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십삼장[十三章], 불이불조[不餌不釣] 8
이불 위에 얹힌 뼈마디가 쑤셔오는 고통과 근육통. 당소소는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삼양귀원을 수련하기 시작한지 사 일 차가 되었다.
변화는 체감되지않았다. 다만 연약하기 짝이 없는 몸은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근육이라곤 붙어있지 않은 연한 살결과 무리한 움직임을 겪어본 적 없는 약한 뼈마디들. 조막만한 폐는 몸이 필요로 하는 숨결을 담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당소소는 딱딱한 움직임으로 이불을 걷었다.
“…몇 시야.”
그녀는 바싹 마른 입을 달싹이며 침상에서 일어섰다. 창밖으로 내려오는 가을햇살. 창가에 놓인해시계가 신시[申時:15시~17시]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게 했다. 당소소는 비명을 지르는 몸을 힘겹게 옮기며 탁자에 앉았다.
‘종이?’
탁자엔 종이 한 장이 올려져 있었다. 당소소는 접힌 종이를 집어 들어 펼쳤다.
-상품 발주하러 감, 무리하지 말 것. 백서희.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내려놨다.
물고기를 낚기 위한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다소 억측이 있던 부분도 독무후의 조언으로 수정되어 계획은 정상궤도에 올라섰다. 기대하지 않았던 백서희와의 교류덕택에 재료들 또한 예상보다 훨씬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너무 오래 잤어.”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이빨을 꽉 깨물었다. 탁자를 짚고 일어서는 손이 고통에 파르르 떨린다. 그럼에도 당소소는 태연한 걸음걸이로 침소를 나섰다. 과거의 평상시보단 꽤 독한 통증이었지만, 그럭저럭 버틸만한 고통이었다.
‘일급을 주지 않아서 약도 못 샀을 때가 몇 번인데.’
당소소는 피식 웃으며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진물과 피에 엉킨 붕대가 그녀의 손가락을 헐겁게 얽매고 있었다. 당소소가 다시 고개를 들자, 결연한 표정의 시녀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누워 계세요, 아가씨.”
“고운 손이 어쩌다 저렇게 되었는지…. 제가 얼른 가서 미용품들을가져오겠습니다.”
“연회에 나가시려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몸을 가꾸셔야합니다.”
당소소의 앞을 막아서며 그녀를 설득하는 시녀들. 당소소는 지친 표정으로 그런 시녀들의 뒤에 서있는 하연을 바라봤다.
“하연도 그렇게 생각해?”
“…….”
하연은 당소소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심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잔말 말고 비켜드려라.”
“시, 시녀장님?”
“아가씨께서 걷고 계신 대로를, 하인 되는 자로서 어찌 막는단 말이냐.”
하연은 그렇게 말하며 당소소에게 다가왔다. 당소소는 미안함이 담긴 눈빛을 하연에게 보냈다.
“상처를 닦을 수건과 붕대, 고약을 가져와라.”
“예, 시녀장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녀는 시녀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당소소의 오른팔에 손을 가져갔다. 당소소는 그녀의 손길을 허락하며 하연의 표정을 관찰했다. 엄격해 보이는 무뚝뚝한 얼굴엔, 왠지 모를 분노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연은 푹 젖은 붕대를 당소소의 손에서 떼어냈다. 피와 진물이 난잡하게 엉켜있는 상처가 드러났다. 다른 시녀가 내미는 깨끗한 물수건으로 세 손가락을 깨끗하게 닦아낸 뒤, 고약을 발랐다.
“윽.”
“…….”
소리를 죽인 신음이 하연의 귀를 간질였다. 고약을 발라주던 손길이 잠시 멈춘다. 하지만 다시 손은 움직이며 당소소의 손엔 깨끗한 붕대가 감겼다. 손가락을 몇 차례 움직여 붕대가 꽉 매어있음을 확인한 당소소는 하연을 바라보며 웃었다.
“갔다 올게.”
그녀는 어느새 옆으로물러선 시녀들을 지나며 말했다. 하연은 고개를 숙이며 당소소가 독봉당을 떠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소소가 모습을 감춘 뒤에야, 긴 한 숨을 쉬며 주인의 무사를 염려하는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후우.”
주인의 뜻을 존중하고 보좌해야한다는 전임 시녀장의 가르침이, 오늘따라 너무나도 무거웠다.
*
무후당에 도착한 당소소는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풀어댔다. 옆구리, 팔목, 허벅지, 어깨 등등.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곳은 없었다.
“으윽.”
한차례 앓는 소리를 뱉은 당소소는 품속에서 비수를 꺼냈다. 나흘간 제대로 사용되지도 못한, 못난 주인을 만난 현천비. 당소소는 왼손으로 비수의 날을 튕겼다. 파리한 음색이 울리며 당소소의 마음을 예리하게 저몄다. 당회가 호언장담했던 대로 무기는 멀쩡했다.
