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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화 〉십칠장[十七章], 성하유랑[星下流浪] 11 (115/130)



〈 115화 〉십칠장[十七章], 성하유랑[星下流浪] 11

쌍검무쌍의 원작에서, 후반부 시점 백서희를 보좌하던 인물들이 있었다. 백능상단의 금전으로 영약은 기본이요, 질 좋은 병기들을 사용했으며 아미파의 무공을 사용하던 인물들. 백랑대라 불리던 그들은 후반부의 터무니없는 무공들이 난무하던 전장에서도, 나름의 역할들을 하던 꽤 수준급의 부대였다.

그렇기에 문제였다. 그렇기에 알  있었다.

“하하….”

당소소는 허탈하게 웃었다.

독무후가 일깨우기 시작한 그녀의 시야가, 이미 알고 있는 세계의 지식이 어지럽게 얽혔다. 그녀가 알고 있던 환란의 전조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앞당겨졌는지. 그녀의 이성은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의 끝을 잡았다.


“녹풍  삼호.”

그녀의 속삭임에 망설임없이 비수가 날았다.

피슛!

 거리임에도, 시야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미간을 향해 날아가는 비수는 녹풍대의 무공수위를 짐작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시인에게 날아든 비수로 집중됐다. 백서희, 지휘자. 녹풍대, 마교도. 모두가 당혹해하는 그 비수가 시인의 미간에 박히고 그를 넘어뜨렸다.


“시인…!”

“당가의 짓인가?”


소란이 일었다. 아군은 물론, 적군까지 당황해 그 어떤 무력도 휘둘러지지 않는, 공백이 찾아왔다. 당소소는 녹풍 십 삼호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혼란이야. 빨리 밀고나가자.”

“예.”


녹풍 십 삼호는 당소소를 안아들고 곧장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에 굳어있던 전장이 점차 야성을 되찾아갔다. 비명과 고함소리, 날붙이소리와 바람을 찢는 비수소리들. 그들은 그 전장의 소리들을 밟고 쓰러진 시인에게로 달려갔다.


“…….”


느껴지는 인기척에 백서희가 옆을 돌아봤다. 녹풍 십 삼호에게 안겨있는 당소소가 눈에 밟혔다. 백서희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왜…?”

“…….”

당소소는 불신의 목소리를 들었으나, 굳이 해명을 하지 않았다. 아니,  수 없었다.

‘백랑대의 수장은 원래 다른 이였다는 것을, 말해줘봐야 믿지 않겠지.’

“내려주세요.”

“예, 아가씨.”

“소소? 대답을 해. 어째서 이런 짓을 한 거야?”

“…….”

당소소는 백서희의 물음에 매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앙심을 품을까 무섭고 두려웠다. 혹은 자신에게 배신감을 느껴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이려고 들진 않을지, 그것 또한 무서웠다. 당장이라도 변명을 쏟아내고 싶었다.

“곧 알게 될 거야.”

당소소는 그 모든 감정을 집어삼키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녹풍대가 그녀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비명을 두르고 녹풍대를 거느리며 다가오는 당소소의모습은, 누가 보던지 당가의 혈육이었다. 지휘자와 당소소는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했다.


“독화.”

“이제야 모든 전말이 풀렸어.”


독무가 다가왔다. 당소소를 해하기 위해 달려들던 마교도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당소소는 시인을 내려다봤다.


“시인, 낭인회의 여덟 우수무사 중 하나….”


시인의 시신이 꿈틀거렸다. 당소소는 서둘러 눈짓했다. 녹풍 이 호가 당소소의 앞을 가로막고 튕겨 나온 화살을 움켜쥐었다. 시체인 줄 알았던 시인이 입에 문 비수를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 크기의 각궁이 그의 손에 쥐여있었다.


“천외십강, 무적자 낭인왕의  수하 중 궁랑[弓狼].”

“아가씨가  정체를 잘도 알고 있군. 단혼사 영감이 말해준 것인가?”

시인은 허리춤에 매어둔 화살을 뽑아 시위에 걸었다. 그리곤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지. 단혼사 영감도 우리의 목적을 몰랐으니까.”

“낭인왕의 복수.”

“정답.”


시위가 젖혀지는 소리와 함께 시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주군께선 사파의 수장, 삭풍검귀에게 억울한 누명이 씌워졌었다. 삭풍검귀는 이내 무림맹과 공조를  구주전역에 걸친 천라지망을 펼쳤다.”

