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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화 〉십사장[十四章], 쟁인자유[爭人者濡] 1 (89/130)



〈 89화 〉십사장[十四章], 쟁인자유[爭人者濡] 1

쟁어자유[爭魚者濡]라는 말이 있다.

물고기를 낚으려는 자는 물에 젖는다는 사자성어.

그와 마찬가지다.

사람을 낚으려는 자는, 피에 젖어야 한다.

*

장보는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다. 가빠진 숨과 메스꺼워진 속은 가뜩이나 힘든 등산의 족쇄가 되었다. 장보는 중턱에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의 시선에 오두막주제에 갖은 휘장과 장식들이 걸려있는 집이 발견됐다.

‘…이 자들은 정녕 사천성에 공작을 하기 위해 숨은 것이 맞나?’

장보는 그런 생각을 하며 품속의 투서 위로 손을 올렸다. 새살이 돋은 손목이 간질거렸다. 장보는 손목을 긁으며 자신을 발견하고 다가오는 무인들을 바라봤다. 가죽 옷을 입고 있는 그들은 허리춤의 단도를 위협적으로 내보이며 말했다.


“당가의 총관인가?”

“그렇소.”


무인 한명이 장보에게 접근한다. 그는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몸을 수색하기 시작한다. 여행에 쓰인 철전과 품에 넣어둔 투서만이 그의 손길에 걸렸다. 무인은 투서를 흔들며 물었다.

“이것은?”

“독각혈가주에게 드릴 물건이오.”

무인은 눈을 좁히며 투서의 이모저모를 뜯어본다. 냄새를 맡아도 보고, 손으로 쓸어도 본 뒤, 내공을 불어넣기도 해보고 손가락을 혀에 가져다  되새김질을 해보기도 한다. 일련의 검사가 끝난 뒤, 무인은 뒤돌아서며 말했다.

“따라오도록.”

무인은 화려한 오두막으로 향했다. 장보는 헛기침을 하며 긴장감을 죽이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문을 경계하며 서있는 독각혈가의 무인들이 장보를 노려봤다. 장보의 걸음이 약간 빨라지며 오두막 안으로 들어선다.

익숙한 비린내가 그의 코를 들쑤신다. 장보는 코를 찡그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걸었다. 오두막의 구석에선 뱀과 전갈, 갖가지 독물들을 움켜쥐고 있는 자들이 장보를 돌아보고 있었다. 장보는 애써 그들의 시선을 회피하며, 뱀가죽으로 겉을 덮은 의자 앞에 섰다.

그 의자엔, 독각혈가의 주인이 무료한 표정으로 장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가의 총관인가?”

“혈가의 주인을 뵙니다.”


장보는 포권을 하며 독마에게 예를 표했다. 하지만 독마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장보가 미간을 좁히며 그를 바라보자, 독마는 고개를 기울이며 그를 삐딱하게 바라봤다.


“이곳은 어디인가?”

“……?”


장보는 당황하여 침을 삼키고 생각했다.


‘이곳의 지명은 사천성의 무토산. 허나 그것을 묻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을 도출한 장보의 입술이 꿈틀거린다.

“오만하구려.”

“천마신교[天魔神敎]의 영토는 어디까진가? 하늘과 가장 가까운 천산의 봉우리? 그것도 아니라면 신강[新疆]의 오로목제? 청해성[靑海省]의 일부? 과연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벌써 청해성까지…?”

놀라는 기색의 장보. 독마는 그 반응을 웃어넘기며말했다.


“천마께서 보살피는 이들이 서있는 곳. 바로 그곳이 천마신교의 신역[神域]이자 그분의 영토.”

“…….”

독마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그러니 이곳은 곧, 천마신교이자 독각혈가의 영토라는 게지.”

“마교의 방식으로 예를 표하란 말씀이오?”

“과연, 본좌와 연서를 주고받을 만큼의 머리는 돌아가는 것 같구나.”

독마는 키득거리다,웃음을 지우며 말했다.

“이해하였다면, 마교라는 역겨운 지칭은 이곳에선 사용하지 말도록.”


독마의 맹렬한 시선은 장보의 목을 졸랐다. 장보는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여 목을 조르는 살의를 걷어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독마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장보는 숨이 쉬어지지 않아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오체투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야.”


독마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움켜쥐었다. 장보의 한쪽 어깨가 푹 짓눌린다. 장보는 그대로 상체를 푹 숙였다. 움켜쥔 손에서 검지를 펼쳐 위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장보의 양 손이 내밀어졌다. 그의 손바닥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이 천마께 앙복하는 자세다.”

“허억, 허억…!”


장보는 숨을 몰아쉬었다. 짓눌린 숨결이 고통스러웠다. 메스꺼웠던 속이 더 부대껴왔다. 손목이 간지러웠다. 아니, 팔이 간지러웠다. 독마는 굳어있던 표정을 풀며 말했다.


“그래서, 무엇을 위해서 직접 본좌에게  것이지?”

“전서, 전서를….윽…!”

“흥, 살짝 힘을 주었을 뿐인데 연약하긴. 당가의 위세는 그 정도인가.”


