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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화 〉십육장[十六章], 혈용독란[血涌毒亂] 5 (103/130)



〈 103화 〉십육장[十六章], 혈용독란[血涌毒亂] 5

백능상가의 본가로 향하는 잘 닦인 대로변. 평소라면 상인들과 행인들이 얽히며활기가 가득해야  거리가, 을씨년스런 열기로 넘실거렸다. 독무후는 느릿한 걸음으로 대로변을 걸으며 주변을 훑었다.


“이상을 느끼느냐?”

“대피를  걸까요?”

“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으론 맞겠지.”

독무후는 단혼사의 행적을 떠올리며 당소소의 말에 긍정했다. 위협을 알렸고, 구조를 약조했다. 그러니 대피를 해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단혼사가 녹풍대와 같이 행동하지 않고, 백진오와 같이 행동하지 않고 있다는 시점에서 이 일은 마땅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마땅한 전조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은 무척이나 불온할 수밖에 없었다. 독무후의 시선은 무너진 상점, 골목의 그늘진 곳을 향해있었다. 독무후는 사방을 경계하며 물었다.

“적은 과연 어떤 형태로 우리를 맞이할지 생각해보았느냐?”

“저희가  것이라는 것을 아는 시점에서 웬만한 독과 암기를 이용한 함정은….”

핑! 슈욱!

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작은 화살이 날아들었다. 독무후는 재빨리 그 화살을 낚아  이모저모를 뜯어봤다. 당소소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했던 말을 얼버무렸다.

“어, 안  줄 알았는데. 음….”

“이곳은 정파가 득세하고 있는 사천성이다. 그러하다면 이러한 환란을 일으키기 위해 많은 인원이 출발했을까?”

“아니오.”

독무후는 당소소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며 화살을 놀렸다.


“제아무리 성긴 감시망이라곤 하나, 많은 인원이 잠입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소수. 최근 고수를 배출하지 못해 하락세를 보이는 아미, 청성. 가주가 무림맹의 활동에 몰두해 모습을 보이지 않는 당가. 그렇다곤 하나 각기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일원이다.”

“그렇기에 요마와 독마가 사천성에 등장한 것이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거물입니다. 그들이라면 마교의 핵심요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백서희가 싸늘한음성으로 말했다.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편전을 멀리 보이는 바닥으로 던졌다. 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나며 조그마한 주머니가 폐허 속에서 튕겨져 나왔다. 주머니는 한 줌의 독분을 반대편 건물에 흩뿌리며 날아갔다.독무후는 고개를 까딱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왜 저런 거물들이 직접 나섰는지는 아직 제대로 알진 못한다.  노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이런 비효율적인 선전을 하는 것인지도. 실제로 이정도로까지 일을 벌려놓으면, 관에서 개입할 수밖에 없다.”

“백진오는 게으르지 않습니다. 이곳 사천성을 총괄하는 사천성주 뿐만 아니라 이 주변의 현령들까지도 연줄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텐데, 관의 움직임이 굼뜬 것이 무척 수상합니다. 물론 무림세력끼리의 다툼이라 치부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백능상단은 엄연히 상인들의 단체….”


백서희의 말을 듣던 독무후는 손을 들어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백서희와 당소소의 발걸음이 멈췄다. 독무후는 품속에서 촌철을 뽑아 바닥에 찔러 넣었다. 한 걸음 물러서자, 땅거죽이 뒤집히며 묵직한 폭음이 들렸다. 독무후는 고개를 삐딱하게틀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화약이라.”

“…이젠 비단 무림만의 영역이 아니겠지요. 그들의 생각을 더욱 읽지 못하겠습니다. 분명 관에서 쫓아올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는데.”


독무후가 손을 내민다. 촌철이 찔러진 과정을 역류하며 다시 그녀의 손에 잡혔다.