“낭인왕이 설립한 낭인회조차 그를 외면하고, 북경에서 시작된 그의 도주는 사천성에서 멎었지.”

“거기까진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피잉!

시위를 떠난 화살이 당소소의 심장을 노리고 쏘아졌다. 녹풍대가 화살에 반응하여 움직이자, 시인은 곧장 뒤로 공중제비를 하며 난간에 발을 올렸다.

“…그 다음 내막은 우리 당가의 아가씨가 말해볼까? 잘 알고 있는 눈치인데.”

“낭인왕의 충직한 수하인 시인과 묵객은 주군의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단신으로는 낭인왕을 죽이는 데에 일조했던 모든 세력에게 복수를 획책하기란 어려운 일. 그렇기에….”

당소소는 시인을 바라봤다.

“정파와 사파, 심지어 낭인회나 정사지간의 세력들까지. 그 모든 세력에서 제외되는 곳과 계약을 맺어야했다. 북해[北海]의 빙궁[氷宮]은 사파와 교류 중이고, 남만[南蠻]의 야수궁[野獸宮]은 정파와 교류 중. 서역은 미지의 세력이었으니….”

“어린 처자가 꽤 똑 부러져.”

시인은 시위를 걸며 입맛을 다셨다.


“따먹어버리고 싶게.”

그의 눈이 음울하게 빛났다. 음담패설이 이어졌다.

“얼굴도 반반한게, 밑에 깔렸을 때  고귀한 척 하는 얼굴로 어떤 교성을 지를지…. 흣흣!”

당소소는 그의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시인의 말에 답해줬다.

“그래도 꼴리긴 하나보다?”

“……?”

“면상은 씨팔 누가 밀대로 나라시 한 것처럼 생겨가지고. 왜, 우유통이 마음에 드니? 좆만한 새끼야.”


공사장의 어르신들이 착실히 알려주던 언변을 활용한 그녀는, 충격에 빠진 좌중들 앞으로 나왔다.

“헛소리말고 본론으로 가자고. 넌 낭인왕의 복수를 하기 위해 마교에 투신했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계약은 성립. 첫 복수는 네 놈들에게 가장 가까운 사천성이 되었지. 틀려?”

“글쎄다.”

“백진오에게 접근해 백랑대의 총권을 쥐고, 사실상 도강언을 무주공산으로 만들었어. 기간은…. 대략 십 이년.”

정확한 연도를 짚어내는 당소소의 말에 시인의 활시위가 좀 더 뒤로 움직였다. 시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이거, 똑 부러지는 수준이 아닌데….”

“원래는 백능상단을 점점 잠식해나가고, 완전히 백능상단을 차지했다 싶을 때 백진오를 죽이려고 했겠지. 하지만 마교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라 요청했고. 거기에 마교에서 요청한 낭인왕의 유지[遺志]….”


피슛!

시인은 시위를 놓았다. 당소소의 다음 말을 막기 위함이었다. 여유가 번들거리던 그의 얼굴은 당소소의 말에 처음으로 굳어졌다.

“변방의 세가가 그렇게 자세히  수는 없다. 심지어 정보를 다루는 정파의 개방이나 사파의 하오문조차도. 넌, 뭐지?”

“글쎄다. 도강언을 습격한 마교의 목적을 알려준다면, 알려줄 수 있지.”

“쯧, 맹랑하군. 이봐, 막고 있어.”

당소소는 웃음을 보이며 시인이 했던 말을 돌려줬다. 시인은 혀를 찬 뒤, 몸을 날려 날아드는 비수를 피했다. 그리고 지휘자에게 지시한 뒤 삼 층으로 서둘러 도주했다. 당가의 무인들이 흩어지며그를 노리고 자리를 박찼다. 당소소의 곁엔 녹풍 십 삼호와, 서둘러 독무를 뚫고 달려온 백서희가 있었다.

“그 말, 사실이야?”

“보다시피.”

“왜 말해주지 않았어?”

“나도 방금 알아차린 거니까.”

백서희는 당소소의 말을 듣고 그녀를 바라봤다.

