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십칠장[十七章], 성하유랑[星下流浪] 6
겨누어진 살기들 사이로 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름이쟁쟁한 당가의 식솔들을 이곳에서 보니 영광이오.”
기왓장을 밟는 소리와 함께 거한 한 명이 지붕위로 모습을 보였다.햇볕을 받은 도신[刀身]이 눈부셨다. 당소소가 그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마웅대의 대주, 부영이 인사를 드리지.”
“하아….”
독무후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갈색의 눈동자가 지붕을 훑었다. 오합지졸이라고는 볼 수 없는, 정돈된 배치,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위치. 합격진[合擊陳]의 훌륭한 예시였다. 촘촘하게 짜인활의 사거리엔 빠져나갈 틈이라곤 없어 보이는 듯 했다.
“이정도의 병력으로 천하십강의 목숨을 노릴 수 있을 것 같진 않소만…. 그렇다고, 발목을 잡을 수 없는 것도 아니지. 안 그렇소?”
“…….”
“조준!”
척척척!
수십의 인원이 활을 겨누며 모습을 보였다. 그 위기 속에서 독무후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흐흣. 요란스럽게도 짖는구나.”
한 걸음 앞으로 나선다. 샐쭉한 눈으로 사방을 훑어봤다.
“제자야, 기억하거라.”
주먹을 들어올린다. 녹풍대원들이 자세를 낮추고 명령을 기다렸다.
“짖는 개는….”
“쏴라!”
쉬쉬쉬식!
주먹이 떨어졌다. 명령이 떨어졌다. 화살이 아래로 내쏘아지며 독무후와 녹풍대의 모습을 덮었다. 공기를 찢는 장대한 굉음 속에서도, 독무후의 음성은 똑똑히 들렸다.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빠지지직!
나무가 찢기는 소리가 들려오며, 뇌기를 감은 암기가화살의 격류를 거슬러 올랐다. 녹풍대가 그늘에 녹아들었다. 민가를 가득 메운 화살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이윽고 부영은 손을 올리며 사격을멈췄다.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민가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화살이 솟아나지 않은 골목이 없었고, 도란도란떠들던 그늘 속엔 적막이 꽂혀 있었다. 부영은 수신호를 보내며 활을 내리고 무기를 들게 했다.
“확인해라.”
“제, 제가 말입니까?”
“…쯧.”
말을 더듬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마웅대의 대원들. 부영은 혀를 찬 뒤, 뒤로 물러서려는 수하의 엉덩이 또한 걷어차 주었다. 엉덩이를 차는 찰진 소리가 들리며 부영의 옆에 있던 수하가 아래로 떨어졌다.
“이렇게 신앙심이 없어서야. 어찌 신교의 어린양으로 거듭날 수 있겠나?”
“아, 아악!”
나무상자와 짚으로 짠 울타리가 무너지는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마웅대의 수하가 지붕에서 떨어졌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시체를 확인했다. 빼곡한 화살 속, 그가 찾고 있는 것은 없었다. 대신, 다른 것이 있었을 뿐.
“당가의 시체로 보이는 것은 없, 없습니다. 대신 이, 이 화살에 꿰뚫린 대나무 통이 남아 있습니다.”
“…….”
“어어? 머리가…. 쿨럭.”
수하는 젖은기침을 하며 입을 가렸다. 내려보는 시야엔, 핏덩이 한 움큼이 묻어있었다. 커지는 동공. 그가 위를 올려다본다. 붉어진 시야 속에서, 부영이 혀를 차는 모습이 보였다.
“쿨럭. 대, 대주님?”
“독을 풀고 도망쳤나. 멀리 가진 못했을 터, 제방 쪽으로 움직여!”
“저, 전…?”
눈에서, 코에서, 입에서, 귀에서. 수하는 칠공[七孔]에서 피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그의 시야는 지붕 위에 서린 녹색의 그림자를 마지막으로 멎었다.
“녹, 풍…!”
짧은 단말마. 부영은 추격을 위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예쁘장한 소녀가 그의 앞에서 턱을 쓰다듬고 있었다.
“영 늦은 줄만 알았더니, 훈련도 덜 된 개를 풀어놓다니. 아직 여유는 있는 모양이야.”
