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2화 〉십사장[十四章], 쟁인자유[爭人者濡] 4 (92/130)



〈 92화 〉십사장[十四章], 쟁인자유[爭人者濡] 4

대화를 시작하려던 백서희의 시도가 보기 좋게 실패했다. 까딱거리던 발끝의 움직임은 좀 더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손가락이 팔을 두드리는 주기도 그 빈도가 점점 짧아졌다.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지만, 사람이 이렇게 변했다는 게 믿기질 않네.’

이어지는 침묵은 이젠 초조함까지 불러왔다. 기분 탓인지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온다던 지배인도 늦어지는 듯 했다. 백서희는 복잡한 감정이 담긴 숨을 뱉으며 다시 물었다.


“그런 건 취미가 아니잖니. 무언가를 수집한다던지. 여행을 다니고 싶다거나,자수를 수놓는 걸 즐긴다던지 그런 거 없어?”

“음….”

당소소는 머리를 긁적이던 손을 내리고 시선을 위로 올리며 고민한다. 전생의 하루가 떠올랐다.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조촐한 아침을 먹고, 여섯 까지 현장에 도착한다. 정오를 조금 넘겨서까지 흙먼지를 마시며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삼십 분 휴식. 그리고 오후 여섯 시까지 일을 한 뒤, 집으로 돌아가 몸을 씻는다. 그리고 일하는 편의점으로 향해, 저녁을 해결하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 어느덧 새벽 한 시였다. 집에 돌아와선, 꿈조차 꾸지 못하는 잠을 청한다. 그리고, 다시 다섯 시.

‘그렇다고 현생의 취미가 있냐면, 딱히 없는데.’

당소소로서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일상을 영위하려고 하니 당청이 반란을 일으키고, 몸은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소설  악역은 자신을 납치하며, 별다른 대비 없이 향했던 사천교류회에선 사파의 절정고수 둘을 만나기까지.

사건이 끝나서 숨을 좀 돌리고자 했더니 이젠 독을 먹었다. 이래저래 쉴 틈이 없는 나날들이었기에, 취미는커녕 당소소의 일상조차 제대로 살질못하고 있었다.

“…어, 일단 없는 거 같은걸.”


없는 것을 있다고 할 순 없었기에, 당소소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백서희는 팔짱을 풀어 탁자 위로 손을 올렸다. 탁자를 연신 두드리는 손가락에선 직면한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느낌이 팍팍 묻어났다.


‘어렵네….’


백서희가 말주변이 좋고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었다면 이런 고난에도 쉽게 말을이어갔겠으나, 그녀 또한 무뚝뚝한 성향이 짙었다. 지위가 지위였던지라 대부분의 대화는 상대 쪽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당소소와 비슷한 성격의 운령의 경우에도 검술이라는 공감대가 있었기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

“응.”

단답이 오가고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백서희는 주방 쪽을 바라보며 말없이 지배인을 애타게 찾았다. 백서희는 백서희대로 당소소를배려해 더 깊이 캐묻지 않았고, 당소소는 당소소대로 백서희의 눈치를 보며 말을 아꼈다.

서로의 배려가 맞물려 이어진 긴 고착상태는 지배인이 음식이 담긴 그릇을 내려놓을 때까지 이어졌다.

“맑은 국물에 양고기를 찢어 넣은 탕입니다. 변주객잔에서만 드실 수 있는 청양탕[淸羊湯]이지요.”

“좀 늦네요.”


그릇을 바라보던 백서희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지배인을 쏘아붙였다. 지배인은 그 시선에 머리를 조아리며 서둘러 변명했다.

“가장 품질 좋은 고기를 골라 새로 육수를 냈던 터라  지체된 점, 사죄드립니다.”

“뭐, 일단은 알겠어요.”

“그럼, 부디 맛있게 즐겨주시길….”

지배인이 물러나자, 각자의 앞으로 앞접시와 수저가 놓였다. 물끄러미 청양탕을 바라보는 백서희. 당소소도 청양탕을 바라봤다. 서로 겉돌던 시선이  점에 모였다. 백서희가 헛기침을 하자, 당소소도 고개를 휙 돌렸다.


“흠….”

백서희가 청양탕을 접시에 덜기 위해 그릇에 담긴 국자를 움켜쥐자, 다시 당소소의 고개가 돌아온다. 그녀의 시선을 읽은 백서희는, 국자를 휘휘 저은 뒤 자신의 앞접시에 덜었다.