“쉬이 추측할 수 없는 복잡한 것은 나중으로 미뤄두도록 하자꾸나. 저들의 방식에 대해 궁리를 해야 하느니. 감시망을 피해야 하니 소수. 요인을 보좌해야하니 정예. 아마 가문에서도 가주직속의 무인들이 출발했겠지.”

“그렇게따진다면 도시를 거점삼아 걸어오는 공성전은 꽤나 유효한 전략이네요.”

독무후는 백서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다수의 인원을 투자해서 본녀를 습격하지 않음은 무엇일까?”

“비효율적이라서? 그들은 가주직속의 정예들. 결국 패배가 예정되어 있는 스승님에게 맞서서 소비되기보다 더욱쓸모 있는 사용처가 있을 테니까요.”

“옳다. 그리고, 걸음걸이를 조심하거라.”

“네? 아.”

당소소는 달거리로 인한 빈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발을 헛디뎠다. 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독분이 든 주머니가 당소소를 향해 날아들었다.

치직, 치직!

번갯불이 튀었다. 독무후가 그녀의 옆에 서서 벼락으로 독분을 흩어내고 있었다. 독무후는 당소소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자야, 힘들면말하거라.”

“…후우, 후우. 괜찮아요.”

“본래 두 가지의 목적 중 하나인 적을 우리 쪽으로 유도해 전장을 도강언에서 이탈시키는 것이나, 도강언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것은 실패했다. 나름  수를 먼저 읽었다곤 생각했지만…. 일이 이지경이 되었다면, 굳이 네가 와서 이런 고생을 겪을 필요는 없었을 텐데.”

“저는, 그렇지 않아도 이곳에 왔을 거예요.”


당소소는 지친기색으로 독무후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 일은 분명히 흐름에서 벗어난 후폭풍이었다. 그러니, 당소소 자신이 동행해 알아봐야함이 옳았다.

‘아마 당청과 당혁이 실각을 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거야. 본래의 흐름을 되찾아야해.’


독무후는 세상 진지해 보이는 당소소를 보며 픽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쓰다듬은 뒤, 몸을 돌려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넌 너무 생각이 많단다.”

“네?”

“조금만 느슨해지자꾸나.”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죽검을 뽑아 앞으로 내밀었다. 그 끝엔 벼락이 어리고, 감정이 담기며, 사상이 물결쳤다.


“때로는 귀찮아하는 성미도, 조금의 어리광도 필요하단다.”

콰르릉!

한줄기의 벼락이 내리치며 앞으로 뻗어나갔다. 뇌전에 걸린 대로의 함정들이 난잡한 소리를 내며  역할을 다하고 무너졌다. 당소소는 눈을 깜빡이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이게 뇌념무[雷念武], 천주일뢰[天柱一雷]구나.’

원작의 독무후가 선보이던 네 가지의 무공 중, 벼락을 부리는 죽검을 이용해 뇌기를 쏘아내는 무술인 뇌념무. 그중 가장 자주 모습을 보이던 천주일뢰의 초식이 지금 당소소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독무후는 초롱거리는 당소소의 눈초리를 확인하고, 내심 뿌듯한 마음을 감추며 죽검을 다시 허리춤에 꽂아 넣고 앞으로 걸어갔다. 한줄기 벼락이 가르며 지나간 대로는 암기, 독, 폭약의 잔흔으로 난잡하기 그지없었다.

“네가 아까 말했다시피 이런 가소로운 물건들은 나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경을 긁기 위해서일까요?”

“그것도 얼추 맞다. 하지만 독공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좀 더 넓게  수 있지.”


당소소는 독무후를 뒤따르며 그녀의 잘그락거리는 장포를 바라봤다.

‘독공의 특성…. 독공은 심리의 영역이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아.’


그녀는 당진천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한 단어를 움켜쥐고 서둘러 독무후에게 내밀었다.


“영역. 영역이에요. 다른 무공과는 다르게 독은 일정 지역을 장기간 통제할 수 있어요. 그로 인해 심리를 통제하고, 또 직접적으로 이동을 통제할 수도 있어요.”

