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십칠장[十七章], 성하유랑[星下流浪] 12
당소소는 당혁을 마주봤다. 감출 수 없는 잔떨림이 눈꺼풀을 흔들었다.
“배반자를, 처단해.”
“흐, 배반자라.”
당소소의 명에 따라 녹풍대가 앞으로 나섰다. 바닥을 박차는 소리들이매섭게 쏟아졌다. 당소소는 눈을 감았다. 이제부턴 자신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제야 눌러놨던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아랫입술을 힘껏 깨물어 혼미한 정신을 채찍질했다.
“…소.”
백서희의 목소리였다. 당소소는 눈꺼풀을 움찔거렸다. 눈을 뜨고 싶은데, 몸이 자꾸만 거부하고 있었다. 당혁과 다시 마주칠 자신은 있는지. 당혁과 다시 말을 나눌 자신은 있는지. 내가 아닌 내가, 자꾸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소소.”
다시 백서희의 목소리. 어깨를 흔드는 감각이 느껴졌다. 정신이몽롱했다. 그냥 쓰러져서 잠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소소!”
“흣.”
당소소는 숨을 들이켜며 눈을 떴다. 그녀의 눈앞에 선 백서희가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백서희의 시선은 당소소의 아랫배에 놓여있었다.
“정신 차려야 해. 통증 때문에 그러는 거야?”
“…잘 모르겠어.”
“당혁을 만나서 힘들다는 것도, 달거리 중이라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치만…. 뒤를 봐.”
당소소는 백서희의 말에 뒤를 돌았다. 시인의 백랑대를 베어 넘기고 지나친 계단으로, 마교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위기감을 넘어선 막연함이 느껴졌다.
‘벌써 한 다경이 지났나.’
멍한 표정의 당소소를 보던 백서희는 검을 앞으로 내밀며 삼 층의 입구로 향했다.
“넌 충분히 노력했어. 이젠 내 차례야.”
백서희는 인상을 찌푸리며 단전을 두드렸다. 백능상단의 금력을 쏟아부어 웬만한 고수들과도 견줄법한 그녀의 내공이었지만, 잇따른 연전으로 인해 이젠 바닥을 보였다. 그럼에도, 긁어모으고 그러모아 움켜쥐었다. 희미한 금빛 아지랑이가 검에 휘감겼다.
“쳐라!”
“저년의 사지를 찢어버려!”
“한 명, 한 명이야!”
백서희가 검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격돌. 일단의 무리가 아래로 나뒹굴었다. 당소소의 뒤편도 결국 그녀가 관여할 수 없는 영역에 들어섰다.
그리하여 뒤를 돌아서니, 녹풍대가 당혁의 마공에 고전중이었다. 이미 소비할 대로 소비한 독으로 살아있는 독강시인 당혁과 독공으로 맞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완벽하게 강시가 된 몸엔 칼은커녕 검기조차 듣질 않았다.
“당가의 정예가 고작 이 정도란 말이냐!”
“흩어져! 산이다!”
당혁이 흩뿌리는 독액에 녹풍대는 황급히 대열을 흩어 산의 영역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대열을 흩어버린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시인의 화살과 묵객의 검이었다.
“크읏!”
“자네들 목 하나당 금전 한 냥이야. 희생을 잊지 않도록 하지.”
녹풍 이호와 삼호가 매섭게 짓이겨오는 검을 회피해 뒤로 물러섰다.
‘저 빌어먹을 강시를 어떻게 뚫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아.’
녹풍 이 호는 혀를 차며 전황을 훑었다. 시인의 화살에 노출된 쪽도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당혁의 독공과 피부를 뚫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였고, 어깨와 다리에 화살이 심어져 전투에 차질이 생긴 인원이 다수 생겨났다.
“이것이 진보를 잊은 당가의 모습이다, 소소.”
당혁은 과장된 몸짓으로 양손을 펼쳤다. 그리고, 몽롱한 표정의 당소소를 바라봤다.
“무지하고, 나약하고, 어리석어.”
말을 꺼내던 당혁의 입으로 검기가 실린 비수가 날아들었다. 당혁은 그비수를 콱 깨물어 입가로 받아냈다. 그리고, 턱에 힘을 주며 이빨로 쇳덩이를 끊어버렸다.
“반면 진보를 받아들인 내 모습을 보거라. 얼마나 강력하지?”
“…….”