“…이런!”
부영은 곧장 어깨에 걸친 도를 내리쳤다. 독무후는 팔을 들어올린 뒤, 그 도와 일렬로 마주하듯 막아섰다. 그리고 비트는 손목. 도는 부드럽게 장포의 소매주름을 따라 아래로 흘러갔다. 부영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도를 회수했다. 불행하게도, 독무후는 적에게 그런 여유를 줄 인물이 아니었다.
으득!
“큭!”
발등을 짓밟는 작은 발. 그러나 작은 크기와는 다르게 뼈를 으스러뜨리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뻗어올리는 장저는 턱을 짓이기며 부영의 뇌를 가볍게 흔들었다.
“억…!”
“고작 수십으로 당문의 녹풍을 막으려고 하라더냐. 명령자가 누군진 몰라도 네놈을 퍽 싫어하던 모양이구나.”
“네년!”
부영은 고함을 지르며 팔을 휘둘렀다. 주먹에는 내기가 실리며 매서운 바람을 일으켰다. 천마신교의 교인이라면 익히고 있는 마령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두터운 근골은 부딪히는 모든 것을 으깰 기세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바짝 좁힌 거리는 폭풍의 한가운데였고, 미친 듯이 휘둘러대는 주먹은 독무후에게 미치지 못했으니. 독무후는 가볍게 그의 단전을 후려쳤다.
“커흣!”
혈관을 가득 메우며 흐르던 마공이 역류했다. 입가에선 거뭇한 피를 뱉으며앞으로 고꾸라졌다. 독무후는 옆으로 슬쩍 피해 그의 몸뚱이를 피했다. 털썩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붕을 가득 메우던 수십의 인원이 쓰러졌다. 녹색의 그림자들만이 그들의 숨통을 움켜쥐고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런…!”
“일이 끝났다면, 굳이 인원을 보내 우리를 정리하지 않아도 되겠지. 혹여라도 일이 끝난 뒤, 당가를 정리하기 위해 보내는 인원이었다면…. 너희 같은 오합지졸은아니었겠지.”
“…컥.”
부영은 대답 대신 피를 뱉었다. 독무후는 옆에서 바짝 긴장한 태도의 당소소를 바라봤다.
“기억했느냐?”
“…정말 일이 끝났다면, 짖지 않는 개를 보내던지 애초부터 개를 보내지 않았으리라는 것이요.”
“그래. 하나의 사건에서 이면을, 사건 전체를 예측할 수 있는 시선. 대게는 통찰이라고 부른단다.”
독무후는 부영의 머리채를 움켜쥔 뒤, 고개를 들어 올려 얼굴을 드러냈다.
“자, 말하거라.”
“무, 엇을….”
“네 명령권자가 전해온 전갈이 있지 않느냐?”
“무슨….”
독무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부영을 향해 웃었다. 그리고,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희를 살려서 돌려보내려고 이곳에 보낸 것은 아닐 것 아니냐?”
“…….”
“계획이랍시고 본녀가 가주었으면 하는 곳을 네게 흘렸을 터이니, 어서 읊거라.”
“개, 소리….”
“괜찮겠느냐?”
독무후는 물음과 함께 빙긋 웃었다.
“지금 어떤 이들에게 제압되었는지,아직 깨우치지 못한 것 같은데….”
독무후는 턱을 쓰다듬던 손을 내려 그의 등줄기를 훑었다. 오한이 그 손길을 따라 부영의 이성을 핥았다. 부영의 동공이 흐려졌다. 그녀는 손길을 거두고 다시 그에게 속삭였다.
“서로 편하게 가자꾸나. 너도 여기서 버림패로 쓰이기 싫을 것 아니더냐?”
“…….”
부영은 침을 삼켰다. 점점 이성을 잠식하고 있는 마공의 마성[魔性]마저도, 당가의 독성[毒性]엔 저항하기를 거부했다.
“…제방으로 오지 못하도록 당가의 인물들을 막아서라 지시했소. 당가의 발을 잠시만 묶는다면 대업은 곧 완수된다고 했소.”
“제방은 함정이고. 명령을 내린 자는?”
“독마.”
“백진오의 위치.”
“그건, 그…. 제방, 그극….”