“은이야.”

“으, 응?”

“여기 식기는 다 은이라고.”


백서희는 그렇게 말하며 당소소의 접시를 뺏어들어 국물을 덜어준다. 눈 앞의 음식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는 당소소. 백서희는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꺼려진다면 먹지 않아도 돼.”

“아니,그런 건 아닌데.”

“넌 얼굴에서 티가 다 나니까 숨기지 말고.”

백서희는 그렇게 말하며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수저로 국물을 떠마셨다. 은수저와 그릇이 부딪히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국물을 먹은 백서희는 당소소를 향해 살짝 웃어주었다. 당소소도 고개를 끄덕이며 청양탕을 떠마셨다.

다소 간이 심심했지만, 잘 우러난 육향과 진한 육수는 간을 잊게 할 만큼 감칠맛을 펼쳐놓았다. 혀를 움직이며 맛을 음미하던 당소소는, 백서희를 바라보며 웃었다.

“괜찮아.”

“기왕이면 제대로 대접해주고 싶었는데 말이지.”

백서희는 그렇게 말하며식사를 이어갔다.침묵이 이어지던 탁자는 어느새 수저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대신 자리해 있었다. 식사에 집중하던 둘은, 금세 식사를 마쳤다. 백서희는 탁자를 툭툭 두드리며 점소이를 부른다.

“여기요.”

“예, 아가씨.”

그러자 점소이 대신, 지배인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달려와 그릇들을 치우려고 했다. 백서희는 지배인을 만류하며 말했다.

“절 각별하게 대하고 싶어 하시는 마음은 알겠어요. 하지만 변주객잔의 지배인으로서 좀 더 고상한 모습을 보이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요?”


백서희의 지적에 지배인은 몸을 움질거리며 그릇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목청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마음이 너무 들떠있었나 봅니다. 이봐, 여기 그릇을 좀 치우지.”

“예, 나리.”

점소이가 쪼르르 달려 나와 잽싸게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향한다.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지배인은 청양탕에 대해서 물어왔다.

“식사는 어떠셨습니까?”

“괜찮았어요. 식기들을 은으로 내오라는 주문은 꽤 갑작스러웠을 텐데, 잘 이행해주셨더군요.”


지배인의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하지만 백능상단의 아가씨에게 이런 감정을 보일 순 없는 일. 서둘러 표정을 지우고 고개를 숙였다.백서희는 탁자 끝을 매만지며 어느덧 밤이 된 바깥을 바라봤다.


“차는….  늦은  같고.”

당소소도 바깥을 바라보며 어색했던 공기 때문에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저기, 스승님은 어디 가셨는지 알아?”

“우리끼리 있으라고 하시면서 잠깐 산책하러 나가셨어.”

“그렇구나.”


짧은 대화가 오가고, 다시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백서희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진짜 독무후님이 계시는 편이 훨씬 편했을 텐데.’


별다른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백서희는 머리에 손을 얹으며 당소소를 바라봤다. 청양탕 국물에 푹 젖은 그녀의 옆머리가 그녀의 시선에 들어왔다. 백서희는 웃음을 참고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그거.”

“응? 뭐가.”

“옆머리.”

“옆머리?”

당소소는 백서희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흑단같은 머릿결이 육수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당소소의 인상이 팍 찌푸려졌다.


“에이 씨.”

당소소는 옆머리를 옷에 쓱 문지르려고 하다, 가까스로 자신이 당가의 규수임을 상기해 움직임을 멈췄다. 비단옷에 국물을 닦는 대신, 미간을 좁히며 생각했다.

‘콱 잘라버려?’

하연이 들었다면 뒷목을 부여잡았을 생각이지만,전생에선 항상 반삭발에 가까운 머리를 하고다녔던 그녀에겐 너무 거치적거리는 생머리였다. 당소소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씻을 곳 있어?”

“저기.”

백서희가 가리키는 방향엔 측간[廁間]이라는 명패가 걸린 입구가 있었다.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그럼, 금방 씻고 올게.”

당소소가 측간으로 향하자,백서희도 일어서서 그녀를 따라 측간으로 향했다.

“……?”

“…….”

당소소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따라오는 백서희를 바라봤고, 백서희도 왜 바라보냐는 표정으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쟤도 측간에 가나보지, 뭐.’

