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십오장[十五章], 독심괴취[毒深怪聚] 2
‘저리 가라, 꼴 보기 싫으니.’
따르던 친오빠에게 소박을 맞고쭈그려 앉아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눈길은 원수를 보는 눈이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습기가 자욱한 눈은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은 넓고 대궐 같은 집도 하늘같이 넓었다. 누구하나 그녀를 찾아주는 이는 없다는 것도 비슷했다.
“궁상맞게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조금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던 고개를 내리며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경계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아침은 먹었느냐?”
그녀는 침을 삼킨다. 식사를 하고자 한다면 독봉당으로 돌아가면 될 일이지만, 달갑지 않은 눈빛들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 사이에서 쉬고 싶진 않았다. 대답대신 경계를 보이는 그녀를 향해, 또 한 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따라오너라. 썩 괜찮은 음식점을 발견했으니.‘
당혁의 목소리는, 퍽 자상했다.
*
“오지 마. 아니, 잘못했어요….”
당소소는 몸을 웅크리며 알 수 없는 말을 되뇌고 있었다. 백서희가 다가오는 무인들에게 장검을 휘둘러 위협하고, 당소소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나는…. 그게, 무서워. 아니, 그냥.”
언어는 와해되었고 이성의 편린은 보이고 있지 않았다. 백서희는 아랫입술을 깨문 뒤, 몸을 돌려 장검을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불혼패엽공이 그궤적의 뒤를 따른다. 사이한 것을 허물고 악한 것을멸한다는, 아미파의 독문심공이 충만했다. 황금빛내공이 물결치며 혼탁한 기운을 물러서게 했다.
‘뚫고 나갈 길은?’
백서희는 발을 비틀어 자세를 갖추었다. 비스듬히 서서, 장검은 양 손으로 쥐고 뺨으로 가까이. 지향점은 상대의 조금 아래. 그녀의 눈은 마교의 무인들이 짜놓은 그물의 틈을 살폈다.
‘실력은 모자라고 집단의 통제도 그다지 뛰어나진 않아.’
자신의 검으로도 성긴 그물을 헤집을 수 있는 정도였다. 앞서 당소소가 말했던 것처럼 이류무인 그 이상처럼 보이는 이는 전무했고, 독무후의 무력에 대응할 여지도 보이지 않고 박살이 난 사기는 별다른 군기마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당장 찢어발길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했겠지.’
백서희의 보폭은 당소소쪽으로 조금 기울었다.
‘예전이라면.’
그녀는 아미파에서 손꼽히는 후기지수였다. 사천교류회의 사건에서, 그녀는 신중해야함을 익혔다. 예전이라면 벽사파마의 의지로 눈을 불태우며 그들을 바라봤겠지만, 조숙해진그녀의 시선은 그물의 뒤편을 관찰했다.
“…당가의 둘째가 변절을 하다니.”
드러내지 않았기에 몰랐다. 다음대의 가문을 이끌어갈 기재라 평가받던 첫째 또한 자신이 머무는 동안 보이지 않았다. 아마그는 숙청되었거나, 눈앞에 있는 변절자와 같은 배를 타고 있을 것이다. 사건의 이면은 그곳에서부터 들춰진다.
무력? 부족. 군기? 전무.
그리고, 그런 그들을 지휘하는 이들은 다른 이도 아니고 얼마 전까지 당문의 요직에 앉아있던 당가의 직계혈족이었다. 제 아무리 마교의 명을 받고 움직인 무인들이고, 형편없는 무공 때문에 보는 눈이 낮다곤 하지만 독무후의 무위는 맹인조차 보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
그렇기에 의문은 발생한다.
‘왜, 도주하지 않는 거지?’
아쉽게도 의문의 답을 내리기엔 할애할 시간이 부족했다.
“저년들을 어서 눕혀라!”
“그분의 명을 따라라!”
적의를 겨누고 다가오는 자들. 백서희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후웅!
검이 울었다. 백서희의 양 손은 위치를 바꿔 검을 위로 들어올린다. 아미산의 흉맹한 호랑이를 꿇린다는, 복호검법의 기수식이였다.
“오너라. 벽사파마의 업을 피하진 않을 테니.”