선현들이 남겼던 검로는 언제나 옳았고, 확실했다. 그대로 쫓기만 하면 되는 길이었다. 하지만, 길에서 내려온 지금은 모든 곳이 흐렸다. 가문의 미래도 뿌옇고, 자신의 감정은 자신도 알 수 없을 만큼 분노로 혼탁했고, 알아가고 있다 생각하던 친우는 희미했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하는가.’

십 수 년을 부대껴 살던 백능상단의 식솔은 마교의 주구란다.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주려던 당가의 망나니 아가씨는 이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단다. 영원히 푸를 것 같았던 도강언은 불길에 잠겨 가라앉고 있단다.


“…가자.”

당소소는 이런 그녀의 마음도 알지 못하는 지, 걸음을 재촉했다. 백서희는 입술을  계단으로 향하는 당소소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소소.”

“응.”

“…믿어도 될까.”

당소소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위로 들어 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믿지 마.  나쁜 년이었잖아?”

“어?”


씁쓸한 웃음에 당황하는 백서희. 당소소는 그 표정에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말을 주워 담았다.

“농담이야.”


발걸음은 다시 옮겨졌다.

“그냥…. 옳게 된 이야기를 알려줄게.”

당소소는 절룩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불안한 걸음이었다. 백서희는 서둘러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와 발을 맞췄다.

“난 안 믿어.”

백서희는 당소소의 팔을 끌어당겨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네가 여태 그랬던 것처럼…. 보여주면 돼.”

백서희는 무뚝뚝한 시선을 앞으로 던지며 나아갔다. 당소소는 홍조를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다 픽 웃었다.

“…그래.”


두 소녀는 시인의 흔적을 따라 삼 층으로 향했다. 마교도들이 진행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독무를 뚫고 제지할 수는 없었다. 틈을 타 당소소는 서둘러 삼 층으로 향했다. 계단을 밟자, 계단 위에서 백능상단의 옷을 입은 자들이 그녀들을 막아섰다.

“이 이상은 가시지 못합니다, 행수 아가씨.”

백서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차고 고개를 떨궜다.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지 않았다. 백색의 말끔한 옷차림에  눈에 봐도 파리한 예기를 퉁기는 검들. 백능상단의 심장을 지키던 백랑대의 모습 그대로였으니. 백서희는  모습에 한숨을 쉬며어깨에 걸쳐두었던 당소소의 팔을 풀었다.


“시인의 지시겠네. 이제 더는 정체를 숨길 이유가 없으니까.”

“…….”

“그것도 아니라면 백능상단의 대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나요?”

백서희는 그렇게 말하며 그들의 앞에 섰다. 앞으로 한 발짝. 검광이 번뜩이며 백서희의 진로를 막아섰다. 백서희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가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아가씨.”

“하아.”

백서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솟아오르는 두통을 끊어냈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기어코 독무를 뚫고 계단을 기어오르고 있는 마교도들이 보였다. 지체는 더 질척한 지체를 부를 것이란 것이 자명했다.


“좋아.”

백서희는 고개를 돌리며 검을 들었다.


“이제 출근하지 않아도 괜찮아.”

금빛의 검기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백랑대도 검을 고쳐 잡았다. 그녀에게 화답하듯 갖가지 무기에서 검기가 솟아났다. 백서희는 그 검기를 보며 웃었다. 그들은 이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던 떠돌이 용병이었다. 그런 그들이 검기를 뽑을 수 있는 이유. 그들이 날이 싱싱한 검을 들 수 있는 이유.


“장구류는 반납하고 가도록 하시고.”


백서희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신망금광보를 밟았다. 계단 위에 일렬로 서있던 백서희의 움직임에 맞춰 대열을 흐트러뜨렸다. 둘은 앞, 셋은 뒤. 넷은 중앙. 집단전에서 싸우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며, 백진오가 초청했던 진법가가만들어낸 백능탐랑진[白陵貪狼陳]이었다.

당연하게도,  역시 백능상단의 것이었다.


“반납하라고!”

백서희는 고함을지르며 검을 아래에서 위로 베어 올렸다. 평소와 같은 차분함, 웅혼함은 없었다. 초식도, 투로도. 그저 분노에 찬 참격이었다.

“크읏?”

“이런…!”


단검을 든 사내가 백서희의 검에 몸을 움츠렸다.  검에 대응해 손을 내밀었다간 진은 파괴될 터였으니까. 양 손에 철수갑을 끼고 있는 사내는움츠린 사내를 대신해 양 팔을 교차해 백서희의 검을 막아냈다.

