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십사장[十四章], 쟁인자유[爭人者濡] 2
백능상단의 본가, 도언강으로 가는 사천당가의 일행은 꽤나 단출했다. 짐을 싣는 마차와 사람이 타는 마차가 각각 한 대 씩 나란히 대로를 걷고 있었고, 당가에서 고용한 마부 두 명 이 그 마차를 몰고 있었다. 그리고 마차 안의 인원은 당소소, 백서희, 그리고 독무후 뿐. 그녀들을 보좌할 시녀나 하인들은 달리 동행하지 않았다.
“…….”
백서희는 말없이 독무후와 당소소를 바라봤다. 당소소는 창밖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있었고, 독무후는 팔짱을 낀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마차의 안은 덜컹거리는 바퀴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백서희도 벽에 기대 바깥을 바라봤다.
‘이런 것도 괜찮네.’
백능상단의 아가씨, 아미파의 소중한 후기지수인 그녀는 항상 이동할 때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했었다. 그녀를 호위하는 상단의 무사들, 그녀를 친근하게 대하며 아부를 하는 상단의 상인들. 그리고 혹여 그녀가 해를 입진 않을까, 붙어 다니던 아미파의 사저와 사숙들.
백서희는 간만에 느끼는 조용한 여행에 왠지 모를 안락함을 느꼈다. 백서희도 눈을 감으며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마교의 주구들을 상대로 내 검이 통할까?’
조용히 생각 안으로 침잠하는 백서희. 풍경을 바라보던 당소소는, 생각에 빠진 백서희를 바라봤다.
당소소에겐 모든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평생 회색의 건물 틈바구니에서만 살아왔던 김수환. 그런 그에게 길가의 수목 하나, 하늘을 휘도는 새 한 마리는 각별하고 신비로웠다. 그리고.
‘백서희와 친해질 줄은 몰랐어.’
평생 온기를 나눌 사람이라곤 없었던 그였다. 그러나 이젠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된 그에게 온기를 나눠주고 있었다. 당소소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지금 나는 행복하구나.’
그 생각이 들자, 당소소는 지었던 미소를 지우며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안락함과 행복함은 그녀에겐 아직 어색했다. 막연한 불안감과 약간의 괴리감이 그녀의 생각에 뒤따라온다.
‘나는 과연 이들의 관심에 무엇을 지불해야할까.’
김수환이 안락함을 얻기 위해선 대가가 필요했었다. 몸을 뉘일 수 있는 단칸방을 얻기 위해선 노동을 지불해야 했으며, 노동을 얻기 위해선 홀대를 견딜 인내를 지불해야 했다. 허울뿐인 가족에게 근거 없는 안심을 얻기 위해선 금전을 지불해야 했으며, 금전을 얻기 위해선 자신을 지불해야했다.
당소소는 불안했다.
이들의 관심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금방이라도 이 행복들이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신은 당소소를 연기하고 있는 김수환. 그렇기에 무엇인가 하지 않는다면, 당소소에게 내밀어진 행복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제자야.”
“…네.”
독무후가 눈을 뜨며 당소소를 불렀다. 화들짝 놀란 당소소가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독무후는 당소소를 바라봤다. 게슴츠레 뜬 눈은 마치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보는 듯 했다.
“호흡이 거칠어졌구나.”
“오랜만의 외출이라 살짝 들뜬 것 같아요.”
“…그러냐?”
독무후는 시선을 내려 당소소의 움켜쥔 주먹을 바라봤다. 역시, 그녀는 감정을 숨기는 것이 영 어색했다. 독무후는 시선을 돌려 마차의 벽을 바라봤다.
‘긴장하고있나보군. 정신적으로 몰려있는 상태인가.’
여러 사건 이후, 당소소는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았다. 마치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홀대하는 것 같았다. 자신을 둔재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속죄해야하는 죄인으로 생각하며. 이런 부정적 감정에 가라앉은 마음은 단숨에 돌릴 수 없었다. 그녀의 첫 제자인 당진천도 그러했으니까.
독무후는 자신의 땋은 머리를 쓸어내리며 제자의 마음을 달랠 방도를 생각한다. 손길이 멈추고, 그녀의 입이 열렸다.
“잠시 독공에 대해 배워보도록 할까.”
“네? 독공….”
“그래.”
독무후의 말에 당소소는 독무후를 바라봤다. 관심을 돌리는 데는 성공한 듯 했다. 명상을 하고 있던 백서희의 눈이 뜨이며 독무후에게 말했다.
“무후님. 독공이라면 당가의 비전인 듯싶은데, 제가 들어도 되겠습니까?”
“제 아무리 독의 종가라곤 하나 독공의 기본까지 자신의 것이라고 우기겠느냐?”
“그렇다면 염치 불구하고….”