당소소는 시선을 돌려 측간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짧은 통로를 지나, 바깥에 위치한 측간이 나왔다. 불쾌한 냄새가 나긴 커녕 복숭아향이 풍겨나오는 측간은, 옛날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끔했다. 당소소는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생각보다 깔끔하네?”

“원래 측간이 깔끔한 가게는, 모든 것이 깔끔하기 마련이지. 물은 저기있어.”

백서희는 당소소의 말에 웃으며 물이 담긴 항아리를 가리켰다. 물을 뜨는 박이 담긴 항아리의 옆엔 선반과 함께 대야가 놓여있었다.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야에 물을 뜬 뒤, 머리카락을 씻었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백서희는 선반을 열어 수건을 하나 꺼내 당소소에게 내밀었다. 머리를 꾹 쥐어 물기를 짜낸 당소소는 수건을 받으며 물었다.


“넌 측간 안 써?”

“……?”

“……?”

서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당소소와 백서희. 당소소는 수건으로옆머릴 닦으며 다시 물었다.

“같이 오길래 너도 측간을 쓰려고 오는 줄 알았는데.”

“당연히 난 네가 가길래 따라나왔지.”

“그래?”

“그래. 그 수건은 나가서 점소이한테 건네주고.”

백서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며 다시 안으로 향했다. 당소소의 얼굴엔 여전히 백서희의 행동에 대한 의문이 가득했다.

‘대체 왜 따라온거지?’


당소소는 백서희의 뒤를 따라가며 골똘히 생각했다. 측간을 나서자, 점소이가 손을 내밀며 당소소에게 말했다.


“다 쓴 수건은 저에게 주시지요, 손님.”

“아. 감사해요.”

당소소는 일단 고민을 내려놓으며 점소이에게 수건을 건넸다. 그리고 지배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백서희를 바라봤다.

“그래서, 지금 쓸 수 있는 방이  개라는 건가요?”

“예. 굳이 쓰자면  순 있습니다만, 침상을 새로 올리고하는데 시간이  걸릴 듯 싶습니다.”

“…….”

“정말 죄송합니다. 아가씨 혼자 오시는 줄 알고 있었기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 백서희. 당소소가 백서희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백서희는 물기에 젖은 당소소의 옆머리를 흘깃 바라보더니, 제대로 닦인 것을 확인하며 말했다.

“방 하나를제외하곤 침상을 교체하는 중이라 못쓴다고 하네.”

“…어?”

“그렇게 됐으니 올라와.”


백서희는 그렇게 말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당소소는 눈을 깜빡거리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지배인은 백서희의 눈치를 보다, 아직 자리에 있는 당소소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당소소는 지배인을 돌아봤다.

“다시 한 번 정말 죄송합니다. 허나 불편하시진 않을겁니다. 가장 고급스런 방이라는 것, 제 지위를 걸고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어…?”

지배인의 호언장담에도, 당소소가 낼  있는 소리는 적나라한 당황이 담긴 외마디 비명 뿐이었다.

“어어…?”

어떤의미에서건 여자와 숙박하는 것은,  삶을 통틀어서도 처음이었으니까.


*


변주객잔의 사 층에 올라서자, 보란 듯이 계단의 맞은편에화려한 장식의 큰 문이 있었다. 당소소는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선다.

어느새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백서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두 개의 침상 중, 한 곳에 앉아 있는 그녀. 항상 땋고 있던 머리는 물기에 젖어 풀려있었다. 백서희는 풀린 머리를 수건으로 비비다가 당소소를 바라본다. 당소소는 난색을 표하며 시선을 돌렸다. 백서희는 눈가를 좁히며 당소소를 바라봤다.


“왜 그렇게 쭈뼛거려? 문을 열었으면 들어오지.”

“어, 음. 응.”


당소소는 백서희의 말에 이끌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큰 등불 하나가 방 안에 빛을 쬐고 있었고, 고급스런 침상엔 비단이 드리워져 있었다. 당소소와 독무후의 짐들이한 쪽 구석에 잘 정돈되어 있었고, 살짝 열려있는 또 하나의문이 보였다. 그 문틈으로 보이는 것은  목욕통과, 수건이 삐죽 삐져나온 서랍이었다.


‘미치겠네….’


