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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화 〉십오장[十五章], 독심괴취[毒深怪聚] 5 (98/130)



〈 98화 〉십오장[十五章], 독심괴취[毒深怪聚] 5

선시요화안[仙諡妖畵眼].

목표에 요술을 덧씌워 죽음을 가장한다. 그리고, 목표의 정신을 요술로 만든 그림의 안으로 끌어들이는 비술.

쌍검무쌍의 작중에서  한  나왔었고, 수많은 혼란을 일으켰었다. 그러나주인공은 그것마저 파훼해냈다. 요술의 그림 속은 단 하나의 제약만 존재했기에.

‘상상력.’

그는 천무지체이며, 구주를 떠돌아다니며 수많은 경험을 하고 좌절을 겪었었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으로 온 대지를 돌아다니며 오롯한 인간의 힘으로 완성을 하니, 제약이 없는 곳에서 그를 이길 자는 없었다.

무엇보다 선시요화안 안의 장패군은 그림에 쏟은 내공만큼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다. 선시요화안에  할의 내공을 불어넣었다면 일 할의 내공만을, 오 할의 내공을 불어넣었다면 오 할의 내공만을 사용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이런 약점이 명확한 무공인데도 그가 사용한 이유는.

팟, 파팟!


“…쿨럭.”

“어찌 파훼법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네 하찮은 힘으로 어찌할 성싶으냐?”

바닥에서 솟아난 바위로 이루어진 송곳이 당소소의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극통이 머리를 찌르르 울리며 한 움큼의 피를 뱉어냈다. 다가오던 당소소의 몸은 다시 제자리에 돌아가 있었다.

‘실패했어…!’


당소소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자세를 바로잡는다. 바로 직전 자신이 당한 죽음이, 선시요화안을 사용하는 이유였다.

요술로 이루어진 그림  세상. 먹의 농담은 그의 내공이요, 장대하게 뻗은 붓의획은 그의 기맥이라. 환상임을 알고 있어도 천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변 환경을 제 것마냥 조종하는 그를 상대하기 어려웠다.

쌍검무쌍의 주인공조차 압도적인 전력차를 가지고도 고전했던 상대였다. 그렇기에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 당소소는 고육지책을 꺼내야 했다.

‘감각을 차단해야 해.’


겨우 인지한 바람결이 칼날처럼 당소소의 팔을 끊어버렸다. 당소소는 격통에 인상을 찌푸리며 숨을 뱉었다. 상상하는 것은, 고독 속의 자신. 손끝이 무뎌진다. 팔이 무뎌진다. 다리가 무너진다. 고통이 가신다. 그리고, 의식이 꺼진다.

“흣, 핫…!”

당소소는 목을 쓰다듬었다. 바람결이 목을 찢고 지나가기 직전 의식을 꺼뜨리는 것을 성공했다. 제아무리 견딘다고 다짐해도, 수 없는 죽음을 견딜  없는 노릇. 그렇기에 정신에 영향을 주는 죽음이 오기 전에 의식을 몸에서 이탈시킨다.


‘선시요화안은 자신의 몸과 상상이 허락하는 한,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검기를 일으키고 연기화신의 경지에 도달하진 못하지만, 내가 봐왔던 비수를 만들 수 있고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수 있어. 이거라면,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당소소는 재빨리 의식을 끊을 준비를 하며, 자연스레 쥐어진 비수를 들어 올린다. 장패군도 그런 당소소의 재치를 눈치챈 듯, 눈썹이 꿈틀거린다.


‘상당히 선이 굵은 계집이군.’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선시요화안의 특수한 환경을 이용해 의식을 꺼뜨려 고통과 자신을 분리하고 정신을 온존한다. 제아무리 환상 속이라곤 하나,웬만한 정신상태론 할 수 없는 거친 방식. 수하를 시켜 뒷조사했을  그저 망나니에 불과하던 명가의 규수가 가질 수 있는 정신력은 아니었다.


