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십삼장[十三章], 불이불조[不餌不釣] 7
손가락의 붕대에서 핏물이 번져 흘렀다. 당소소는 정신을 헤집는 고통을 느끼며 팔을 내렸다. 달은 졌다. 어둠은 아침의 불씨에 군청색으로 밝아오고 있었다.
삼 일차의 수련이 끝났다.
당소소는 아쉬움에 헐거워진 자세로 비수를 던졌다. 어림없는 쇳소리가 들려오며 당소소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녀는 녹초가 되어 주저앉았다.
‘…좀 힘드네.’
단순 반복에 이골이 나있는 그녀였지만, 변화가 없는 노력을 하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다. 적어도 벽돌을 나르면 어디에 쌓이는지는 보이는 것과, 밑 빠진 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염없이 물을 부어야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기에.
욱신거리다 못해 화끈거리기까지 하는 통증도 무시할 수 없었다.
패인 살에 달라붙은 붕대는 떼어낼 날이 두려워질 정도였다. 근육통으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이 처참한 처지에 신음소리대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씨팔, 허탈하네….”
지양. 땅을 제대로 접지하여 굳건한 힘을 끌어와야 한다. 인양. 최적의 움직임과 올바른 자세로 손실 없이 힘을 전달해야한다. 천양. 근골을 겨냥하고 힘을 일점에 모은다. 귀원. 모은 힘을 최적의 자세, 최적의 시간에 터뜨린다.
처음엔 이해가지 않았지만, 이젠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땅을 접지하면 근골이 흐트러지고, 올바른 자세를 취하면 힘을 제때 터뜨리지 못하는 몸. 차라리 다른 주연의 몸이 되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고려할 가치도 없는 생각이지만.’
당소소는 그 생각을 접으며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제아무리 칼이 좋아도 쓰는 이가 시원찮으면 그 쓰임새도 하찮아질 뿐이었다. 그녀는 땅에 떨어진 비수를 주워 허리춤에 끼워 넣고 한숨을 쉬었다.
“힘들어 보이는구나.”
“앗, 스승님.”
“어디 보자꾸나.”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당소소에게 다가갔다. 피범벅이 된 손을 잡더니, 이리저리 바라보며 혀를 찼다.
“황철에게 약을 가져오라고 하마. 하지만 이리 몰려있을 필요가 있느냐?”
“…앞으로 이 일 후에 연회로 가는 행렬이 꾸려져요. 아버지께서 그 연회에 참가하기 위해선 제가 삼양귀원을 익혀야만 한다고 말하셔서.”
“제 딸의 성격을 알면서도 고 놈이….”
독무후는 손을 놓고 턱을 쓰다듬으며 탐탁잖은 소리를 냈다. 당소소는 고개를 저으며 독무후의 생각을 부정했다.
“저도 동의한 부분이에요. 비수 하나 던질 수 없는 몸으로, 누가 봐도 위험한 외출을 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마음가짐이야 뛰어나다만.”
“그리고 제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당소소는 독무후를 내려다봤다. 독무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당소소의 시선을 받았다.
“이유?”
“사천성을 탐내는 무리를 끌어내기 위해선, 제가 가야해요.”
“허허.”
독무후는 당소소의 말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독을 먹고 방금 일어난 사람이, 미끼를 자청하는 모습이었다. 독무후는 뒷머릴 긁적이며 생각했다.
‘사천교류회의 일에서 예상하곤 있었다만, 생각보다 더 위험한 지경인데….’
“뭐 그래. 우선 네 계획이나 들어보자꾸나.”
독무후의 말에 당소소가 말했다.
“나찰염은 절정을 넘어선 연기화신의 초절정고수만이 다룰 수 있는 독이에요.”
“맞다. 어떤 것의 형질을 변환시키는 것은 사상의 무학, 그것도 경지가 꽤 높은 자의 소행이다. 독공에 조예가 깊은 자일게다.”
“게다가 나찰염은 마교의 주구들이 주로 사용하는 독, 그렇다는 이야기는….”