산봉우리처럼 우뚝 솟은 그 자세에, 쉬이 접근하는 이가 없었다. 대치상황이 이어지자, 백서희 주의는 독무후쪽으로 향했다. 벼락과 독무를 몸에 두르고 당혁을 바라보는 모습은, 마치 신화속 뇌신의 현신과도 같이 보였다.
“당혁.”
그녀의 입엔 독무후의 맞은편에서 거만하게 웃고 있는 당가의 둘째가 담겼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바르르 떨고 있는 당소소의 떨림이 등 뒤로 느껴졌다.
“마음에 안 들어.”
높디높은 봉우리가 기운다. 감정이 기울고, 검이 기운다. 철혜검봉의 검이 거대한 내력의 토사[土砂]를 쏟아냈다.
*
콰릉!
당소소가 있는 쪽에서 격돌음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독무후의 시선은 무심했다. 당혁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독술사는 언제나 교활하고, 지독해야한다. 역시, 독공의 종주.”
“어린 것이 벌써부터 같잖은 격장지계를 쓰려고 하느냐.”
독무후의 품에서 독특한 모양새의 비수 하나가 떨어진다. 손잡이조차 달리지 않은 날것의 비수. 날이 서있진 않으나, 예기를 풍기고 있는 기묘한 상태의 비수였다. 당혁의 입술이 비틀렸다.
“촌철을 꺼내면서 그런 말을 한다면, 누가 그 말을 믿겠어?”
“아해야.”
독무후의 말이 떨어지자 들끓는 내공과 이성이 한줄기로 엮였다. 감정은 뚜렷한 의지가 된다. 내공은 십이경맥을 떠돌며 정제된 내기가 된다. 의지는 곧 사상이된다. 내기는 기경팔맥을 떠돌며 뇌람심공의 공정으로 가공된다.
사상은 뇌기를 타고, 뇌기는 사상을 싣고 전류가 된다. 절정을 넘어선 초절정의 고수만이 보일 수 있는, 연기화신의 무학이었다.
“본녀는 충분히 이성적이란다.”
촌철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혁도 그에 맞춰서 사이한 진언을 왰다. 그 부름에 응해 뒤편의 강시들이 딱딱한 움직임으로 몸을 던진다.
크륵! 그르륵.
한 마리의 강시가 지성이라곤 한 줌도 느껴지지 않는 소리를 내며 내쏘아진 촌철을 막아선다. 뭉툭한 칼끝에, 급작스레 파리한 뇌기가 어린다. 그리고, 비수가 자아내는 소리라곤 믿기지 않을 굉음을 터뜨린다.
우르릉!
벼락이 대지를 찢는 소리가 들려온다. 강시의 몸도 촌철에 담긴 거력을 이기지 못하고, 흉폭한 절단면을 보이며 반으로 갈라졌다. 촌철은 뇌인[雷刃]을 거두고 다시 독무후의 손으로 돌아왔다.
“보이느냐?”
“영락없이 격노한 모양새로 보이는데?”
존중을 내려놓고 조소만을 머금은 당혁. 독무후는 그런 당혁을 보며 웃는다.
“꽤 견문이좁나보구나.”
“견문이 좁은 것은 다 늙었음에도 독강시를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는 당신이겠지.”
반으로 갈라졌던 독강시의 살점이 부글거렸다. 검은색의 피가 증기를 뿜으며 나무바닥을녹이고있었다. 독무후의 시선이 가라앉는다.
“기어코 당가의 비밀을 유출시켰구나.”
“화화골산을 담은 당문독강시. 그렇게 감정에 휩쓸려 죽여서야 쓰겠어?”
독무후는 매캐한 독연을 뿜어대는 독강시를 바라보며 숨을 뱉었다. 당혁은 독무후의 행동에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이것이 현 당가의 고여 버린 실체야. 독은 곧 무형의 검이지. 그 어떤 것보다 날카롭게 벼릴 수 있고, 그 어떤 초식보다 자유로운 모양새를 할 수 있어. 자, 봐. 천하십강이라는 당신이, 경직된 사고를 벗어난 독에 당황한 모습을.”
독무후는 그 말에 굳이 대꾸하지 않고, 몸을 감싸고 있는 거뭇한 독무의 농도를 올릴 뿐이었다. 당혁은 키득거리며 자신의 옆에 자리한 독강시의 어깨를 강하게 때렸다.
