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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화 〉십칠장[十七章], 성하유랑[星下流浪] 9 (113/130)



〈 113화 〉십칠장[十七章], 성하유랑[星下流浪] 9

“그쯤이면 된  같아요.”

“예.”

당소소의 말에 녹풍대원들은 포박을 마친 흑림총련의 잔당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곤죽이 난 그들은 원망의 말 대신 앓는 소리만  뿐이었다. 당소소는 그들 중 지위가 있어 보이는 자에게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큿….”

“그래도 잡혔으니까, 예의상  가지 정도만 불어줬으면 좋겠는데.”

“개소리하지마라. 이 더러운 년아.”

으득!

“아으윽!”


당소소는 눈앞에서 팔이 기괴한 각도로 꺾이는 걸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서둘러 다른 쪽 팔에 손을 대려던 녹풍대원을 말렸다.


“잠시.”

“예.”

당소소는 그에게 다가가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한 팔을 쿡 찔렀다. 무덤덤한 표정은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으으으윽!”

“…예전이었으면 좀 사정을 봐줬을 텐데.”

당소소는 신음하는 그의 멱살을쥐고 끌어당겼다. 궁상을  시간은 없었다. 자신이 고뇌에 잠기는순간, 백서희의 다음 장면이 어긋난다. 그렇게 두어선 안됐다. 그런 생각과 함께, 당소소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야. 뇌가 으깨져서 상황 파악이 돼?”

“…뭐?”

“네가 그렇게 핥아대던 대장은 도망쳤어. 도강언 주변 마을에 가한습격도 얼추 해결 했지. 그럼, 네가  해야 할까?”

“…….”

당소소는 침을 꼴딱 삼켰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부어오른 팔을 움켜쥐었다.


“아으으윽!”

“넌 그저 시다에 불과하잖아? 안 그래?”

“시다가 무슨….”

“네가 죽든, 말든. 고작 졸개 따위에게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야. 내가 묻는 것을 순순히 불어. 그게 싫다면.”

그녀는 녹풍대에게 비수를 빌렸다. 잔떨림이 있는 손으로 그의 얼굴에 겨눴다.


“내가 죽여줄게.”

흑림총련의 졸개는 자신에게 들이미는 비수를 바라봤다. 와들와들 떨리는 것이, 전혀 위협이 되질 않았다. 시선을 옮겨 잔뜩 흥분한 눈망울을 바라본다. 분노와 두려움이 얽힌 표정. 협박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표정이었다.

‘당가의 아가씨라더니, 천진난만하기 그지없군.’


그는 이죽거리며 사람 하나 손대본 적 없어 보이는 그녀를 비웃으려던 찰나, 어깨너머에 서있던 녹풍대원들이 그의 시선에 잡혔다.


“…말하지.”

“처음부터 고분고분하게 말했으면 좋았잖아.”

당소소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녹풍대원들에게 비수를 돌려줬다. 녹풍대원들은 그녀가 돌아보자 서둘러 품에서 꺼내들었던 비수와 죽통들을 감췄다. 당소소는 딴청을 피우는 녹풍대원들을 잠시 수상한 눈으로 바라보다, 졸개를 다시 돌아보며 물었다.


“마교의 인원은 얼마나 있지?”

“…우리는 이용만 당했을 뿐이다. 마교에 대한 정보는 잘 모른다.”

졸개의 말에 녹풍대원 하나가 다가와 그의 부은 팔을 움켜쥐고 나지막이 말했다.

“으으윽!”

“아가씨께 예의를 갖추도록.”

“어, 음….”


당소소는 녹풍대의 행동에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으며 그들을 뒤로 물렸다.

“제가 할게요.”

“예, 아가씨.”


녹풍대원이 뒤로 물러서자 당소소는 이마를 짚으며 그에게 물었다.

“이름.”

“장이.”

“이곳에서 무엇을 했지, 장이?”


