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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화 〉십칠장[十七章], 성하유랑[星下流浪] 3 (106/130)



〈 106화 〉십칠장[十七章], 성하유랑[星下流浪] 3

백능상단 백진각 삼 층. 불길에 타오르는 복도는 마귀의 목구멍 같은 풍경이었다. 열기는 독무후의 뺨을 핥았지만 이미 반로환동에 이른 몸, 이미 오래전부터 춥고 더움은 그녀가 고려할 대상이 아니었다.


‘여기는….’

그녀는 손을 흩뿌리며 방전을 퍼뜨렸다. 뇌람심공의 응용, 뇌감이었다.


‘없군.’

긁히는 낌새가 전혀 없었다. 뇌기를 거뒀다. 자신의 감을 따라 제자와 제자의 친우를 내버려두고 돌입한 이 곳. 그녀들이 급변하는 상황에 휩쓸리지 않도록, 최대한 빠르게 성과를 거두고 빠져나와야했다. 불길이 번지며 어지러운 복도는 불꽃의 회랑을 자아냈다. 독무후는 회랑의 중심으로 걸어가 계단에 이르렀다.

타닥, 타닥!

목재에 몸을 눕히고 공기를 살라먹는 소리가 요란했다. 독무후는 눈을 좁히며 백진각 내부의 구조를 훑었다.

‘삼 층은 창고 내지 생활공간이었을 터이고. 일 층은 접객을 맡은 잡무를 처리했을 테니.’


눈을 깜빡인 독무후는 불이 흐르는 난간을 부여잡고 훌쩍 뛰어내렸다.

백진각 이 층, 상단주실이었다.

독무후의 전류는 다시금 층 전체를 훑었다.

“……!”

긁혔다.

독무후는 서둘러 펼쳤던 뇌감을 중지하며 전류를 거뒀고, 발걸음을 뗐다. 잔도[棧道]를 밟고 산맥을 넘으며, 시야의 사각과 인지의 그늘을 거닌다는 당가의 보법. 잔월뇌음보[棧越雷陰步]가 펼쳐졌다.

후욱!

그을음을 타며 순식간에 뇌감이 포착했던 장소로 이동했다.  층의 중심, 재가 되어가는 고풍스런 비단 휘장이  너머가 어떤 곳인지 간접적으로 일러주는 듯 했다. 독무후는 상단주의 집무실 문을 주먹으로 으스러뜨리며 안으로 돌입했다.

“…없군.”


오른쪽 벽면엔 좋은 땔감이 된 서적들. 왼쪽 벽면엔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깨지거나 녹아버린 골동품들. 그리고, 녹아가는 독분의 가운데에 엎어진 사내가 보였다. 독무후는 바닥을 훑은 뒤, 손가락을 입에넣었다.

“백련지독이군.”

독무후는 우물거리던 독분을 뱉으며 말했다. 목행을 따르는 고산지대의 버섯, 백천균[白天菌]을 정제한 독이었다.

특이사항은, 목행을 띠며 혈액독이자 융해독이라는 것. 목행[木行]을 따르기에 그것은 무언가를 양분삼아 결과로 뻗어나간다. 그 대상은 인간의 정[精]이었고, 결과는 기의 붕괴였다. 피를 멈추지 않게 방해하니 혈액독 중 출혈독이었고, 결과로 영근 백천균의 포자는 내장기관을 해치며 내기의 붕괴를 초래한다. 그렇기에 융해독이었다.

그녀는 시체를 가볍게 발로 걷어차며 뒤집었다. 검은 색 바탕의 옷감엔 뿔 달린 뱀이 밉상스럽게 수놓아져있었다. 혀를 찬 후, 앞을 바라봤다. 다기가 올려진 원목책상은 이미 땔감이 되었고, 고풍스런 병풍엔 점차 불이 번져가며 타오르고 있었다.


“신기하구나.”


독무후는 혼잣말을 하며 병풍을 걷었다. 불길이 빨려나가는 네모진 틈이 보였다.


“호법은….”

독무후는 그 틈으로 걸음을 옮겼다.

으드득!