“당가의 독은 내 근골에 흐르고, 마공으로 빚어낸 독각혈가의 독은 내 핏줄에 흐른다. 난 독을 극복해 독을 받아들였고…. 결국 천적이라 여겨지는 검기마저도 내 몸을 해하지 못한다.”
당혁은 쇳조각을 뱉으며웃었다.
“이게 바로 당가가 나아가야 할 길이였다. 소소, 지금이라도 이 오라비의 손을 잡는다면. 이 내가 널 대업의 초석으로추대해주마.”
“읏….”
끈적거리는 당혁의 말이 당소소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바르르 떠는 그 모습에 당혁은 광소를 터뜨렸다.
“크흣. 아핫핫. 왜 떠느냐? 너도 좋아하는 실험 아니었느냐?”
“닥, 쳐….”
“기억을 잃었다더니, 주종관계를 잘못 파악하고있는 듯….”
“놈!”
당혁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녹풍대원 한 명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감정을 통제하고, 깔끔한 궤적으로 날아드는 보법. 그리고 완벽하게 꺾어낸 금나수가 당혁의 팔을 휘어잡았다. 오른팔은 상완을 잡고, 왼팔은 팔뚝을 잡았다.
당가의 금나술, 산류금나[散流擒拿]였다. 녹풍대원은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비틀어 꺾었다. 당혁의 눈동자가 희끄무레하게 변했다.
“뭘 하는 거야?”
“이, 이익!”
“뭘 하는 거냐고.”
분명 비틀어 꺾여 뼈가 드러나야 할 팔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이미 살은 물론이고 뼈도, 그 뼈를 잇는 이음매조차 완벽하게 경직시킨 강시였다. 그렇기에 금나술은 듣지 않았다. 당혁은 다른 쪽 손을 들어 녹풍대원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가볍게 손을 댔는데도,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읏, 아아악!”
“뭘 하는 거냐고, 뭘 하는 거냐고! 뭘 하는 거냐고 물었잖아!”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지르는 당혁. 그는 역으로 녹풍대원의 팔을 부러뜨린 뒤, 정강이를 걷어차 그를 주저앉혔다.
“노, 놈…!”
“놈은 무슨. 내 말 안 들려? 뭘 하는 거냐고, 제발!”
숫제 울부짖는듯한 말투. 당혁의 넓어진 동공이 녹풍대원을 바라봤다. 내공을 모으던 손을 발로 짓밟고 그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몇 개의 비수가 날아들었지만, 역시 듣질 않았다. 당혁은 그의 손을 짓밟은 상태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외쳤다.
“왜 의미 없는 짓을 해? 왜? 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거야? 모든 놈이 내 말을 믿지 않아. 모든 놈이!”
그 외침에 몽롱하던 당소소의 시야가 점차 초점이 맞아갔다. 녹풍대는 짓밟힌 대원을 구하기 위해 틈을 노렸지만, 시인과 묵객이 눈을시퍼렇게 뜨고 있는 터라 틈을 발견하기란 난해했다. 당혁은 거친 숨을 쉬어대며 그르렁거렸다.
“그럼 내가 믿게 해주마. 자, 이게 나찰염이라고 하는 거야. 이건 피안향, 이건 화화골산. 이건 환신향이고, 이건…. 아잇, 몰라. 전부 먹여줄게. 그럼 믿겠지? 응?”
“미, 친 놈….”
녹풍대원은 광기가 느껴지는 그의 행동에 욕설로답해줬다. 당혁의 숨은 갑자기 멈췄다. 붉어진 얼굴도 순식간에 창백한 색으로 변했다. 눈을 한 차례 깜빡인 그는, 몸에서 추출한 독을 손에 쥔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당소소는, 마침내 그를 바라봤다.
“…마공[魔功]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심성을 태워서 연성 되는 거야.”
“흐어어….”
바람 빠진 소리를 내는 당혁. 당소소는 녹풍 이호에게 소리쳤다.
“입마[入魔]!”
“예?”
“마공이 정신을 갉아먹는 중이라고!”
당소소의 설명에 녹풍대원들이 곧장 날아들었다. 둘은 시인의 화살에 뒤로 물러서야 했고, 나머지 넷은 묵객과 격돌했다. 그리고 채 막지 못한 한 사람. 녹풍 이 호가 멍한 상태의 당혁을 걷어차고 밑에 깔려있던 녹풍대원을 구해 당소소의 옆에 내려놓았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녹풍 십삼호…!”
“못난 꼴을, 보였, 습니다.”