부영은 별안간 거품을 물며 눈을 까뒤집었다. 목줄기의 혈관이 부풀어 오르고, 안색은 붉다 못해 거무칙칙해졌다. 독무후는 고개를 저으며 부영의 백회혈에 철침 한 자루를 찔러넣었다.
“끅, 끄으으윽….”
“마혈역류[魔血逆流]….”
“잘 알고 있구나.”
당소소의 말에 독무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제압했던 모든 마웅대의 수하들이 검은색으로 부풀고 있었다.
“백회혈을 부수거라.”
“예.”
녹풍대는 독무후의 말에 검은색으로 부푸는 마웅대의 정수리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서두른다곤 했으나, 손은 조금이고 머리는 수십이었다. 채 내려치지 못한 몇 명의 머리가 검은색의 핏줄기를 흘리며 으스러졌다. 그리고, 폭파하며 건물의 지붕을 그대로 날려버렸다.
당소소는 눈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독무후는 부영의 머리채를 놓았다. 넋을 잃은 부영의 흐린 시선은 그 무엇도 담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마땅한 몸의 조화를 무시하고 혈류를 까뒤집어 비인외도[非人外道]의 방법으로 내공을 쌓으니, 쯧쯧.”
“스승님.”
당소소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독무후를 바라봤다.
제방은 뻔한 곳이었다.
독마가 도강언 전체에 걸쳐 쳐둔 거미줄의 중추였으며, 녹풍대원 둘을 잡아먹었고, 백진오가 잡혀있다는 곳. 심지어 혹여라도 도망칠까 잡졸을 던져 얄팍한 심리가 엿보이는 정보마저 던져준 곳이었다.
정말이지, 뻔했다.
“소소야.”
그럼에도 걸어가는 것은 정파의 고지식함이고, 명가의 허례[虛禮]이며.
“무림인이란 그런 것이다.”
무림인의 허식[虛飾]이었다.
“제아무리 급하더라도, 방도는 달리 있잖아요.”
“말해보거라.”
“그, 멀리서 화살…, 을 쏜다든지…. 지원을 기다린다든지…. 무튼, 스승님이 그런 위험에 처할 이유는 없잖아요.”
당소소는 이해되지 않았다. 어찌하여 노골적인 함정을, 정면으로 들어가는가. 이런 것은, 마교의 멍청한 작자들이 하는 행동과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닌가. 외곽에서함정을 천천히 무력화시키면서 들어가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
내가 따라와 벌어진 일을, 왜 당신이 위험을 무릅쓰려고 하는것인가.
“제가, 따라온다고 하지만 않았더라면….”
“네가 따라오지 않았다면.”
독무후는 고개를 떨군 당소소에게 다가갔다. 처박힌 시선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악적의 도발에 분기를 삭히고 몸을 숙이는 명예도 모르는 가문이 되었을 것이고, 그 누구도 사천당가를 정파의 오대세가 중 한 곳이라 칭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무후는 당소소의 뺨을 어루만진 뒤, 고개를 치켜세워주었다.
“당가가 먼저 움직이지 않아,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은 마교의 악행으로 도언강은 이것보다 더 깊은 도탄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 왜고개를 숙이고 있느냐? 너와 내가 고개를 숙일 일이 무엇이 있더냐?”
독무후는 당소소에게서 손을 떼고, 장포를 여몄다.
“고개를 들거라. 넌 당가의 혈족이자 천하십강 독무후의 제자니라.”
“전….”
“내가 걷는 길은 곧 네가 걷는 길이다. 네가 걷는 길은 곧 당문이 걷는 길이다.”
독무후는서서히 눈을 뜨고 있는 백서희를 추스르며 말했다.
“오로지 무공을 배우고 싶어서 이 스승을 택했더냐?”
“…….”
“긴 유랑일 테지. 정처도 없고 자신의 위치도 어딘지 몰라 천하를 헤매는 네 마음.”
당소소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독무후는 녹풍대원 하나를 호출해 백서희를 부축하게 한 뒤, 독기가 흐르는 제방을 바라봤다.
“네가 누구더냐?”
“전, 독천의 딸이자 당가의 여식…. 독무후의 제자….”