당소소는 갑작스런 상황을 받아들이지못하고 어지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계속 서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백서희를 피해  돌아가 자신의 침상에 앉았다. 백서희는 자리에서 일어며 물었다.

“넌 씻어?”

“어, 응? 아…. 괜찮아.”

“아까부터 이상하네.”


백서희는 그렇게 말하며 문 옆에 있는 상자에 수건을 놓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그리고 낯을 가리는 당소소를 바라보며 다리를 꼬았다. 당소소는 한껏 움츠러들어 백서희의 시선을 피했다.


“옷은 안 갈아입어?”

“그, 그게 무슨소리야.”

“…? 불편하잖아.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야지.”

백서희는 머릴 뒤로 넘기며 말했다. 하지만 당소소는 그 말에 대답 할 수 없었다. 분명 실제론  아닌 일이었고, 그나마 시녀들이 옷을 벗겨주는 것에 익숙해지긴 했었다. 하지만, 숙소에서 시녀가 아닌 여성과 같이 숙박하며 벌어지는 일들은 달랐다.


‘어지럽네….’

당소소는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신발을 벗은 뒤, 침상에 몸을 뉘였다. 깃털을 가득 채워둔 침상의 질감이 당소소를 감쌌다. 백서희는 콧소리를 내며 그런 그녀를 바라봤다.

“피곤한가보네.”

“…어, 피곤해. 그냥 이대로 쉬고 싶네.”

“네가 그렇다면야…. 그럼  꺼줄게.”


백서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열려있던 창문을 닫고, 걸려있던 등불을 바람을 불어 껐다.  안의 빛은 사라지고, 창문을 타고흐르는 달빛만이 바닥을 메우고 있었다. 백서희는 자리에 누우며 말했다.

“편하게 쉬어. 내일 도강언에 가야할테니까.”

“고마워.”

백서희는 당소소의 목소리에 몸을 움찔거린다. 그리고 혀를 차며 말했다.

“친구잖아.”


백서희는 그렇게 말하고 등을 돌린 뒤, 이불을 끌어올려 얼굴을 가렸다. 당소소는 등돌린 백서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어색하기만하던 기류가, 조금이나마 해소된 느낌이었다. 당소소도 이불을 끌어올리며 답했다.

“고마워, 친구.”


당소소는 그렇게 답하며 눈꺼풀을 내렸다. 투척술을 연습한 것도 아니고, 학문을 배우는 것이 아닌데도 어쩐지 힘든 하루였다.


*


당소소의 눈이 뜨였다. 당소소는 미간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껏 찡그린 눈가는 시간을 가늠했다. 아직 마르지 않은 달빛으로 보아 시간은 얼마되지 않은 듯 했다.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이 일어난 이유를 떠올렸다.

‘축축한데.’

당소소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이불 안에 손을 넣었다. 습기가 당소소의 손끝에 묻었다. 당소소는 손을 꺼내 상황을 파악했다.

“어….”

퀴퀴한 냄새는 아니었다. 오히려 비릿한 냄새에 가까웠다. 손을 움직여 달빛에 비춰본다. 손가락은 붉은색이 묻어있었다. 당소소는 지끈거리기 시작한 머리를 움켜쥐며 한숨을 쉬었다.

“이거 그거구나.”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침상에서 일어나 이불을 걷는다. 하얀 이불은보란 듯이 붉은색으로 물들어있었다. 골치가 아파왔다. 두통은 점점 어지럼증으로 번졌다. 당소소는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침상을 바라봤다.

‘씨팔, 진짜 가지가지하네….’


당소소는 자조했다. 하지만 별다른 동요는 일어나지 않았다. 여성의 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는 있거니와, 당장의 감정은 자다가 몽정을  느낌 정도 뿐이었으니까.

‘약간 다른 점은, 힘이 풀린 느낌정도인가.’


몽정이든, 다른 것이든 이불에 실례한 것을 그대로 내버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소소는 주저앉은 채로 꼼지락거리며 이불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덮는 이불을 걷어내자,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와 당소소는 고개를 들어 백서희를 바라봤다.

‘…그냥 내 이불 소리인가보네.’

백서희는 자신을 등지고 잠자고 있는 상태 그대로였다. 당소소는 시선을 돌려 침상에 깔아둔 이불을 걷는데 집중했다.

 날숨와 함께 백서희의 몸이 뒤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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