치를 한 목적은?”


“그건 잘….”



당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마도공자를 무대 위로 끌어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적어도 그를 감당할 수 있는 주인공과 만난 후에야 언급할 수 있는 존재였다. 백서희는 당소소의 말 자리에 앉아 탁자를 두드렸다.


“납치를  자들은 널 살려두고자 했고, 이번에 널 독살하고자 했던 자는 네가 죽길 원했다. 아마 마교 안에서도 다른 계파일 가능성이 있어. 아니면 같은 계파지만, 뜻이 다르거나. 같은 이는 아니라는 거야.”

“그렇구나.”




당소소는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눈을 멍하게 뜨며, 고심에 잠긴다.



‘독마 류시형은 작중에서 마도공자의 휘하에 있었어. 같은 계파야. 그가 왜 날 죽이려들지? 사마문이 날 죽이려고 들었다면, 이런 식으로 죽이지 않았을 거야. 간살을 하거나,  잔인한 방식으로 죽이려고 들었겠지.’

백서희는 탁자를 두드려 당소소의 주의를 돌렸다. 당소소가 고심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자, 백서희가 말했다.

“그리고 그 무엇이 되었건, 너와 나로선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야.  보단 가주님께 먼저 말씀드리는 게 옳아.”


“말할 거야. 출발하고 나서.”

“뭐?”


“지금 말하면 분명히 연회에 보내지 않으실 거야. 대신 나가시거나, 내 스승님인 독무후님을 내보내시겠지. 두   가문의 일 때문에 바쁠  더러, 그래선 독마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거야. 내가 미끼가 되어야 해. 그래야 독마가 미끼를 물기 위해 움직일 거야.”




딴죽을 걸고 싶은 문장투성이인 당소소의 말. 백서희는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을 말했다.



“…너, 독무후님의 제자가 됐어?”

“어? 응.”


“그럼 이건 이제 단순한 문제가 아니게  텐데.”


백서희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단순히 당가의 혈육을 살해하려는 시도도 큰 문제였지만, 그 혈육이 독무후의 제자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전자가 당가만을 척지는 행동이었다고 한다면, 후자는 정파무림을 적대하는 것과 같았다.


천마와 같이 천하십강의 일 인이자, 당가의 의협을 바로 세우고 정파를 위해 여러 위업을 세웠던 그녀. 그렇기에 가볍게 던질만한 주제는 아니었다. 크게 키우자면 마교와 두 번째 전쟁을 할 수도 있는 일.

“경우에 따라선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어.”

“전쟁….”




당소소는 백서희의 말을 듣고 고개를 젓는다. 목적과 너무 멀어지는 주제였다. 그녀의 소망은 쌍검무쌍의 모든 비극을 종식시키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더욱 내가 미끼가 되어야 해. 가만히 내버려 두다간, 더 악랄한 수법으로 당가에 폐를 끼칠 거야. 이 방식이 최대한 잡음이 없는 방식이잖아?”

“가문걱정보다는 네 걱정부터 하지 그러니?”


백서희는 당소소의 말에 핀잔을 준다. 당소소는 그 말을 흘려들으며 말을 이어갔다.



“독마가 되었든, 그에 필적하는 자가 되었건 내가 빈틈을 보이면 모습을 드러낼 거야. 마교의 고수들은 대부분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거든.”

“…그런가? 나라면 목표가 홀로 연회에 나선다면 의심하면서 좀 더 정보를 수집할 텐데.”


“그 점에 있어선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들은 올 거니까.”

당소소는 백서희의 의문을 얼버무렸다. 그리고, 탁자를 내려치며 말했다.

“미끼에 끌려나온 독마가 중독되어 죽는다면. 그럼 마교가  사실을 공표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겠지. 자신들이 존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인 압도적인 힘에서 나오는 공포를 포기하진 않을 거니까. 하지만, 어떻게 그 독마를 중독 시킬 건데?”

“스승님에게 도움을 청할 거야. 독공에 있어선 스승님을 따를 자가 없어. 그리고 내가 독마를 약화시킨다면…!”

“부정확한 사실에 그렇게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야. 차분하게 생각해야해.”

백서희는 당소소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미끼를 뿌리려면 좀  교묘하게, 먹음직스럽게 뿌려야 하는 법이야. 제대로 된 계획도 없이 우격다짐으로 밀고 들어가면 잃지 않아야 할 것들까지 잃게 된다고.”

“그건, 그렇지.”



백서희의 차분한 어투에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에서 슬쩍 손을 치웠다. 독마와 독무후가 겨뤄 독마가 패하는 것은, 이미 확정된 미래. 하지만  예정된 미래를 알려줄 순 없기에 당소소는  발짝 뒤로 물러선다. 백서희는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일단 정리를 해보자. 널 노린 것은 마교. 그중에서 독마의 계파. 나찰염은 독마가 아니면 정제할 수 없고, 높은 확률로 사천성 안에 숨어 있다는 거지?”

“맞아. 나찰염은 소금에 섞은 독이기에 빨리 사용하지 않으면 그 성질이 변해. 대략 삼 일 정도. 그것으로 추정하면 독마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수 있어.”


“그리고  그 독마를 지금 죽이고 싶은 거고. 그래서 연회에 가는 것을 미끼삼아 그를 끌어내려고 한다.”




