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십육장[十六章], 혈용독란[血涌毒亂] 2
천장에서 날아오던 장패군의 머리가 부서지고, 독무후는 숨을 골랐다.
‘의도대로 끌려가는 중이군….’
당소소를 잃었다는 충격에 초장에 내공을 전부 쏟아낸 것이 문제였다. 장패군은 점점 제 몸을 증식해나가는데, 하단전의 내공이 점차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도 딱히 대단한 공격은 해오지 않았고, 독무후도 장패군의 실체를 찾지 못한 탓에 촌철을 조종하는 것 이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날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다는 것은, 도강언을 도모하는 것에 꽤 진척이 있다고 봐야 할 터. 단혼사는 설득에 실패한 모양이군.’
독무후가 팔을 내리자 대나무로 짜낸 단검이 손에 잡힌다. 당가의 행차를 막고, 독으로 도강언을 도모한다. 모두가 예측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모두가 대응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본론은, 누가 한 수를 더 읽느냐였으니까.
“첫수는 이쪽의 패배인가.”
그녀는 죽검을 뽑았다. 투박한 갈색의 검신[劍身]이 드러나고, 허공에 휘날리던 촌철이 독무후의 품으로 돌아갔다. 장패군은 그 모습을 보며 실실 웃었다.
“보기 드문 광경이군. 네가 패배를 인정하다니? 하긴. 눈뜨고 제자를 잃었으니, 여인의 마음으론 상심하지 않을 수 없겠지.”
“…….”
독무후는 장패군과 말을 섞지 않고 대국을 훑기 시작했다.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무릇 무에 뜻을 두는 자로선 당연한 일. 제자를 잃었다는 분노는 애써 구석으로 미뤄두고, 판을 놓고 마주 앉은 상대가 어떤 수를 두었는가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독마는 도강언을 둥지로 삼았다. 요마는 독마가 둥지를 짓는 동안 잠시 교란을 하는 중일 테지. 그렇다면, 왜 사천의 하늘 아래서 이리도 적극적으로 행동 할 수 있을까.’
죽검의 칼끝에서 번갯불이 튀긴다.
“곤륜과 공동에 변고가 있군.”
“…후후. 그럴지도?”
눈앞에 서 있던 장패군은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느릿한 주먹을 휘둘렀다. 촌철이 잽싸게 날아와 그의 팔을 잘라낸다. 장패군은 미련 없이 반대쪽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내려치고, 새로운 모습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천투봉도 꽤 물러졌군. 고작 후기지수 하나를 걱정해 온 힘을 내지 않는 꼬락서니라니 말이야.”
독무후는 입술을 꿈틀거렸다. 백서희는 당소소를 눕혀두고 다가오는 장패군들에게 칼을 겨누고 있었다. 독무후에겐 그저 날파리만도 못한 분신이겠지만, 백서희에겐 하나하나가 전부 태산과도 같았다. 백서희의 눈가에선 불안과 격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독무후의 입이 열렸다.
“왜 모습을 드러냈지?”
“본좌가 왜 대답해야 하지?”
“곧 네놈을 천갈래로 찢어버릴 생각이니까.”
“크핫, 할 수는 있으신가?”
파삭!
한 줄기의 벼락이 객잔에 튀기며 바닥을 딛고 서 있던 장패군들의 모습들이 모조리 터져나갔다. 하지만, 터져나간 수 만큼 다시금 장패군이 생겨났다. 기둥 뒤에서, 계단을 올라오며, 허공에서 떨어지며.
“봐, 소용없잖아. 이번엔 네 패배다, 사천투봉. 천마께서 걷고 계신 대로를 막지 말고 썩 비키거라.”
“하.”
독무후는 장패군의 말에 웃을 뿐이었다. 장패군들은 그녀의 태도에 어깨를 으쓱하며 백서희에게 다가갔다. 백서희의 자세가 경직되어갔다. 눈에 어린 격정이 전신으로 번지며 검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움직이지 말거라.”
독무후는 백서희에게 나지막이 말하고 장패군을 바라봤다. 눈앞의 장패군은 조소를 머금고 있을 뿐. 그는 눈 위를 긁으며 말했다.