“잘 떠올려주었다. 네가 봐왔던 지금까지의 함정도, 더 거슬러 올라가 변주객잔에서의 습격도 그런 경향이 있었단다. 애초부터 저자들은 정면승부를 원하고 있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거기에 인원은 소수. 최대한 번잡한 방식으로 내 접근을 늦추고, 뜻한 바를 이루려는 목적이겠지.”


독무후는 채 감추지 않은 흉수의 족적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목적이 더욱 노골적이었다.

“대략 인원은  명 전후. 독마를 보좌해야할 인원 둘에,  지점별로 두 명 정도를 파견해 도시로 성채를 짜냈다고 생각한다면. 이곳도 마찬가지로 둘에서 하나 정도만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겠지. 그 증거로 동일한 보폭과….”


독무후는 상체를 숙여 아까와 동일한 화살 하나를 집었다.

“동일한 암기사용, 동일한 함정의 경향.”

흉수의 흔적은 어느덧 눈앞으로 다가온 백능상단의 본가로 이어지고 있었다. 백서희는 거대한 건물이 불길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아찔한 모습에 침을 삼키며 마음을 다잡았다. 차분한 독무후와 자신을 막아서줬던 당소소 덕분에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아마, 적이 벌인 일은 아닐 거예요.”

“적이 아니라면 네 오라버니가 했다는 거야?”


당소소의 물음에 백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대로도 함정투성이로 만들 수 있는 자들인데, 복잡하고 거대한 건물을 온전히 이용하게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불 보듯 뻔한 결과…. 거점으로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백진오가 직접 불을 낸 것이 분명해요.”

“과감하나, 괜찮은 선택이구나. 헌데 그 혜안을 단혼사의손을 잡는데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꼬.”

독무후가 혀를 차며 불길과 연기가 새어나오는 대문을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홍염을 토해낼 듯, 들썩이는 모습이 불안했다. 그녀는 턱짓을하며 물러서라는 신호를보냈다. 당소소와 백서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비켜섰다.

“무엇이 좋을까…. 이게 좋겠구나.”

독무후는 장포에서 목함 하나를 꺼내 손 위로 올려두었다. 그 뒤편에 자리한 손잡이를 움켜쥔 뒤, 내기를 불어넣었다. 청색과 황색으로 명멸하는 목함. 독무후는 그대로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

“음?”


고요. 독무후의 눈썹이 잠시 치켜 올라갔다. 그리고 재차 잡아당겼다.

“…그, 폭우이화침[暴雨梨花針] 맞죠? 고, 고장났나보네.”

“…….”

독무후는 당소소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앙증맞은 주먹으로 목함의 뚜껑을 한 대 때릴 뿐이었다.

와직!

파파파팟!

목함의 뚜껑이 으깨지자, 명멸하던 뇌기는 목함 안에 도사리고 있던 철침 하나하나에 씌워지며 문짝을 꿰뚫었다. 그러자 안쪽에서 몸을 낮추고 기다리던 홍염이 잽싸게 일어나 독무후를 삼키기 위해 내달려왔다.

“연철전 그 철쟁이 놈들이 새파란 후기지수들 앞에서 쪽을 팔게 해?”


독무후의 노기어린 독백은 다행히도 홍염에 잠겨 들리지 않은듯 했다. 그녀는 홍염을 향해 손을 뻗고, 그대로 아래로 내리쳤다.

“스승님!”


당소소의 불안섞인 목소리가 독무후에게 들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무색하게 뇌기를 담은 철침은 홍염을 꿰뚫으며 하강기류를 형성, 그 위험한 몸을 바닥에 눕게 만들었다. 독무후는 잠시  광경을 바라보다, 목함을 내던지며 아무  없었다는 듯 뒤로 돌아섰다.


“들어가자꾸나.”