‘…패악질만 일삼는다던 어린 계집이라고 들었거늘.’

쉬이 굴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독무후를 묶어둠과 동시에 당소소의 의식을 선시요화안의 세계로 끌어왔었다. 하지만 독무후는 사천투봉으로서 봐왔던 때와 달랐고, 순식간에 끝나리라 생각했던 당소소는 오히려 예측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을 곤란하게 했다.

‘제압하는 것은 간단하다. 의식을 꺼뜨릴 새도 없이 계속해서 죽여주는 것. 그러나 사마문의 장난감으로 쓰이기 위해선 약간의 이성은 남겨놓아야 할뿐더러 이 이상 선시요화안에 힘을 끌어왔다간 독무후와의 교착상태가 무너진다.’

움직이지 않던 나머지 눈썹이 꿈틀거린다. 당소소의 사지를 찢던 바람결이 거둬진다. 당소소는 피투성이가 된 채 주저앉았다. 장패군은 그런 그녀를 내려다 봤다.


‘무너뜨려볼까.’

요마의  다른 장기를 써야 할 때였다.


“하찮은 저항을.”

“좆, 까….”

당소소는 고통에 헐떡이며 언제라도 의식을 꺼뜨릴 준비를 했다. 피를 많이 흘린 탓인지, 의식이 몽롱해져 간다. 장패군은 턱을 쓰다듬었다.

“왜 내 제안을 거부하는 것이냐? 꽤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

“흑, 흐윽….”

유예되는 죽음에 당소소는 의식을 잘라낼 순간을 찾지 못한  고통에 흐느꼈다. 장패군은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가도 살려주겠다. 사정이 허락하는 한, 네가원하는 것도 들어주겠다. 악한 일을 거드는 것도 아니다.”

“아니야….”

“무지에 신음하는 민초를 못 본 체하겠다는 건가? 꽤 잔인한 계집이었군.”

“웃기는 소리….”

당소소는 헐떡거리며 장패군을 노려본다. 장패군은 고개를저으며 당소소에게 다가왔다. 당소소는 경계하며피투성이가 된 손을 뒤로 끌어보지만, 뒤는 낭떠러지였다.

“이 무지한 대중을 봐라.”

장패군은 바람을 일으켜 자신의 손목을 쓱 긋는다. 피 대신 먹물이 쏟아지며 당소소의 눈앞에 그림이 펼쳐졌다. 먹물은 수묵화가 아닌, 정물[靜物]을 그려냈다.

굶주림에 지쳐나아갈 길을 몰라 들판에 쓰러져있는 화전민을, 생명의 가치를 가늠치 못해 사람을 해치고 다니는 흉적들을, 지식을 알지 못해 자식을 땅에 묻고울부짖는부모를.

성군이라 칭송받는 황실의 통치 아래에서, 그늘에 드리워진 세상은 난세였다.

“이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을 봐라.”

동남[東南]으론 해적이, 북[北]으론 마적이. 서[西]로는 비단길을 탐내는 서장, 중원의 불교를 올바른 가르침으로 이끌고 싶어 하는 밀교가, 척박한 땅을 탐내는 중원의 손길에 신음하며 복수를 위해 마신을 숭배하는 회족이.

중원으론 정파라 불리는 백도무림이, 사파라 불리는 흑도무림이. 황실에 가까운 중앙과 그렇지 못한 곳이. 하나의 성과 다른 성과의 다툼이.  안에서 기름진 땅을 위해 벌이는 문파간의 각축전이. 문파의 안에서 권력을 위해 벌이는 암투가.

온 곳의 모든 삶이 싸움으로 여울져있었다.

“네가 이 싸움을 종식할 수 있다.  것 아닌, 네게 푹 빠진 같잖은 마귀의 비위를 맞춤으로써.”

“…….”