“이젠 자포자기라도 하려고? 아니면, 저 어린 것을 나에게 바쳐서 이 상황을 도모라도 해보려는 속셈이신가? 천하십강의 일인이?”
장패군이 독무후를 조롱하자, 그의 분신들이 냅다 달려들었다. 독무후에게 침을 뱉으려는 분신이 있는가 하면, 옷깃을 잡기 위해 몸을 날리기도 하는 등 모욕적인 행동을 일삼으며. 독무후는 그런 장패군의 행동에 굳이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백서희를 바라봤다.
“마음을 정갈히 다듬거라.”
“하지만, 소소가.”
“다듬거라.”
독무후의 말에 백서희는 이빨을 꽉 깨물며 천천히 검을 집어넣었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쇳소리가 독무후의 귀를 따갑게 울렸다. 독무후는길게 숨을 뱉으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포기인가? 도강언이 걱정되지도 않고? 당소소라고 했나? 그다지 소중한 제자는 아니었나 보군. 그리 슬퍼 보이지 않으니 말이야.”
독무후를 자극하는 장패군. 그녀는 피식 웃으며 머리에서 손을 떼고 자신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내가 연기화신의 경지를, 초절정의 경지를 언제 넘었다고 생각하느냐?”
“이젠 자기 자랑인가? 우스운 꼴이군. 나 또한 네 영역에 있는 사람이거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느냐?”
독무후는 그렇게 물으며 숨을 들이켠다.
“단전을 두드려 자연을 알고, 심장을 두드려 오행을 안다. 백회혈을 두드려 하늘을 알아차리니, 그 절정에 이른 실력이 하늘에 닿았기에 절정을 넘어선 초절정이라.”
“아, 미안하네. 실언했군.”
독무후의 말을 끊으며 장패군은 크게 웃었다.
“크흐흣, 팔자에도 없는 선생노릇을 하려는 걸 보면, 제자가 죽은 것이 신경 쓰이긴 하는 모양이야. 왜, 내가 더 말해주어야 하나?”
“무예로 서는 법을 익히니 비로소 땅 위에 섰으며, 심법으로 오기[五氣]가 하나의 흐름으로 조화되니[造元] 필부[匹婦]는 비로소 인간이라 불린다.”
장패군은 독무후의 말을 들으며 눈 위를 긁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환란은….’
파삭!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며 장패군의 눈 한쪽에 금이 갔다. 이윽고 금 간 눈은 먹물을 뚝뚝 흘리며 깨진 유리구슬로 변한다. 장패군의 볼살이 꿈틀거렸다. 그의 시선에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는 당소소가 걸린다.
‘으음, 같잖은 계집이 감히 선시요화안을…!’
장패군은 서둘러 한쪽 눈을 감고 손을 가져다 댄다. 그리고 독무후를 바라봤다. 이변을 눈치챈 것 같진 않았다. 그녀는 아직 자신의 앞에 있는 장패군을 보고 있었으니.
‘선시요화안이 파훼되어 당소소를 데려가는 것까진 무리겠군. 빠져나갈 준비를 한다.’
그런 생각과 함께 장패군은몸을 숙여 손으로 땅을 짚었다. 그리고, 태연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독무후의 앞에 꼿꼿이 서 있는 장패군이 깔보듯 입을 열었다.
“그래서, 본좌에게 천하십강 독무후는 어떤 가르침을 내려주실 생각이신지?”
“내기가 백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간은 하늘의 뜻 앞에서 자신의 사상을 제창할 수 있다. 사람이라는 산봉우리 끝에 선 자가 한 걸음 위의 하늘에 발을 올렸으니, 초[超]절정[絶頂]이라.”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쓰다듬던 손을 내린다. 그녀는제자가 몸을 뒤척이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장패군의 모습이 잠시간 흐릿해진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짐작은 했었다만…. 요술에 당한 게였구나. 용케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어. 잘했다, 소소야.’
고요히 타오르던 눈이 잠잠해진다. 미소와 함께 죽검은 장패군에게 겨눠진다.
“땅 위에 선 자가 하늘을 바라본다. 천지인[天地人]이 한데 엮여 하늘을 연모하는 꽃이 되나니, 삼화[三化]는 곧 정기신[精氣神]의 영화[榮華]라. 그렇기에 삼화[三化]는 삼화[三華]요, 그 찬란한 꽃이 한데 모여[聚] 한 송이의 정수[頂]를 피워내니.”