당소소와 백서희는 독무후가 보여주는 위용에침을 꼴딱 삼키며 서둘러 그 뒤에 바싹 붙었다. 다가온 당소소는 독무후에게 물었다.

“스승님, 그 철쟁이라는건 무슨….”

“…흠,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처음 듣는 단어 같은데, 나쁜 말 같으니 쓰지 말도록 하거라.”


눈을 빛내며 배움을 청하는 당소소. 독무후는 목청을 가다듬으며 몸을 돌렸다. 당소소는 백서희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닥였다.

“분명히 들었는데. 서희, 너도 들었잖아.”

“…덜렁아, 눈치 좀 챙겨.”


백서희는 당소소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모르는 체 했다.당소소는 고개를 갸웃하며 독무후의 뒤를 따라갔다. 독무후는 자신의 뒤에 다가온 당소소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나쁜 건 배우지 말거라.”

“네?”


독무후는 천진해보이는 당소소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몸을돌리며 고개를 저었다.


“…됐다. 네가 나처럼 싸움닭이라고 불릴 일은 이젠 없을 테니까.”

“사천투봉…. 헉.”


백서희가 자신도 모르게 독무후의 별칭을 입에 담았다. 독무후의 시선은 백서희에게 향했다. 백서희는 순간 숨을 삼키며 딱딱하게 굳었다. 독무후는 잠시 백서희를 바라보다, 픽 웃으며 말했다.


“그래. 본녀가 독무후라는 이름을 얻기 전엔 그런 별호로 불렸었지.”

“죄송, 죄송합니다.”

“사천투봉…. 그다지 싫어하는 별호는 아니다. 오히려 독무후라는 거창한 별호보단  편안한 감도 없잖아 있단다. 그러니, 그리 어려워하지 않아도 되니라.”

독무후는 굳어있는 백서희에게 키득거리며 말했다. 백서희는 안도의 숨을 쉬면서도, 죄책감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당소소는 그런 백서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그렇게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어.”

“무슨 소리야?”

당소소는 독무후를 바라보며말했다.

“스승님은 사천투봉이라는 별호를 좋아하시거든.”

독무후는 당소소의 말에 눈초리를 가늘게 뜨며 당소소를 바라봤다. 당소소는 독무후와 눈을 맞추자, 헤실거리며 얼버무렸다. 독무후는 그 웃음을 보며 당소소의 머리를 쓰다듬곤, 몸을 돌렸다.

“그래도 필요 이상으로 굳어있던 마음들은 풀린 모양이구나.”


독무후는 불길 속으로 향했다. 당소소와 백서희가 서둘러 그 뒤를 쫓았다. 독무후는 죽검을 손에 쥐며 말했다.


“불타는 건물 속이다. 내 옆에 바짝 붙도록 하거라.”

“네,”

당소소와 백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독무후는 자신의 뒤로 따라붙은 둘을 확인하고 이동했다. 순간 뻗어오는 홍염. 죽검을 가볍게 휘두르며 홍염을 흩어놓았다. 그러나, 흩어진 홍염은 주변에서 넘실거리며 방향감각을 어지럽혔다. 백서희는 그 홍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상단주실로 향하는 건가요?”

“아마 그러하겠지. 허나 그것보다 먼저 안내해줘야 할 곳이 있다.”

“먼저 안내할 곳이라면….”

“이 거대한 건물. 차마 대피하지 못한 인원이 분명히 있을 게다. 어쩌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자초지종을 들을 수도 있겠지.”


독무후의 말에 백서희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거라. 불길은  해하지 못할 테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백서희는 독무후의 말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힘들었고, 급격한 상황변화에 판단력또한 흐려졌었다. 그렇기에 의롭지 못했다. 백서희는 고개를 저으며 타협했던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우선 백인각[白寅閣]으로 향해야 할 듯싶습니다. 하인들이 머무는 전각이니, 혹여 하인들 중에서 생존자가 있다면 그 쪽에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방향을 짚어라.”