문이 으스러지며 철로 빚어진 검은색의 권갑[拳匣]이 쇄도했다.

“난민을 대피시키고 있다고 했거늘.”

권갑은 그녀의 코앞에서 멈췄다. 권풍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쓸고 지나갔다. 독무후는  권갑을 손가락으로 쭉 밀어 넣으며 생겨난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고집스런 눈매와 제법 풍성한 수염. 반쯤 센 백발이 인상적이었다.


“…독무후님.”

단혼사는 숨겨진 문을 열어젖히고 독무후의 앞에 섰다. 그의 배에는 숯이 된 나무토막이 박혀있었다. 독무후는 굳이  상처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옆으로 젖히며 단혼사 너머의 통로를 바라봤다.

“어찌저찌 대피는 성공한 모양이구나.”

“예. 완전히 대피가 완료되기 전까지, 제가 후열에서 대기 중이었습니다.”

“그 어린 돈벌레가 용케 너에게 이곳의 비밀통로를 알려주었고.”

독무후는 툴툴 웃으며 단혼사를 바라봤다. 단혼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변했습니다.”

“변했다? 무엇이?”

“상정하던 적의 크기가 변했습니다.”


단혼사는 그렇게 말하며 주먹으로 문지방을 후려쳤다. 천장이 무너지며 토사로 도주로가 굳게 잠겼다.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턱짓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며 설명을 듣지.”

“예, 호법님.”

독무후는 단혼사의 호칭에 쓰게 웃었다.

“이젠 네가 호법이니라.”

“아. 죄송합니다.”

“예나지금이나 어리버리해선.”

독무후의 시선은 아직 그의 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단혼사는 목을 긁으며 난감함을 표했다.

“아직 배움이 미천하여.”

“사천제일권이라 불리는 자가 배움이 미천할 리가 있느냐? 타고난 성향인 게지. 우선 벗어나자꾸나.”


독무후는 그렇게말하며 상단주실을 박찼다. 단혼사는 다소 느린 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독무후는 속도를 늦추며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내막은?”

“우선 적을 설명해야 내막을 이해하기 쉬우실 겁니다.”


단혼사는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 독무후의 눈썹이 올라갔다.


“새로운 적은?”

“관[官]입니다.”

올라간 눈썹이 비틀렸다.

“혹시 사건이 일어나는 사이에 통수권자가 바뀌었느냐?”

“그럴 리가요. 사천성주는 여전히 남전휴, 그자입니다.”

“‘하늘’에서 직접적으로 사천을 솎아내라  것도 아닐 테고. 군권을 쥐고 있는 우군도독부는 사실상 관망자와도 다를 바 없을 터. 마교 진압에 도움을 줬다면 도움을 주었지 사정을 다 아는 자가 괜히 본녀를 건드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 그런데 관이?”

독무후는 품 안의 금룡패를 떠올리며 말했다. 단혼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희도 아직 전반적인 사안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녹풍대 하나를 난민사이에 심어두었으니, 암풍대와 연락을 취해 곧 자세한 내막을 알아오겠지요.”

“대처는 괜찮구나.”


단혼사의 보고를 받으며 그녀의 걸음은 불길이 뻗어나는 방향을 따라 향했다. 열풍이 거세졌다. 연기가 짙어졌다.그리고, 그을음을 젖히고 나는 비릿하고 익숙한 향 또한 짙어졌다. 독무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네가 후열에 대기하고 있던 이유가 있느냐?”

“독룡대주 원저와  휘하에게 쫓기는 중이었습니다.”

“…….”


짦은 침묵. 그리고 한 줄기의 비명이 화염을 꿰뚫고 그들에게 닿았다.

“소소!”

둘은 서로를 마주봤다.


““……!””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명의 근원을 향해 바닥을 박차고 쏘아졌다.


*

독각천시[毒角天尸].

사람 내부의 오행을 의도적으로 비튼다. 생의 순환을 죽이기 위해 수행[水行]을, 생의 온기를 죽이기 위해 화행[火行]을. 그리고 비틀어 만든 힘은 다른 속성에 싣는다. 목행에 힘을 실어 의지를 유지하고, 토행에 힘을 실어 움직일 의지가 뿌리를  힘을 부여한다. 그리고 금행에 힘을 실어 인간의 몸을쇠와 같은 경도로 이끈다.