장이는 당소소의 물음에 고통스런 웃음을 지었다.


“도망간 그 빌어먹을 새끼를 따라서…. 백능상단과 도강언을 습격했지.”

“습격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됐고?”

“우린 별  안했어. 독마가 망가뜨려놓은 도강언의 성벽을 따라서…. 윽!”


장이는 잠시 고통에 몸서리치며뜸을 들인다. 당소소의 눈에 슬며시 걱정이라는 감정이 끼어들었다. 그는 당소소의 눈을 바라보며 웃었다.

“큭큭, 정말 어처구니없는 계집이군.”

“…어서 불기나 해.”

“독마가 망가뜨려놓은 도강언의길을 따라서 침입만 했을 뿐. 본래라면 백능상단을 지키고 있어야 할 무사들이 보이지 않았어. 뭐,  결과는 보다시피.”

당소소는 장이의 말에 입가를 가리며 생각에 잠겼다.

‘백능상단이 아무리 무림문파가 아니라곤 하지만, 그리 쉽게 당할 상대도 아닌데.’


부를 축적하는 일은, 위험을 축적하는 것과 같았다. 당소소가 알고 있는 것을, 뼛속까지 상재로 이루어진 백진오가 생각하지 못했을 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작중에선 백능상단의 호위무사들도 꽤 수준이 있는 자들로 구성이 되었다 나와 있었다.


‘분명 백랑대[白狼隊]라는 이름이 있었을 텐데?’

“소소.”


백서희는 당소소의 팔을 팔꿈치로 쿡 찔렀다.


“응?”

“잠시만 내가 심문하게 해줘.”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에선 왠지 모를 위태로움이 묻어났다. 그 위태로움에, 당소소는 침을 삼켰다.

“서희. 내가 할게. 넌 이런 행동 싫어하잖….”

“괜찮아. 아직 선 안이야.”


백서희는 그렇게 말하며 검집의 끝으로 장이의 턱을 치켜세웠다.

“무사의 위치는 모른다고 했었나?”

“그, 그래.”

“도강언을 습격했다고 했었고.”

“맞다. 똑같은질문을 왜…. 컥!”


백서희는 검집으로 장이의 목젖을 찌른 뒤, 그대로 쭉 밀어 바닥에 넘어뜨렸다.

“얼마나 죽였지?”

“…흐핫.”

“대답을 하라고 했을 텐데.”


백서희는 목젖을 누른 검집에 점점 힘을 가한다. 장이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가쁜 숨을 뱉었다.


“컥, 헉…!”

“대답.”

“헉, 흑…! 백능상단엔, 손대지도 않았다…. 이미 독마와 요마가 해결해놓은 상황이라고 말했잖아! 그저 금품을 몇 개 갈취한 정도였다…. 애초에 사천제일권이 난민의 곁에서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었다.”

백서희는장이의 말을 들으며 당소소를 흘겨봤다.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계속해봐.”

“어째서인지 사천제일권이 민중의피난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들이 백능상단의본가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음이 들리며 불이 났지. 요마는 그것을 신호삼아 이 다리 앞을 지키라고 말했었다.”

“네가 도착하고 도강언은 이미 그들의 손아래에 떨어져 있었고, 난민은 죽이지도 않았다?”

“맞아. 적당히 도강언을 어지럽힌 뒤에는 이곳으로 돌아와 제방의 다리만 지키면 된다는 지시를 받았었다. 이미 도망간 흑림총련주 그 빌어먹을 새끼가 했던 것이지만 말이야.”


백서희는 그의 목젖을 겨누던 검집을 치웠다. 장이가 마른기침을 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마지막으로 묻지. 저 건물엔 누가 있지?”

검집이 멀리 제방의 벽 앞 쪽에 위치한 전각을 가리켰다. 바닥에 누운 채로 고개를 위로 젖힌 장이가 입을 벌렸다.