당소소의 몸이 차게 식었다.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온 당소소가 곧게 서서 장패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패군은 손목을 더욱 치켜들었다. 더욱 짙은 먹물이 쏟아지며 정물이 아닌 장면을 그려냈다.


“잘 와닿지 않는 모양이군. 그럼 현실을 좀 보여주도록 할까?”

장패군의 발걸음 한 번에 녹풍대의 일원 중 하나가 쓰러진다. 당소소의 눈이 부릅 뜨인다.

-당가를 위…!

-불쌍한 것.


그의 손짓에 저항하던 녹풍대원의 몸이 일어선다. 그리고, 저항하던 다른 녹풍대원의 몸을 찔러간다.

-쿨럭.

-네놈은 당소소라는 쓸모없는 계집 때문에죽는 것이다.

-아, 아아….

녹풍대원의 눈이 허무로 물든다. 당소소의 숨결이 격앙되었다.

“너, 너…!”

“네 스승을 닮아 성질이 급하군. 아직 더 남았거늘.”

-살려, 살려주시오. 난 그저 마부일 뿐이오.

-‘당소소’의 마부 아니더냐?


독무후의 손에 쓰러진 망치를 든 마교의 졸개였다. 그가 망치를 치켜든다. 마부들이 고개를 미친 듯이 저으며 말했다.


-그,  계집은 당가의 치, 치욕이었소. 움직이는 내내 껄끄러웠고…!

-그래?

-저자의 말이 맞소! 당소소의 마부가 아니라, 당가의 마부일 뿐….  왈패를 대체 누가 좋아한단 말이오?


망치가 조금 내려간다. 마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변명을 이어갔다.

-마, 마차가 덜컹거린다며 뺨을 때렸었소.

-말똥냄새가 난다며  해고하려고 했었소!


망치를  졸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마부들의 고개가 으깨졌다. 그의 망치에 붙어있던 살점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 핏물은 먹물이 되어 당소소의 얼굴에 끼얹어졌다. 당소소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당소소는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먹물은 튀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뜨며 앞을 바라봤다.

“……!”

눈앞에 있는 것은, 상아색의 불꽃에 온몸이 타오르고 있는 독무후였다. 당소소의 동공이 흔들린다. 시선이 아래로 떨어진다. 백서희가 자신의 칼로 자결을 한 상태였고, 그 옆엔  아래로 아무것도 없는 운령의 고개가 놓여있었다.


“현실이네.”

“아니야.”

“운령은 환유요가의 절정고수가 목을 취하러 갔다.”

“거짓말이야. 여긴 선시요화안의 세계야.”

당소소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장패군은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어떻게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장담하지?”

“그야 그럴리 없으니까. 네까짓 놈이 어떻게 천하십강을…!”

“직접 봤나?”

장패군은 당소소의 귓가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당소소는 발작적으로 비수를 찔러넣으려고 했으나, 불어온 바람에 팔이 꺾였다.

“악, 으으윽!”

“네가 선시요화안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을 동안,  내가 원하던 바를 이뤘다.”

당소소의 입술이 고통에 바들바들 떨렸다. 장패군은 그 행동에 입맛을 다셨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도강언은 독마의 손에 무너졌다. 독무후는  잃었다는 생각에 흥분한 나머지 내 요선지화를 받아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빨, 털지마….”

“백서희는 자신이 당소소를 죽였다는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초토가 된 도강언을 확인하고 자결했다.”

“…….”

당소소의 눈꺼풀이 서서히 감긴다. 장패군의 말이 이어져갔다.


“저항하던 운령은 사지가 잘리고, 사형을 찾으며 목이 베였다. 멍청한 계집, 제 사형이 사마문인 것도 모르고울부짖는 꼴은 꽤 추했지.”


장패군은 낄낄거리며 당소소의 안색을 살폈다. 볼이 꿈틀거리고, 당소소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그러나 꺾인다.