요점은 오행을 ‘의도적으로’ 비틀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사상의 오행에 대한 개입. 즉, 연기화신의 이치에 도달한 자라는 것이다.

“컥, 커흑.”

당소소는 흐릿한 눈길로 나가떨어진 백서희를 바라봤다. 이미 머릿속에서 그려졌던 결론이었다. 그녀는 갓 검기상인의 경지를 엿보기 시작한 일류의 끝자락에 걸친 경지였고, 독룡대주는 무력의 거품이 잔뜩 껴있는 후반부의 악역. 어찌 보면 당연한 결론이긴 했다.

‘죽진 않았어. 내상은 입었겠지만. 스승님이 치료해줄 수 있을 거고.’


그렇기에 응천순행술에서 파생된 함정, 천행망[天行網]의 모든 경우와 모든 파훼법을 꿰고 있는 당소소가 움직였다. 여섯 겹의 나포천지를 해체했다. 열 개의 화살함정, 추혼시[追魂矢]를 해체했다. 다섯 개의 독함정, 염세[染世]를 해체했다.

불길을 쏘아내는 함정, 화사무쌍[火蛇無雙]. 사상을 담은 함정, 흑주[黑呪].

해체했다.

그녀의 머릿속엔 기관진식을 꿰고 있던 주인공의 지낭이 떠올랐다.

-뜻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나.

서술되는 섬뜩한 미소 역시, 상상으로 그려졌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라.

당소소는 굳어가는 목을 돌려 원저의 상태를 확인했다. 옅은 생채기가 상체를 사선으로 길게 갈라놓았다. 그는 당소소의 시선을 느꼈는지 성큼성큼 그녀에게 걸어와 멱살을 움켜쥐어 들어올렸다.


“본좌의 응천순행술을 어떻게 파훼했느냐?”

“킥, 킥…. 졸, 졸개가…. 무슨, 본좌….”

짜악!

가볍게 휘두른 원저의 손길에 당소소의 뺨이 크게 부풀었다. 마비독 때문에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연하게 느껴지는 입안의 피맛이 제법 썼다. 당소소는 뻣뻣한 혀로 내부를 핥으며 상황을 가늠했다.

‘좆됐네.’

 이상 내밀 묘수가 없었다. 백서희가 갑자기 쌍검무쌍 후반부 아미파의 절세무공을 사용할 수도 없고, 저 불길 속에서 독무후가 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수동적인 수밖엔. 아니, 그 수마저 없에기 위해 원저는 비수를 꺼내 백서희를 향해 다가갔다.

“알려, 알려줄, 게.”

“이제야 입을 여는구나. 괘씸한 년 같으니.”

원저의 비수가 당소소의 목으로 향했다.

“어서 응천순행술의 파훼법을 지껄여라.”

“도, 독…. 풀….”

알려줄 테니 마비독부터 풀라는 당소소의 제안. 원저는 고개를 까딱이며 비수의 면으로 당소소의 뺨을 툭툭 때렸다.


“이미 해독제는 발라두었다. 자, 이제 말해봐.”

“하아, 하….”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눈앞의 악역을 죽여 버리고 싶었다. 사지를 찢어, 그녀가 목도했던  광경의 사람들과 똑같은 고통을 겪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행동이었다.

백서희가 죽는다.


“응천순행술….”

그렇기에.

“파훼법.”


주저하는 손을 들어,

“…격발장치가 어린아이 장난감 수준이잖아.”

선을 그었다.

“격발장치? 과연. 하찮은 이가 해체할  있는 마공이 아니지. 문제는 기관에 있었군. 좋다. 용무는 끝났으니….”

“정말 그거밖에 없다고 생각해?”

“…요망한지고.”

짜악!

그 선은 어디까지인가.

“살려줘.”

“살려달라?”

“살려주면 알려줄게. 죽이면 아무것도 알지 못할 거야.”

당소소는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원저를 노려봤다. 원저의 눈엔 흥미가 감돌았다.

