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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화 〉십칠장[十七章], 성하유랑[星下流浪] 8 (112/130)



〈 112화 〉십칠장[十七章], 성하유랑[星下流浪] 8

청성산[靑城山]의 새벽은 시리고맑았다. 고산지대의 헐거운 기압과 싸늘한 기온이 얽혀 온 봉우리가 쾌청함에 잠기고, 발아래에 걸린 구름은 이곳이 산인가 바다인가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곤 했다. 청성파의 제자들은  꼭두새벽의 쾌청을 빌려 잠기운을 털어내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운령 또한 해가 뜨기 직전의 군청빛 세상을 만끽하며 높은 봉우리로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지나치는 유엽진인의 방이 밝았다. 운령은 소리 내지 않도록 조심스레 고개를 숙인 뒤, 장문인실을 지나 상청궁[上淸宮]으로 향했다. 상청궁 앞 거대한 바위에는 대도무위[大道無爲]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사형은 아직 주무시고 계신가 보네. 히힛.”


운령은 혼잣말을 하며 손을 모아 입김을 호 불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상청궁의 지붕엔 얕은 서리가 앉아 있었다.

얼추 손이 녹았는지, 운령은 코를 훌쩍이며 상청궁의 안으로 들어섰다. 천신[天神]들의 수하인 천군[天軍]의 형상이 그려진 벽화들이 그녀를 반겼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검소한 도관의 안에 모셔진 여러 천신들의 좌상들이 운령을 감싸며 맞이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거대한 청동향로가 아직 꺼지지 않은 등불에 빛났다.

후우웅-

가볍지만 한기를 담은 바람이 한차례 불어왔다. 향로의 옆에 심어진 푸른 소나무가 고개를 까딱이며 운령을 반기는 듯 했다. 바람결에 묻어나오는 향냄새. 운령은 품속에서 향을 꺼내 등불로 불을 붙이고, 향로에 꽃은  합장을 했다.

“원시천존[元始天尊].”


가장 높은 자리의 천신의 이름을 외고, 한차례 합장을 한다. 깊게 숨을 내쉬어 밤새 쌓였던 탁기를 털어내고, 크게 들이키며 몸 내부를 말끔히 닦았다.


“후우….”

몇 차례의 심호흡이 끝나고, 합장을 끝낸 그녀는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은 아직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흠흠, 운기조식 하다보면 오시겠지?”


운령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가부좌를 틀었다. 단전에 깍지를 낀 손을 올리고, 눈을 감고 내공심법을 행했다. 부드럽고 완만한 호흡. 속가제자들이 배운다는 옥청심공[玉淸心功]이었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떨림을 타고 내공은 혈맥을 휘돌았다. 사형이 오기 전까지 깊게 집중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발로였다.


“……!”


집중하기는커녕, 오히려 바짝 세운 기감으로 느낀 인기척. 운령은 서둘러 운기조식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았다.


“사형,  이렇게 늦었…?”

“미안하군. 네 사형이 아니라.”

스릉.

반가운 목소리대신 서늘한 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음기를 머금은 운령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누구냐.”

“의미 없는 것을 물어보는군.”


등불의 그늘 아래에 있던 차가운 검광이 그녀를 훑었다. 일렁이는 그림자에서 상아색 옷의 검객이 모습을 보였다. 칠 척은 훨씬 넘어 보이는 거대한 체격에, 검을 단호하게 움켜쥔 주먹. 그리고 몸에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 그가 범상치 않은 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운령이 운기조식을 하던 이곳은 바로 상청궁이었으니까. 청성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관[道觀]이었고, 장문인의 바로 아랫배분인 일대제자 이상만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청성파의 성지[聖地]였으니.

그녀는 곧바로 내공을 휘돌리며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허공이 움켜쥐어졌다.


‘아뿔싸…. 정갈히 기도를 한다고 검을 놓고 왔었어.’

운령은 허리춤으로 향했던 시선을 조심스레 앞으로 돌렸다. 감정 없는 걸음걸이는 그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다가오고 있었다.

운령은 침을 삼키고 오른발의 위치를 반 발짝 뒤로 놓았다. 약간 가라앉는무릎. 굳건한 자세였다. 긴장되는손짓으로 오른손을 내밀고, 왼 손등으로 오른손의 손목을 받혔다.

절예[絶藝], 쇄심장[碎心掌].

곧게 펼쳐졌던 손마디의 끝마디가 꺾이고, 혈맥을 부드럽게 흐르던 내공이 축을 기준으로 운령의 의지에 따랐다.

