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십칠장[十七章], 성하유랑[星下流浪] 1
별이 보고 싶었다.
평생을 별 아래에서 헤매는 삶이었다.
고개를 들 수가 없어별을 바라보지 못했고, 별을 바라보지 못하니 별을 찾을 수 없었다.
마침내 길 위에 발을 놓으니.
소녀는 그제야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별이 있었다.
평생을 찾아 헤매던 별이 보였다.
*
독무후는 바닥에 주저앉은 두 소녀를 바라봤다. 사천교류회, 음독사태. 그리고 변주객잔 습격에 이은 눈앞의 참사. 일련의 사건들은 열여덟 소녀들이 버티기엔 너무나도 가혹했다. 이마를 짚은 손을 떼며 백서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쉬겠느냐?”
“…….”
백서희는 고개를 들고, 가로로 저었다. 사색이 된 안색은 독에 물든 시체와 비슷한 색이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떨궜다. 옳음을 배워왔기에, 당연한 것을 당연히 누려왔기에 잃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상실은 쓰렸고, 그녀에겐 조금 더아팠다.
“흉수를 쫓는 것은 조금 여유를 두도록 하마. 추스르고 있거라.”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분노에떨고 있는 자신의 제자를 바라봤다. 백서희의 어깨에올려둔 손을 떼고 당소소에게다가갔다.
“두렵더냐?”
“…네.”
당소소의 목소리는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사나웠다. 독무후는눈을 깜빡이며 당소소를 바라봤다. 제자가 처음 보이는 감정이었다.당소소는 분노에 떨고 있는 주먹으로 땅을 때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두려워요.”
당소소는 주먹을 풀고 땅을 짚었다. 상체를 일으켰다.
“지키지 못했기에 두려워요.”
숨소리가 거셌다. 빈혈기에 후들거리는 다리로 땅을 디뎠다.
“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두려워요.”
일어서는 당소소의 눈은 격노에 젖어있었다. 눈동자 안의 자색 불꽃은 이성마저 집어삼킬 정도로 격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독무후는 당소소의 손을 쥐며 말했다.
“하지만 통제해야 한다.”
“안돼요.”
당소소는 숫제 울듯한 표정으로 스승을 바라봤다. 독무후는 처음으로 자신의 말을 부정한 제자와 눈을 맞췄다. 당소소의 눈은 혐오로 점철된 눈물을 쏟아냈다. 자신이 이 세계에 오지 않았다면, 자신이 조금만 더 유능했더라면. 내가 아닌 다른 이였다면.
“전쟁을 아느냐?”
“제가 좀 더 강했더라면, 좀 더 똑똑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에요.”
“개념에 관해서 묻는 것이다, 소소야.”
독무후는 그렇게 말하며 당소소의눈물을 닦아주었다. 당소소는 눈가를 떨며 백인각의 참상을 바라봤다.
“죽고, 죽이는 것이요.”
“그렇단다, 소소야. 죽고 죽이는 것에 대의는 어디 있고 선은 어디 있으며, 또한악은 어디 있을꼬?”
“…저건 옳지 않아요.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고, 독에 물들였어요. 저건, 분명한 악이에요.”
“그렇다면, 내가 저들을 죽이는 것은 옳으냐? 저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데?”
“그건, 달라요. 저들은 악의를 위해 사람을 죽이고 있잖아요! 스승님과는, 전혀 달라요.”
당소소의 자색 눈이 독무후를 향해 쏘아진다. 독무후는 당소소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널 믿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 전 저 자신이 증오스러워요.”
“그럼, 그런 증오스러운 자신이 내리는 가치에 빗대어 판단한 것을 어떻게 옳다고 할 수 있겠느냐?”
“…….”
당소소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독무후는 그녀의 뺨에서 손을 뗐다.
“소소야. 절대적인 옳음은 없단다. 이 스승도 그를 수 있고, 저들이 맞을 수도 있어.”
“저들은…!”
“그렇기에, 선을 긋거라.”
독무후는 백서희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백서희의 갈색 눈이 그녀를 바라봤다. 독무후는 주저앉은 백서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멈춰야 할, 지켜야 할 선을 정해놓거라. 그리고 인간의 도리와 세상의 이치를 잣대 삼아 그 선을 긋거라. 그것이 네 옳음이 될 것이다. 절대적인 옳음은 없지만,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옳음은 있다.”
독무후는 백서희의 고개에서 손을 떼며 걸음을 옮겼다.
“우린 그것을 의협이라 칭한단다. 많은 것들을 통해 그어진 네 선은…. 결국 의협에 가까운 형태로 그어질 것이야. 내 제자니까.”
독무후는 누워있는 백능상단의 하인들에게 다가갔다. 찌릿한 독기가 그녀의 피부를 훑었다. 눈초리가 좁아졌다. 그녀는 여기저기 널브러진 그들의 시신을 정돈해주며 말했다.
“감정을 다스림은 말을 어르는 것과 같아, 고삐를 쥐지 않으면 통제를 잃어 제 주인을 해하고 고삐를 너무나 움켜쥐면 말을 해한다.”