백서희는 독무후의 말에 자세를 고쳐 앉으며 껴안고 있던 검을 옆으로 내려놓았다. 독무후는 주먹을 쥔 뒤, 설명을 시작했다.
“독공이란 즉, 용독술[用毒術]의 형식화. 다양한 종류의 독을, 그 성질에 맞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독공을 익히기 위해선 무엇을 먼저 알아야 하겠느냐?”
“쓰고자 하는 독이 어떤 성질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야겠지요.”
독무후의 말에 당소소가 답한다.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지를 펼친다.
“그 말대로 자신의 무기가 검인지, 창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활인지 알아야하는 것이 먼저다.”
독무후는 검지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설명을 이어갔다.
“독을 다루는 이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독을 분류하는 기준은 어느 것을 중독하느냐, 어떤 기운을 띄고 있느냐에 따라 나눈다.”
독무후의 손가락이 자신의 팔뚝을 꾹 누른다.
“산[酸]. 닿은 물체를 녹이는 성질이 있으며, 대부분은 근골에 직접적인 상해를 입힌다. 근골은 뭐라고 했었지?”
“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체를 무력화할 때 효율적인 독이다.”
독무후는 그렇게 말한 뒤, 검지를 조금 움직인다. 손가락의 궤적을 따라 핏방울이 뭉글 솟아나온다. 당소소가 깜짝 놀라 독무후를 바라본다. 독무후는 웃으며 말했다.
“그리 겁먹지 말거라. 스승의 육체는 상식의 바깥에 있으니까.”
“…예.”
“다음은 혈액독[血液毒]이란다.”
작은 팔뚝 아래로 검붉은 핏방울이 떨어진다. 핏방울은 아래로 떨어지며 곧장 검은 색으로 메말라 붙었다. 바닥엔 핏방울 대신, 검은 혈전이 나뒹굴었다. 독무후는 그 혈전을 바라보며 가볍게 팔뚝을 털었다. 피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독물[毒物]이라 불리는 동식물들에게서 주로 채취되는 것이다. 정[精]에 반응해 피를 굳게 하거나, 반대로 피를 멎지 못하게 방해하기도 한다. 그런 독들은 출혈독, 혈관독이라고도 불리지.”
독무후는 그렇게 말한 뒤 손가락으로 혈전을 가리켰다. 혈전은 손가락의 궤도에 올라타 바닥에서 일어나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를 슬쩍 비빈다. 혈전이 붕괴되며 검은 부스러기로 변했다.
“융해독[融解毒]. 이것은 다양한 이름이 있다만, 그것들의 주된 특징은 대부분 사람을 사람으로 묶어놓는 것을 녹이고, 그 결속을 끊는 것들이다. 대부분의 광물독이 이곳에 속한다. 몇몇 강력한 독물들도 이런 성질을 가지고 있지.”
“사람을 구성하는 것이라면….”
“선천지기[先天之氣]같은 것들이군요.”
백서희가 당소소의 궁리에 대신 대답했다.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것은 육체와 반응해 내공화한 기[氣]를 녹인다. 더 이상 녹일 것이 없다면, 선천지기가 잠들어 있는 내장, 내장과 연결되어 있는 기맥. 기맥마저 녹여도중화되지 않았다면, 그 이후의 남아있는 것들을 녹여버리지.”
독무후의 설명에 백서희는 침을 꼴깍 삼켰다. 설명만 들었는데도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기를 녹여 근과 골을 잇는 고리를 끊고, 피와 내장의 이음매를 부순다. 그 연결이 끊어진다면, 곧 침식이 시작된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사람이라고 불릴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융해독….’
당소소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단전 위로 손을 올렸다. 광물독, 그 결합을 저해하는 특수한 독물들. 그런 독물들로 이루어진 뇌린은루는, 융해독의 총체라고 할 법 했다.
독무후는 축 가라앉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다음 설명으로 넘어갔다. 검은 부스러기가 별안간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신경[神經]. 그것들에 침식해 신경을 마비시키거나, 정도가 심한 독은 신경을 파괴해 다시는 그 부분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독이다. 이를 신경독[神經毒]이라 부르니.”
독무후의 손가락은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렸다.
“얼핏 보면 마비에만 용이해 보이나, 신경은 곧 신이 기거한다는 신역[神域]이라 불린다. 정신과 사상이 집결하는 상단전인 뇌로 향하는 통로니라. 그렇기에 이 신경독은.”
혈맥은 정의 통로였고, 기맥은 기의 통로였다. 그리고, 사상이 흐르는 통로는 신경이었다. 그렇기에 높은 경지의 무인일수록, 신경독의 반향은 더욱 컸다.
“사상화된 기를 이지러뜨릴 수도 있지.”
“하지만 그 정도의 효능은 당가의 무형지독 뿐이지요.”