독무후는 잠시 당소소를 바라봤다. 아쉬운 눈초리였다. 허나, 틀린 답은 아니었다.
“네가 정녕 명가의 자손이라면, 당당히 걷거라. 적의 더러운 아가리 속으로도, 기품있는 걸음으로 들어가거라. 그것이 명가의허례이며 긍지이니.”
“네.”
독무후는 몸을 날려 지붕 아래로 떨어졌다. 구불거리는 길은, 독기에 젖은 강변으로 향해있었다. 당소소도 침을 꼴딱 삼킨 뒤, 조심스런 움직임으로 지붕 아래로 착지했다. 그 뒤로 일사분란하게 따르는 녹풍대원. 그녀는 뒤를 돌아봤다.
‘난….’
녹풍대는당소소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었다.당소소는 다시 앞을 바라봤다. 독무후가 걷고 있었다.
당소소 또한, 앞으로 나섰다.
*
민강의 양 끝을 이은 제방.
강 중간에 위치한 삼각주를 기반으로 쌓은 둑. 도강언이라 불리는 이 둑은 사천의 젖줄이었고, 재앙이 범람하는 것을 막아주는 사천의 수호신이었다. 그러나 이젠 그 수호신은 독물에 잠겨 괴로움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제방의 위편에 걸터앉은 독마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강변으로 보이는 여러 그림자가 그의 시야에 긁혔다.
“큭큭. 신교의 무인들이 무식하니 뭐니 한다지만, 정파의 꼴통들보단 덜하단 말이지.”
“날, 구해준다고, 했, 잖아….”
당가의 행보를 구경하던 독마의 귀로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썹을 긁적이던 독마는 거칠게 발을 굴렀다. 아래에 깔려있던 시신이 발길질에 움찔거렸다.
“으윽….”
“본좌는 약조대로 네놈에게 독각혈가의 비기인 독각천시를 알려줬고, 파생무공인 독각혈사연까지 알려주었다. 거기에 독강시를 제조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나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곤 걸레짝이 된 네 몸과 네 가문의 원한뿐이구나.”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잖아…!”
“당가의 배교자여.”
독마는 시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시신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난, 배교자가, 아니다. 당가를, 더 깊은, 깨달음으로, 이끌, 구원자다.”
“핫핫. 네가 왜 독각천시를 제대로 익히지 못하였는지 아느냐?”
“무엇, 이지?”
독마는 실과 엮은 자신의 머리칼을 만지며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 남아 있어서 그렇다. 마공이란 그런 것이니까.”
“난, 당가의, 독각혈가의….”
“넌 마신께 바칠 신교의 제물이며, 그분의 눈물이다. 이는 나도 다르지 않다.”
독마의 시선은 희번뜩 빛났다.
“십계십마[十界十魔]. 열 가지 세계에서, 열 가지의 방법으로 마신을 청하니. 시작은 열 곳이었으나 구원은 한 곳이라. 넌 정말로 구원자를 자청할 힘을 가지고 있는가?”
“구원, 내가, 구원이다. 나만이, 진정한, 지식을, 알려줄, 수 있어.”
목젖이 굳어 뚝뚝 끊어지는 시신의이야기를들으며, 독마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미물에 가까운 버러지가 부르짖는 구원이라. 알고서 지껄인 것 같진 않으나, 참 익살스럽도다.”
독마는 시신의 멱살을 움켜쥔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하는, 것….”
“이게 보이느냐?”
독마는 품에서 환약 하나를 꺼냈다. 거무튀튀한 색채와 둥근 몸에선 채 죽이지 못한 비린내가 풍겨오고 있었다. 아니, 비린내가 아니라 피가 썩어가는 고약한 냄새에 가까웠다. 독마는 시신의 입으로 그 환약을 가져갔다.
“계요명환[戒要命丸]이라는 약이다.”
“목숨을, 구하는, 것을, 경계한다?”
“네 나약한 인성을 고치고, 비루한 마공을 더욱 진일보시킬 독단이지. 먹는다면, 네 이성은 마성으로….”
독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신은 계요명환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었다. 독마는 코웃음을 치며 멱살을 쥔 손을 놓았다.
“너무 전형적이라 보기 드문 종자로군.”
꿈틀거리는 시신이 제방 아래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