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십오장[十五章], 독심괴취[毒深怪聚] 4
백서희가 당소소를 데리고 구석으로 향했다. 독무후는 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당혁의 손등에 박아넣은 촌철을 쥐었다. 짜릿한 방전이 일어나며 촌철에 덧씌였다.
“마비독이 정확히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고 있느냐?”
“그, 그….”
“근육 한 올 한 올엔 제각기 전기가 맺혀있다. 전기는 서로 작용하며 근육을 수축, 이완시키는 게지. 마비독은 그 전기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고. 환신향도 그 마비독에 다른 속성을 불어넣은 것뿐이다. 네가 자랑처럼 떠벌린 화화골산의 골자처럼.”
혓바닥마저 마비되어가는 당혁은 독무후의 말에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촌철에 덧씌인 전류가 천천히 당혁의 손으로 스몄다. 파직거리는 새파란 방전음이 들리며, 마비되었을 당혁의 팔이 미친 듯이 꿈틀거렸다.
“으그그극!”
“마비시켜뒀던 신경을 다시 살려주도록 하마. 그 후에 그 잘난 입으로 대답해 보거라. 내가 언제 널 환신향에 중독시켰을꼬?”
“몰, 몰라….”
“모른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아나보구나.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거늘….”
독무후는 다시금 전류를 흘린다. 팔에서 시작된 경련은 전신으로 번지고, 아무런 표정도 없던 얼굴에 공포를 그려냈다. 당혁의 허리가 활처럼 꺾이자, 독무후는 전류를 거두며 말했다.
“자, 이제 기억이 나느냐?”
“헉, 허억…. 독무…. 독무를 퍼뜨릴 때….”
“…견문이 좁구나.”
독무후는 나지막이 실마리를 던져주며 말했다.
“대답하지 못한다면 다음은 없다.”
“당, 당문독강시.”
“이제야 깨우쳤구나.”
환신향이 퍼진 것은 화화산골을 넣어둔 당문독강시가 촌철에 베어나갔을 때. 독무후의 안목을 비웃던 당혁의 모습이 떠올라 독무후의 입가에 가소로운 웃음이 그려졌다.
그리고 다시 방전. 당혁의 몸이 다시 한 번 뒤틀렸다. 침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독무후는 전류를 거두고 당혁의 머리를 손으로 짓누르며 말했다.
“주, 죽여….”
당혁은 힘겹게 죽여 달란 한마디를 쥐어짜냈다. 눈앞엔 수많은 환영이 어른거렸다. 독각혈가의 소가주로서 당가를 정복하는 자신, 바닥에 누워 시체가 된 자신. 사천당가의가주가 되어 사천성을 지배하는 자신….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진정한자신이 아니었다. 전류는 이미 마공에 찌들어 통각이 마비되었을 몸을 꿰뚫고 온몸의 감각을 되살렸다. 환신향의 환각도 더욱 증폭되어갔다. 독무후는 당혁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상체를 숙인다.
“이제부터 내가 너에게 질문을 할 것이다.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아.”
“그륵, 그르륵….”
“그래도 평안한 죽음을 바란다면,그럴싸한 대답을 하는 것이 좋을 게다.”
독무후의 스산한 음성이 당혁의 목덜미를 훑었다. 당혁의 동공이 흔들린다.
“당가의 비밀을 어디까지 누설했느냐?”
“합성, 합성독까지 말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잖느냐. 그리 젠체하더니 본녀가 무엇을 묻는지 모르겠느냐?”
독무후는 곧바로 당혁의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나무 바닥이 패이며 당혁의 고개가 깊게 박힌다. 촌철에 박힌 손가락이 고통스레 경련한다.
“헉, 헉…! 난, 난 아니야. 난 당문의 무공을 익히지 못했어. 그냥 독 밖에 모른다고.”
“네 놈이 무능하다는 것은 이미 네 아비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남을 질투할 기반이라도 만들기 위해 독을 연구하는데 매진했다는 것도.”
“그, 그럼….”
“처음부터 말했잖느냐. 그럴싸한 대답을 하라고.”
바닥에 처박힌 당혁의 눈에는수많은 환영이 오고간다. 독을 접하지 못한 자신, 길바닥을 전전하는 자신, 아무것도 아닌 자신. 당혁의 정신이 돌아올수록, 신경이 제 기능을 찾을수록 환신향은 더 기승을 부렸다.