“청랑검문은 무너졌다. 정유는 무리하게 싸우다 주화입마에 걸려 모든 혈맥이 터져 죽었고, 청랑검문의 현판엔 묵가장이라는 이름이 걸려있다. 아미와 청성은 곧 독마의 손에 오염되어 멸문할 것이고, 사천은 신교의 손에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믿지 않아.”

“네가 믿지 않는다고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본좌는 사실만을 보여주고 있느니라.”

장패군은 당소소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가는 살려주도록 하마. 독천은 폐인이 되었지만, 우리가 찾아주도록 하마. 아미와 청성도 명맥만이라도 잇게 해주마. 네가 사마문의 첩이 된다는 약조만 있다면.”

“네가 감히….”


당소소의 입이 열렸다. 장패군은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환영은 믿는 순간 현실이 된다. 그렇기에 그의 이름은 요마. 장패군은 덜렁거리는 그녀의 팔을 움켜쥐었다.


“모두 사마문의 마음에 들어버린  업이다. 이제라도 그 업을 덜기 위해 손을 잡아라.”

“…타인의 목숨을 취하는 게, 네 대업이냐?”

울음기마저 섞인 절규에 장패군은 입술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자신도 물기 어린 목소리로 응수해준다.


“나라고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장패군의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큰길을 닦는 데엔 본디 많은 장애물이 있기 마련이다. 대국을 보지 못하고 사소한 것을 신경 쓰는 알량한 도덕심.  높은 세계의 상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세의 낡은 개념들.”

“헛소리야….”

“하지만 본좌도 모든 장애물을 치우는 살업을 행하고 싶진 않아. 그렇기에 네게 기회를 주는게다.”

울먹이는 흐느낌이 당소소의 귓가를 불쾌하게 간질였다.


“현세의 낡은 가치라도,  손으로 살릴 수 있으니.”


당소소의 자색 눈이 속삭이는 장패군의 눈과 마주친다. 장패군의 눈엔 하염없는 슬픔뿐이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양 주체할  없는 눈물이 뺨을 적시고 있었다.

“낡은 가치를 최후까지 지키는 것을, 네게 맡기려고 하는 게다. 최소한의 살업과 최대한의 행복. 네게 행복을 이끄는 역할을 맡기마. 천마의 비는  자체로 강한 힘이 있으니, 사천성을 지옥에서 건져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테고.”

“…….”

당소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장패군은 말을 이어갔다.


“사천성의 참사는 이해가 가지 않겠지. 그마저도 난 이해한다. 네가 죽음을 원한다면, 대업 이후에 내 목숨을 취해도 좋다. 대국을 봐라. 선시요화안을 이해하는 넌, 이것도 이해할 수 있는 아이다.”

“그래…. 좋아.”

당소소는 장패군의 말에 탄식하며 한마디를 던졌다.

그리고, 몸마저 낭떠러지로 던졌다.

“뭐하는…?”


장패군의 눈에 당혹이 어린다. 그가 떨어지는 당소소를 건져내려 손을 뻗어보지만, 이미 저 아래로 추락한 상태였다. 장패군은 혀를 찼다.

‘다 되었다 생각했는데…. 정말 미친 계집이군.’

그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 꿈틀거린 동공 너머엔 뇌운[雷雲]을 두르고 촌철을 부리며 벼락을 내리는 독무후가 움직이고 있었다.

*


“장 가야.”


독무후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린다. 허공을 유영하는 촌철 열 자루가 객잔을 잔혹하게 찢어간다. 난간에 자리하고 있던 장패군이, 일 층으로 뛰어내리는 장패군이, 계단을 올라오던 장패군이, 그녀의 앞에  있던 장패군이 모조리 터져나갔다.

그러나, 그는 아직 그녀의 눈앞에 서 있었다.

“본녀를적으로 돌린다면, 감당할 수 있겠느냐? 네 놈이 신경 쓸 것은 사천뿐만이 아닐 터인데?”

“사천투봉이 적을 걱정해줄 정도로 자비로운 성격이었나?”