백서희는 북동쪽으로 손을 짚었다. 그러자, 한 줄기 뇌전이 뻗히며 홍염을 헤치고 길을 열었다. 독무후는 서둘러  길을 따라 몸을 날렸다. 당소소와 백서희도 그 길을 따라 뛰었다. 몇 차례의 뇌전이 일어날 무렵, 백서희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백인각입니다.”

백서희의 말에 발걸음을 멈춘 독무후는, 불에 타서 바닥에 나뒹구는 백인각의 현판을 바라봤다. 그리고, 손을 들어 멈추라는 뜻을전했다.

“꺼림칙한 기운이 감도는구나. 좀 더 가까이 붙도록.”

활짝 열린 백인각의 대문은 차마 불길이 미치지 않고 있었다. 독무후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멈춰 섰다.


“…….”

“독무후님?”

“오지 말….”


독무후가 서둘러 둘을 만류했으나, 이미 백서희가 독무후의 이상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섰다. 당연히 당소소도  뒤를 따라 백인각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독무후는 미간을 찡그리며 이마를 짚었다. 백서희는 넋이나간 표정으로 백인각의 장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이게…?”


백인각은 이미 시체의 온상이었다. 백능상단의 옷을 입은 하인여럿이, 싸늘히 식어서 돌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역력한 고문 흔적들과, 목이나 팔, 다리가 잘린 시신들. 거기에 아직 죽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지, 아직까지 피가 솟아나는 시체들도 존재했다.


“마용 아저씨, 미향 아주머니. 이게, 어떻게….”


백서희의 숨이 가빠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틀거리는 발걸음은 그들에게 향했다. 독무후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독이란다. 가까이 가면 중독을면치 못할게다.”

“하지만…! 아니, 이건…. 제가, 부족해서…!”


백서희가 주저앉았다. 당소소 또한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동안 봐왔던 시체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시체들이었다.

“…….”

어지러웠다. 눈가가 떨려왔다. 원작 당소소의 반향인지, 시체들을 보는 것은  익숙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이것은 쌍검무쌍의 암류였고, 결국 그녀가 벌인 일 때문에 웃음 대신 고통스런 끝을 맞이한 사람들이었다. 당소소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메스꺼웠다. 식은땀이 흘렀다. 가느다란 흐느낌이 뒤따라온다. 그 뒤를 이어 찾아든 빈혈기는 당소소를 천천히 주저앉게 했다. 그와는 반대되게, 세상을 등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는 더운 피를 뿜었다.

피는 바닥을 적시고, 바닥에 난잡하게 흩뿌려놓은 독이 검붉은 색으로 뒤섞이며 어지러움을 더했다.

어떤 고통이었을지,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 과정은 어떠했는지. 그녀는 누구보다 그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당소소는 뒤끓는 심정으로 몸을 웅크리며 말했다.

“마교.”

첫 실패. 처음으로 느끼는 죽음에 대한 동질감.  분노.

당소소의 상체가 땅으로 늘어졌다.

수도 없이 느낀 죄책감. 수 없이 느껴야 할 무력감. 두 삶을 통째로 아우르는 자신에 대한 증오.

당소소는 양 주먹을 움켜쥐었다.

영문 모를 감정의 격류들이 부딪혔다. 의미 있는 삶이 의미 없게 아스러졌다. 당사자만이 아닌 주변, 집, 나라, 천하. 모든 것을 불태우려고 했다. 당소소는 거칠게 숨을 쉬며 말했다.


“뜨거워.”


저택의 설계 덕인지, 열기는 백인각을 침범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당소소는 지금 더없이 뜨거운 열기를 느끼고 있었다. 악의를 장작삼아, 더욱 맹렬히 타오르는 화염이 보였다.

이것이그녀가 그토록 지우고 싶었던 원전의 암류이자, 그것들의 성전이며, 당소소가 처음 맞이한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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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독심[一片毒心] - 십육장[十六章], 혈용독란[血涌毒亂]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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