고통이 그의 말을 뚝뚝 끊었다. 당소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자빠진 당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지만, 몸은 그렇지않은 듯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녹풍대원들이 서둘러 그를 향해 뛰어갈 때, 당소소의 외침이 들려왔다.
“정지!”
녹풍대가 반사적으로 정지했다. 당혁은 볼을 크게 부풀린 뒤, 녹풍대의 앞으로 독연을 뿜었다. 한 치만 더 나갔다면, 그의 독연에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당소소는 앞으로 걸어 나오며 다시 외쳤다.
“갑자기 돌진할 거야!”
당혁은 무릎을살짝 굽히더니, 땅을 박차고 자신이 뿌려놓은독연으로 몸을 던졌다. 녹풍대는 당소소의 지시를 따라 당혁의 측면으로 돌아갔다. 당혁은 꼴사나운모습으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누워있는 그에게 다가서는녹풍대. 당소소는 재빨리 지시했다.
“독각혈사연! 접근하지 마!”
푸확!
누워있는 당혁에게서 증기가 뿜어지듯 독연이솟구쳤다. 녹풍대는 복면 위를 손으로 틀어막고 뒤로 물러서서 당소소를 돌아봤다. 아랫입술에 이빨 자국이 선명한 당소소가 그곳에 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천천히 앞으로 다가오는, 그들의 주군이 그곳에 있었다.
“적은 독각천시라는 마공을 연성해 살아있는 강시로 변한 자.”
그녀는 피가 묻은 입술을 손등으로 훔쳤다.
“녹풍 삼호를 제외하고,녹풍 이호에게 모든 암기와 독을 몰아.”
“옛.”
당소소의 지시에 녹풍대는 허리춤을 풀어 녹풍 이호에게 내밀었다. 녹풍 이호는 망설이지 않고 녹풍대원들의 암기와 독을 받아 자신의 허리춤으로 옮겼다.
“삼호.”
“분부를.”
“시인의 활, 막을 수 있겠어?”
철컥, 철컥!
대답은 없었다. 다만, 허리의 장구류를 두드릴 뿐. 당소소는 손가락을 들어 삼 층의 입구를 가리켰다.
“나머지는 서희를 지원해.”
녹풍대원들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않고 뒤로 돌아섰다. 이 호와 삼 호, 그리고 바닥에 누워있는 십삼 호만이 그녀의 곁에 남았다. 당소소는 길게 숨을 뱉었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시인이 활시위를 약간 비틀어 약동환시[躍動環矢]라는 무공을 사용할 것이고.
쉬이이익!
나선을 그리며 내쏘아진 화살. 삼호는 곧장 당소소의 곁으로 바짝 붙어 그녀를 보호하고 비수를 마주 던져 화살을 격추했다. 이다음에 일어날 일도, 역시 선명하게 보였다.
“묵객에게 독을 던져, 이호.”
당소소의 지시에 녹풍 이호는 곧장 죽통을 던졌다.
팟!
말끔하게 갈린 죽통에서 주황색의 독연이 피어나왔다. 묵객은 혀를 한번 차며 뒤로 물러섰다. 당소소는 고개를 털어 현기증을 덜어내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보여.’
당혁은 창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좌우로 목을 꺾자, 철을 튕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깜빡이던 그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하, 내가 잠시 이성을 잃었다고 해도….”
“화화골산. 화, 수, 산!”
당혁이 손을 뻗어 독을 내뿜었다. 몇 방울의 독액이 당소소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미 녹풍 이호는 바닥에 제독분과 해독제를 조합해 화화골산이 뻗어나갈 진로를 원천봉쇄하고 있었다.
“뭐, 뭐지? 소소? 네가 어찌?”
당혁은 양손을 맞잡았다. 당소소는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환신향. 화, 목, 신경독.”
죽통이 딸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뻗어오는환신향을 향해 신경독이 내뿜어졌다. 교착. 제독분의 영역은 그어떤 것도 침노하지 못했다. 당혁은 알 수 없는 불쾌감에 볼살을 떨었다.
‘뭐지?’
피안향이 바닥을 타고 흘렀다. 비수로 끊어쳐 영역이 더이상 전개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당가의 융해독 중 하나, 아신루. 즉석에서 조합된 제독분이 중화시켰다. 직접 몸을 움직여 그들의 가슴을 쥐어뜯어 갔다.
“캬악!”
“앞, 좌, 위!”
쉿, 쉬잇!