“아, 저기.”

장이는다시 고개를 내리며 웃었다. 그리고 당소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쪽과 닮았던데.”

“……!”

당소소의 동공이 좁아졌다. 마교와연관된,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이는 달리 여러 명이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백서희는 그의말에 혀를 차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죽은 줄 알았건만….”


그녀는 독무후가 뿌린 벼락이 그의 가슴을 꿰뚫던 순간을 곱씹었다. 당소소는 듣고 싶지 않았던 소식에 아직 굳어있었다. 백서희는 뒷머리를 긁적이다 겨우 운을 뗐다.

“…이빙각[李氷閣]으로 가야해.”

“이빙각?”


당소소는 백서희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녀의 눈에 제방을 등지고 높이 세워진 전각이 보였다. 당소소는 백서희를 돌아봐 눈을 마주쳤다.


“도강언을 만든이의 이름을  딴 전각이야.제방의 수문을 조작하는 곳이지. 저곳만 탈환한다면, 수문을 개방해 강에 흐르는 독을 해결할  있을 거야.”

“하지만 스승님도 안계시고, 독마가 저기에 있을 확률이 높아. 적의 함정일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

“…맞는 말이야. 하지만 탈환만 한다면, 주도권을 우리 손으로 가져올 수 있긴 해.”

백서희의 제안에 당소소는 잠시 고민한다. 순간, 제방에 가까운 벽 쪽에서 우렛소리가 들려왔다. 피로에 젖은 두 눈들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스승님은 독마와 전투 중일게 분명해. 그럼….”

“그렇다면 돌입할 수 있어. 하지만, 괜찮겠어?”

“…….”

“네 판단에 따를게.”


그녀를 존중하는 백서희의 말에, 당소소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녹풍대를 돌아봤다. 녹풍대원들은 당소소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명을.”

“전….”

당소소는 주저했다. 자신이 내린 선택의 결과가지금 이 땅에 창궐하는 중이었다. 또 다시 다른 이에게 자신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소심한 그녀의 성격으론 쉬이 받아들일 수 없는 책임이었다. 녹풍 이 호가 앞으로 나와 당소소의 앞에 섰다.

“녹풍대는 당가를 지키는 바람입니다.”

“알고 있어요.”

“알고 있다면. 뜻대로 하십시오, 아가씨.”

녹풍 이 호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당신이 어디로 향하든, 위험 앞에는 저희가 있을 것이니.”

당소소는 착잡한 표정으로 녹풍대를 바라봤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무너진 가정에게 부여받은 부양의 책임. 죽을 용기가 없어서 살아야만 했던 생존의 책임. 불의에 맞설 만용이 없어 항상 손해 보는쪽에 서야 했던 약자의 책임.

원하지 않았던 책임들은 무거웠다. 김수환의 죽음은 아사가 아니라 어쩌면, 압사[壓死]일 지도 모른다.

다만.


“녹풍대.”

“예.”

당소소는 입술을 떼며 녹풍대를 바라봤다. 시선이 집중된다. 마음속에서 울컥 솟는 두려움. 손은 떨려오나, 의지는 떨리지 않았다. 주먹을 움켜쥐고, 이를 깨문다.

다만.

“…….”

전생의 책임은 경시과 멸시에서 비롯되었었다.

모든 것에 무지했고, 그는 무능했고, 자신을 버린 것 같은 세상엔 무관심했기에.

지금도 별다를 것은 없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수만던질 줄 알았으며, 그들을 신경써주지 않던 타인이 깃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리숙한 자신을 존중으로서 자신을 대해주었다.

당소소니까.

떨리는 숨결이 뱉어진다. 부정하던 초점은 결국 이빙각의 정면에 맺혔다.

“가주의 대리자로서 명한다.”

그렇다면.

또한 존중에 보답을 해야 한다.


“변절자를.”


비록 내가 당소소가 아니더라도.