백서희의 정리에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서희는 앞섶으로 흘러내린 땋은 머리를 뒤로 훌쩍 넘기며 생각했다.


‘생각해  수 있는 몇 가지가 있어. 마교에 책임을 추궁하는 것, 지금 당장 보고해 독마를 추적하는 것. 무림맹에 소소가 독무후의 제자임을 공표하고 공식적으로 대응하는 것.’


“어떤 방식이 되었건 소란이 일 것은 자명해. 하지만 넌 소란이 일기 싫은 거겠지?”

“독마는 말 그대로 독술사로서 일가를 이룬 자야. 그를 상대로 소란을 피웠다간, 보통의 무림인들을 자극하는 것과는 비교도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거야.”



백서희 또한 당소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독은 위험하다.


무림의 굴레 안에서 그 어느 것이 위험하지 않겠냐만, 독은 그 중에서도 특별했다. 제대로 보이지 않고, 형태가 특정되지 않는다. 들에 풀린 독이 산을 넘어 무고한 이들을 해할 수도 있고,  세월을 남아 꾸준히 사람을 고통스럽게  수도 있었다. 여타의 다른 냉병기와는 궤를 달리하는 위험이었다.

‘그를 자극 했다간, 사천성 그 어느 곳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소소의 선택이 맞아. 무림맹이 당가를 정파로 받아들인 이유도 대응이 어려운 사파와 마교의 독에 대응하기 위해서였으니까. 다만, 좀  적극적으로 당가의 어른들에게 상담을 했어야  텐데….’


백서희는 걱정스런 시선을 던졌다. 당소소의 모습이 너무 위태로워보였다. 연약한 몸으로 태산을 짊어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역력했다. 당소소는 그 시선을 받으며 웃어보였다. 백서희는 혀를 차며 말했다.

“이번엔 달리 대안이 없어 보이니 도와줄게. 그래서, 난 뭘 구하면 되는데?”

“묵우[黙牛]의 뿔과 천산양[天山羊]의 간. 수선충[壽蟬蟲]의 몸에서 피어난 동충하초.”


“…꽤 가격이 나가는 약재들이네.”



백서희는 당소소의 입에서 거론되는 약재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녀의 입장에서 가격이 좀 나간다는 것은, 일반적인 기준으론 평생을 쏟아도 구경하지 못할 정도의 가격이라는 것이었다.




“가장 싸게 구할  있는 것은 일단 묵우. 이건 그저 울지 않는 소라는 특별함 때문에 가격이 높은 거니까. 다음이 문제인데. 천산양은 이름 그대로 마교가 집권하고 있는 천산의 산양. 구하기란 어려워. 그리고 고승이나 도인의 사리를 먹고 자라는 벌레, 수선충의 동충하초는….”


“구할 수 없어?”



당소소가 불안한 눈치로 묻자, 백서희의 입술이 움찔거린다. 피로에 찌든 모습을 하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당소소에게, 차마 안 된다는 말을 할 순 없었다.




“…이건 내 선에선 구할 순 없어. 하지만 본가의 오라버니라면 아마 구할  있을 거야. 연락이 가는 데 하루, 구하는 데 이틀. 다시 전달하는데 하루가 걸릴 거야.”


“예상보단 빠르네.”


안심을 하는 당소소. 백서희는 입을 열어 그 세 약재들의 가격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봐왔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며, 고급품을 어색해하고 값비싼 부채 하나를 받자 벌벌 떨던  모습. 그런 그녀에게 약재들의 가격이 시선의 부채 스무 개는 가볍게 넘는다는 사실을 귀띔해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백서희의 눈에 선했다.




“대금은….”

“아, 참. 값을 치러야하지. 얼마야?”

“…독마를 죽이고 난 뒤에 생각해보자고.”

‘이건 출발한 뒤 가주님과 상의를 해야  문제겠어.’



백서희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리숙한 소녀가 백능상단의 괴물과 직접적으로 거래를 하게 둘 순 없었다. 본격적으로 상도를 배우지 않은 자신도  오똑한 코를 베어 먹을 수 있을 정도인데, 백진오가 그녀를 상대했다간 끔찍한 사건이 벌어질 테니까.

백서희는 끔찍한 상상을 지우며 창가를 바라본다. 흐붓한 달빛도 시들어가며 깊은 밤을 알려주고 있었다.



‘일단은 여기까지.’


백서희는 눈꺼풀을 부르르 떨어대고 근육통 때문에 뻣뻣한 움직임을 보이는 당소소를 바라봤다. 그녀는 분명 한계였다.  이상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간,  몸져누울 수도 있을 것이다. 백서희가 말했다.



“밤도 깊었고, 피곤하기도 하니까. 내일 이어서 하자.”


“고마워, 서희.”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백서희에게, 당소소도 베시시 웃으며 답해주었다.



“으음….”

백서희는 얼굴을 붉히며 시름하는 소리를 냈다. 얼마 전까지 원수와도 같았던 아가씨에게 이름으로 불리는 낯선 감정이 백서희의 마음을 간질였다. 백서희는 그 마음을 꾹 누른 후, 심소를 나가며 말했다.



“푹 쉬어 소, 소소….”



그 말과 함께 들리는 빠른 걸음소리. 부끄러운 감정이 묻어나는 듯 했다.  걸음소리가 멀어져 들리지 않게 되자, 그제야 당소소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나도 갈까.”

그녀의 손엔, 비수가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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