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8화 〉십삼장[十三章], 불이불조[不餌不釣] 10 (88/130)



〈 88화 〉십삼장[十三章], 불이불조[不餌不釣] 10

가주전의 안. 당진천은 의자에 앉아 자신을 찾아온 자를 바라봤다. 그자는 당진천을 앞에 두고도 주눅 들기는커녕, 거만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뒷짐을 진 채 가주전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했다.



“가주.”

“말씀하시지요.”

“최근에 꽤 정력적으로 활동을 하십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당진천을 내려다봤다. 당진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무림맹에서의 일도 얼추 마무리 되었고, 이젠 가문의 일도 신경써야하지 않겠습니까?”

“꽤 태연한 기색이십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지?”




당진천은 시선을 올리며 등받이에 상체를 뉘였다. 시선은 부딪히고, 얽힌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먼저 얽힌 시선을 풀어낸다.



“그럴 리가. 구주십이천의 독천이, 이젠 가문까지 돌보게 되었으니 당가의 홍복이 아니겠습니까?”

“과찬이십니다.”




당진천은 그를 향해 미소를 그려주며 답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매만지며 생각했다.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정도로 급하긴 한가보군.’

“그래서, 공사가 다망하신 분께서 본가엔 어인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상냥한 기색의 말투에, 당진천의 질문을 받은 그는 볼살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동요의 편린은 잠깐이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감정을 지우고 말했다.

“뭐 별 일이 있어서 찾아왔겠습니까? 그저 안팎으로 시끄러운 가문을 돌보는 가주가 걱정되어 찾아온 게지.”

“하핫, 역시 제 걱정을 해주시는 분은 장로님밖에 없습니다.”

“조심하세요. 가뜩이나 흔들리는 당가일진데, 가장 굳건한 기둥이 흔들려서야 되겠습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당진천은 장로의 시답잖은 대화에 어울리며 가볍게 웃었다. 장로 또한  웃음에 맞춰 웃어주었다. 서로 변죽을 울리는 중이었다. 장로는 웃는 눈을 옆으로 흘겨 시간을 가늠했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행동이여도, 당진천의 눈은 그것을 정확히 포착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바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약점 또한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섣불리 협상을 시작하는 칼을 뽑아들 수가 없었다. 먼저 칼을 뽑는 쪽이 초조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될 테니까.

당진천은 웃으며 장로에게 제안했다.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시겠습니까? 마침 이번 교류에서 꽤 괜찮은 찻잎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아마 다도를 즐기시는 장로께서도….”


“가주.”


“예.”




여유 있는 자의 은근한 도발. 시간도, 세력도 자신 쪽으로 웃어준다는 것이었다. 장로는 이제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는 당진천의 태도에서 자신이 먼저 칼을 뽑지 않는다면, 영원히 변죽만 울리게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우쳤다. 그렇기에, 초조한 자가 먼저 협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백능상단과 교류를 시작한 저의가 무엇입니까?”

“저의라뇨? 전 그저 집단의 책임자끼리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한 것에 불가합니다만.”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가주.”


당진천은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장로의 눈가가 찌푸려진다. 그는 분가와 그들이 이끄는 사업체를 대변하는 장로 중 한 명. 여유를 연기할 여유는 없었고, 그렇기에 시작한 협상에선 미사여구는 필요 없었다. 장로가 말했다.



“당문상단은 당가가 설립한 이후로 지금까지 서로 상생을 하는 혈육이자 맹우라는 것, 알고 계시겠지요.”

“물론입니다. 항상 노고에 감사드리고 있지요.”


“헌데 이제 와서 백능상단과의 거래를 하겠다는 태세를 취하는 것은….”

장로는 노기어린 숨을 뱉으며 말했다.

“방계와 그들의 사업체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적이라….”




당진천은 팔걸이를 쓰다듬던 손을 멈춘다. 잠시간의 정적. 장로를 바라보는 당진천의 눈은 이유모를 감정이 요동쳤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이었고, 당진천은 실소를 내밀며 장로의 말을 부인했다.



“그럴 리가요. 제가 어찌 당가의 전통과 방계와의 우애를 저버리겠습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그들과 거래를 하려는 겁니까?”


“장로님. 제가 지금까지 어느 곳에 있었습니까?”



당진천은 장로에게 역으로 물음을 던졌다. 장로는 망설임없이 그 물음에 답했다.



“하남성 개봉에 계셨지요.”


“예. 전 무림맹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무엇을 보고 느꼈을 것 같습니까?”


“…….”




당진천은 침묵하는 장로에게 정답을 말해주었다.

“그곳에서도 당가의 병기와 약학은  희귀한 축에 속한다는 겁니다.”