독무후는 쪼그려 앉으며 고통에 일그러진 하인의 눈을 감겨주었다. 손가락 끝이 살짝 떨렸다.
“그렇기에 그어놓은 선을 따라, 감정을 통제하거라. 감정은 곧 사람의 힘. 기쁘기에 일어설 수 있고 슬프기에 손을 내밀 수 있다. 너희들의 감정은, 고통이 아닌 너희의 힘이다.”
독무후는 일어서며 백서희를 바라봤다. 창백한 얼굴에 어린 결의가 다부졌다.
“쉬겠느냐?”
“…아니오.”
백서희의 대답엔 흐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칼자루를 쥔 손은 떨지 않았다.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소소에게 다가갔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모양이구나.”
“…….”
독무후의 말에도 당소소의 눈은 격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통제되지 않는 감정은당소소의 온몸을 뒤흔들고 있었다.
“이 모든것은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주제를 알고 섣불리행동하지 않았다면, 그저 이 빌어먹을 운명을 받아들였다면…!”
“네 주제가 무엇인고?”
“전, 쓸모없는 패배자에요. 모든 인생을 패배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이 쓰레기 같은 존재 때문에 많은 이가 죽었어요. 전….”
“네 말마따나 잘 모르는 것 같구나.”
독무후는 주먹을 쥐고 당소소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
“소소, 넌 사천당가의 귀여운 규수란다.”
툭.
“사천교류회의 어여쁜 영웅이며.”
툭.
“천하십강 독무후의 제자이자 구주십이천 독천의 딸이다.”
독무후는 당소소의 가슴에 주먹을 대고 그녀를 올려다 봤다.
“패배가 있다는 것은, 승리도 그 어디엔가 있다는 것이겠지. 그렇지 않느냐?”
“…….”
“날 따라오너라.”
독무후는 당소소의 가슴에서 주먹을 떼고, 그녀를 지나치며 백인각의 바깥으로 향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백서희가 그 뒤를 따랐다.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넌 내 친구야.”
“…….”
“네 탓이 아니야. 저들은 언제든지 이런 일을 벌일 생각이었어.”
당소소는 옆을 돌아봤다. 백서희는 독무후를 따라 백인각의 바깥으로 향했다. 당소소의 시선은 다시 곤히 잠들어있는 백인각의 하인들에게 향했다. 달거리로 인해 뒤틀린 감각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육체의 영향을 받은 정신은 낯선 감각을 곧 불쾌감으로 정의했다.
“난….”
이 이야기에 속하기 위해 모두를 속였다.
본래의 몸이 아니라며 자신을 속였다. 고통을 덜기 위함이었다. 어쭙잖은 당소소의 연기를 하며 타인을 속였다. 죄책감을 덜기 위함이었다.
한평생을 감내하며 자신을 속였다. 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는 죽어 또다시 자신을 속였다. 별을 향해 걷고 있다는 거짓말로.
그녀는 김수환이었고, 별을 향해 걷지도 않았다. 그는 당소소였으며, 별을 꿈꾸지도 않았다.
“누구일까.”
그녀는 탄식했다.
*
당소소와 백서희는 불길을 헤치고 나아가는 독무후의 뒤를 따랐다. 도란도란 이어지던 대화는 없었고, 오로지 목재가 불타는 소리와 촌철의 우렛소리만이 쟁쟁했다. 그 틈새를 노리며 화살 한 자루가 날아들었다.
빠직!
“…흔적이 이어지는구나.”
촌철이 화살을 쪼개며 독무후의 손에 쥐어졌다. 백서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단주실에 거의 가까워졌어요.”
“그렇구나.”
백진각[白辰閣]이라는 현판이 대문에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대문은 날름거리는 불길을 한껏 토해내며 불길의 근원지가 자신이라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독무후는 장포에 손을 넣고, 손끝으로 암기들을 훑었다.
‘이게 좋겠군.’
적당한 크기의 쇠구슬 하나가 그녀의 손과 함께 장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백진각의 대문에 던졌다.
콰앙!
폭음이 터져 나오며 대문이 짓이겨지고, 불길은 구심점을 잃고 폭음에 제 몸을 짓눌려 힘을 잃고 스러졌다. 독무후는 손끝을 비비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쯧쯔, 염왕탄[炎王彈]은 무슨….”
그녀는 잠시 연철전 대장장이들의 호들갑을 떠올리다, 혀를 차곤 고갯짓했다.
“들어가자꾸나.”
걸음걸이마다 전소한 나뭇조각들이 밟히며 불쾌한 소리를 냈다. 부서진 함정들이 난잡하게 널려있었다. 백진각 안은 무척이나 고요했고, 뜨거웠다. 상단주실로 보이는 거대한 전각이 끝없이 불꽃을 토해내고 있었으며, 양옆으로 있는건물들은 그 불길을 받아 상단 전체로 퍼뜨리고 있었다.
“일단 이곳이 불길의 근원이라는 것은 알겠구나. 그 먼 곳에서 기어온 자들이 낼 수 있을 정도의 불길은 아니고….”
“제 오라버니는 손해 보는 것을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상단에 불을 지른 것은 이유가 있을 거예요.”