죽검의 검신에 다른 손을 얹는다. 내공이 일어나고, 뇌기가 몸부림친다. 그리고, 뇌기는 그녀의 뜻을 담는다.
제자가 살아있어 기쁘고, 제자를 지키지 못해 노엽고, 제자가 안쓰러웠기에 슬펐고.
“삼화취정의 경지를 이뤄 삼단전과 오장을 정렬하니, 조화에 이르러 인간은 그제야 올곧게 하늘을 마주하고 설 수 있다.”
마침내 찾아낸 미꾸라지의 둥지는 즐거움이라.
“그것을 조화경[造化境]이라 명명하며.”
죽검의 끝에서 오색의 벼락은 일어난다.
“…화경[化境]이라고 부른다.”
벼락들은 제 몸을 비비며, 한줄기의 흐름으로 혼합된다. 오로지 그것만의 흐름은 너무 부드러웠다. 그렇기에 죽검을 짚은 손가락이 움직인다. 독액이 죽검 위를 타고 흘렀다.
“어두운 구름이 하늘을 흐리니.”
독액은 벼락에 분해되어 독운을 뿜었다. 어느덧 흑빛 구름이 된 독운은 방전을 튀기며 먹색의 몸집을 불려나갔다.
“벼락이 몸부림을 치는구나.”
독운은 뻗어 나간다. 장패군의 분신들이 그 독운에 달려들어 요기를 뿜는다. 상아색의 불꽃이 독기를 찢으려 하나, 장대하게 흐르는 전류가 번갯불을 튀기며 막아선다.
독무후의 성명절기.
천혼암운뇌전전[天混暗雲雷輾轉]이 공간을 살라 먹고 장패군에게 뻗어갔다. 장패군의 표정이 처음으로 구겨졌다.
“이, 무식한 년이…!”
장패군이 일으킨 요선지화의 상아색의 불길은 암운의 거체에 깔린다. 독운과 전류가 삼 층 전체로 창궐해갔다. 장패군이 눈을 아래로 떨궜다. 독운에 깔린 요선지화의 불길이 일렁이며 한 톨의 불똥을 튀긴다.
“하찮은 애송이가, 본좌를 이리 귀찮게 할 줄이야.”
불똥은 곧장 장패군이 되어 당혁을 움켜쥐고 불길이 되었다. 독무후의 시선은 그 행동을 놓치지 않았다. 뻗어오는 한줄기의 벼락이 당혁의 가슴을 꿰뚫었다.
“컥, 크윽….”
짤막한 단말마. 독무후의 시선은 당혁을 지나쳐 한 점으로 향한다.
“내가 왜 쓸모도 없이 내공을 낭비했겠느냐.”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바라보던 곳에 죽검을 겨눴다. 창궐하던 독운은 응축되고, 압착되어 그 점으로 쏘아졌다.
독운이 날아간 곳은 객잔 중앙의 빈 허공이었다.
하지만, 독운은 그곳을 꿰뚫지 못했다.
“악, 으악!”
단지, 허공의 틈새로 스며들었을 뿐. 독운에 반발하듯 비명이 튀어나오며 마침내 숨겨진 공간의 속살이 드러났다. 당혁을 옆구리에 낀 채로 한 손을 들어 전력으로 내공을 일으키는 장패군. 그는 줄 위에 서서 자신을 꿰뚫고 지나가려는 독운을 막고 있었다. 상아색의 불꽃은 위태롭게 타오르며 그의 번들거리는 식은땀을 비췄다.
“어떻게 내 요술을…?”
“본녀가 왜 대답해야 하느냐?”
독무후는 웃었다. 농밀해진 독운의 영역은 자신의 길을 막아서는 불꽃에게 몸을 들이밀었다.
파직!
번갯불이 튀었다. 불꽃이 중화된다. 독운의 영역이 폭발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상아색의 불꽃을 삼키고, 그를 씹어먹듯 전류를 튀겨대며 격렬히 몸부림쳤다. 혈향이 폭발적으로 퍼져나왔다.
“천하십강의 절기를 봤다기엔, 영 수지가 맞질 않는군.”