회전하는 발끝을 따라, 힘은 굳게 박힌 하체의 축으로 흘렀다.

앞으로 딛는 오른발. 앞으로 꺾이는 허리.

괴한이 휘두르는 검로를 예측함과 동시에 힘의 축이 비틀려 방향성을 가진다.

서늘한검풍이 그녀의 윗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지나쳤다.

콰득!

돌바닥마저도 파고들 정도로 정심한 내공을 실은 발끝.

거칠게, 더욱 거칠게.

삿된 것을 부수어 무위[無爲]로.

오른손이 반회전하며 아래로 꺾이고, 내밀어진다. 힘이, 내공이 비틀린다.

힘이 나선을 따라 흐른다는 전사경[纏絲勁]의 묘리를 싣고 괴한의 거궐혈을 부수기 위해 쇄심장이 치달았다.

지잉.

마찰음은 고요하고, 깊은 울림이 있었다. 쇄심장은 적을 꿰뚫고 지나갔고, 검에 스친 머리천이 두 쪽으로 갈려나가며 바닥에 떨어졌다. 운령은 적을 꿰뚫었던 쇄심장을 회수했다. 꿰뚫었으되, 적은 그곳에 없었다. 아릿한 고통이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검을….”

“잘 봤어야지.”


검과 그의 위치가 바뀌었다. 쇄심장을 때려박은 거궐혈은 그곳에 없었고, 발경의 영향으로 진한 떨림으로 울고 있는 검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괴한이 떨리는 검을 점차 운령에게 들이밀고 있었다.

“대업을 위해 죽어라.”

‘…신기[神技]에 가까운 보법이었다. 내 상대가 아니었어.’


운령은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체념에 젖은 자신의 얼굴이 검에 비쳤다.

이젠 만날  없는 부모의 손 대신, 검을 쥘 때부터 떠올리던 순간이었다.

자신도 언젠간 검 끝에 맺힌 이슬이되어 사라진다는 것.

고뇌는 짧은 삶의 모든 것이었고, 결과는 찰나였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번. 단 한 번만. 사형의 얼굴을 봤었다면….’

챠륵!

검광은 번뜩이고, 피륙이 갈리는 질척한 소리가 울렸다.

“…….”

끊어져야 할 정신이 이어져있었다. 운령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훑고,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손을 바라봤다. 흐릿한 시야로 보이는 하얀 손가락엔, 식은땀만이 번들거릴 뿐이었다. 눈을 크게 떠 앞을 확인했다.


“…같잖은 잡념이 네 명상을 방해했나보구나.”

푸른색의 눈이 휘어지며 그녀를 반겼다. 운령의 눈에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자신의 가족이 괴한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사형…. 운류 사형…!”

“뒤로 물러서 있거라, 운령.”

“네, 네…!”

운령은 코를 훌쩍거리며 눈물을 뚝뚝 흘리곤 뒤로 물러섰다. 그의 눈이 괴한의 눈을 훑는다. 괴한의 검은 움찔거리지만, 차마 휘두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목을 죄는 손에 더욱 힘을 주고, 그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쾅!

부딪힌 곳의 기둥이 전각이 떨리며 서리를 털어냈다. 그는 괴한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속삭였다.


“…환요대주, 네 놈. 무슨 짓이지?”

“부, 부교주님의…. 요마님의 지시입니다. 소교주님.”

“장패군….”

손이 바르르 떨리며 더더욱 힘이 들어갔다. 괴한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서둘러 목이 으스러지지 않기 위해 내공을 휘돌렸다. 선명한 불쾌감으로 빛나는 눈길이 괴한을 마주봤다.

“내공 풀어.”

“…….”

“네 얼굴가죽을 뜯어 천마청에 걸어놓기 전에.”

“큭, 컥….”

사마문은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부교주의 지시가 내 지시보다 먼저인 게냐?”

“아닙, 아닙…!”

“내 유희를 방해하지마라, 버러지야.”

“전, 저는…. 그럴 생각이….”


사마문은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내려다봤다.


“그럼 어떤 생각이었지?”

“소교주님의 신변을…. 말끔하게 정리하고자…, 했습니다…. 교의 임무로 만난 저런 솜털도 안 가신 계집 때문에…. 앞길을, 더럽혀선 안되기에….”

“내가 말하지 않았나?”

환요대주의 말을 듣던 사마문은 그의 거궐혈에 발을 올렸다. 그리고 그를내려다보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내 식도락이라고.”

“…….”

“머지않아 돌아올 날, 내 밑에 깔려 신음하고 절규하는 그 모습을 보려고 했거늘….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죄송합니다. 윽!”