백서희의 말에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감을 퍼뜨려 주변을 훑었다.
숯, 그을음, 불꽃, 열기. 미약하게 느껴지는 화약냄새와, 사람이 타는 고약한 냄새. 그리고 인기척. 독무후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검을 뽑거라.”
백서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았다. 당소소 또한 넋을 놓은 표정을 황급히 털어내며 현천비를 쥐었다. 독무후는 잠시 눈을 감으며 내부를 관조했다. 바닥을 보이는 하단전과, 만만찮게 소비된 중단전의 내기. 아직 상단전의 기운은 남아있었으나, 이것을 소비한다면 독마와 요마의 숨통을 틀어쥐지 못하게 될 터.
“내가상단주실에 돌입할 것이다.”
“위험합니다. 이미 저곳은 돌이킬 수 없는 곳이 되었어요.”
“스승님….”
만류하는 두 소녀. 독무후는 고개를 저었다.
“안쪽에 인기척이 있다. 적이 있다면 물리치면 그만이고, 생존자가 있다면 더더욱 들어가야 옳다. 서희, 네게 혹시 모를 습격을 맡기마. 침착하게 있거라. 금방 돌아올 수 있으니.”
“…죄송합니다.”
생존자라는 단어에 백서희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독무후의 희생에 기뻐하는 감정을 사죄했다. 독무후는 가볍게 웃었다.
“선은 잘 그어놓은 모양이구나.”
독무후가 훌쩍 뛰어올라 삼 층의 난간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은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독무후가 사라지자, 주변에 넘실거리는 불꽃은, 불이 아닌 공포처럼 보였다. 당소소의 숨이 가빠졌다. 연기로 메워진 검은 천장과, 불로이루어진 벽은 하나의 밀폐된 공간이었으니.
“윽, 흐윽….”
“소소?”
백서희는 서둘러 소소를 보듬어 안색을 살폈다. 마치 당혁을 바라봤을 때와 같은 현상이었다. 그러나 당소소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어설 수 있어.”
“괜찮은 거…, 맞아?”
백서희의 의심 가득한 물음에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류귀원신공을 휘돌렸다. 실낱같은 내공이 피를 타고 휘돌며 차갑던 손끝을 데웠다. 그리고, 덩달아 일어나던 기감이 이변을 훑었다. 질척하고, 엉겨 붙는 불쾌한 기운이었다.
“서희, 앞.”
백서희는 당소소를 놓으며 검을 휘둘렀다.
팅!
작은 화살이 튕겨 나가며 백서희의 발치로 떨어졌다. 백서희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진다. 익숙한 생김새의 화살이었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화살 대신 그녀에게 닿았다.
“야들야들한 년들이구나.”
“누구지?”
“아무것도 토설하지 않고 질기기만 하던 하인들보다 토해낼 수 있는 말도 많아 보이고.”
목소리와 함께 늘어진 그림자가 백서희와 당소소에게 드리워졌다. 머리털이 모조리 타버린 그는, 상단주실을 태우는 불꽃의 역광을 받으며 화상을 입은 얼굴 반쪽을 긁었다. 채 아물지 않은 상처는 진물과 피를 쏟았다. 뚝뚝 떨어지는 피는 그의 흑색 장포에 수 놓인 뿔 달린 뱀을 적셨다.
“그 거만한 애송이와 똑같은 얼굴이구나.”
그 말에 백서희는 숨을 들이쉬며 불혼패엽공을 일으켰다. 녹아내린 쪽의 큼지막한 눈이 백서희의 얼굴을 바라봤다.
“마신의 눈물을 마시고 싶으냐?”
녹아내린 살에 짓눌린 미소가 괴이했다. 당소소는 그 입술을 바라보며 말했다.
“독룡대주, 원저.”
당소소의 말에 원저는 미소를 지우며 그녀를 바라봤다.
“날 알아볼 만한 정파의 애송이들도 있던가?”
원저는 가소롭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소소는 떨리는 손으로 원저에게 현천비를 겨눴다.
“마신의 눈물을 마신다는 애새끼같은 소리는….”
파라락!
현천비가 공기를 가르며 쏘아졌다. 정직한 자세, 정직한 궤도. 원저는 몸을 틀어 현천비를 피했다. 그러나, 그 틈을 타 백서희가 검을 몰아쳐 왔다. 소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한 같은 거력에 원저는 서 있던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원저의 표정엔 선연한 당혹이 어렸다. 백서희의 얼굴은 차분했다. 천천히 들어 올리는 검엔 흉폭한 호랑이조차 꿇리는 검세가 어려있었다. 복호검법의 기수식이었다. 원저는 서둘러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철침여러 다발이 그의 손에 잡혔다. 하지만, 백서희는 그의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팅, 팅팅팅!
쏘아진 철침은 금색의 검기에 휩쓸려 튕겨 나갔다. 복호검법 일 식, 금정풍뢰였다. 당소소는 백서희의 뒤편에서 그를 향해 말했다.
“너밖에 안 하거든.”
자색의 눈엔 통제할 수 없는 분노가 어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