몽롱한 정신과 그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실은 전류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당혁의 머리를 짓이겼다.
“팔대극독은, 팔대극독은 말하지 않았어.”
“네 가벼운 주둥아리를 내가 어떻게 믿어야 할꼬?”
촌철이 우렛소리를 내며 작게 울었다. 당혁의 숨결이 거칠어지며 서둘러 설명을 덧붙였다.
“나도 비빌 언덕이 필요했어, 날 살려둘 패가 남아있어야 했다고…!”
“당가의 금지[禁地]는, 그 사려 깊은 주둥아리에 담았느냐?”
독무후의 물음에 당혁은 고개를 젓는다. 독무후는 당혁의 머리를 다시 끌어올리며 상체를 숙여 그의 흔들리는 눈을 바라봤다.
“아마 하나정돈 이미 나불거렸으리라 생각하지만, 서둘러 죽여 버리고 싶으니 다음 주제로 넘어가도록 하마.”
“정말, 정말이라고….”
당혁의 간절한 변명에 독무후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촌철 위로 손을 올린다. 당혁이 발작을 하며 고개를 젓는다.
“나, 난 사실만을 말했어! 믿어줘, 아니…. 믿어주세요! 믿어주십…그그그극!”
당혁의 신발이 바닥에서 번잡하게 허우적거린다. 나무 바닥을 불규칙적으로 두드리는 불쾌한 소리가 울린다. 독각혈가의 마공을 쑤셔 박아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아야 할 육체가 고통으로 오그라들 무렵, 독무후는 전류를 거두고 무심하게 말했다.
“다음.”
“으극, 으하아….”
“네 동생한테 무슨 짓을 했지?”
“…….”
독무후의 물음에 당혁은 침묵한다. 파르르 떨리는 입에선 침이 뚝뚝 떨어졌다. 독무후는 혀를 차며 촌철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당혁의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 독을 먹였습니다. 새로운 독을 만들고 싶어서….”
“왜 네 동생이었지?”
“당, 당가의 직계 혈족이라면 다, 다른 반응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외에는?”
독무후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당혁의 뜨거운 머리를 식힌다. 당혁은 눈앞에 어른거리는 환각을 바라보며 말했다.
“독을 먹는 것을 거부하기에 먹지 않으면 다른 이에게 먹였습니다. 독물의 독성을 실험해보기도 하고, 유독 반항이 심한 날에는 다양한 고문을 했습니다.”
“…….”
“무, 물통에 처박는다던지, 손톱을 꺾은 뒤에 약, 제약당의 성능을 실험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흉지는 일 없이 만들었습니다. 정말입니다.”
독무후는 그 이야기에 잠시 눈을 감고 감정을 추슬렀다. 천하십강이라 불리길 수십여 년, 감정이 추슬러야 할 정도로 흔들린 것은 오랜만이었다. 나름의 결론을 내린 독무후는 천천히 말했다.
“더는 더러운 삶을 이어가지 않게 해주마.”
“으, 으아아!”
“천하십강씩이나 되어서, 아직도 그런 품위 없는 짓을 하는군.”
독무후의 손길을 막는 사내의 음성. 독무후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고개를 돌린다. 음성의 발원지는 계단. 그렇기에 독무후는 백서희와 당소소가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누구인지는, 이미알고 있었으니까.
“잡귀 같은 놈이 왔구나, 장패군.”
“아직도 사천투봉이라 불리던 시절의 손버릇을 못 고쳐서야. 어찌 천하십강이라는 고풍스런 이름이라 불리는 건지.”
독무후는 장패군의 도발에 응하지 않고, 천천히 백서희를 향해 걸어갔다. 백서희의 안색은 창백했다. 그녀의 앞에 누워있는 당소소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장패군은 독무후가 다가오자 슬금슬금 뒤로 물러선다. 백서희가 넋이 나간표정으로 당소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독무후님, 소소가…. 소소가…!”
“…….”
독무후는 누워있는 당소소에게 다가갔다. 눈을 감고 곤히 잠든 듯한 기색의 당소소. 눈꺼풀을 뒤집어본다. 흐리멍텅한 동공이었다.숨결은 없었고, 생명이라면 마땅히 느껴져야 할 맥동조차 없었다.
