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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화 〉십칠장[十七章], 성하유랑[星下流浪] 4 (107/130)



〈 107화 〉십칠장[十七章], 성하유랑[星下流浪] 4

“단혼사.”

원저는 자신의 앞에 있는 사내를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권갑은 불길에 고요히 빛났다. 원저의 목줄기에 새파란 뇌전이 겨눠졌다.

“내 귀여운 제자를 돌려주겠나?”

“…독무후.”


원저의 눈이 떨려왔다. 독각천시라면 독무후의 뇌전을 받아내고도 멀쩡할 자신은 있었다. 그것이 완전한 독각천시라면. 당소소가 긴장하고있는 원저의 표정을 바라봤다.

‘독각천시를 완성했다면, 네가 왜 화상을 입고 있을까? 왜 불길에 숨어서 내공을 회복하고, 왜 독단을 먹어서 독각천시를 ‘발동’시켰을까?’


당소소는 웃었다.

‘네 등장은 사 년 후. 독각천시의 완성은,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병신….”


당소소의 나지막한 욕설. 원저에겐너무나도거슬렸다. 그녀가 천행망을 파훼하며 자신에게 재능의 편린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너무 분하지만 순순히 따르는 척을 하며 자신에게 감동을 내밀지 않았다면. 철혜검봉이라는 후기지수가 검기로 자신을 잠시 저지하지 않았다면.

당소소가, 조금만 덜 매력적이었다면.


‘…독화[毒花]라고 불린다던가.’


원저는 눈을 감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자만이 오만이 되었고, 그것은 만용이 되었다. 그저 간단하게 백서희를 죽이고 당소소를 들고 갔다면. 독각혈가는 어떤 미래를 맞이하였을까.

‘가정은 없다.’


원저는 눈을 뜨며 목을 겨눈 뇌전쪽으로 당소소를 옮겼다. 촌철이 재빨리 자리를 피하자, 백서희가 새긴 생채기를 따라 손톱을 쭉 그었다. 독무후는 그 광경을 구경만하고 있지않았다. 손톱이 닿자 촌철이 당소소의 소매를 꿰뚫었다.

키이잉!

손톱이 생채기를 긁으며 쇠를긁는 불쾌한 소리를 뿜는다. 촌철은 한 바퀴를 휘돌았다. 죽 그어놓은 생채기에서 독액이 뭉글뭉글 피어났다. 줄기 뇌전을 감은 촌철이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독각천시의 독액을 활용한 독연이 피어났다.

“…아쉽군.”

원저가 혀를 찼다. 촌철에 철사를 매달아, 당소소를 독무후 자신의 곁으로 끌어온 것이었다. 독무후는한손으로 당소소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인기가 많은 것까지 배우지 말거라. 나쁜 것이니까.”

“하하…. 농담도….”

당소소는 그 말을 남기며  늘어졌다. 독무후는 다시 촌철을 던져 백서희까지 낚아챈 후, 단혼사를 바라봤다.


“막내야.”

“…….”


단혼사는 독무후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독무후는 키득거리며 다시금 말했다.


“당문의 식구가 저들의 손에 죽었다.”

“예.”

“원[怨]은 몇 배의 이자를 쳐주어야 하겠느냐?”

권갑이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독무후님이 떠난 이후로, 가주님은 당가의 악독한 악습을 타파하고자 노력하셨습니다.”

단혼사는 무심한 표정으로 원저를 바라봤다.


“열  정도만 받도록 하지요.”

“막내라 너무 유하구나. 녹풍대의  선배들은 제법 강단이 있었거늘.”

독무후는 너스레를 떨며 등을 돌렸다.


“열 배는 억울하니  두 배 정돈 더 받아오시게, 호법.”

“무운을.”

예로부터 녹풍대는 농담을 하지 않았다. 독무후는 진각을 밟았다.

바람이 불었다. 불길이 일렁였다.

셋이 사라졌다. 둘이 남았다.

불은 타올랐고, 둘은 마주봤다.

창백한 기색의 원저, 피에 젖은 단혼사.

홍백의 명도가 홍염 속에서도 짙었다.

“식구가 죽었다.”


닫혀있던 단혼사의 입이 열렸다.

“그래서?”

“가문을 받도록하지.”

원저는 웃었다. 독액이 꿈틀거렸다.


“당가의 얼굴을 욕보였다.”

이어지는 죄의 계량. 원저는 물었다.

“그래서?”

“죽음보다 무거운 치욕을 받아가도록 하지.”

단혼사는 웃지 않았다. 권갑이 잘그락거렸다.

콰르륵!

홍염을 헤엄치던백진각이 불꽃에 익사했다. 둘은 백진각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진각을 밟았다.

독각혈사연의 영역이 장원에 다시금 창궐했다. 백련지독이 축성[築城]을 시작하고, 그 안개의 성벽 아래에선 천행망의 그물이 한  한 줄 엮어지고 있었다. 추혼시가 적을 겨눴고, 나포천지는 사지를 결박하는 위치로.