가슴을 짓누르는 힘이 더욱 강해졌다. 그가 발로 누르고 있는 곳은 역설적이게도 쇄심장이 노리던 바로 그곳이었다.


“네 놈이 이곳에 있다는 건, 당소소에게도 변고가 생겼다는 뜻이렷다?”

“예. 독각혈마의 가주와 부교주님이 가계십니다….”

“…….”

“허윽, 으윽!”

환요대주는 절로 튀어나오는 비명을 짓누르며 이를 깨물었다. 사마문은 고통스러워하는 환요대주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만약 당소소에게 상처를 입혔다면….”

“헉, 허억!”

“내가 너흴 버리겠다.”


사마문은 그렇게 으르렁거리며 환요대주의 가슴에서 발을 치웠다. 환요대주는 고통에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그, 그 계집이 무엇이기에….”

“호오?”

“무엇이기에, 그리 집착을 하시는 겁니까. 그저 얼굴이 반반한 계집일 뿐, 장차 신교의 교주가 될 소교주님이 집착할 만한 가치가 없는 년입니다…!”


사마문은  질문에 웃었다. 계속해서 웃었다. 웃음이 멈추질 않아, 입을 가리고 웃었다.

“너희는 나에게 무엇을 바라지?”

“어떤말씀인지…?”

“내가 교주의 자리에 올라 가장 약한 가문이라 평가받는 너희 가문을, 신교제일가로 만들어주길 원하지 않느냐?”


환요대주는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으니.

“너희가 그렇듯, 나 또한 독화에게 바라는것이다.”


사마문은 입을 가리던 손을 치우고, 힐쭉 웃었다.

“평생을 걸쳐 내 곁에서, 수많은 목소리로 이 무료함을 달래라고.”

“여색은 식도락에 불과하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어찌하여….”


환요대주의 물음. 사마문은 허공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밝아오는 새벽을 보며 입을 열었다.

“사람은 하나의 소리로 운다. 여태 겪어왔던 여성들이나, 네 놈도 마찬가지로 모두 그랬어. 그런데, 그 년은 그렇지 않았어.”

그의 눈이 휘어졌다.

“짓밟고 부서 버리고 싶은…. 다양한 모습이….”

사마문은 잠시 눈을 감고 어깨를살짝 떨더니, 반개한 눈으로 환요대주를 내려다봤다.


“항명의 대가는 죽음이라는 건 알고 있지?”

“예.”

“하지만  놈을 죽인다면, 짜증남을 넘어선 귀찮음이 다가올 테지.”

“…예.”


그는 환요대주가 떨어뜨린 검을 주웠다. 파리한 예기가 어린 명검이었다. 검을 이리저리 뜯어보던 사마문은, 환요대주에게 말했다.

“도강언이렷다?”

“독각혈가의 행선지가 그 곳입니다.”


사마문은 고개를 끄덕이며 환요대주의 검집을 바라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환요대주는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그에게 검집을 바쳤다. 깔끔한 손짓으로 납검을 한 사마문이 말했다.

“항명의 대가로 네놈의 이름을 빌리도록 하지.”

“이름, 이라면….”

“도강언엔 네놈의 이름으로 찾아갈 것이다.”

“…….”


환요대주의 안색이 여러 생각으로 착잡해졌다. 사마문의 눈썹이 들리며 환요대주를 훑었다.


“단전을 으깨주어도 무방하다만?”

“…부디, 옥체 강녕하시길.”

환요대주는 길게 읍을 했다. 사마문은 그 인사를 받는  마는 둥하며 검을 허리에 찼다. 물러서는 환요대주의 뒤를, 웃는 상의 청년이 막아섰다.

“어이쿠. 조심해야지.”

환요대주는 뒤를 돌아봤다. 청년의 얼굴을 확인하고, 붉었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과, 광귀[狂鬼].”

“네 뱃가죽은 무슨 소리를 내는지 궁금한걸.”

청년은 손마디를 뚜둑 꺾으며 그를 바라봤다. 검은색으로 물든 그의 손톱이 퍽 위험해보였다. 회색 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나 그를 막아섰다. 요재였다.

“가세요.”

“…감사합니다, 아가씨.”


환요대주가 서둘러 물러나자, 광귀는 침을 뱉으며 요재를 노려봤다.


“제 식구라고 항명자를 감싸주기는.”

“저 자를 죽이면 벌어질 일에 대해서 생각해.”

“무엇을 그리심각하게 생각해?”

광귀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다 죽이면 되는데.”