“화골산만을 알고 있던 놈들이 당가의 화화골산을 보더니 마치 별천지를 보는 둣한 눈초리더군. 그것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였어. 누구보다 날카로운 검을 가지고 있는 당문이 받아야할 경외였다고!”
화골산[化骨酸]이라는 독이 있었다. 산의 성질을 가지고 있고화행의 속성을 지닌 화골산은, 인간의 몸을 뼈만 남기고 모조리 녹여버릴 수 있다는 소문과 함께암중에서 은밀히 거래되고 있었다.
실제로, 화골산은 그런 성능이 있었다. 다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순간에 백골로 만들어버리는 정도는 아니었을 뿐. 그러나 화골산은 곧 아무도 찾지 않는 독이 되었다.
화행을 따르는 산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화행을 따르니 자그마한 충격이나 티끌만한 불순물에도 반응을 보이니 보관이 어려운 것이 그 첫째였고,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그 둘째였다. 그리고 대응이 어렵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산은 곧 근골을 녹이는 독. 살결에 닿지 못한다면 그 위력은 반감된다. 문명인이라면 대부분 입고 다닐 의복에 뿌려진 순간, 대응할 수 있는 약간의 시간 또한 생기게 되니 도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가는 모두에게 도태된 그 독을 거뒀다.
“멍청한 놈들. 화골산에 수행의 속성을 섞고, 고약과 같은 형태로 보관할 생각을 못하다니.”
수행을 띈 독을 섞으니 화행이 억제되고, 사소한 것에도 모조리 반응했던 그 성질이 옅어진다. 보관이 용이해지고, 고약과 같은 형태가 되니 사용도 간편했다. 단 하나, 즉발적인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웠을 뿐.
그렇기에 당혁은 그 요소를 독강시에 불어넣었다. 잠복하고 있는 독기는 독강시의 원동력으로, 한참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발휘되는 지효성은 숨겨진 칼날로.
“비단 화화골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야.”
당혁의 말에 아래층의 독강시가 천천히 걸어온다. 어떤 것은 시체의 색처럼 창백했고, 또 어떤 것은 독혈을 가득 담은 듯 거무튀튀한 몸이 부풀어 올라있었다. 형형색색,천태만상의 강시들이 변주객잔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강시들에게서, 익숙한 복색이 독무후의 눈에 밟힌다.
“…제독전의 식구로군.”
독무후의 무감정한 한마디. 당혁의 입가는 찢어질 듯 벌어졌다.
“맞아. 당가의 진보를 반대하던 걸림돌들이지. 하지만 이젠 오히려 존경하고 있어.”
당혁은 당가의 옷을 입고 있는 강시에게 다가가 그 뺨을 어루만졌다.
“이들은 이 당혁의 초석이 되었으니.”
어루만지는 손길이 점점 거칠어진다. 뺨을 꼬집고, 때리고, 주먹으로 후려치기까지 한다. 하지만 독강시는 미동이 없었다. 그 모습에 당혁은 웃었다.
“부정하는 이들을 이런 효율적인 방식으로 설득하고, 당가는 더 나은 세상의 더 강한 세가로 거듭나야 했었다. 이 독으로 하여금 우리는 위인이 되어야 했어. 우리는 존중을 받아야 했어!”
“푸흣.”
독무후는 그의 말에 참을 수 없었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그칠 생각을 모르던 웃음은, 당혁의고함소리를 불러왔다.
“무엇이, 무엇이 우습지? 당가의 식솔들이 희생해 네 년과 네 년의 제자를 띄워주었는데. 그 희생이 우습나?”
“연기는 그 쯤 하도록 하거라.”
“이 울분을 연기라고 생각한다? 우습다!”
“그리 거창한 이유가 아니지 않느냐.”
독무후의 눈꼬리가 길게 휘어지며 손은 입가를 가렸다.
“재미있으니까.”
“무엇이…!”
“소소에게 실험을 했을 때도, 제독전의 지하에서 사람을 가지고 여러 독을 실험할 때도. 그리고, 지금 나를 바라보며 감추지 못하는 눈가의 웃음기도.”
입가를 가린 손이 내려갔다.
“동물들을 산 채로 헐벗겨 죽일 때도. 누군가의 애원을 음미할 때도. 그저 실험의 표본이 나온다면, 즐거웠지 않느냐.”