“쳐라!”


철수갑 사내가 외치자, 후열의 네 검객이백서희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철수갑이 더욱 단단히 맞물려 백서희의 검을 고정시켰다. 철수갑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잘 가십시오, 아가씨.”

“구충 아저씨.”


백서희는 울적한 표정으로 그 작별인사에 화답했다.


“넌 해고야.”


녹풍  호의 손이 구충의 턱을 올려쳤다. 반응할 새도 없이 그의 턱이 으스러지고, 곧바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백서희를 향해 검을 휘둘러오는 네 무사 또한, 달려오던 자세 그대로 앞으로나뒹굴었다. 그들의 어깨엔 큼직한 철침이 박혀있었다.

“백능탐랑진은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개량한 것들이야.”

“큿…!”

“그러니 파훼법도, 잘 알고 있지 않겠어?”

도를 쥐고 있던 세 무인들이 뒷걸음질 쳤다. 녹풍대의 무인들은 그들의 팔을 잡고 비틀었다. 쥐고 있던 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백서희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며 말했다.

“…부러뜨리는 정도만 해주시길.”


우득!

“크아악!”

“악, 으아악!”

그들의  팔, 양 다리가 비정상적인 각도로 뒤틀렸다. 가로막던 백랑대가 사라지자, 그 앞엔 커다란 문이 있었다. 백서희는 옆으로 물러서며 당소소에게 말했다.

“이 앞엔 그 녀석이 있어.”

“응.”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 삼 층의 문고리를 잡았다.


“할  있겠어?”

백서희의 물음에 당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해야지.”

문이 열렸다. 창고처럼 보이는 방 안엔 탁자 하나와 의자  개가 놓여 있었다. 창문의 역광으로 보이는 익숙한 그의 음영. 그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이야, 동생.”

당소소는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작은 소름들이 정신을 말초부터 갉아먹는 듯 했다. 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를 마주했다.

“뭐라고 불러줘야 하지. 오빠? 아니면 오라버니?”

“넌 나를 오라버니라 불렀었지. 귀여운 동생아.”

그가 다가오자, 역광은 옅어지고 모습은 짙어졌다. 당혁의 얼굴이 그녀의  동공에 드리워졌다. 이빨이 딱딱 떨려왔다. 보이지 않게 아랫입술을 깨물어 억제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공포를 피했다. 당혁은 그 모습을 보며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왔지?”

“알잖아.”


떨리는 음성이 당혁에게 당도했다.


“피차   가자고.”

녹풍대가 당소소의 앞을 가로막았다. 당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키득거렸다.


“녹풍대라…. 확실히, 위험한 녀석들이야. 이 곳을 올라오는 과정에서 두 명 정도는 줄어들 줄 알았는데 말이지.”

웃음이 짙어졌다. 입을 막고, 고개를 숙이고.  크게 웃었다.그리고, 손짓하며 말했다.

“큭큭. 묵객.”

“예.”

당혁의 부름에 삿갓을 쓴 묵객이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왔다. 한 손에, 만신창이인 단혼사를 들고서.

“호법!”


당소소의 외침에도 단혼사는 피투성이의 얼굴을 푹 숙이며 반응이 없었다. 당혁은 자신이 일어섰던 의자를 가리키며 묵객에게 지시했다.

“앉혀라.”


묵객은 단혼사를  의자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구멍이  배에선 피가 울컥 솟아나왔다. 당혁은 당소소와 녹풍대의 표정을 보며 겨우 웃음을 진정시키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래. 피차 갈 길 가자고.”


당혁은 단혼사와 마주보던 의자를 돌려 세웠다. 그곳에는 고문의 흔적이 역력한 백진오가 앉아있었다.


“백진오!”

백서희의 외침. 당혁은 한껏 입술을 째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양 손에 비수가 쥐어졌다. 그 비수는 곧장 단혼사와 백진오의 어깨에 파고들었다.

“간단한 독이야.”


당혁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에게 손가락질 했다.

“해독제는 여기 하나 있고.”


당혁은 당소소와 백서희를 번갈아 바라봤다.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에서 어색한 경련이 일어났다.


“그럼, 서로 갈 길 가보라고.”

살아있는 강시의 몸이,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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