“들을 가치도 없네.”

요재는 고개를 저으며 그림자 안으로 몸을 숨겼다. 광귀는 이죽거리며 눈을들었다. 사마문에게로 다가오는 운령이 보였다. 그는 혀를 차며 요재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사라지자, 사마문은 고개를 들어 운령을 바라봤다.


“사, 사형…. 몸, 몸은 괜찮으신 거예요? 다치신 곳은 없죠? 사형이니까…. 헤헤….”


운령은 눈물자국이 역력한 얼굴로 웃었다.

“죄송해요. 제 수련이 너무 부족하여서…. 그치만, 운류 사형이 있으니까. 안심하고 열심히 수련할게요!”

“…….”


사마문은 운령의 말에 뺨을 긁적였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천신상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네 수련이 무엇이 부족하지?”

“네?”

평소의 따스한 어투와는 다른 싸늘한 말에, 운령은 퍼뜩 놀라며 웃음을 감췄다.


“까놓고 말해서 이 청성산에서 가장 뛰어난 자가 너다. 헌데, 가장 열심히 하는 자 또한 너다.”

“사, 사형도 참….”

“그러니 이런 영락한 문파로 취급받는 것이 당연하지.”

“…예?”

사마문은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한 개비의 향만이 타고 있는 청동향로를 바라봤다.

“운자 돌림의 배분이 이 산에서  하나뿐이더냐?”

“다른 사형들은 일이 바쁘셔서….”

“일이 바쁘기에 구도[求道]를 멀리한다? 재밌는 일이야.”


사마문은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 천천히 환요대주의 검을 뽑았다. 수상한 낌새에 운령이 그를 불렀다.

“사형?”

“일대제자들은 구파일방이라는 허명에 젖어 길을 잃었고, 나머지는 길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리하여 구파일방의 말석이라 불리는 수모를 겪고 있지.”

“왜,  그래요. 무섭잖아요…?”

사마문은 검을 들어 운령을 겨눴다. 운령은 떨리는 동공으로 그 검끝을 바라봤다.

“어,어…?”

“그들이 희망이라고 내세우는 너마저도…. 유약하기 그지없을 뿐.”

“사형이 있잖아요. 그러지 마세요….”

사락.

운령의 목으로 사마문의 검이 드리워졌다. 얕은 생채기가 나며 핏방울이 길게 흘렀다. 그녀의 눈에도 그와 비슷한 눈물방울이 자국을 따라 흘러내렸다.


“사형…? 장난, 장난이 심해요. 사형이  여기서 보자고 하셨잖아요…?”

“부모를 잃고 둘 곳 없는 애정을 나에게 비벼대는데….”

사마문은 고개를 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귀찮고 거슬려.”

“그러지 마요, 제발.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거예요…?”

“문파인 체하는 이 어설픈 곳은, 도를 추구한다는 소꿉놀이를 하고 있지. 더는 있을 연유가 없는 곳이다.”


사마문의 검이 움직였다. 운령의 눈이 질끈 감겼다.

캉!

쇠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청동향로가 사선으로 갈리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요란스런 소리와 함께 사마문과 운령의 시선이 마주친다.

경멸과 불신.

적나라하게 묻어나는 감정에, 운령은 주저앉아 사마문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다시는. 사형에게 기대지 않을게요.”

“늦었다.”

“제발 가지 말아요….”

“또 소꿉놀이를 하려고 드는군.”

사마문은 운령의 절규에 코웃음을 쳤다. 너무나도 간절한 그 음성에도, 사마문은 조소를 지으며 운령을 지나쳤다. 그녀는 사마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열심히 수련할게요. 그, 울지도 않고….”

운령은 황급히 눈물을 닦고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본산에서도 아는  하지 않을게요. 그냥, 여기에 계셔주기만 해주세요….”

“질척거리는구나.”

사마문은 거친 손길로 운령을 뿌리쳤다. 그녀는 바닥에 엎어지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흑, 흐윽….”

“이 푸른 구름이 더는 노을에 적셔지지 않을 때까지. 마주치지 말도록.”

사마문이 입에 담은 말은 청성파의 파문제자에게 던지는 한마디였다. 자신은 청성파를 떠나겠다는 것을 천명함과 동시에 운령에게도 절교를 선언하는 말이었다.

“찾지 마라.”

매몰찬 걸음은 상청궁을 떠났다.

운령은 쓰린 목덜미를 움켜쥐며 하릴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소녀가 바라보던, 소녀를 이끌던 별이 사라졌다.

빛을 잃은 길은 어두웠기에.

유랑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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