회한 섞인 장패군의 말이 들렸다. 그는 어느새 일 층의 거대한 무대 위에 내려와 있었다. 시선은 위가 아닌 아래였다. 그의 오른쪽엔 팔 대신 울컥 튀어나오는 핏줄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장패군은 눈을 돌려 위를 바라봤다. 독무후는 그 행동에 혀를 찼다.
“어서 꺼지거라, 잡졸아.”
“…내 무공도 까발려졌으니, 이 빚은 톡톡히 받아내야겠어.”
독무후의 말에 장패군은 한쪽발을 뗐다. 그러자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며 찢긴 나무 바닥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독무후는 혀를 차며 주위를둘러본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가장 불쾌한 놈이군.”
피범벅이 된 삼 층엔 시체는커녕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요괴에 홀린 듯한 상황은, 그가 왜 요마라 불리는지 톡톡히 보여주고 있었다. 독무후는 죽검을 다시 검집에 꽂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깨어났느냐?”
“…네.”
잔떨림이 있는 당소소의 목소리가 들렸다. 독무후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많이 아픈가 보구나.”
“벗어나기 위해서…, 윽! 고생을 좀 해서.”
당소소는 가시지 않는 고통에 신음하며 일어서기 위해서 땅을 짚었다. 고통이 번져왔다. 그녀가 풀썩 쓰러진다.
“아, 씨발.”
“소소…!”
당소소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몸은 선시요화안을 벗어났지만, 정신은 벗어나지 못했다. 무궁검을 발동시키기 위해 했던 행동이 당소소의 신경을 휘감고 뱀처럼 기어올랐다. 당소소의 입에선 비명이 새어나왔다.
“아, 아아….”
고작 좁쌀만한 내공을 가진 당소소가 검기를 뽑아낼 순 없었다. 제아무리 천지개벽의 성능을 지닌 무궁검이지만,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자에게는 손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두드렸다.
좁쌀만한 내공을 불사르며무궁검의 손잡이를 두드린다. 그리고, 온몸의 기감을 끌어올린 채 죽는다. 다시, 좁쌀만한 내공은 복구된다. 그리고 다시 무궁검의 완고한 문을 두드린다.
그러기를 수십 번.
마침내 납득할만한 내공이 축적된 무궁검은, 검기를 허락했다. 그리고 미천한 자가 높음을 갈구한 데에서 온 대가를 받아갔다.
“흐윽, 아파….”
“소소, 정신 차려. 이제 괜찮다고.”
“마비, 마비독…. 스승님, 마비독….”
당소소는허우적거리며 독무후를 바라봤다. 잔뜩 열린 기감으로 받아낸 죽음은 당소소의 신경에 긴 상흔을 남겼다. 머리가 으깨진 고통, 목이 달아난 고통. 사지가 찢겨나간 고통이 휘감겨있었다. 기감에 얽힌 환각통이 당소소의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쉬거라.”
독무후가 그녀에게 다가가상체를 안아 들며 속삭였다. 당소소는 그제야 찡그린 얼굴을 풀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올려 독무후의 손을 잡았다.
“환각은, 아니겠죠?”
“난 여기에 있단다, 제자야.”
당소소는 독무후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불안하게 오르내리는 가슴이 그녀가 잠들었음을 알려줬다. 독무후는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서희, 넌 괜찮느냐?”
“전 괜찮습니다. 소소가 당한 고통에 비하면….”
독무후는 잔뜩 긴장한 백서희의 어깨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의 축 늘어진 손을 쥐었다. 안도했음에도 채 가시지 못한 공포가 떨림에 어려있었다.
“고통은 상대적인 것이다. 두려움은 부정하는 순간 더 큰 두려움이 된다.”
“전….”
백서희는 독무후를 바라본다. 눈동자가 떨렸다.
“괜찮습니다.”
“네가 그렇다면, 별 말은 하지 않으마.”
독무후는 기절한 당소소를 바라봤다.
“소소를 업거라. 바로 도강언으로 향해야겠다.”
“예.”
독무후는 그렇게 말한 뒤 난간으로 향했다. 삼 층뿐만이 아닌, 직원들과 마부들이 머무는 이 층도 피에 여울져있었다.
“마차는 버려야하겠구나.”
독무후는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