당소소는 천천히 걸어가 목각인형 앞에 섰다. 연회에 갈 준비를 해야한다는 시녀들의 말이 떠올랐다.
‘오늘 안에 끝내야해.’
당진천은 오 일의 기간을 던져줬지만, 실제로 당소소에게 주어진 것은 사 일이었다. 삼양귀원을 익힌 뒤에 연회에 갈 준비까지 마치는것이 오 일이었으니까.
‘하연이 나온 이유도 그래서였구나.’
시녀장 수업을 받느라 두문불출하던 그녀가 독봉당에 모습을 보인 이유도 그것이었다. 연회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주인이 혹여 그것에 신경을 써서 실패할 염려 때문이었다.
당소소는 거리를 가늠한 뒤, 목각인형에서 조금떨어진다.
한 호흡을 머금는다. 비틀리는 두 발끝. 다리는 긴장하며 허리가 꼿꼿이 선다.
호흡이 뱉어진다. 잠시 상체가 흔들린다.
다시 들이키는 호흡. 상체의 근육이 빳빳하게 굳으며 앞으로 뻗는 자세를 잡는다. 그리고 오른손은 목각인형을 겨냥한다. 그리고, 호흡은 다시 바깥으로 되돌아간다.
짤그랑!
목각인형의 근처에서 비수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당소소는 붕대너머로 느껴지는 고통에 주먹을 움켜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애써 무시하며 몇 차례의 더 반복을 했다.
자세는 미세하게 수정되었지만, 쇳소리는 수정되지 않았다. 붕대 너머로 다시 고약이 엉킨 피가 배어나왔다. 당소소는 비수를 줍지 않는 대신,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무엇이 문제일까.’
당소소는 자신의 자세를 회고했다. 발과 다리의 자세인 지양은 수정할 점이 보이지 않았다. 허리와 상체의 자세인 인양 또한 독무후가 취했던 자세 그대로였다. 목각인형을 겨냥하는 시선과 감각, 손끝인 천양은 완벽하게 목각인형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숨결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주며 힘을 맺는 귀원. 손을 놓는 순간은 지난 삼 일간 계산해왔던 최상의 박자였다. 그러나 비수는 불안한 회전 끝에 목표에 미치지 못하고 땅에 떨어진다.
당소소의 고개는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보고 듣고 배운 것 그대로였다.
적절한 부하가 걸리지 않던 다리. 수정했다. 제대로 뒤틀지 않아 땅의 힘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던 발. 수정했다. 제대로 서지 않았던 허리. 수정했다. 힘의 방향이 올바르게 나아가게 하는 상체의 근육. 수정했다. 목표를 겨냥하는 감각과 정신. 사흘간 잡념을 깎아 수정했다.
하지만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당소소는 평균 이하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김수환은 이 세계의 상식이 결여된 탓이기 때문이리라.
‘…현대인이라는게 이렇게 절망적일 수가 없네.’
잡념도 잠시, 손가락의 고통이 가시자 당소소는 어김없이 비수를 향해 걸어갔다. 다시 비수를 줍고, 겨냥했다. 두 호흡이 지나고, 다시 한 호흡을 더 가다듬으며 자세를 되새김질한다.
‘지양, 완벽. 인양, 완벽. 천양…, 수정했어.’
잡념을 깎아내며 손끝은 목각인형의 머리를 겨눈다. 숨결이 순간 멎는다. 빛을 뿌리며 오른손은 휘둘러진다.다소 둔탁한 소리가 당소소의 귓가를 때린다. 당소소의 숨결이 돌아왔다. 단 한 번 유효한 결과를 냈을 때처럼, 비수의 손잡이가 목각인형의 하체를 때렸다. 당소소는 서둘러 자신의 행동을 복기한다.
‘무엇이 달랐지? 자세는 완벽히 똑같았어. 다른 생각을 하다 천양을 수정했던 것이 유효했던건가?’
당소소는 빠른 걸음으로 비수를집은 뒤 다시 돌아가 삼양귀원의 자세를 취했다. 근육통 때문에 잠시 뒤틀림이 있었지만, 이내 자세를 바로잡으며 생각했다.
‘주인공은 예향의 소원을 들어준 뒤 강호를 유랑하고 있겠지?’
슬쩍 떠올리는 잡념.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깎아낸다. 다른 생각을 깎아내고, 다른 소리를 깎아내며, 다른 시야를 깎아낸다. 비로소 남은 목표 하나. 팔이 움직인다.
짤그랑!
“…씨팔.”
당소소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았다. 무식하게 던지기만 한 지도 벌써 사흘이었다. 시간제한이 없다면 모르겠으나, 이대로 무식하게 던지기만 해선 제시간에 맞추지 못한다는 직감이 당소소의 심중을 쑤셨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자세는 괜찮아.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 거야.’