“…하하.”
독무후는 웃었다. 장패군도 그 웃음을 마주하며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진중하지도 않….”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패군의 가슴이 길게 찢겨나간다. 피가 쏟아지며 바닥을 적신다. 장패군은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크게 웃으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선다.
“…싸움닭의 오명은 여전하군. 여전히 진중하긴 커녕 경박스럽고 급해.”
“요마.”
“요접탈각은 겪어본바 아니었던가?”
뒷걸음질 친 장패군의 모습은 가슴이 갈리기는커녕 의복에 손상도 가지 않은 채로 멀쩡했다. 바닥을 적신 피만이 독무후의 손속을 짐작하게 했을 뿐. 장패군은 뒷짐을 지며 독무후를 내려다본다.
“부디 나를 즐겁게 해주길.”
*
“부디 나를 즐겁게 해주길.”
“뭐?”
장패군은 그 말을 하며 손을 놓는다.천애절벽의 아래로 당소소가 추락한다.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며 아찔한 추락감이 전신을 움켜쥔다. 허공을 헤매는 손발. 아득한 시야는 공포를 불어넣었다.
“…아?”
한 박자 늦은 탄성. 큼지막해진 동공은 점점 다가오는 지상을 담는다.
일 리[里].
숲이 보인다.
일 장[丈].
거대한 나무가 가까워졌다.
일 척[尺].
지반이 어른거린다.
바위, 자갈, 모래, 잡초, 흙.
그리고.
으드득!
“헉…!”
당소소는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허공을 유영하던 자신의 발은 땅을 딛고 있었다. 당소소는 커진 동공으로 뒤를 돌아봤다. 기암절벽 위, 가파르기 짝이 없는 봉우리 그대로였다. 당소소는 숨을 몰아쉬며 앞을 바라본다. 장패군이 목젖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죽음은 어떠한가?”
“…….”
“무섭던가? 고통스럽던가? 아니면, 즐겁던가?”
당소소는 그 말에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뒤편은 까마득한 절벽이었다.
“넌 본좌의 선시요화안 안에서 죽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듯한데.”
“그래서, 네 제안을 받아들일 때까지 죽기직전의 상태로 만든다는 거야?”
“눈치도 제법 빠른 듯 하고.”
“컥!”
당소소는 가슴을 움켜쥐고 천천히 쓰러진다. 직전까지 쿵쿵대던 심장이 일순 멎어버려 당소소의 자유를 앗아갔다. 장패군은 목을 움켜쥐고 몸부림치는 당소소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 눈치를 이용해먹을 만큼의 오성은 부족해 보인다.”
“학, 하악…!”
장패군은 목을 움켜쥔 팔을 우악스럽게 잡아채며 내공을 움직였다. 팔뚝에서부터 시작되는 소름이 당소소의 몸을 뱀처럼 기어 올라갔다.
“읏…!”
“무재는 없다시피 하니 혹여 무공을 익혀 천마신교를 어지럽힐 일도 없을 터고.”
장패군이 그녀의 팔을 놓자 당소소의 몸이 축 늘어진다. 그리고,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다시 되찾은 호흡에 놀란듯, 거친 숨결을 들이쉬었다. 장패군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에게도 불리한 조건이 아닐 텐데?”
“후욱, 후욱….”
“네 안전도 보장 할 것이고, 원한다면 요구하는 것을 모두 줄 수도 있다. 그저 사마문의 예쁘장한 장난감이 되어 움직이면 되나니.”
장패군은 주저앉아 파들거리는 당소소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천은 곧 불바다가 된다. 내 손을 잡아, 신교의 대업에 동참해라. 그렇다면, 네가 소중히 여기는 이들은 살려주도록 하마.”
“대업?”
“그래. 천마신교는 만인을 구원하기 위한 대업을 꿈꾸고 있다. 그 시작점이 바로 너다. 통제불능의 사마문을 통제가능한 상태로 만든다면….”
“사마문을 마신[魔神]으로 옹립해, 그를 요마의 손으로 통제한다?”
당소소의 말에 장패군의 파리한 웃음이 시든다.
“그리고 그렇게 통제한 마신을 통해, 온전한 신의 가르침을 얻어 모두가 천선[天仙]의 영역에 들어서겠다?”