독마는 장보를 비웃으며 옆에서 전서를 내밀고 있는 무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인은 그의 손 위에 전서를 올렸다. 독마는 접힌 전서를 펼치며 글자를 읽었다.

-화화골산[火花骨酸].

독마의 귀가 움찔거린다. 시선이 아래로 내려간다.

-당가의 답변이네.

 글귀를확인한 독마의 시선은 곧장 전서의 너머로 향했다. 꺽꺽거리던 장보는 어느새 몸을 배배꼬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컥, 으억!”

“…호오.”

독마는 실소를 지으며 그것을 바라봤다. 장보의 살점이 불에 녹아내리는 것 마냥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녹아내리고 있었다.


“윽, 살려주시오…. 살려달라고!”

“독천이라고 했나….”

“아악, 으아아악! 가주, 가주 그 새끼가…!”


하지만 그 절규는 독마에게는 흥미를 돋우는 음율에 불과했다. 독마는 장보의 비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보의 살점이 바닥에 떨어지자, 매캐한 냄새를 풍기며 독연을 퍼뜨렸다. 그 독연에 노출된 무인  명이 픽 쓰러진다.


“흐으, 흐으.”


독각혈가의 무인들은 쓰러진 자를 확인하자마자, 가죽으로 만든 가면을 얼굴에 뒤집어쓰며 비명을 지를 기관지조차 녹아내린 장보의 목숨을 끊기 위해 다가선다. 독마는 전서를 접으며 말했다.

“다가가지 마라.”

“존명.”


전서를 쥔 두 손가락이 살짝 비틀린다. 연기화신에 이른 경지를 증명하듯, 삼매진화가 일어나며 전서를 불살랐다. 독마는 권태로운 몸을 일으켜 세웠다.그리고 장보에게 다가간다. 한쪽 눈까지 녹아내려 고통과 버무려진 시선엔 독마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흐으…!”

“영 무른 이로만 봤었는데, 꽤 서늘한 자였군.”

“흐으, 흐으.”

“고통스럽나?”


공기가 새는 소리와 함께, 절박한 끄덕임이 독마에게 닿는다. 독마는 발을 들어 장보의 머리를 짓밟아 터뜨렸다.

“천마의 자비를 내려주지, 배교자.”


뿌연 독연과 역겨운 냄새가 오두막을 가득 채웠다. 장보의 시체가 온전히 녹아내렸다. 강력한 산성에 영향을 받은 그의 뼈가 이어서 으스러졌다.

으스러진 모양새가, 마치 꽃과도 같았다. 화화골산이라는 이름 그대로였다. 독마의 입가가 비틀린다.


*


당진천은 뒷짐을  채 조촐한 행렬을 바라봤다. 천중에 높이 뜬 해가 살짝 기울어졌다. 그림자의 길이가 미약하게 늘어났다.


“시간이 되었군.”

“예, 출발 준비가 완료됐습니다.”


그의 곁에서 새로이 흑풍대주가 된 진명이 보고를 올렸다. 당진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보라는 턱짓을 했다. 진명은 고개를 숙이며 마차를 정비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진명이 떠나자, 단혼사가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시녀도, 하인도 딸려 보내지 않은 채  만 보낸다니요. 당가를 어떤 시선으로 볼지.”

단혼사가 염려를 담아 말하자, 당진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소소의 제안이 옳아.”


당진천은 출발하기 전날, 나름 애교를 부리던 딸을 떠올린다.

‘아, 아빠.’

‘…무엇을 사줄꼬?’

‘이번 여행엔 시비나 하인은 오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그리해서 당가의 체면이 서겠느냐.’

당소소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체면을 세우기 위해 그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어요.’

“체면을세우기 위해, 당가의 식구들을 위험에 빠뜨릴  없는 노릇이지.”

“그것도 옳은 말씀이긴 하군요.”


당진천은 딸의 고집스런 얼굴을 떠올리며 심란한 마음을 털어낸다. 단혼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소소의 생각을 긍정했다. 당진천은 한숨을 뒤, 단혼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배웅을 하도록 하지.”

“후회되십니까?”

앞으로 걸어나가는 당진천의 발이 멈췄다. 단혼사는 여러 감정이 쌓여있는 당진천의 등을 바라봤다. 바람이 불었다.당진천은 그 바람을 따라 걸음을 재개하며 말했다.


“후회된다.”

“그렇다면 당가대회의는 조금 미루는 것이…?”

“그러나 이미 걸어간 길이다.”

당진천은 더욱 어깨를 펴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돌아선다면 이끌지 못하느니.”


그렇게 걸어간 마차엔 당소소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짐을 나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서 하연이 조잘거리며 당소소를 뜯어말리고 있었다.


“아가씨, 체통 없게 짐을 나르시고. 어서 마차 안에 들어가 계세요.  고운 옷에 흉이라도 지면어쩌시려고요.”

“내가 쓸 짐들인…, 걸.”