“…….”
“재미는 있었으나, 부정한 일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렇기에 초인이 되어, 선민이 되어 네가 즐기는 향락에 정당함을 부여하고 싶었지 않느냐.”
“…야마칙령암.”
내내 이죽거리던 표정은 이제 사라졌다. 적의가 가득한 당혁의 주문이 들리고, 독강시들이 인파의 그물 사이에서 튀어나온다.
“크락!”
“우워엇!”
갖가지 괴성과 파육음. 푸른색의 강시가 뇌전에 으스러진다. 복부가 찢어지며 독무후에게끼얹어지는 분말형태의 독분. 채 물러서지 못한 마웅대의 무인이 숨을 들이킨다. 점막에 닿은 독분은, 순식간에 폐를 괴사시키며 날숨대신피를 토하게 만들었다.
뚱뚱한 흑색의 강시가 차단된 시야를 틈타 날아든다. 길쭉하게 깎아낸 손톱을 독분을 투과해 찌른다. 느껴지는 것은, 살점의 감촉이 아닌 방향을 잃고 축 늘어진 부러진 손목. 흑색강시가 입을 벌린다. 검붉은 독액이 아직도 허공을 떠도는 독액에 뒤섞인다.
“컥, 으억!”
“물러서라. 독공이야!”
멍하니 그광경을 바라보던 마웅대가 황급히 물러선다. 그에 화답하듯 독액과 섞인 독분은 격렬하게 반응하며 삼층 전체에 갈색의 독연을 흩뿌렸다. 당혁은 그 독연을 슬쩍 핥으며 자신을 이곳에 보낸 이의 말을 떠올린다.
“시간만 끌라니. 이렇게나 쉽고 즐거운 일을.”
당혁의 시선은 독연 너머 독액을 토해내고 있는독무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뒤엔 오들오들 떨고있는 자신의 귀여운 누이와 적의를 드러내는 백서희가 보였다.
“같잖은 년들을 위해 그 귀한 몸을 희생하다니, 정말이지 의협이라는 역겨운 사상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 영 수지가 맞질 않아.”
당혁은 이미 아물어있는 어깨를 긁으며 웃었다.
“자, 그럼. 독강시 두 구를 더 받아내야 하겠지.”
그의 시선은 당소소와 백서희의 몸을 핥았다. 양질의 촉매였다. 하지만어떤 실험에서도, 도출된 사실을 어떠한 증명없이 진실로 판정할 순 없는 일. 독무후의 확실한 죽음을 위해당혁은 주문을 외어 독강시를 부렸다.
“야으, 마…. 치, 착령…. 어…?”
제대로 된 발음이 되지 않았다. 당혁은 다시 힘을 주어 혀를 놀렸다.
“야, 야…. 므으으….”
여전히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숨이 가빠온다. 당소소와 백서희에게 닿았던 시선은 어째서인지 초점이 맺히질 않았다. 독연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독혈을 토하던 독무후는 이미 차갑게 식어 바닥에 누워있었다.
아니, 누워있던가?
독연은, 퍼졌던가?
강시들은, 달려들었던가?
나는.
눈을 깜빡였던가? 숨을 쉬었던가? 독마의 마공을 익혔던가? 당가의 제독전주였던가?
즐거워했던가?
“이제 좀 견문이 넓어졌겠구나.”
“어…?”
독무후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물었던 어깨는 언제 그랬냐는 듯, 검붉은 피가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당혁은 부자유한 몸을 움직였다. 목 아래론 감각이 없었다. 고개를 들었다.
누워있는 것은 자신이었다.
강시들은 처음부터 움직인 적이 없었고, 마웅대의 인원들 또한 독공에 놀라 움직인 적이 없었다. 그저, 움직이지 않는 몸을 꿈틀거리며 자신과 같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을 뿐.
당혁은 그제야, 자신이 독무후의 독에 당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독무후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독의 특징은 무형이라는 것이다. 그리 요란하게 뿜어내서야 제대로 쓸 수나 있겠느냐?”
“환신향[幻神香]…?”
“네 몰이해한 헛소리를 들어주는 것도 이젠 진력이 나는구나.”
독무후는 피를쏟아내는 당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훈계를 시작하도록 하겠느니라.”
당혁의 코앞으로, 촌철 한 자루가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