심중을 꿰뚫는 당소소의 말에, 장패군의 눈빛은 흉흉해졌다. 잠시간의 침묵. 장패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발칙한 계집이군. 허나, 잘 이해하고 있다. 본교는 모두의 행복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종교, 무지한 민초들은 마교라 손가락질하나 본좌는 그들의 무지마저 구원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지.”
내민 손에선 이젠 살기마저 느껴졌다.
“사마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해한다. 하지만, 그들의 구원을 생각해라. 이 손은 요마 장패군의 손이 아닌, 빛을 받지 못하는 그늘 속 민초들의 손이다.”
“그럴싸하네….”
당소소는 고개를 숙인 채 키득거렸다. 이젠 떨림이 멈춘 손은 주먹을 움켜쥐고, 장패군의 손을 잡는 대신 땅을 짚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그럼 그 온전한 신의 가르침이 죽음을 가리킨다면, 기꺼이 따르겠구나.”
“무슨 소릴….”
“이 현상은 거짓이요, 차안[此岸]을 넘어 피안[彼岸]으로, 현세를 넘어 선계로.”
당소소는 발을 앞으로 내밀고 손을 앞으로 뻗었다. 오른손을 뒤로 당기니, 삼양귀원의 자세였다.
“그 귀로[歸路]는, 영원한 안식이라.”
“……!”
당소소의 손이 쏘아진다. 텅 빈 손에서 난데없이 생겨난 비수가 장패군의 미간을 꿰뚫고 저 멀리 나아간다. 당소소는 구겨진 장패군의 표정을 보며 묻는다.
“네가 그토록 원하던 신의 가르침이 만약 이것이라면, 넌 어떻게 할 생각이지?”
“네 이년….”
“모든 민초의 피로 대지를 적시고, 현세를 무너뜨려 선계로 향하는 길을 만들 셈인가?”
물음을 던지는 당소소의 배가 꿰뚫리며 더운 피를 쏟아낸다. 고통스런 신음이 심산유곡을 울린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일어선다.
“선시요화안.”
허리가 끊어졌다.
“신선의 장난질을 본따[仙], 사람에게 피안의 이름을 내리고[諡], 요술로 그린 그림 속으로[妖畵] 사람의 의식을 부르는 눈[眼].”
목이 베여 머리가 절벽 아래로 추락한다.
“왜, 무서워?”
그럼에도, 당소소의 눈은 장패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당소소는 장패군에게 다가갔다.
“날 죽였어야지.”
당소소는 비수를 장패군에게 박아 넣는다. 한 번의 찌름 이후에 세 번의 죽음이 찾아왔다. 당소소는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장패군이 당소소의 시신을 짓밟으며 말했다.
“같잖은 계집이 죽음 앞에 실성을 했구나!”
“안 죽잖아?”
당소소는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장패군의 한 쪽 눈썹이 꿈틀거린다. 서늘한 소름이 그의 등골에 휘둘러졌다.
“피래미가…!”
“내가 죽을 곳은 이곳이 아니야.”
당소소의 눈은 꿈틀거리지 않는 다른 쪽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투명한 눈알엔 자신의 형상이 맺힌다.
그러나 동공에 비치는 것은, 당소소를 닮은 독무후였다.
“부채에 그려진 그림은 금 백 관이었는데, 이 그림은 얼마정도 하냐?”
“네 년, 뭐라고 하였느냐?”
“비싼 거였으면 좋겠네.”
당소소는 비수를 던졌다. 장패군의 귓불이 베였다. 그리고 다섯 번의 죽음을 맞이했다. 시종일관 평온했던 장패군의 표정이당황으로 일그러진다. 당소소는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웃었다.
“내가 네 놈의 그림을 찢기 전까지, 넌 내 스승님을 제압하고 죽어있는 날 죽일 수 있을까?”
“하찮은 계집이 어떻게 선시요화안의 파훼를…?”
그녀는 죽음을알고 있다.
그녀에게 죽음은 무서운 것이었다. 고통스러웠고, 절망적이었으며 그 과정은 공포와 고독만이 함께했다.
그리고 선시요화안의 장패군 또한 무서웠다.고통스러웠고, 절망과 공포가 서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 너머엔 독무후가 있었다.
지금 그녀는 살아있다.
“딱 대, 씨발놈아.”
당소소는 손에 쥐여진 비수를 치켜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