“널 미끼로 던져 독마를 낚아보겠다는 말이냐?”
당소소는 독무후의 짐작에 고개를 끄덕였다. 독무후의 헛웃음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독각혈가의 수괴가 사천성에 왕래했을 가능성이 지배적이다. 나찰염을 사용한 점이 그렇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면, 남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 독이란 그런 것에 특화되어 있으니까. 싹수가 노란 놈이라지만 독에 대해선 내 제자 다음으로 이해하고 있는 놈.’
“그게 그 놈이 노리고 있는 것일 게다.”
“예?”
“독은 형태가 없는 검이다. 흔히 통용되는 비소[砒素]나 독사의 독, 그것도 아니라면 알려지지 않은 독을 사용해도 무방해. 그 쯤 되는 놈이라면 어느 독을 사용하던지 너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 하지만 나찰염을 사용했지.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일부러 흔적을 남겼다…?”
독무후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일반적인 무술로 따지면 잘 알려진 자신의 성명절기를 써서 흔적을 남긴 것이지. 네 아비에 버금간다는 놈이 나찰염을 사용하면 발각된다는 것을 몰랐을까?”
“도발을 한건가요?”
“그것도 맞다. 하지만 더 간교한 이유가 그 안에 숨어있지. 맞춰보거라, 제자야.”
독무후가 내민 질문. 당소소는 손가락의 고통도 잊을 정도로 궁리하기 시작했다.
‘작중에서 독마는 꽤 교활한 인물이었다. 확실히 내 짧은 생각으로만 재단할 사람은 아니었어. 그 쪽이 고려할 것을 생각해야해. 아마 아버지를 염두하고 나에게 독을 먹였을 거야. 그럼….’
“아버지를 충동질해 당가를 흔든다?”
“격장지계라…, 좀 더 자세히 생각해보거라. 마교의 위치는 멀다. 우리가 찾아가기엔 너무 먼 곳에 있지. 그래서 우리보다 더 먼 위치에 있는 무림맹에서도 나서기 애매하단다.”
지원군은 없다. 그리고 선제공격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독살미수. 격변하고 있는 사천의 정세. 당소소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답을 내뱉었다.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군요.”
“독살에 몸을 웅크리면 백진오 고놈은 당가에 있는 제 동생이 어떻게 되던 아미파와 청성파에 찰싹 붙어버릴 것이야. 그렇다고 움직인다면 놈들은 만전의 기세로 대기하고 있겠지. 어느 쪽이든 그 놈이 노리고 있는 수다.”
감정에 이끌린 실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독무후의 설명에 비로소 대국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작중에서 죽음을 맞이한다곤 하지만 독마는 쌍검무쌍의 중요 악역의 오른팔이었다. 서있는 위치와 살아온 시간의 농도가 다르니, 쉬이 목을 내줄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마교와의 분쟁에 무림맹이 섣불리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사천성의 역학구도 또한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음놓고 당가를 상대로 도발을 할 수 있었다. 문파간의 알력싸움이 심해졌다는 것도 알고 있거니와 무림맹의 엉덩이가 무겁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이니까. 설령 온다고 하더라도, 무난하게 당가가 제패할 사천성의 구도는 완벽하게 어긋나게 된다.
그렇다고 당가가 움직이게 된다면.
“이 지점에서 네가 움직인다면 그야말로 사흘 굶주린 범의 아가리로 기어들어가는 셈이지.”
“…….”
“하지만 나서지 않으면 명예와 실리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당가의 혈족이 마교의 독에 당했는데 들고 일어서지 않는 저급한 가문이라고 헐뜯길 것이며, 가문의 불안과 성도의 패권. 모든 것을 잃는다.”
당소소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도모할 상대가 아니었다. 가볍게 던진 한 수에도 교활함과 지독함이 엿보이는 전형적인 독공의 고수. 당소소는 상처 입은 오른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피가 방울져 주먹을 적셨다.
대안이 필요했다.
그리고 당소소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가겠어요.”
“…내가 한 말은 들은 게냐?”