당소소는 옷이 든 보따리를 들어 짐마차로 옮기다, 어느새 다가온 당진천과 시선이 맞았다. 당소소는  시선을 피해 슬쩍 하연을 돌아봤다. 하연은 어서 짐을 내려놓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당진천은 웃으며 말했다.


“내려놓거라.”

“네에….”


당소소가 짐꾸러미를 내려놓자, 시녀들이 쪼르르 달려와 그 짐을 들고 사라졌다. 당소소는 쭈뼛거리며 당진천의 눈치를 봤다. 당진천은 검소한 행렬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 말을 잘 듣거라.”

“네, 아버지.”

“내 말도 명심하도록 하고.”

“…네, 아버지.”

당진천은 턱을 쓰다듬다, 손을 한 차례 털며 나무막대를 쥐었다. 길쭉한 나무막대의 뒤에 손가락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이 뚫려있었다. 당진천은 그것을 당소소에게 내밀었다. 당소소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당소소는 나무막대를 받아 그것을 유심히 살쳤다.

“이건…?”

“이제 산류수의  성으로 가야하지 않겠느냐?”

“네, 네!”

당소소가 환하게 웃으며 답하자, 덩달아 당진천도 싱글거리며 답했다.


“철전을 자유롭게 놀렸다면, 이제 기존 암기와 비슷한 규격의 나무막대를 자유로이 다루는 것에 집중해보거라.”

“이걸, 이렇게….”


당소소는 손가락 사이로 나무막대를 움직였다. 하지만 길쭉한 모양새 덕분인지, 마디마디에 턱턱 걸리며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당진천은 끙끙거리는 당소소에게서 나무막대를 다시 받아간 뒤,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마디마디를 회전하며 마치 연한 물체마냥 흐느적거린다. 손등을 회전하기도 하고, 손끝에서 휘돌며 위치를 자유자재로 바꾸기도 했다. 그리고 검지를 막대의 구멍에 넣어 가볍게 돌린 뒤 움켜쥐었다. 시선을빼앗는 기교에, 당소소가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당진천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다시 당소소에게 막대를 내밀었다.


“이것을 자유롭게  수 있다면, 산류수  성이라고 말할 수 있단다. 삼 성의 경지가 된다면 간단한 암기정돈 자유롭게 다룰 수 있을 터이니, 꾸준히 연습하도록 하여라.”

“네!”


당소소는 소매 안에 막대를 감추며 활기차게 대꾸했다. 당진천은 그런 당소소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거라. 부디, 내가 했던 말들을 꼭 지키도록 하고.”

“명심할게요.”


당소소는 그렇게 대답하며 하연의 인도에 따라 마차에 올라탔다. 그 뒤를 따르던 백서희가 포권으로 인사를 건넸다. 당진천은 고개를 끄덕여 그 인사를 받았다.

“만인이 아는 팔불출 모습을 뽐내러  것은 아닐 테고. 굳이 나온 이유가 무엇이냐?“

“스승님께 언질을 드릴 것이 있기에 잠시 시간을  나왔습니다.”

“…거짓말만 늘어선. 그래, 어디  번 들어나 보마.”

독무후가 당진천의 대답에 가소롭다는 듯, 실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당진천은 독무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여로는 백능상단의 본점이 있는 도강언[都江堰]에 가는 것이지요.”

“그렇지.”

“도강언과 성도 사이의 길은 큰 관도가 뚫려 있기에 습격에 용이하지도 않으며, 전투가 벌어져도 애매한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독무후는 혀를 차며 당진천의 말에 동의했다.


“놈들은 사천성의 환란을 원한다. 싸움이 벌어질 곳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지.”

독무후가 당진천을 올려다봤다. 당진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의 생각대로 독마는 도강언에서 숨을 죽이고 있을 겁니다. 만약 당가가 출발하지 않는다면, 다른 곳에서 분란을 일으킬  있도록.”

“그래서 나에게 요구하는 바가 무엇이더냐?”

“아마 당혁도 그곳에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당진천의 무감각한 말엔 고의로 감정을 긁어낸 티가 역력했다. 당진천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되도록 소소와 마주치지 않게, 스승님 선에서 끝내주십시오.”

“…그러도록 하마.”

독무후는 감정을 억누르는 당진천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준비가  끝났다는 진명의 고함이 들려오자, 삭막한 분위기를 걷어내며 당진천에게 말했다.

“그럼 가보도록 할까. 참,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당가대회의는 미루거라.”

“연유가 무엇입니까?”


독무후는 웃으며 마차로 향했다.

“코찔찔이 놈들이 오줌을 지리는 모습을 봐야하지 않겠느냐?”

“아직까지 멀쩡하시군요.”

“너무 멀쩡해서 작아지기까지 한 것이 안 보이느냐?”


당진천은 못 말린다는 듯, 실소를 지으며 그녀를 배웅했다. 마차의 문이 닫히고, 시녀들과 하인들이 몇 걸음 멀어진다.

 울음소리가 길게 뻗어나가며, 백능상단의 본가로 향하는 마차가 당가를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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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독심에도 발렌타인 데이가 찾아왔습니다... 헤세님의 팬아트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독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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