“그게 백능상단과는 무슨 연관이….”




장로의 반발에 당진천은 고개를 저으며 책상을 두드렸다. 그러자 시녀가 문을 열고 나타나 다기류와 함께 찻잎이 담긴 통을 내려놓았다.


“그들이 가져온 복건성의 백호은침입니다. 비단, 그것도 중원제일비단이라는 촉금을 주력으로 거래하는 그들은 비단길을 따라 다른 지역과도 거래를 하는 중입니다. 그로 인해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게 되었고, 그렇게 사천성 제일의 상단이 되었지요.”

“…….”

“이제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장로의 눈이 가늘어진다. 당진천이 할 말이 그의 머릿속에 예상되었다. 당진천은 그의 예상 그대로, 장로에게 말해주었다.

“가문의 방계가 운영하는 당문상단은 다른 지역과 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품목은 촉금보다 더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정파에서  누구도 독을 전문적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에 파생되는 약학 또한,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문은 없다시피 하고 있었다. 다들 지방의 유명한 의원에 기대거나, 명의로 유명한 이들을 수소문해서 찾아다닐 뿐.

하지만 그렇게 수많은 기회가 있음에도 당문상단은 그저 사천성 안의 행보에만 만족하고 있었다. 장로는 서둘러 그렇게 할  밖에 없었던 이유를 내뱉는다.



“하지만 가문의 비의가 혹시 다른 성에 퍼질까 염려하는  가주들의 방침이었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거래처를 방계가 운영하는 당문상단으로 정한 것이었다는 것도.”


“당가의 기본적인 방침은 언제나 폐쇄였습니다. 왜 저희가 데릴사위를 들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각종 요직은 직계혈족에게만 허락되며, 방계를 맡고 있는 당가의 장로들에게 당가의 사업을 맡기는 건지 이해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당진천은 장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독은 재료를 알고 비율을 분석한다면 조합을 할 수 있으니까. 무공초식은 모방하기 어려우나, 당가의 암기는 사용법만 알고, 그에 맞게 사용만하면 되는 것이니까 지요.”


“맞습니다. 그리고 가주님께선  누구보다 독과 암기의 위험성에 주의를 기울이시는 분 아닙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장로. 하지만….”

당진천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비유가 알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아니, 이전에도 우리는 고였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 스승의 문파인 오독문을 끌어들여 해결했었지요.”

당진천은 장로를 바라봤다. 자글한 눈가의 주름이 고집스레 파였다. 당진천은 웃으며 말했다.




“받아들이기 어려우시겠지요.”

“솔직히, 가주의 행보에 웃어줄 방계는 많지 않습니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당진천이 그 말에 장로를 바라봤다. 하지만 장로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정확히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여러 사업을 방계에게 나눠주어 당가의 재정을 맡겼다곤 하지만, 여전히 그 사업을 하청하는 것은 본가였으니까.

“전통을 버리고 본가에 헌신한 방계를 박대하며, 명예에 눈이 멀어 가문을 돌보지 않는 행동…. 저희의 입장에선  이상 좌시하기 힘듭니다.”

당진천은 장로의 말에서 느껴지는 떨림을 움켜쥐었다. 이이상 몰아붙이는 것은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당진천은 장로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 장로님들과 싸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지금 보이는 행보는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명백히 방계를 밀어내고 당가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당장 사천교류회라는 모임도 가주의 명예욕을 고취시키기 위함 아닙니까?”

“…그럴 리가요.”



당진천은 많은 반박을 마음속으로 구겨 넣고 장로의 말에 답했다. 그리고 격앙된 장로에게 말했다.



“제 행동은 어디까지나 당가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기 위함이었습니다.”


“가문의 안위를 팔아 독천이라는 이름을 얻은 가주께서, 그걸 믿으라고 하는 말입니까?”


당진천의 표정이 잠시 굳는다. 장로와의 독대에서 처음 보이는 감정의 변화였다. 후덥지근해진 가주전 안으로, 시녀의 목소리가 끼얹어진다.




“가주님, 아가씨가 뵙길 청하십니다.”


“…….”


“…….”

당진천은 눈을 감는다. 그리고, 깊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동안은  터놓고 이야기 할 여유가 없었지요.”


“가주께서 좀처럼 바빴어야지요.”


“모든 것은 분가와 방계가 모두 모이는 날, 당가대회의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장로를 달래며 넌지시 내미는 은근한 축객령. 장로 또한 격앙된 숨을 뱉으며 말했다.



“가주가 우리 방계를 이렇게 대우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백능상단과의 거래도 제대로 설명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보도록 하지요.”



장로는 당진천의 말에 수긍하고 등을 돌린 후, 가주전의 문을 열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장로는 자신을 바라보는 당소소를 인지했다. 그리고 웃는 기색으로 말했다.