올해로 열여덟의 나이. 독천의 총애를 받으며, 독무후의 애제자로 거둬진 아이. 무공   없는 몸으로 천괴와 학귀를죽였으며, 무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몸을 이끌고 자신의 함정을 파훼한 소녀.

 소녀가, 친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절제한다.

탐이 났다.

본래에도 살려서 데려오라는 지시가 있었다. 소천마가 각별히 생각하는 소녀라는 첨언 또한 있었다. 천마의 비로 만들어 소천마를 천마로, 마신의 길로 이끌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한낱 마신의 권좌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는자임에도.  소녀가 탐이 났다.

“…네 년은 지금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원저는 그녀의 멱살을  더 들어올렸다. 당소소는 흥미어린 그의 시선을 여전히 꿰뚫고 있었다. 그를 허무하게 해치운 지낭의 대사가 읽혀왔다.

-그자는 자신이 똑똑하다고 자만하는 부류야.


“그것을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만은 곧 오만을 낳지.


“당가의 비밀을 몇 가지 털어놓아라.그래야 거래가 성립하지 않겠느냐?”

“히히….”

당소소는 그의 말을 들으며 웃었다. 상황은 달랐고, 시간도 달랐다.

“무엇이 웃기지?”


그러나, 형식은 변하지 않았다.


“말할게, 비밀.”

“안, 돼…. 소소….”


다죽어가는 백서희의 목소리에 원저는 비수를 겨누며 위협했다. 당소소는어깨를 으쓱하며 그를 만류했다.

“말한다고.”

“소소….”

“말이 짧구나.”

원저의 팔이 접히며 경고를 날렸다. 당소소는 눈을 감았다. 선은 아직 멀었다.

“…말하겠습니다.”

“그것이 옳게 된  태도니라.”

원저가 거만한 웃음을 지으며 비수를 거뒀다. 당소소의 눈이 찡그려졌다. 마비독으로 유예되었던 고통이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양 뺨이 저려왔고, 들이마신 백련지독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아, 윽…. 아아….”

“백련지독의 효능이 도는 모양이군. 이게 갖고 싶으냐?”

원저는 조그마한 호리병을 당소소의 앞에서 흔들었다. 혈관이 쪼그라드는 느낌. 오장이 뒤틀리는 격통. 울부짖지 않았음에도 눈물이 났다. 당소소는 고개를 흔들었다. 백금으로 도금된 혈관은 쪼그라들지않을 것이다. 백련지독이 뇌린은루를 집어삼킬  있을거라 생각되진 않았다.


“뭐, 살려서 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겠군.”

원저는 비릿하게 웃으며 당소소의 입가에 액체를 흘려 넣었다. 희미해지는 시선, 몽롱해져오는 정신 속에서 당소소는 백서희를 바라봤다.


“…야.”

“소, 소…!”

“난, 여기서…. 안 죽어.”

“똑똑한 계집이군.”

원저는 횡설수설하는 당소소를 어깨위로 짊어졌다. 백서희가 절규했다.


“안 돼…!”

“네 무능이  친구를 잃게 만들었다. 무엇이 철혜검봉이란 말…!”

원저는 백서희에게 선언했다. 당소소는 고통에 떠는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그, 아가리, 닫아.”

“이배은망덕한!”


원저는 고함을 지르며 당소소를 패대기치기 위해 그녀의 다리를 잡았다. 그때 내달려오는 태산 같은 노호성이 있었다.

“놈ㅡㅡㅡ!”


중원은 거대하다. 그리고 그 휘하의  또한, 거대했다.

변방국의 영토와 비교해도 그의 몇 곱절이나 되는 하나의 행정구역, 사천성.

검광[劍光]이 빛나고 창림[槍林]이 우거진 그 거대한 대지에서 오직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인정받은 이가 있었다.

그가 피에 물든 녹색의 무복을 휘날리며,원저의 앞에 섰다.

“사천의 주인을 취하려는 어리석은 자여.”

사천제일권[四川第一拳].

당문[唐門] 호법[護法].

단혼사[斷魂士].

“아직 당문의 호법을 넘지 않았느니라.”

그가 주먹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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