“저도 나름 준비해온 것이 있어요.”
당소소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독무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독마 류시형. 천산의 독특한 독물들로 재해를 일으키는 것을 즐김. 지혈암각신공[池血巖角神功], 독각천시, 독각혈사연이 그의 무공.”
“호오.”
독무후는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당소소의 말끝을 잡았다.
“꽤 많이 알아본 듯한데…. 하지만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느냐? 고작 이런 비수하나 목각인형에 맞추지 못하는 실력으로.”
독무후는 강한 어조로 당소소의 기를 죽였다. 그녀 또한 무리하는 것을 즐겨한다곤 하지만, 자신의 어린 제자의 경우엔 결이 달랐다. 곧 죽을 사람처럼 몸을 던지고 내일이 마지막인 것 마냥 행동한다. 한계의 조금 뒤로 몸을 던지는 것과, 끝이 없을 정도로 몸을 벽에 부딪치는 것과는 현저히 다른 것이니까.
그런 독무후의 걱정이 무색하게, 당소소는 더욱 강한 어조로 답했다.
“그의 무공을 파훼할 수 있어요.”
“뭐라고 했느냐?”
“그의 무공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제 몸을 살아있는 강시로 만드는 독각천시. 천 가지의 도검, 만 가지의 독이 들지 않고 사지는 마치 신병이기처럼 예리하게 만드는 것이죠.”
“거기까진 용케도 알아냈구나.”
독무후는 당소소의 말에 입을 가리고 입술을 매만졌다. 독마에 관한 정보는 널려있는 것이 기록이니 쉬이 찾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파훼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신의 제자는 이제야 내공을 깨우치고 기본을 연습하는 삼류무사였으니까.
당소소는 독무후의 생각에도 아랑곳 않고 독마를 패퇴시킬 방법을 늘어놓는다.
“그의 몸이 독으로 정련되었다면, 해독시키면 되는 거예요.”
“…해독.”
“묵우의 뿔. 천산양의 간. 수선충의 몸에서 피어난 동충하초.”
독무후의 눈가가 움찔거린다. 고려해본 적도 없는 독특한 조합이었다.
그리고, 고려해본 적도 없는 확실한 파훼였다. 독무후의 생각이 전개되며 독각천시에 약재들이 반응하는 미래를 떠올린다.
“수선충의 동충하초로 근골의 사후경직을 풀어준다. 천산양의 간으로 피를 돌게 하며, 묵우의 뿔로 몸 안에 독기가 응축된 독정[毒精]을 괴사시킨다….”
“예.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그는 생강시가 아니에요. 그저 자기 독에 자기가 중독된 바보가 될 뿐이죠.”
독무후는 눈을 찡그리며 당소소를 유심히 바라봤다. 독공의 기초도 모르는 초보자가 할 법한 발상은 절대 아니었다. 이치에 통달한 누군가가 밀어 넣은 깨달음이 확실했다. 독무후는 사건의 이면을 뒤집고 훑는다. 손끝에 걸리는 지점을 움켜쥐었다.
“이 발상은 혼돈의의 것이구나.”
“예, 옛?”
“만상[萬象]을 병마로 인식하는 미친놈이 달리 여러 명 있는 것이 아니지. 보아하니 칠혼독을 삼켰을 때 당시의 기억은 아직 몸이 기억하고 있는 듯하구나. 그래. 그렇게 된 것이었군.”
당소소는 예리한 독무후의 지적에 헛숨을 들이키고, 그녀의 결론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 그렇게 한다면, 확실히 독마를 패퇴시킬 수 있어요.”
“독마야 그렇다고 치자. 그럼 왜 하필 목표가 당가인가로 넘어가야할 터. 이건 아마 당혁이 마교의 독각혈가에 합류했다는 뜻이겠지.”
“당혁이….”
“그놈입장에선 불안을 지우고 싶을뿐더러, 독마도 당대 최고의 독공집단인 당가의 모든 것이 탐날 테니.”