“오랜만이네.”



당소소는 의문이 생긴 표정이 되어 장로를 바라봤다. 누군가를 닮은 것 같다는 느낌이 그녀의 마음속에 얹혔다. 하지만 당가의 아가씨가  입장에서 먼저 인사를 건넨 사람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소소는 포권을 하며 그의 인사를 받았다.

“가주님의 여식, 당소소라고 합니다.”

“변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어머니를 닮아가는 구나.”


알쏭달쏭한 시선을 뿌리며 말하는 장로에게, 당소소는 무어라 대답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고심 끝에 자신의 관점에서 가장 무난한 대답을 내밀었다.



“가, 감사합니다?”

“푸훗. 그래. 가주님 대신 연회에 간다는 소식은 들었다.”


장로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조심히 다녀오거라.”




장로는 그 말을 남긴 채 가주전을 떠났다. 당소소는 팽배해진 의문을 담아 그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누굴 닮았다는 느낌이면 당소소가 원래 알던 사람이라는 건데.’

“왔으면 들어와 앉거라.”

“앗, 네.”

나지막한 당진천의 말에 당소소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가주전의 안으로 들어갔다. 당진천은 다시 자리에 앉아 지친다는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당소소는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별 것 아니다. 네가 연회에 간다고 떼를 쓰는  보다야.”


“…….”


당진천의 말에 당소소는 난감함에 말을 이을  없었다. 당진천은 그런 당소소의 모습에 낄낄거리며 손을 들어 당소소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던져보아라.”

“예?”

“삼양귀원을 체득했으니, 나에게  것 아니겠느냐?”

“그건, 예. 그렇지만.”

“네 아빠가 너무 멋있어서, 차마 던지지 못하겠느냐?”


“…….”



파앗!

한 호흡에 내달려온 현천비가 당진천의 손에 잡혔다. 흠잡을  없는 자세, 깊고 벼락같은 호흡. 그리고 깔끔한 궤적. 완벽한 투척이었다. 당진천은 자신의 손에 잡힌 비수를 바라보며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사춘기인가?’



당진천은 시선을 들어 당소소를 바라봤다. 그리고 표정을 늘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만만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칭찬을 요구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기에. 당진천은 탁자 위에 현천비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용케 삼양귀원을 체득했구나.”

“독무후의 제자인데, 그 정도는 해야죠.”


우쭐대는 모양새의 당소소를 바라보는 당진천. 그의 시선은 슬쩍 내려가 당소소가 뒤쪽으로 숨기고 있는 오른손에 닿았다. 지금도 코에 잡히는 미세한 혈향은 그녀가 얼마나 수련에 매진했는지 여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고생했다. 연회에 가도 좋다.”


“네!”

“대신 나와 약속을 하나만 하자꾸나.”

당진천은 입에 걸린 웃음을 지우며 말했다.

“독마의 근처엔 가지 않도록 하거라. 스승님께도 말해둘 테니.”


당소소의 얼굴이 굳었다.


‘어떻게 알았어?’

당진천은 굳어있는 당소소를 외면하며 태연스레 말했다.



“할 말이 없으면 나가보도록 하고.”

“잠시, 잠시만…!”


“싫으면 가지 않아도 괜찮다.”

“그런 건 아닌 데요….”


“아니면 더 할 이야기가 없는 것 같군. 진향.”


당진천이 시녀 하나를 호출하자, 시녀가 들어와 당소소의 곁에서 말했다.

“처소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아가씨.”

“…네.”

체념한 채로 가주전을 떠나는 당소소. 문이 닫히자, 병풍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주님, 다 늙은 노친네를 여기에 두신 연유를 여쭙고 싶습니다만.”

“알고 있잖아?”


“뭐, 요새 가르치는 흑풍대의 아해들과 함께 장로들을 주시하라는 뜻입니까?”




당진천은 그 물음에 대답했다.



“녹풍대를 이끌고 소소 쪽으로 붙어. 장로 쪽은 내가 직접 움직이지.”

“그건 편애입니다, 가주님. 가문을 수호하는 녹풍대를 움직이라니요. 무엇보다 독무후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저지하시겠지요.”

당진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 딸아이는 반드시 독마를 찾아갈 것이야, 단혼사.”


당진천은 한숨을 쉬었다.


“전장은 그쪽이다. 가서 낚싯대 잡아주는 것이라도 거들어 주고 와.”



당진천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다른 의미로 말을 듣지 않는 딸아이는, 새로운 방식으로 당진천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그 잔망스런 행동들에, 당진천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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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독심[一片毒心] - 십삼장[十三章], 불이불조[不餌不釣]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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