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2화 〉십육장[十六章], 혈용독란[血涌毒亂] 4 (102/130)



〈 102화 〉십육장[十六章], 혈용독란[血涌毒亂] 4

“…….”


백서희는 말없이 백능상단의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발걸음이 한 발짝 앞으로 향했다.


“서희, 어디가는거야?”

백서희는 당소소의 부름에 그녀를 돌아봤다.


“본가가 불타고 있어.”

“…그래.”

“서둘러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고, 백능상단의 식구들도 구해야해. 지체할 시간이 없어. 도강언이 이런 꼴인데 백진오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알아내야해.”

“맞아. 하지만, 멈춰.”

당소소의 말에 백서희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백서희는 잔뜩 격앙된 숨소리와 함께 당소소를 노려봤다. 당소소는 그 눈빛에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백서희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멈춰야하는데?”

“…네 오라버니는 여기서 죽지 않아. 내가 보증할게.”

“네가 그걸 어떻게 보증해.”

백서희는 떨림 가득한 목소리로 당소소를 윽박질렀다.

“내가, 내가 한걸음을 늦추면…. 백능상단의 사람들은 한명  죽을 거야. 알겠어? 그러니까 날 막지 마. 백능상단은  집이야.”

“그런 네 집은 지금 불타고 있잖아.”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백서희의 팔목을 잡는다. 백서희는 자신의 팔목을 잡은 당소소의 손을 내려다봤다. 가냘픈 떨림이 무척이나 애처로웠다. 잔뜩 흥분한 숨결이 잠시 가라앉는다. 백서희는 다시 당소소의 눈을 바라봤다.

“네 집이 아니니까, 날 말릴  있는거잖아.  가서, 사건의 주모자들에게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알아들었어?”

“그 ‘주모자’들에게?”


당소소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백서희는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대가를 치르게 할 건데.”

“…어떻게든.”

“서희, 잘 들어.”

당소소는 소매를 당기며 백서희에게 다가갔다. 백서희의 감정적인 시선이 무척 무서웠다. 하지만,당소소는 그 공포심을 이겨내며 말했다.


“백련지독[白蓮之毒]에 대해서 알아?”

“아니.”

“피안향[彼岸香]에 대해서는?”

“몰라.”

“그렇다면, 독각혈사연에 대해서는 알고?”

“…….”

백서희의 숨결에 서린 흥분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당소소는 그 소매를 놓으며 말했다.


“네가 이성을 잃어선 안 돼.”

당소소는 눈을 감았다. 미래의 그녀가 행동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누구보다 정의롭던 그녀. 그녀라면 분명, 이성을 유지하고 냉철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역할이었으니까.

‘…그건 내 역할이니까.’


당소소는 씁쓸하게 웃었다. 마침내 감정을 추스른 백서희는 자신이 당소소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백서희는 당소소에게서 한발 떨어지며 말했다.

“미안. 그러니까,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봐.”

“이제 진정됐어?”


백서희는 고개를 끄덕이며변주객잔에서의 당소소를 떠올린다. 당혁을 보고 바닥에 웅크려 두려움에 떨던 모습. 고문의 잔향에 몸서리치며 공포를 토해내던 그녀.  사건은 비단 자신의 일만은 아니었다. 백서희는 여러 말을 하는 대신, 다만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렸다.

“너도 마음이 편치 않을 텐데. 내 실수였어. 미안해.”

“…후후.”


백서희의 말에 당소소는 그저 웃음만 지어줄뿐이었다. 엄밀히 말한다면 여태 불행을 겪어오고, 그 불행을 타인에게 전파하던 것은 본래의 당소소였다. 그래서 그녀는 그 일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내 삶이 아니라, 그녀의 삶이라서.’


그녀는 객관적으로 보자면 자신이 당소소의 삶을 빼앗은 찬탈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소소인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해왔음에도, 남자와 여자와의 괴리를 느낄 때마다 이질감은 찾아왔다. 당소소는 욱신거리는 아랫배에 손을 올렸다.


‘…미안해.’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여태 벌어졌던 수많은 일들에 대해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당소소의 모습으로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그 행적을 자신의 관점에서 함부로 재단할 수 없었다. 이 이야기는본디 있어야  당소소의 것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속죄는 다시  삶을 돌려주는 것. 그러나, 이미  삶을 다시 돌려줄 수도 없었다.

‘미안해, 당소소.’

그렇기에 차선이었다. 이기적인 자신의 소망과도 부합했다. 자신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선,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것.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의 모든 그늘을 밝히는 것. 당소소의 죽음은 질척거리고 추악한 것이 아닌, 명예롭고 행복한 것이 되는 것. 그리고, 쌍검무쌍의 이야기를 크게 훼손시키지 않는 것.

‘그리고….’


당소소는 찬탈자가 빼앗은 백서희의 평안을 바라봤다. 불길이, 독이, 비명이, 피가 도강언을 적시고 있었다. 이것은, 그녀의 미래가 아니었다. 그녀는 사천편의 뒷배경을 모른다. 하지만, 백능상단이 불타지 않았고, 백서희는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았다는걸 누구보다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미안해. 백서희.”