단혼사의 진각은 축성을기다리지 않았다. 그의 성정만큼이나 투박한 이름, 일권류[一拳流]의 가르침을 따른다. 적과 나, 나와 적. 둘 사이의 하나의 흐름을 바라본다. 그 흐름은 걸음. 그의 발걸음은 성벽의 앞에 잠시 머물렀다.

요새의 사정거리는 곧, 수비가 공격이 되는 영역.

추혼시는 그 이름처럼 단혼사를 쫓았다.

단혼사는 주먹을 내리며 가볍게 뛰었다.

축조 중인  너머로 감각이 잡힌다.

왼쪽 발을 앞으로 내밀며 팔을 올렸다.

흐름의 끝은 열 걸음.

타타탁.

네 줄기의 화살.  주먹, 검지와 중지의 마디를 꺾어 세운다. 상층의중앙, 좌측의 남서, 우측의 남동. 가볍게 걷어낸다.그리고 전방의 북.

파아앗!

오른 주먹이 화살을 내리 찍으며 격발한다.넘실거리는 권기, 불어 닥치는 권풍[拳風]. 성벽의 일부가 허물어지며 흐름은 시작되었다. 발을 내딛는다.

아홉 걸음.

추혼시는 다시금 방향을 교란했다. 성벽의 보수, 적의 저지를 위해 염세가 날아들었다.  손의 모든 손가락 마디를 꺾어 세워 장저[掌低]의 자세를 잡는다. 성큼 딛는 다음 걸음. 진각의 묘리였다. 걸음을 예측한 나포천지가 곧장 적을 포박해왔다.

단의공[單意功].

하나의 길에 이는 한 가지의 마음. 곧고 장대한 혈맥은 황하와도 같이 내공을 담았다. 심장, 양 손, 다시 양 발. 한 바퀴 휘돈다.

비장, 간장, 폐장, 신장. 그리고, 다시 심장. 다시 한 바퀴.곧이어 장강과도 같은 기맥이 수문을 열었다.

용암과도 같이 뜨거운내기가 기경육맥을 휘돌고, 임독양맥을 지나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콰아앗!

올려치는 장저. 성채의 전방이 소실되었다. 수복을 위해 던져놓은 독주머니는 권기에 으깨지며 상승기류를 타고 흩어진다. 토사가 그리할 진데, 고작 한 개비의 화살은 어찌할 도리가 없이 그 길을 따랐다.

그리고 나포천지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단혼사의 발목을 뱀처럼 잡아챘다.

여덟 걸음, 반.

끊어치는 오른 주먹. 애꿎은 바닥만 패일 뿐, 검기가 실린 철사는 요지부동이었다. 단혼사는 자세를 낮췄다. 자세의 축을 무너뜨리기 위해 철사는 움직인다. 그 움직임을 제제하기 위해 다시 오른손을 끊어친다.

후우웅!

광풍이 일며 몰려오는 성벽을 밀어냈다. 몰려오고, 밀어낸다. 당기고, 끊어낸다. 밀어내고, 몰려온다. 의미 없는 반복수가 이어졌다. 그러나  성벽이 높아지는 단위는 시간. 유리함은 상대에게 있었다. 원저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섰다.  곳의 화염산이 손짓한다.

응천순행술.

사상이 자연과 교감한다. 자연지기[自然之氣]에 사상을 심어, 일부를 뜯어온다. 불꽃과, 불꽃이며, 불꽃이었다. 여러 불길이 뒤엉킨다. 화염을 날름거리는 뱀이 땅을 기었다. 천행망, 화사무쌍이 펼쳐졌다.

단혼사의 표정은무덤덤했다. 여전히 철사는 축을 무너뜨리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살짝 발을 당겨본다. 딸려오지 않았다. 화염은 철사를 나란히 하며 당당하게 단혼사에게로 향했다.

쿵.

한 차례의 진각. 철사의 방해로 제대로 밟히지 않았다.

쿠웅.

다시 한차례의 진각. 당기는 힘이 느슨해졌다.

쾅!

또 다시 진각. 바닥이 으스러지며 힘을 퉁긴다. 다리를 꺾고, 골반을 뒤틀고 척추를 굽힌다. 축이 무너진다. 바닥을 짓이긴 부하가 몸을 짓이긴다. 배를 꿰뚫은 상처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아랑곳 않고 권갑을 부딪친다. 길고 명랑한 소리가 징처럼 울렸다. 화염은 그 신호를 기다리지 않았다.

화아아악!

수십 마리의 뱀이 그의 몸을 살라먹었다. 여전히 권갑은 마주한 채였다. 단혼사의 자세를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해, 줄기의 나포천지가 단혼사를 휘감았다. 철사는 팽팽히 당겨지며 잔소리를 냈다. 그는 백련지독이라는 성벽 아래 완전히 나포되었다.


“놈…!”


그  마디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권갑이 움직였다.

팅, 팅, 팅!