독액을 머금은 손톱은 애꿎은 제독분만 갈고 지나갈 뿐, 당소소는 녹풍 이호와 함께 이미 두 걸음 뒤에 서 있었다. 그제야 당혁은 불쾌감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전부 꿰뚫고 있다?’
당혁은 옆을 바라봤다. 묵객이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너, 왜 움직이질 않지?”
“이 전장은 기회비용에서 소금기가 느껴지오.”
“그게 무슨…. 읏?”
올곧게 날아드는 비수. 비록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며 튕겨 나갔지만, 미간을 후비고 들어간 말끔한 궤적이었다. 당혁의 시선에는 삼양귀원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당소소가 눈에 밟혔다. 당소소는 자세를 풀며 읊조렸다.
“내달려올 거에요.”
“이, 빌어먹을 년이!”
녹풍 이호는 여유로운 몸짓으로 당소소를 옆구리에 낀 뒤 횡으로 이동하며 당혁을피했다. 꿈틀거리는 당혁. 당소소의 입술이 달싹였다.
“갈천염.”
화륵!
“상옥분.”
피시식!
“나찰염.”
빠직!
당혁이 내미는 모든 수를 막아갔다. 당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숨을 몰아쉬며 고함을 질렀다.
‘어떻게.’
“어떻게!”
당혁은 발을 굴렀다.
‘내 독을.’
“내 독을!”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뽑아 던진다. 녹풍 이호는 고개를 살짝 젖히며 피했다.
‘다 알고 있는 거야.’
“다 알고 있는 거냐!”
당혁은 얼굴을 붉히며 당소소를 바라봤다. 독, 마공, 독공. 그의 모든 것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김수환이었으니까.
‘내가 독각음녀였으니까.’
그의 행동, 말투 모든 것이 독각음녀 당소소의 행동과 흡사했으니까. 그렇기에 당소소는 당혁을 죽이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호, 한 걸음 뒤로.”
독각혈사연이 뿜어지며 나무바닥을 갉아먹었다. 통째로 녹여버리겠다는, 난폭한 심상이 담긴 산이었다. 어느 순간, 자신과 멀어진 개방방주의 딸에게 뿜었던 독무였다.
“크으으아아아!”
당혁은 분을 이기지 못해 괴성을 질렀다. 당소소는 허리춤에 매어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순천단이 그녀의 손에 잡혔다. 쭉 벌린 아가리에 순천단만 박아넣는다면, 독각천시는 알아서 무너질 것이다.
“이호, 한번 흘리고….”
“아으윽!”
뒤에서 들리는 비명이었다. 익숙한 목소리이기도 했고. 당소소는 뒤를 돌아봤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던 거구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의 팔은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고, 가슴팍의 피는 아직까지도 멎지 않았다. 서서히 주저앉는 그의 가슴엔 연철전의 비수가 박혀있었다.
“시, 십삼호!”
“아, 아. 아가씨.”
십삼호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당소소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아, 아니야.”
“제대로, 지키지 못해, 죄송…. 합니다.”
“왜, 왜 그랬어. 난 여기서 죽지 않는데. 왜!”
당소소의 절규에도 십삼호의 눈길은 무심하게도 흐려졌다.
“모르, 겠습, 니다.”
목구멍 너머로 피가 끓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무언가가…. 날 일으킨 듯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십삼호는 마지막 숨에 대답을 실었다.
“운명같은….”
십삼호의 뺨으로 손을 가져가던 당소소의 손이 멈췄다. 당혁이 다가와도, 시인의 화살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도, 마교도들의 괴성이 귓가를 묵직하게 후려갈겨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녹풍 이호는 당소소의 앞으로 나서며 당혁을 경계했다.
“아가씨. 다음 지시를.”
“…….”
“아가씨.”
녹풍 이호가 당소소를 재촉했다. 당소소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다음 지시를 던졌다.
“…손톱으로 할퀼거야.”
휘익!
녹풍 이호의 어깨를 노리며 철침이 날아들었다. 이호는 황급히 상체를 젖히며 예고와는 다른 공격을 회피했다. 다시 상체를 되돌리고 바라보는 당혁의 얼굴엔 잔학한 웃음이 그려져 있었다.
“알았다.”
당혁의 목소리에 당소소는 고개를 들어올려 그를 바라봤다.
“소소, 너 내가 마공에 인간성을 잠식되었다고 생각했었구나. 귀여운 것.”
그는 흥미섞인 시선으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소소야.”
그리고 마치, 애지중지 키우는 개를 바라보듯.
“난 언제나 제정신이었단다.”
애틋하게, 웃었다.