당소소의 말에 백서희는 돌아섰다.

“네가 왜 미안하다는 건데?”

“아냐.”

당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독무후와 녹풍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빈혈기에 젖어 느릿하게 걷는 걸음이 퍽 쓸쓸해보였다.

*


독무후는 다가오는 당소소를 바라보며 물었다.


“잘 달래고 왔느냐?”

“네.”

“잘했다. 이미 이지경이 된 이상, 도강언은 독마라는 거미새끼가 쳐둔 거미줄이나 다름없는 곳이 되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금세 독에 절여져먹잇감이 될게야.”


당소소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작중에서도 독마를 상대한다는 것은 소규모 공성전을 하는 것과 같았다. 접근할 수 있는 길은 모두 독기에 젖어 쉬이 접근할 수 없었다. 그 곳을 피해 다른 곳으로 향한다면, 곧장 독마의 공격이 날아든다.

그를 상대하기 위해선 일단 그 모든 활로를 배제해야했다. 그리고 남겨둔 최악의 길을 택해 독마라고 불리는 그의 모든 함정과 독, 암기를 정면으로 받아넘기며 다가가야 했고, 최후엔 검기마저 통하지 않는 독각천시라는 성문을 마주해야했다.


“우선 손을 내밀어 보거라.”

“손이요?”


당소소는 독무후의 말에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독무후는 그녀의 손 위로 주머니 한 자루를 올려놓았다.

“순천단[順天丹]이다.”

“아. 이게 그….”

“설명을 하지 않아도 무엇인지 아는 눈치구나.”

“헤헤….”

당소소는 독무후의 말에 멋쩍게 웃어보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름마저 똑같았으니까. 독무후는 그 모습을 못 이기겠다는 듯,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말대로 묵우의 뿔과 천산양의 간, 수선충의 몸에서  동충하초를 섞은 단약이다. 확실히 독특한 효능이 있더구나.”

당소소는 독무후의 말을 들으며 주머니를 열었다. 약재특유의 냄새와 은근히 섞인혈향.  안엔 거무튀튀한 색의 동그란 단약  알이 있었다.


“보통 해독[解毒]은 중화[中和]작용에서 이루어진다. 불길에 물을 끼얹는다. 그렇게 불을 꺼뜨리는것이 해독이야. 하지만 너무 끼얹진 않는다. 불길이 꺼질 수도 있거니와 오히려 불을 끄려다가 물이 범람할 수도 있으니.”

“오뢰전리공의가르침과 비슷하네요.”

“가르치는 것은 잊지 않는구나. 맞단다. 오뢰전리공은 불을 향해 끼얹는물을 조금 줄여, 통제가능한 불길로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하지. 어찌되었건, 중화란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순천단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지.”


독무후는 당소소가 쥐고 있는 주머니를 닫아 그녀의 허리춤에 매어주며 말했다.

“촉진[促進].”

“촉진이라면…. 오히려 기운을 북돋는 것 아닌가요?”

독무후는 당소소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독성에 저항하는 기운을 북돋는다. 약이니 당연한 이치겠지만, 순천단은  가지를 더 할  있다.”

독무후는 손가락을 내밀었다.

“순천단의 하늘은 하나가 아니란다.”

“변주[變奏].”


독무후는 기특한 제자의 말에 웃음 지으며 손을 위 아래로 까딱였다.


“독성에 저항하는 기운을 북돋을 때는 그 뒤를 밀어주다가도, 그 기운이 점점 독성을 이기기 시작하면 손을 떼고 다시 독성의 등을 떠민다. 그렇게되면….”

독무후는 주먹을 움켜쥔 뒤, 다른 쪽의 손바닥을 가볍게 때린다.


“네가 알다시피 온몸의 독기와 저항하는 기운이 제풀에 지쳐서 무너지는 것이지.”

“…….”


당소소는 독무후의말에 침을 삼키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이미 당소소가 순천단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도. 독무후는 당소소의 옆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지금은 묻지 않으마. 네가 나에게 해가 될 일을 하진 않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말할  있을 때. 그때 말해주도록 하거라.”

독무후는 당소소의 어깨를 두드린 뒤, 다가오는 백서희를 향해 주머니를 내밀었다. 백서희가 그 주머니를 받아들며 물었다.


“이건….”

“순천단이라는 것이다. 독각혈가의 무인들에게 용이하게 쓰일 것이니, 하나 받아두도록 하거라.”


백서희는 주머니를 받아들어 안을 살펴본다. 순천단 한 알이 들어있었다. 백서희는 다시 주머니를 닫고 허리춤에 매며물었다.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야하는지  수 있겠습니까?”

“불로 태워 연기를 내도되고, 물에 개어 액체로 써도 된다. 직접 먹이는 것도 가능하고.”

“감사합니다.”


백서희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독무후를 바라봤다. 독무후는  웃으며 말했다.

“재촉하지 않아도 첫 행선지는 백능상단의 본가니라.”

“하지만 적이 함정을파놓았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저희가 오는 것도 알고 있을 터, 그들의 움직임을 예측해 다른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론이구나.”