철사가 구슬피 울었다. 움직임이 맥동했다. 불꽃이 일렁였다. 성벽이 흔들렸다. 단혼사가 한 걸음을 디뎠다.

일곱 걸음, 반.

비수가 날아든다.

여섯 걸음, 반.

추혼시, 염세.

다섯 걸음, 반.

염세, 화사무쌍, 비수.

 걸음, 반.

나포천지, 염세, 비수, 화사무쌍, 나포천지, 추혼시.

세 걸음, 반.

두 걸음, 반.

눈길과 눈길이 맞았다.

불꽃에 휩싸인 단혼사는 완연한 붉은 색이었고, 처음보다 더 질린 기색의 원저는 더욱 하얀 색이었다.

원저는 웃었다.

그는 검결지를 내밀었다.

천행망, 흑주[黑呪].

자연의 응달을 빌린다. 폭풍, 폭설, 폭뢰. 앞은 화염이 만연했다. 그렇기에 인리의 흐름을 거스르는 마공에 빌어, 폭풍을 빌렸다. 그리고, 광풍이일었다.

“신교의 성화가 되어라…!”


화염의 용권풍이 일어나 성벽을 먹어치우고 크기를 키워갔다. 백진각을 뛰어 넘을 정도의 높이는 요란스레 타올랐다.

그리고  걸음, 반.

주먹을 겨눈 단혼사가 폭염에서 걸어 나왔다.

원저는 웃지않았다.

“네,  놈…? 어떻게 본좌의 응천순행술….”

원저는 입을 다물었다. 두 번째로 뱉는 말이었기에. 기시감이 들었다.

그는 왜 실패를 했는가.

왜 당소소를 빼앗겼는가.

그리고.

왜 패배하는가.

 걸음.

호흡과 호흡이 마주한다. 근육  올 한 올의 전류가 부딪치며, 사상은 내공 대신 눈빛과 눈빛으로 교환되는 거리.

일척[一尺]칠촌[七寸].

주먹과 상대가, 주먹과 내가 맞닿는 거리.

주먹은 재빠르게 내밀어진다.

깡!

독각혈가 비전, 탐천독룡권[貪天毒龍拳]이었다. 잡고 찢는 금나술과 부수고 으깨는 권법의중간에 걸친 무공. 오른 주먹이 단혼사의 오른 권갑을 후린다. 쇠가 부딪치는소리가 나며 원저의 주먹은 곧장 조법[爪法]으로 변화하여 단혼사의 손목을 잡아챈다.

호흡이 멈췄다.

그 곳이,흐름의끝이었다.

하나의 길로 흐르고, 하나의 길로 흘러서, 하나의 길로 흘렀으니, 하나의 길로 흐르게 되어, 일순[一巡].

그곳은 곧, 일순[一瞬]의 세계라.

사상화, 권극[拳極].

지고한 권사[拳士]의 영역이었다.

단혼사는 손목을 잡아채는 탐천독룡권의 자세를 바라본다. 한 찰나[刹那]였다.

탐천독룡권, 조법. 여섯 찰나였다.

가볍게 쳐냈다.  찰나였다.

놀라는 기색. 두 찰나였다.

단혼사, 네 찰나. 원저, 여덟 찰나.

단혼사의 진각.  찰나.

촌경[寸勁],  찰나.

원저는  팔을 당겨 배에 힘을 준다. 세 찰나.

도합, 두 찰나가더 빠름이라.

촌경은 찰나의 흐름을 타며 원저의 복부를 갈겼다.

뻐어어억!

북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며 원저의 몸이 크게 들썩거린다.


“꺼어어….”

눈은 불신으로 확대되었고, 입은 긍정으로 독액을 토해냈다. 후방의 독연은 그 충격에 이미 흩어진지 오래였다.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던 독각천시의 아성이 내부부터 으스러지고 있었다.

그러나 불패의 성은 불패여야 한다. 이미 초토가 된 내부의 내기를 징수해, 뱉어낸 독액에 기를 담는다. 죽음은 확정이었다.

그리고, 열 찰나였다.

턱을 으스러뜨리는 정권, 두 찰나.

갈비뼈를 뭉개버리는 올려치기, 세 찰나.

오른 뺨을 찢는 장법, 두 찰나.

반대쪽, 두 찰나.


“끄으으윽…!”


털썩.

한 찰나.

호흡이 다시 돌아왔다.

“후우….”


단혼사는 숨을 몰아쉬며 곤죽이 된 원저를 내려다봤다.


“이, 놈…! 감히, 독각천시….  독성[毒城]을…!”

“모멸스럽나?”


단혼사가 물었다. 원저는대답대신 고통에 젖은 숨소리만 뱉을 뿐이었다.


“크흐으, 크흐으…!”

“당가의 율법이다.”

“…….”


호흡이 멎었다. 단혼사는 고개를 들어 불길 너머를 바라봤다. 도강언의 곳곳, 굵게 피어오르던 연기가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곧 나머지도 받아가마.”


단혼사는 울컥 솟는 피를 뱉으며 백진각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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