“처벌할 시간이다.”


그럼에도, 당소소니까.

철컥!

녹풍대는 허리춤을 두드리며 당소소의 말에 호응했다. 당소소는 이빙각으로 향하는 걸음을 땠다. 떨림은 진정되지 않았다. 짙은 흥분은 독액처럼 그녀의 전신을 적시는  했다. 경시가 아닌 기대를, 멸시가 아닌 존중을이는 것은 익숙지 않았다. 사천교류회에서 던지던 인위적인 박수와는 무게가 달랐다.


‘익숙해져야해. 당소소의 부분까지.’


제방으로부터 흐르는 독한 바람에 그녀의 장포가 흩날렸다. 당소소는 눈을 찌푸리고 고개를 들었다. 고풍스런 기색의 이빙각이 그녀의 눈을 떠나지 않았다.


*


창문을 마주한 따분한 표정의 사내가 책상 위로 발을 걸쳤다. 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눈앞의 포박된 사내를 위협했다. 피에 젖고 군데군데 찢어진 기색이 보이는 비단옷에서 사내의 위치를 짐작할  있었다. 사내는 눈앞의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손해가  커진다니까.”

“…….”

“아버지께서 상재에밝다고 칭찬하던 이가, 이리도 멍청할 줄이야. 하긴, 가문을 말아먹은 그 혼탁한 시선에 무엇이 보이겠나.”

사내는 발을 내리고 튕겨나가듯 일어섰다.  기세에 나무바닥이 움푹 파였다. 사내는 혀를 끌끌 차며 웃었다.

“쯧, 독각천시의 완성형이라 이건가?”

그렇게 말하며 책상모서리에 손을 올렸다. 철제책상이 두부 파이듯 쑥 파여 그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사내는 그 철조각을 악력으로 우그러뜨렸다. 끼긱거리는 소리가 소름끼쳤다.

“그래도 네  정도면 꽤나 트인 시야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생각했건만.”

“…트인 시야?”


바짝 마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흡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대의를 보지못하고 있어. 안 그런가?”

“…….”


동의를 구하는 듯한 그의 말.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는 신이 나서 말을 이어간다.

“인의가무엇인가? 무지와 무능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인의 아닌가? 그리하여 난 인의를 구하기 위해, 대의를 짊어지고 기꺼이  대의를 위해 부정을 행했을 뿐.”


포박된 사내는 다소 흥분한 그의 말을 들으며 바닥을 내려다봤다. 자신을 호위하던 이들, 심지어는 열변을 토하는 이를 따르던 자들까지 모두 독에 절여져 녹아버린 살점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내 목숨을 대가로 백능상단의 창고를 열어야겠다?”

“대의는 무겁고 비싼 법이야. 우리는  나은 우리로 나아가야 해. 그것을 위해서, 다소간의 지출이 필요하겠지.”

사내는 포박된 그에게 돌아서 다가갔다. 의자 뒤편의 창가를 바라보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독은 적에겐 확실한 죽음을, 아군에겐….”

어깨를 쥔 손이점점 힘이 들어갔다. 포박된 사내는 억눌린 비명을 질렀다.


“으으윽!”

“보다시피. 초인으로 향하는 길을 제시해줄 거야. 설령 재능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사내는 어깨의 격통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였다. 어깨의 손이 풀리자,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고문한 자를 올려다봤다.

“완전 맛이 가버렸군, 당혁….”

“완전히 틀렸어. 이것은 그저 깨달음일 뿐이고, 원래부터 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웃으며 뿔 달린 뱀이 수놓인 장포를 바닥에 끌며 창가로 한걸음 더 다가섰다. 이빙각으로 걸어오는 당소소의 모습이 보였다.

“언제든지 손해는 보지 않는다고 했었나?”


그는 그렇게 물으며 입맛을 다셨다.

“썩 괜찮은 말이야.”


독각혈가의 소가주, 당혁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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