독무후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뒷짐을 졌다. 자신이 취할 방침이 정해졌다. 독무후는 입꼬리를 미미하게 틀어 올렸다.
‘제법 머리를 굴렸네. 제 아비가 도와주긴 커녕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뜯어말릴 것 같으니 날 끌어들이고.’
탐구심이 짙은 자신의 성정에 기대, 연회에 같이 가자 종용하는 제자의 책략. 간교하기보단 노골적이었고, 교묘하기보단 솔직했다. 순수하게 책략의 완성도로만 따진다면 매우 부실했다. 하지만, 매력적이었다. 독무후는 푸석한 제자의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 일이 남았구나.”
우직한 제자는 스승이라면 피할 수 없는 기특한 얼굴을 들이밀며 매력적인 머리를 들이밀며 쓰다듬어 달라 외치고 있었다. 독무후는 당소소의 책략에, 그 우둔하지만 넘어갈 수밖에 없는 영악한 꾀에 넘어가주기로 했다. 독무후는 고개를 슬쩍 돌려 백서희를 불렀다.
“이제 나와도 된단다.”
“예.”
사제간의 대화를 엿들을 순 없는 노릇이라며, 밖에서 멀찍이 서있던 백서희가 무후당의 안으로 들어왔다. 독무후는 지친기색이 역력한 당소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데리고 가거라. 무리하지 못하게 꽉 붙들어 매고.”
“네, 그…! 목숨을 다해서…!”
“너까지 그러진 말거라.”
독무후는 실없이 웃으며 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당소소는 아쉬운 듯 무후당을 뒷눈결질로 훑으며 말했다.
“아직 완성이 되진 않았는데….”
“연회에 나와 같이 가려면, 네 상태를 제대로 조율해야 갈 수 있지 않겠느냐?”
“허락하시는 건가요?”
“내가 따라붙지 않는다면 담벼락도 넘을 기세의 널 누가 말리겠느냐.”
독무후의 간접적인 허락. 당소소의 안색이 눈에 띠게 밝아지며 헤실거리기 시작했다. 독무후는 웃음기를 섞으며 혀를 찼다.
“쯧쯧, 그리 감정을 숨기는 것이 서툴러서야. 어디 가서 당가의 혈족이라고 하면 믿겠느냐?”
“헤헤.”
“가서 쉬고 오후의 수련이나 조심히 하거라.”
당소소와 백서희가 꾸벅 인사를 하고 무후당에서 사라졌다. 독무후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무후당의 돌바닥을 훑었다. 철과 돌이 부딪혀 튀어있는 돌가루와 상흔이 어지러웠다. 독무후는 그 흔적을 뒷짐을 지고 따라 걸었다.
삼 일간에 걸쳐서 새겨진 상흔. 무술에 뜻이 있는 자라면 하루 만에 이룬다는 돌팔매질도 이토록 오래 걸릴 정도로, 그녀의 제자는 분명 무재가 전무한 아이였다. 하지만 당소소에겐 색다른 것이 있었다.
“자세의 미세한 오점을 자신의 의지로 수정한다라.”
단순 반복. 그저 반복. 돌아가려는 본능을 거스르고, 억지로 자신의 몸을 끌어당겨 휘두른다.
당소소는 그것으로, 무의식의 영역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이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무공고수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자기객관화, 그리고 무리를 넘어 혹사를 향해 나아가는 기질과 그저 하나의 결과에 생각을 집중하는 의지. 그것이 맞물려 새로운 이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걸 제자 복이 좋다고 해야 할지.”
독무후의 머릿속엔 이 사실을 당소소에게 알려주면 어떤 일이 생길지 훤히 그려졌다. 독무후는 고개를 저으며 머리를 짚었다. 영 골치가 아픈 제자였다. 그런 독무후에게 황철이 다가왔다.
“…주인님,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내가 무엇을 어쩌겠느냐.”
독무후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귀여운 제자가 원하는데, 그리 해주어야지.”
독무후는 발걸음을 옮겼다. 제독전으로 향하는 그녀의 앞으로 여명이 내리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