독무후는 백서희의 말에 긍정하며 마교도들을 한데 모아 묶고 있는 녹풍대원들을 바라봤다.


“보고해라.”

“이미 독마의 의도는 성사되었습니다. 접근할 수 없을 정도의 독기를 풍기고 있는 곳은 도강언의 민가촌, 곡물을 저장해두는 저장고, 장인들이 모여 사는 산악지역의 제작공방, 그리고 강을 가득 메운 독수[毒水]의 수원인 민강의 제방입니다.”

“그렇군. 위치는 이러하겠지?”


독무후는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선을 긋는다. 불온한 기운을 풍기는촌락을 가리킨다. 그 선은 쭉 이어져 산을 타고 연기를 풍기는 중턱에 머물었고, 다시 산을 타고 내려가 고함과 비명이 들리는 저장고를 가리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방. 그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선에 백서희는 침을 삼켰다.


“이건, 감히 침범할  없군요.”

“옳다. 녹풍대가 멍청한 자들이라 도강언의 밖에서 발만 동동구르고 있는 것이 아니니라. 뭐, 멍청한 놈이 없는 것도 아니다만….”


독무후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전란의 한가운데에 빠진 도강언을 바라봤다. 도강언은 사천의 곡창지대이자, 수많은 시대를 거치며 갈고닦아진 도시. 그렇기에 도시구획은 필연적으로 정갈한 모양새로 나뉠 수밖에 없었고, 독마는 그것을 이용해 도강언을 하나의 성채로 탈바꿈 시켜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곳을 짚는다.

“그리고 저곳이 사지[死地]다.”


손가락은 대로를 타고 이어진 백능상단의 본가를 가리켰다. 도강언의 모든 곳으로 갈 수 있는 곳이자, 외부에서 가장 쉽게 도강언으로  수 있는 곳. 그렇기에 독마는 그 곳에 구멍을 파두었다. 섣불리 머리를 들이밀었다간, 곧바로 참수를 할 수 있도록.

“다른 곳은 전부 한 눈에 확인할  있을 정도로 위험이 존재한다. 설사 독공으로 쌓아둔 성채의 사이를 타고 흘러들어가도, 곧장 역으로 추격을 해오겠지.”

“독무후님의 말씀대로면 저곳은 분명한 함정입니다. 더욱 가선  되는  아닙니까?”


백서희는 염려를 담아 독무후에게 물었다. 당소소도 그 말에 동의하는 듯,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독무후는 쿡쿡 웃으며 그 둘을 바라봤다.


“본녀가 누구인고?”


“독무후께서 독에 통달하신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알고 있는 위협에 스스로 몸을 들이미는 것은….”

“아직 어리구나.”

독무후는 백서희의 걱정을 들으며 앞으로 나섰다. 녹풍대원들은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뒤에 도열했다.

“인원은?”

“열 명입니다.”

“생존은?”

“녹풍대는 오로지 가주의 앞에서만 죽음을 맞습니다.”


독무후는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뒷짐을 지며 말했다.


“마교의 독공이 제법 매서우나, 당문의 독심에 비할 바는 아니다.”

“옛.”

정돈된 음성들이 귓가를 때렸다.시선은 불타는 백능상단으로 향했다.


“저 악적은 당가의 벗을 해하고, 도강언의 금전과 나아가 사천의 안위까지 앗아가려고 하고있다.”


녹풍대원들이 허리춤을 한차례 두드렸다. 갖가지 암기들이 부딪히며 묘한 음색을 자아냈다. 독무후는  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당가의 식솔에게 검을 들이밀고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자 목숨을 앗아갔지.”

“…….”

철컥! 철컥!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녹풍대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당가의 독은 준비 되었느냐?”


쿵!

녹풍대는 자신의 심장 위를 두드리며 대답을 대신한다. 고양감이 몸을 짓누르고, 분노가 이성을 더욱 날카롭게 벼린다.

당가는 폐쇄적인 집단이었다.그러한 가풍 때문에 오대세가에 속했다고는 하나, 그 인원수는 항상적었다. 그렇기에 무인 한 명, 하인 한 명, 심지어는 마사지기한 명 까지 모두 그들의 식구였고, 소중한 동료였다.

 소중한 동료를 빼앗긴  분노는 부정할 순 없었다. 정제하고, 정제하여 하나의 비수가 되어야 했다.

그것이, 당가의 독심이자 당가의 가장 치명적인독이었다.

“옛!”

녹풍대원의 노기어린 고함소리가 전란에 가려진 하늘을 울렸다.


“성을 무너뜨려라.”


독무후는 주먹을 쥔 손을 들어 말했다.

“성문은 본녀가 열어놓을 테니.”

녹풍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날렸다. 숲으로 흩어지며 방향을 다잡는다. 목표는 제방, 민가촌, 저장고, 공방. 독무후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둘을 보며 말했다.


“너희 둘에게 보여주도록 하마. 당가가 어떤 곳인지.”


독무후는 주먹을쥔 손을 백능상단에 겨눴다. 성문을 두드릴 시간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