독무후의 말에 백서희가 첨언한다. 독무후는 쿡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구주는 넓고, 팔황은 더욱 넓다. 세상엔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독들이 산재해있다. 다음으로 설명할 사람의 영혼을 침식하고 붕괴시키는 심독[心毒]이 그러하니까.”
“독무후께서 모르는 독이 있습니까?”
“나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심혼을 녹이는 독이 있을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느니.”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당소소를 바라봤다. 그녀의 몸에 주입되었었던 칠혼독이 바로 심독이었다. 조금씩 투입되는 칠혼독은 언뜻 보기엔 기와 혈액에 작용하는 듯 보였으나, 실상은 심혼을 침식하고붕괴시켰었다.
이성을 마비시키고, 인의를 괴사시킨다. 종국엔 자아를 으깨, 병상에 누워있는 당소소의 모양으로 만드는 독이었다.
“영혼이 녹아내리는 고통은 어떨지, 이 오래된 머리로도 상상하기가 꽤 힘들구나.”
“…그렇네요.”
당소소가 쓰게 웃으며 답했다. 독무후는 침체된 분위기를 느끼곤, 목청을 가다듬어 환기했다.
“크흠. 다음으로 넘어가자꾸나. 중독시키는 물질에 따른 분류를 알아 봤으니, 기운에 따른 분류를 알아보자꾸나.오행은 모두 이해하고 있겠지?”
당소소와 백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독무후는 손가락으로 별모양을 그렸다.
“오행의 무슨 성질을 띠고 있는지에 따라 독의 기운이 정해진다. 그리고 그 기운에 따라, 독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지가 정해지지.”
손가락이 멈춘다. 손가락은 당소소를 향해있었다. 독무후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화행[火行]의 산[酸]. 어떤 방식으로 중독시키는 것이 옳겠느냐?”
당소소는 독무후의 질문에 눈을 찌푸리고 입술을 쓸며 생각했다.
‘불처럼 번지는 산. 불은 물체를 연소시키고, 무너뜨린다. 그러니 일정한형체를 갖추지 못하고 있겠지.’
“액체로 만들어 흩뿌려야하지 않을까요?”
“기화[氣化]가 필요하단다.”
독무후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흩어지기 쉬운 성질과, 근골에 작용하기 쉬운 성질. 독연으로 만들어, 그것을 기로 조종하는 편이 가장 효율적이지. 이런 식으로 독의 성질과 기운들을 파악하는 것이 독공의 시작이란다.”
“오행과 체정기신심.”
당소소는 언제 울적했냐는 듯, 독무후의 가르침에 푹 빠져깊은 깨달음 속에 빠져있었다. 백서희는 고개를 숙였다.
“…또 당가의 어르신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어찌 보답을 해야 할지.”
“네 앞가림도 하지 못하는데, 보답은 무슨 보답을 준단말이더냐.”
그녀가 베푼 가르침은, 그저 주의를 위해 겉핥기식으로 배우는 독공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야말로, 독공의 종주가 가르치는 독공의 기초였으니까. 독무후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백서희를 향해 가소롭다는 듯 말하며, 팔짱을 끼고 창밖을 바라봤다.
“세상이 어찌 손[損]과 익[益]의 논리 속에서만 굴러가더냐?”
창가 멀리, 대로변의 객잔이 다가오고 있었다. 말들의 가쁜 숨소리가 들려온다. 해는 어느새 산과 맞닿아 모습을 감춰가고 있었다. 독무후는 다가오는 객잔을 보며 말했다.
“필요한 것을 갈구함에도, 얻지 못하는 이들이 있으니. 갈구하는 자에게 필요를 베푸는 것.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생각 속에 빠져있던 당소소의 정신이 독무후의 말에 끌어올려졌다. 덜컹거리는 마차가 점점 속도를 줄여간다. 내달리는 창가의 풍경들도 점점 보폭을 줄여갔다. 말의 투레질 소리가 들리며 마차는객잔 앞에멈춘다. 그리고, 당소소의 고뇌도 멈췄다.
“그런 건가요. 그런 것도 있었네요.”
당소소는 웃었다. 독무후는 애수를 터뜨리는 그 웃음을 마주했다. 그리고 고개를 떨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후우. 백서희라고 했느냐?”
“예, 독무후님.”
“먼저 가서 객실을 잡아두거라.”
“…예.”
백서희는 당소소의 얼굴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에서 내렸다.
그녀가 봤던 당소소의 얼굴은, 기쁨과 슬픔으로 범벅이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
전생에 걸쳐 쌓인 애수는 좀처럼 그칠 줄 몰랐다. 독무후는 위로의 말을 꺼내 당소소를 달래진 않았다. 다만, 양 팔로 그녀의 머리를 감싸, 구슬프게 내리는 비를 막아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