장패군은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의 머리가 으깨졌다. 그러나 또 다른 장패군이 걸어와 독무후의 앞에 섰다.


“보시다시피,감당되는군.”

“그래…. 어디 한번 감당해 보거라.”


이제 독무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독의 구름을 점점 퍼뜨려 나갈 뿐. 독운에 담긴 거력이 공간을 넘어 천리를 짓눌러갔다. 장패군의 눈이 움찔거린다.


‘독무후의 시선을 빼앗아온 것은 좋았지만,  이상은 감당이 힘들다.’


장패군의 시선이 널브러진 마교의 잔당들을 훑었다. 천요만악행에 소비한 내공이  치명적이었다.오합지졸인 그들을 독무후와의 전장에 맞서 물러서지 않고 당혁의 지휘를 따를  있던 이유이자, 당혁의 독강시의 심혼을 움켜쥔 골자인 천요만악행.

장패군은 혀를 차며 가시지 않은 경련에 몸부림을 치는 당혁을 바라봤다.

‘시간만 끌라고 했건만, 장난감을  애새끼마냥 흥을 내선…!’

장패군은 산속에서 거지꼴이 되었던 당혁을 구했을 때를 떠올렸다. 의복과 섭식을 제공하고, 당혁을 구슬리기 위해 이름뿐인 감투를 쥐여주었다. 애송이에 불과한 그는 흥을 내며 당가의 비전을 술술 뱉어냈다. 합성독, 제독전의 편제 등등.

‘아직 더 뱉어내게 할 것이 많을 터.’


더 알아낼 것이 너무 많았다. 당가의 팔대극독과, 그들이 숨기고 있는 금지. 그리고 습격에 용이한 비밀통로와 같은 것들. 독무후와의 전장에 그를 참전시킨 것은 당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내이거니와, 그저 시간만 끌면 되는 간단한 작전으로 그의 감정을 흥분시켜 더욱 은밀한 비밀을 캐내기 위함이었다.


‘저 지성 없는 버러지를 구해낸 뒤, 당소소를 데리고 곧 합류해야겠군.’

장패군은 주먹을 쥔 뒤, 검지와 중지를 내밀며 검결지[劍訣指]를 뻗었다. 그리고, 선시요화안을 비추던 눈을 가리며 말했다.


“그들은  출발할 것이다, 독마.”

*


군청색의 하늘을 배경 삼아 지붕 위에 앉아있는 사내가 일어섰다. 독각혈가주, 독마 류시형이었다. 그는 눈을 누르던 손을 떼고,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잡귀새끼, 항상 번잡한 방식을 쓴단 말이지.”

“가주님, 독룡대가 대기 중입니다.”

그가 뒤를 돌아봤다. 뿔 달린 뱀을 수놓은 자들이 일제히 복면을 뒤집어썼다. 그는 웃음 지었다.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본다. 태동하기 시작하는 민중의 움직임이 보였다.

류시형이 서있는 거대한 건물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배열해있는 건물들. 농기구를 이고 논밭으로 나가는 이들, 장사를 준비하기 위해 좌판을 여는 이들과 코를 간질이는 객잔의 음식 냄새. 고도[高度]의 풍경이 펼쳐졌다.

“독각룡[毒角龍]의 독액은 마신의 눈물일지니.”


양팔이 펼쳐진다. 장포가 흩날렸다. 온갖 천으로 묶어둔 머리가 흩날린다. 뻗어오는 서광을 등에 지고,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무지한 민초를 긍휼이 여기는 그 눈물을 흘리며, 신교의 성전을 선포하라.”


그 긴 그림자를 타고, 독룡대가 아래로 떨어졌다. 류시형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서 있던 대궐 같은 건물의 정문을 바라본다.

-백능상단[白陵商團]

류시형의 모습도 이내 아래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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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독심[一片毒心] 십오장[十五章], 독심괴취[毒深怪聚]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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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희 일러스트입니다.

그려주신 미아님께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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