무릎을 들어 올려 머리를 올린 당소소는 비수를 빤히 바라봤다. 던지는 물체의 문제는 당연히 아닐 것이다. 삼양의 각 자세도, 귀원에 이르는 자세도 썩 괜찮았다.
‘…스승님한테 물어보기도 좀 그렇고.’
당소소가 독무후를 연회에 끌어들인 바람에, 독무후는 팔자에도 없는 야근을 하며 시간을 두고 처리해야할 제독전의 업무들을 몰아서 처리하고있었다. 당소소가 부탁했었던 류시형과의 일전을 준비하는 것과 함께. 그렇기에 그녀를 더 이상 귀찮게 할 순 없었다.
‘아무리 이긴다는 미래가 확정되어 있다곤 하지만, 스승님을 위험에 밀어 넣는 거니까. 내가 그 위험을 덜어내야 해.’
당소소는 그 생각과 함께 땅을 짚고 일어섰다. 저녁에 가까웠던 유시의 하늘은 어느새 노랗게 젖어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쌍검무쌍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무당산에서 내려오며 나누던 예향과 주인공의 대화였다.
‘노을이 아름답네요.’
‘아침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것이 무엇이 아름답단 말이오?’
한휘는 예향의 말에 퉁명스럽게 답하며 술잔을 홀짝였다. 사문의 가르침을 부정해달라는 요청이 꽤나 힘들었는지, 무당파의 해검지에선 지칠 줄 몰라 하던 그도 지친 기색을 비췄다. 예향은 그런 그의 태도에 잠시 눈총을 주더니, 점소이가 내려놓은 소면을 그의 앞에 밀어주며 말했다.
‘해가 녹아내려저녁과 낮을 이어주는 것 같잖아요?’
‘…뭐, 운치가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소.’
한휘는 심드렁한 태도로 대꾸를 하며 술병을 들어 흔들었다.
‘이것과 곁들이면, 금상첨화겠구려.’
‘후우. 궁기 어르신은 왜 이런 자를…. 그냥 한 잔 주기나 하세요.’
예향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과격한 손짓으로 술잔을 내밀었다. 한휘는 웃으며 그녀의 잔에 술을 채웠다.
‘걱정마시오. 사문이 낮이고 소저가 밤이라면, 내가 그 사이를 이어주는 해가 될 터이니.’
당소소는 회상을 털어내고 웃음기담긴 한숨을 쉬었다.
“에휴. 부러워라.”
저 장면이 쌍검무쌍을 봐왔던 이유였다. 쌍검무쌍은 강한 주인공이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풍류를 즐기다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려낸 작품이었다. 그것이 좋았다. 주인공은 현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흘러가는 구름 한 조각을 안주삼아 술을 한 잔 홀짝이고,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을 술 삼아 소면 한 그릇을 삼키면 그만인 사람이었으니까.
김수환은 그런 여유가 부러웠다.
당소소는 고개를 젓고 비수로 향해 다시 그것을 쥐었다.
‘오늘도 밤새 던져야하나.’
당소소는 크게 숨을 내쉬며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예향의 말마따나 군청으로 저물어가는 하늘과 황색으로 타오르는 하늘이 해를 중심으로 어지러이 뒤엉켜있었다. 그야말로 황혼[黃昏]이었다.
그리고, 당소소의 눈이 커졌다.
‘해가 둘을 잇고 있어. 맞아. 그래.’
당소소는 그 생각을 하며 숨을 깊게 들이켠다. 폐포 한 올 한 올이 모든 숨결을 움켜쥔 뒤에야, 들숨을 멈추고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다리는 땅의 힘을 올바르게 쥐고, 허리는 그 힘을 손실 없이 전한다. 상체는 그 힘을 목표로 향해 겨누고, 오른손은 장전된다.
고요한 정적.
최적의 때를 고른다.
사흘하고도, 한 시진의 시간이그녀의 손끝에 어린다. 일 각의 호흡은 이백이십오 번의 반복이었다. 한 시진은 천팔백 번의 반복이었고, 사흘은 이만천육백번의 반복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분절되어 당소소의 의지를조각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해가 되어야 했다.
호흡은 그 외의 모든 것이었다.
당소소의 숨은 아직도 내쉬어지지 않았다.
이만천육백을 한 곳으로, 천팔백을 한 곳으로, 이백이십오를 한 곳으로, 셋을 한 곳으로, 이윽고 하나를 한 곳으로 움켜쥔다.
파앗!
쩌억!
“……!”
현천비가 목각인형의 머리에 박혔다. 당소소의 동공이 확장된다. 그리고, 숨을 뱉으며 말했다.
"됐다….“
사흘 동안 수만갈래로 흩어졌던 것들이, 하나가 되어 비로소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갔다.
삼양귀원[三陽歸元].
쌍검무쌍 속 당가의 암기술이 그녀의 손끝에서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